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브라우니는 하다못해 자신을 찾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고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바람에 스치는 나무의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걸어서 마을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브라우니는 아픈 발목을 이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ダイジョウブ? まだイタくない?”

 토모는 일어나는 브라우니에게 와서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아까전의 브라우니였다면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를 쳤을 터였지만 지금의 브라우니는 아무 말고 안하고 토모를 의지했다.

 “どこにイくの?”

 브라우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토모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브라우니는 어디에 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지나쳤던 마을. 그곳에 가면 전화나 컴퓨터가 있을 것이었다. 그것으로 연락을 하면 바이킹과 벨, 요크셔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마을에 가야 함다.”

 “ビリ... ジン... ビリージーンのこと? ジャクソン?”

 여전히 토모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토모가 브라우니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마, 을… 아님다. 어차피 못듣겠지 말임다.”

 브라우니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토모 역시 길을 잃은 것임에 틀림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브라우니를 이렇게 기다릴 리가 없었다. 할 일이 너무나 없어서 브라우니의 옆에 있는 것이거나 이곳이 어디인지 몰라서 어쩔줄을 몰라 하거나.

 “지도 있슴까? 지-도- 말임다.”

 “ヅ...ハ?... なんのこと?”

 말을 말아야지. 브라우니는 더 이상 토모에게 대답을 기대할 수 없었다.

 “좆같지 말임다.”

 상황도, 말이 안통하는 토모도, 아파죽을 것 같은 발목도 전부 브라우니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곳에서 내려가야 했다.

 “간다, 아래, 집! 임다.”

 브라우니는 어떻게든 소통하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천천히, 가장 쉬운 단어로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토모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씨발, 됐지 말임다.

 그렇게 둘은 어디론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브라우니는 토모가 걸어가니까, 토모는 브라우니가 걸어가니까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를 향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브라우니는 그저 이렇게 걸어가다보면 토모가 마을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거나 마을이 보이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ここにイけばなにかがイるの?”

 토모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글씨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지도라 하긴 어렵지만 약도의 역할은 충실하게 하고 있었다. 브라우니가 찾던 것이었다. 브라우니는 종이를 잡아당겼다.

 “지도임다, 지도!”

 “チズがホしかったらイってよ”

 토모는 당황하며 브라우니에게 지도를 넘겨주었다. 치즈? 토모가 치즈 이야기를 한 것 같지만 브라우니에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도에는 당연하게도 읽을 수 없는 일본어와 길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브라우니는 일본어를 읽을 필요가 없었다. 지도란 길만 읽을 줄 알면 되는 것이었다.

 “여기임다. 여기 가야 함다.”

 지도에서 무엇이 마을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지도의 한쪽은 길이 하나만 나있었고 반대편은 여러 길이 교차하고 있었다. 누가봐도 길이 많은 곳이 마을이었다.

 “여기! 감다!”

 브라우니는 지도의 마을과 앞쪽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말은 안통해도 손동작은 전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どこのハナシよ? ガッコウ? ミセ?”

 “우리, 여김다. 오케이?”

 브라우니는 자신을 가리키고, 지도의 공터를 가리키고, 손으로 OK 사인을 했다.

 “オケ-.”

 토모는 브라우니의 손동작을 따라하며 대답했다.

 “우리, 여기로, 가야 함다. 오케이?”

 이번에 브라우니는 자신을 가리키고 지도의 마을을 가리키고 간다는 손동작을 한 다음 손으로 OK 사인을 했다.

 “ムラにイくんだったらサキにイってよ.”

 토모는 웃으며 손으로 OK사인을 했다. 그리고는 브라우니를 부축하고 있는 반대편 손으로 브라우니의 어깨를 토닥였다.

 “ヒがクれるマエにハヤくイこよ.”

 토모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브라우니를 부축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맥에게 말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믿을까. 말도 안통하면서 산을 같이 내려왔다고.”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헛소리 취급하겠지. 아니, 말을 할 수가 있을까. 토모를 만났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평생에 걸쳐 숨겨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나무들 사이로 작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이었다.

 “고마… 아무것도 아님다.”

 고맙다는 말도 전해질 리가 없었다. 말을 해봐야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 사실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저 토모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줄 뿐이었다. 토모에게 이렇게 도움을 받았다니, 더욱 웃긴 일이었다.

 “ちょっとここでヤスもうよ.”

 토모는 길가에 나있는 벤치에 브라우니와 함께 앉았다. 큰 길가에 있으면 바이킹과 벨, 요크셔와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은 토모와 같이 있는 브라우니를 보면 어떻게 할까. 차에 있는 갖은 총을 꺼내 앉아있는 토모를 쏘겠지. 그리고 브라우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을 것이었다.

 “그래야 하는데 왜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검까.”

 아무 일도 없었으면. 브라우니는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놀라웠다. 자신은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브라우니는 블랙리버가 만든 전투병기였다. 총을 쏘라면 그 무엇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브라우니는 그런 병기가 아니었다. 자신을 산에서 내려오게 도와준 토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진 한 소녀에 불과했다.

 “좆같지 말임다.”

 브라우니는 토모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욕을 흘려보냈다.

 “トモ、なんでここにいるの? 大丈夫?”

 그때 한 여성이 다가왔다. 토모보다 키는 크지만 가슴은 작은, 평범한 인간 여성이었다. 그녀는 걱정하는 얼굴을 하며 토모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은 부모를 떠올리게 했다.

 “なんでもないよ? ゲンキだから. シンパイしないで.”

 여자에게 토모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왜 토모를 알고 있는 것인가. 토모를 돌보는 사람인 것인가. 브라우니에게 있어서 맥켄지 같은 사람인가.

 “こちは誰?”

 여자는 브라우니를 보며 말했다.

 “저, 전…”

 뭐라 밝혀야 한단 말인가. 브라우니가 망설이는 사이,

 “トオりスガりでミツけたよ.”

 토모가 알 수 없는 대답을 했다. 대답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여자는 의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こっちがワタシがイったマツシタ.”

 토모는 여자를 소개시켜주는 듯한 동작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소개시켜줘도 브라우니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マツシタ、エイゴはできる? ニホンゴはだめみたい.”

 “英語? ちょっと待って.”

 여자는 브라우니를 노려보았다. 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저는 마츠시타 쥰이에요. 당신은 누구죠?”

 약간은 어눌한 영어였지만 브라우니가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브라우니는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몰랐다. 자신을 밝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댈만한 거짓 신분도 없었다.

 “Oui?”

 브라우니는 언젠가 했던 프랑스어를 하며 말했다. 그녀가 할 줄 아는 유일한 프랑스어였다. 네? 라는 의미였다. 긍정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영어의 yes처럼 의문형으로 말하면 다른 의미를 띌 지도 몰랐다. 프랑스 문화를 모르는 브라우니는 상대방 역시 프랑스 문화에 무지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영어 못합니까?”

 브라우니는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노 잉글리쉬, 노 잉글리쉬.”

 라며 영어를 못한다고 영어로 대답했다. 자신을 마츠시타라 소개한 여자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フランス人かよ. で、どうするつもり? バイオロイドでしょ? ここに掘っておいては行けないよ?”

 마츠시타는 풀리지 않은 의문을 제쳐주고 토모에게 몸을 돌려 물었다. 제발 나는 두고 떠나는 검다. 브라우니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츠시타와 토모는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ここにイくっていったんだけど... やはりつれていくのがいいのかな?”

 마츠시타와 토모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브라우니는 이곳에 더 있을 수 없었다. 둘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틈을 타 브라우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목이 아팠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걷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자, 잠깐?”

 브라우니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마을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는 마을의 중심부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가로등은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길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브라우니는 아무 가게에 들어갔다.

 “いらっしゃいま… 大丈夫?”

 지친 브라우니를 본 주인장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브라우니는 천천히 계산대에 걸어가 말했다.

 “전화 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가로등이 하나둘 꺼져가기 시작했다. 토모와 마츠시타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두고 돌아간 것이겠지. 마치 바이킹과 벨, 요크셔처럼. 그들에게 전화를 하자 그들은 브라우니를 데리고 가는 것을 깜빡했었다고 대답했다. 지진이 일어나 차가 갈라진 틈에 끼어 그것을 빼다보니 브라우니가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도쿄로 돌아가던 그들은 차를 돌리고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다. 만일 브라우니가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한참 뒤에나 브라우니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었다. 토모를 찾아다니던 마츠시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부러웠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서로를 챙기고 지켜줄 수 있는 관계가 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익숙한 밴이 가게 앞에 멈춰섰다.

 “브라우니!”

 문을 열고 벨이 내려 달려와 브라우니를 안아주었다.

 “미안해. 경황이 없어서 네가 없어진 걸 몰라서.”

 “아님다. 와주셨으면 됐음다.”

 브라우니는 별로 기뻐하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 돌아가자. 어르신 감사합니다.”

 벨은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브라우니는 벨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며 아까전, 토모와 마츠시타가 있던 벤치를 바라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랐다.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브라우니의 무덤까지 가지고 들어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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