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21858258 1화

https://arca.live/b/lastorigin/21909848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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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은신처에게 나온 콘스탄챠와 그리폰은 철충들을 피해 무사히 오르카호로 돌아갔다. 오르카호에 도착하자마자 그리폰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위해 수복실로 향했고 콘스탄챠는 곧바로 희의실로 달려갔다. 서둘러 인간님을 발견했다는 낭보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오르카호는 수십 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 크기에 걸맞게 출격포드에서부터 회의실까지 거리가 있었다. 평범하게 걸어가면 무려 10분을 걸어야 출격포드에서 회의실로 도착할 수 있다. 콘스탄챠는 안전을 위해 복도에서 뛰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전력으로 회의실로 달려갔다. 구둣발로 출격포드에서 전력으로 달린지 3분, 콘스탄챠는 회의실에 도착했다. 회의실 문 앞에 멈춰 숨을 고르고 문을 열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스틸라인의 대장인 불굴의 마리, 경호부대인 컴패니언 시리즈의 대장인 블랙 리리스, 그리고 며칠 전 합류한 앵거 오브 호드의 대장 신속의 칸과 그녀들의 부관들이 있었다. 원래라면 배틀메이드들의 대장이자 바이오로이드 저항군의 수장인 라비아타 프로토타입도 있어야 했지만 그녀는 전투 중 부상을 당해 행방불명인 상태이다.

 

 “콘스탄챠 무슨 일인가?”

 

 콘스탄챠가 거친 숨을 내쉬며 회의실로 들어오자 마리는 큰일이라도 일어났나 생각했다. 평소에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의 콘스탄챠가 지금처럼 다급해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짐나 마리는 곧이어 콘스탄챠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그녀가 왜 저렇게 다급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인간님을 찾았어요!”

 

 인간? 아주 잠시 동안 회의실은 침묵의 장이 되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에 다들 깜짝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이 흐르고 마리가 오르카호가 떠나갈 만큼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인간님을 찾았단 말인가?!!”

 

 마리의 말에 회의실이 진동했다. 회의실의 모든 시선이 콘스탄챠에게 쏠렸고 순식간에 쏠린 많은 시선들이 부담스러웠지만 콘스탄챠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콘스탄챠의 반응에 희의실에 있는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환호했다. 길고 길었던 시간 끝에 마침내 최후의 희망을 발견한 그녀들은 깊은 어둠을 비춰줄 한 줄기 빛을 찾은 기분이었다. 마침내 인류 재건을 위한 전쟁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저 가증스러운 철충들에게 반격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군.”

 

 마리는 지난 수십 년간 철충들에게 죽었던 부하들을 떠올리며 결의를 다졌다. 회의실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기뻐함과 동시에 전의를 다졌다. 마음속으로 자신들을 이끌 인간에 대한 상상을 나래를 펼쳤다. 어떤 인간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등등 긍정적인 부분으로 상상하던 자도 있었지만 멸망전의 세상에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아 인간들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마리나 칸 같은 개체는 걱정이 살짝 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걱정보다 파괴명령을 내려줄 수 있는 존재를 찾았음에 안도했다. 영원히 인간을 찾지 못하고 도망만 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래서 어디에 게신가? 수복실에서 몸 상태를 확인하고 게신가? 우리가 가서 인사를 드려야지.”

 

 마리는 콘스탄챠에게 찾았다는 인간의 행방을 물었다. 리리스는 새로운 주인을 모시려갈 준비를 마쳤고 칸은 이미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콘스탄챠는 마리의 질문에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기대에 찬 마리의 눈을 보니 진실을 말하기가 더 힘들었다. 콘스탄챠가 말이 없자 마리는 그녀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왜 그러지? 혹시 상태가 안 좋으신가? 말을 해주게.”

 

 콘스탄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인간님을 찾기는 했어요...하지만 모셔오지는 못했어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마리는 콘스탄챠의 대답이 당황스러웠다. 콘스탄챠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인간님을 찾았지만 그분이 오르카호에 합류하는 걸 원하지 않으셨어요. 자신은 인류 재건 같은 일에는 관심 없다고...”

 

 “낭패로군...”

 

 가까스로 찾아낸 최후의 인간이 인류 재건에 회의적이라니...활기찼던 회의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암울해졌고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콘스탄챠가 찾았다는 그 인간을 데려오지 못한다면 또다시 인간을 찾아야 한다. 기적적으로 인간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더 이상 세상에 인간이 남아 있지 않다면? 회의실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는지 동시에 몸에 닭살이 돋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칸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칸은 부관인 탈론페더에게 대원들 중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이를 대기시키라고 전했다. 탈론페더는 칸의 말에 알겠다고 답하며 회의실을 나갔다. 

 

 “어쩔 작정인가?”

 

 “오지 않겠다면 오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칸은 싱긋 웃으며 마리에게 답했다. 칸은 전장에서 깊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저 앞으로 전진하여 눈앞의 적이 전부 쓰러질 때 까지 죽일 뿐. 무슨 장애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칸이기에 이번에도 그녀는 자신이 생각해낸 방법을 그대로 시행할 생각이었다. 오지 않겠다면 오게 하면 된다. 

 

 “전쟁은 타이밍이다 마리 소장. 이번이 아니라면 우리는 두 번 다시 인간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지금은 우리가 직접 콘스탄챠가 찾았다는 그 인간에게 가볼 필요가 있다고 난 생각한다. 혹시 모르지 우리의 진심이 그 인간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인간을 오르카호를 데려올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칸은 가만히 앉아 고민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적어도 그 무언가가 있는 장소까지는 직접 가지 하지 않겠냐고 칸은 생각했다.

 

 “잠시만요, 칸 대장님.”

 

 회의실을 나가려고 하는 칸을 콘스탄챠가 멈춰세웠다. 칸은 멈춰서 콘스탄챠에게 고개를 돌렸다. 콘스탄챠는 결의에 찬 얼굴로 칸에게 말했다.

 

 “저도 함께 갈게요. 제가 인간님의 은신처를 아니 그곳까지 안내할게요.”

 

 “고맙군 콘스탄챠. 안내를 부탁한다.”

 

 콘스탄챠는 회의실을 나가는 칸을 뒤따라갔다. 회의실에는 마리와 리리스만이 남게 되었고 둘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보더니 같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둘은 회의실은 나가며 인간에게 찾아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마리의 부관인 레드후드는 마리의 명령에 곧바로 스틸라인 숙소로 돌아가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인원들을 대기시켰고 리리스는 자매들을 불러 출격 준비를 하라고 전했다.

 

 오르카호의 출격포드, 언제나 여러 가지 이유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은 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출격포드에 있었다. 출격포드에는 스틸라인과 앵거 오브 호드, 컴패니언 시리즈 소속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출격을 대기하고 있었다. 칸과 마리, 리리스는 약속이라도 한 듯 출격포드에서 다시 만났다. 

 

 “결국 같이 가는 건가?”

 

 “이런 일에 스틸라인이 빠질 수는 없지.”

 

 “저희들의 주인님이 될 분을 뫼시러 가는데 빠질 수 없죠. 방해나 되지 않았으면 하네요.”

 

 칸은 마리와 리리스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출격포드의 가장 선두에 서있던 콘스탄챠는 칸과 마리, 리리스에게 말했다.

 

 “여기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인간님의 은신처가 있어요. 저 뒤에서 잘 따라와 주세요.”

 

 콘스탄챠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출격포드가 조금씩 열렸다. 콘스탄챠를 필두로 마리와 칸, 리리스가 뒤를 따랐다. 출격포드를 걸으면서 콘스탄챠는 인간을 설득할 방법들을 머리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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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길을 기억해내며 콘스탄챠는 숲속을 걸어갔다. 콘스탄챠의 뒤로 마리, 칸, 리리스 그녀들의 대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오르카호에서 출격한 후에 지금까지 철충들과 전투를 하지 않고 올 수 있었다. 오르카호에서 출격한지 1시간이 지났을 무렵 콘스탄챠 일행은 남자와 처음 만났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철충들의 시체들과 피가 숲에 널려 있었다. 총격에 쓰러진 나무들과 움푹 패인 땅, 지면에 흩뿌러져 있는 탄피들은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여기서 처음 인간님을 만났어요. 저와 그리폰이 철충들에게 포위되었을 때 저희를 구해주셨죠. 조금만 더 가면 그분의 은신처가 나와요. 따라오세요.”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걸 깨달은 콘스탄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콘스탄챠를 따라 이동하려던 중 전투현장을 확인하던 마리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마리는 철충의 시체들을 확인했다. 철충들의 시체는 전부 무언가에 잘린 것처럼 깔끔했다. 수색에 나갔던 그리폰과 콘스탄챠 모두 화기를 무기로 사용한다. 만약 전투가 있었다면 필시 철충들의 몸에 총알이나 미사일 파편이 박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죽어있는 철충들은 화기에 공격당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너도 발견했나?”

 

 “자네도 발견했나보군.”

 

 “시체가 너무 깨끗해. 전부 칼로 잘린 것 같군.”

 

 “콘스탄챠와 그리폰이 냉병기를 사용할 일은 없고 설마 둘은 구했다는 그 인간이 전부 죽인 건가?”

 

 마리의 말에 칸은 다시 한 번 전투현장을 훑었다. 족히 수십 체는 가볍게 넘기는 철충들의 시신, 저 많은 수의 철충들은 인간이 단신으로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제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도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개체는 전투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급 개체들뿐이다. 칸과 마리는 의심을 잠시 묻고 콘스탄챠의 뒤를 따랐다. 어쩌면 콘스탄챠가 터무니없는 인간을 발견해버린 것 같다고 그녀들을 생각했다. 

 

 “도착했어요.”

 

 콘스탄챠는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지금까지 지나온 숲길과 별다른 것이 없었다. 주변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있었고 은신처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숲에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어까지 전부 빠진 폐차 한 대였다.

 

 “은신처로 보이는 건 없다만. 어떻게 된 거죠?”

 

 인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설레고 있던 리리스는 1시간 동안 걸은 후에 도착한 곳이 평범한 숲속이란 것에 살짝 짜증이 났다. 리리스가 날선 목소리로 콘스탄챠에게 묻자 콘스탄챠는 태연하게 답했다.

 

 “그리폰도 처음에는 그런 반응이었어요. 인간님은 여기에 계세요.”

 

 콘스탄챠는 폐차로 걸어가 보닛을 열었다. 보닛을 열자 밑에 숨겨저 있던 계단이 드러났고 그걸 본 리리스는 숨겨지 계단을 봤던 그리폰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콘스탄챠는 그런 리리스의 반응에 작게 미소를 띄웠다.

 

 “이 밑이 인간님이 계신다는 말인가?”

 

 “예.”

 

 마리와 칸, 리리스는 따라온 대원들에게 이 주변을 단단히 경계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명령을 받은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경계 태세를 갖췄다. 마리는 제일 먼저 계단에 한 발을 내딛었다.

 

 “어두우니까 조심하세요.”

 

 콘스탄챠는 마리를 걱정했지만 마리는 성큼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고 칸과 리리스가 그 뒤를 따랐다. 지난번에 그리폰을 부축하고 계단을 내려갈 때 지나치게 어두워 불편했던 것이 기억난 콘스탄챠는 보닛을 열어놓고 세 명이 계단 끝까지 내려가는 것을 확인했다. 세 명이 계단 끝까지 도착한 것을 확인한 후에 콘스탄챠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서 보닛 뚜껑을 닫았다.

 

 계단 끝까지 내려간 마리는 굳게 닫혀있는 문을 발견했다. 문 너머에서 빛이 세어 나오고 있는 걸 본 마리는 이곳이 콘스탄챠가 말한 은신처임을 확신했다. 

 

 “빨리 들어가보세요.”

 

 리리스는 앞에서 문을 막고 있는 마리에게 어서 들어가라고 재촉했다. 마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 상당히 깔끔한 은신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신처 안으로 들어온 세 명은 상상 이상으로 깔끔하고 정돈된 은신처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정면에는 양팔에 장착한 기관총이 인상적인 검은색 강화외골격이 세워져 있었고 양 벽면에는 온갖 종류의 화기들이 시선을 끌었다. 놀라움도 잠시, 셋은 동시에 어떤 신호를 감지했다. 마리와 칸은 이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뇌파였다. 셋의 시선은 뇌파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걸어간 곳에는 사람 한 명이 누울 크기인 아담한 침대가 있었고 그 침대에는 흰 민소매 티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남자 한 명이 누워 자고 있었다. 어두운 금발 머리카락, 수염이 멋들어지게 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얼굴, 민소매로는 가려지지 않는 근육질 몸과 훤히 들어나 있는 굵은 팔뚝, 그와 상반되는 그리 커 보이지 않은 키. 남자를 본 셋은 잠시 동안 눈을 때지 못했다.

 

 “그분이 제가 찾은 인간님이세요.”

 

 콘스탄챠는 침대로 다가가 마리와 칸, 리리스 옆에 섰다. 넷이 남자를 내려다보며 각자 감성에 젖어 있을 때 남자의 눈꺼풀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몇 번 움직이더니 남자는 눈을 떴다. 잠에 깬 남자는 눈앞에 왠 네 명의 미녀들이 서있는 걸 보았다. 하지만 잠이 조금 깨자 한숨을 푹 쉬었다.

 

 “불굴의 마리에 신속의 칸 그리고 블랙 리리스라... 날 끌고 갈려고 작정을 했군.”

 

 남자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남자는 눈앞에 서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보며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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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질 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금방 스토리를 진행시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