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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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적의 용, 최후의 해군참모총장이자 강직한 성품을 지닌 여성이다. 그렇다. 아무리 많은 미사여구를 붙여도 결국 본질은 단 하나 '여성'이란 것이다. 오랜 시간을 잠 들어있던 그녀가 처음 사령관을 보았을때, 과연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자신이 일어났다는건 인류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으니 그들을 위해 자신의 힘을 발휘해야겠다거나, 자신의 앞에 서있는 최후의 인간에 대한 자질이 부족할지 같은 멋들어진 것들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당신의 착각이다.


무적의 용이 처음 사령관을 보았을 때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은 단 하나,


'와, 남자다!' 였다.


앞서 말했지만 무적의 용은 여자다. 10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잠 들어있던 그녀가 아무리 뛰어난 바이오로이드라 할지라도, 인간을 베이스로 한 이상 식욕,성욕,수면욕을 이길 순 없다.


잠은 충분히 잤고, 콜드슬립 되기 전 배는 든든히 체워뒀을테니 남은건 뭐겠는가? 결국은 성욕인 것이다. 알몸의 상태로 콜드슬립에서 풀렸기 망정이지, 만약 옷을 입은 상태였다면 사령관을 보자마자 흥건하게 젖은 그녀의 음부를 바로 들켰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충동을 스스로 억제하며 최대한 사령관 앞에서 서있었단 것만으로도 엄청난 정신력을 가진 것이란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평범한 브라우니였을 경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사령관을 덮쳤을테니, 이 점에서 무용이 보통이 아니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자신을 억누르고 억누르며, 오르카호에 올랐건만, 몇달이 지나도록 그녀에게 내려진건 철충에 대한 포격, 그리고 포격, 끊임없는

포격 요청이었다. 100년동안 거미줄 친 자신의 아랫도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집주인을 찾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아랫도리는 역세권도 재개발구역도 아니었다. 멸망전으로 치면 강원도 어느 산골의 다 쓰러져가는 주공아파트가 현재 그녀의 위치였다.


멋드러진 정장도, 자신을 우러러보는 대원들과 감히 사령관조차 함부로 못하는 지위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옆동네 아무게가 사령관이랑 했네 어쨌네 하는 출처없는 소문들을 들으며 부러워하는게 전부인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져가고 있을 무렵,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엇, 초....총장님 여긴 무슨 일로....."


쓸쓸한 마음을 달래보려 홀로 갑판에 올라간 어느날, 무적의 용은 보고 말았다. 자신의 부하인 세이렌이 사령관과 밀회를 즐기고 있던 장면을 말이다.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정상적인 침대도 아니고 야외에서, 그것도 사령관에게 안겨 방아를 찧으며 교성을 내지르고 있으니....배신감과 착잡함, 그리고 부러움 등의 만감이 교차한 무적의 용(줄여서 무용)은 미안하단 말과 함께 도망치듯 갑판에서 자신의 방까지 도망쳐왔다.


이 예상밖의 사고는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녀에게 재개발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투기 광풍에 휩싸인 그녀의 아랫도리는 버블이 터지기 직전 일본의 부동산을 꿈꾸듯 손가락으로 열심히 용두질에 몰두하였고, 거진 100년이 넘는 시간만에 가진 첫 성행위는 미쳐버릴 정도로 기분 좋은 행위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자위, 본 게임도 아닐뿐더러 침대와 손가락을 적신 끈적한 애액은 허탈감만을 남기게 했다.


"씨발, 나도 하고 싶다고....."


부하의 성행위를 반찬 삼아 자위를 해버린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자위 이후의 공허감은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었고, 처음으로 누군가를 부러워한단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 아이, 세이렌이라고 했나?"


그 아이처럼 되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이 무적의 용을 집어삼키기 전인 어느날 밤이었다.



-2-


다음 날 아침, 무용은 노크 소리에 잠을 깬다.


"총장님, 총장님 일어나셨습니까?"


이 목소리는 어젯밤 교성을 질러대던 그 아이였다. 그녀를 어떻게 봐야할까 민망했던 무용에겐 그녀의 방문은 의외였고, 침대에서 일어난 후

대충 머리를 정리한 뒤 문을 열어주었다.


"아아, 세이렌양이군. 들어오게"


문을 열어주며 위,아래로 그녀를 스캔한 무용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사령관과 밤새 놀았구만'


살짝 헝클어진 머리카락, 눈 밑에 진 다크서클, 그리고 옷을 입은채로 한건지 지독할정도로 진득한 사령관의 체취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와중에 스타킹 한쪽은 어디다 팔아먹은건지, 한 발은 맨발인 상황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편하게 앉게, 차라도 들겠나?"


"아...아닙니다!! 제가...준비하겠습니다"


"모처럼 찾아온 손님인데, 내가 대접해야 체면이 살지않겠나. 가만히 있게나"


"알겠...습니다..."


최대한 아무렇지않은 척 이야기 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뻘쭘해하는게 눈에 훤히 보였다.


"들게, 마침 좋은 찻잎을 선물받았다네"


"이건....뭔가요?"


생전 처음보는 녹색 물에 세이렌은 신기해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녹차라는걸세, 어린 친구들은 잘 모를수도 있겠군....아, 이런 말실수를"


"아닙니다, 총장님에 비하면 아직 애죠......"


의도치는 않았지만 나이로 시작된 묘한 분위기에 두 사람은 찻잔만 바라보고 있던 중, 더 늦기 전에 말을 해야겠다 생각한 세이렌은 갑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먼저 말하기로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저...지거, 어젯밤 일은....."


"어젯밤 일이라면??"


"갑판에서 저기 사령관님과........"


"그거는 그....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네......나야말로 노크도 안하고 불쑥 올라와서 미안했네"


"갑판에서는 좀 그렇지 않냐고 말렸는데, 사령관님께서 계속.....제 옷을 칭찬하시면서 자극하셔서 그만.....정말 죄송합니다!"


새빨개진 얼굴을 푹 수그리며 사과하는 세이렌이었지만, 무용은 묘하게 그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명 사과를 하는건데 왜 기분이 나쁜걸까? 차근차근 집어보니 화의 근원이 어디서 온건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찾아와 자신의 방을 도배하고 있는 그녀의 옷냄새, 은근슬쩍 어리다고 어필하는 것도 모자라, 사령관이 먼저 유혹했다라....

사과를 하러 온 자세가 아니라 마치 자랑을 하러 온 듯한 뉘앙스가 풀풀 풍겼지만, 여기서 화를 내는건 일류가 아니다.


"자네, 정말 죄송하다 생각하는가?"


"네....진심입니다"


"그럼 하나 부탁하지. 그 옷, 나한테 빌려주게"


"저기....지금 입고 있는 이 옷 말씀하시는거 맞으신가요?"


"그럼"


예상치 못한 요구에 세이렌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건 사령관님께서 저한테 잘 어울릴것 같다고 선물하신 옷인데...."


"그래서, 싫다는겐가?"


".....아닙니다. 오늘 바로 세탁 후 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사령관에게 오늘 밤 갑판에서 다시 보자고 전달해주게. 물론 내가 부탁했단 말은 하지말도록"


"아...알겠습니다. 바로 전달해드리도록....하겠습니다"


세이렌이 나가고나자 무용은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미쳤지, 대놓고 사령관이랑 부하 옷 입고 떡친다고 말한거나 다름없잖아"


하지만 한편으론 속이 후련해졌다. 100여년만에 생남자를 맛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달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