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눈보라가 쉬이 내리치던 산맥을 벗어났을 때, 나는 언니들을 따라 마을로 간 적이 있었다.

하하 호호 웃으면서 뛰어가는 언니들의 손을 꽉 잡고 있는 힘껏 언니들의 발걸음을 맞추며 달려갔다.

곧 엄청난 것을 보여줄게. 너도 기대해도 좋을 거야.

그곳이 어디인지는 몰랐다. 애초에 일이 막 끝난 도중에 언니들이 나를 끌고 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밝은 얼굴로,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한 언니들의 표정을 보니 나 또한 어쩐지 마음속에서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언니들이 나를 데려간 곳은 한 놀이공원

처음이었다. 나 자신이 만들어지고 나서부터 이런 장소는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언젠가 한 번쯤은 이곳에 와보고 싶다고는 생각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멀리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포격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눈앞에서 몇 개의 커다란 불꽃이 하늘 위로 솟아오른다.

이어서 그 불꽃들은 하늘에서 터지면서 사방에서 불꽃이 퍼져나갔다.

하늘을 수놓은 형형색색의 불꽃,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어두운 선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불꽃들, 불꽃들은 한순간에 눈가에서 사라져갔지만 그런데도 다음 불꽃, 그다음 불꽃이 땅에서 하늘로, 그리고 이번에는 벚꽃 모양의 무늬로 그림이 그려졌다.

제발 시간이 멈춰주었으면, 이 한순간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인생 첫 번째 불꽃놀이였다.










“사령관님, 저는 악마가 아니에요.”

“응, 알고 있어.”


사령관님의 집무실에서 나는 사령관님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사령관님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령관님, 처음 만났을 때도 말했듯이 저는 언니들한테 구두쇠라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그렇게 생각보다 깐깐한 사람은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오차범위 내에서 자원을 사용하도록 할 뿐, 약간 초과하는 것 정도야 충분히 용서할 수 있어요. 예를 들자면 이번 전투에서 알비스가 초코바를 한 개 더 몰래 가져간 것 또한 눈감아주었고요. 하지만, 이번에 사령관님이 쓴 우유의 양은 대체 얼마죠?”

“욕조 하나...”

“거기서 무엇을 했었죠?”

“포이랑 다크엘븐이랑 같이 욕조에 몸을 담갔었지...”


그의 양옆에 함께 무릎을 꿇고 있는 포이와 다크엘븐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 그 우유는 어떻게 되죠? 분명 몸만 담근 게 아닐 텐데,”

“하하, 그거야 뻔한 일이지. 저 반질반질한 피부들을 보면 뻔한 게 아닌가!”


방에 있던 로얄 아스널이 입을 열었다.


“언제나 거대한 가슴에 굶주려있던 사령관이라면 앞에도 거대한 가슴, 뒤에도 거대한 가슴에 짓눌려있는 상황에서 남자의 본성을 숨기기 힘들겠지, 새하얀 물결이 천천히 흔들리면서 요동치더니 얼마 안 가 욕조에서는 새하얀 거센 파도가 욕조에서 쉼 없이 일겠지. 우유가 피부에 스며들면서 사령관의 백탁액은 이전보다 더욱더 새하얗고 그녀들의 가슴에서 나오는 모유 또한 순백 그 자체이겠지. 그렇게 정신을 차릴 때 쯤, 욕조 안은 임신하고도 남을 백탁액으로 가득 차 있겠지. 멋진걸!”

“네, 그 말대로요! 그런 의미에서 조금 전에 찍어둔 영상 백업해뒀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탈론페더가 아스널에게 이어폰을 건네주자 아스널은 집중하면서 탈론의 패드를 뚫어지라 지켜보았다.

어차피 무엇을 보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사령관을 째려보았다.


“...변태.”

“너는 안 건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만약 저도 가슴이 컸다면 충분히 건드리셨을 거면서.”

“흠...”

“상상하지 마세요! 아무튼 이제는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어요. 허구한 날 이상한 곳에 자원을 쓰지 않나. 매번 자원을 점검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오차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일어나서 제가 얼마나 곤란하지는 생각이나 해보셨어요? 제발 생각을 해주세요. 평범한 이유로 자원을 낭비하는 걸 해주세요. 이런 우유욕탕에서 한판 한다는 짓거리 말고요!”


그렇게 외치고 나는 책상에서 내려가 곧장 문으로 달려갔다.


“안드바리!”




뒤에서 사령관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눈앞에는 레오나 언니랑 님프 언니가 서 있었다.


“언니들...”


나는 문을 닫고 언니들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는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러는 거니?”

“말도 마세요. 귀한 우유들을 욕탕에다가 써먹었다는 거 있죠!”

“정말로? 우유로 목욕하면 피부가 더 좋아진다는데... 부러운걸.”


님프 언니는 한쪽 볼을 문지르곤 이어서 그 손으로 반대쪽 볼을 문질렀다.


“아무튼 언니들도 한번 호되게 말해주세요. 사령관님을 너무 오냐오냐하면 나중에는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니깐요?”

“걱정마렴. 내가 알아서 이야기해줄 테니까.”

“맞아, 레오나 언니가 알아서 다 이야기해줄 거야. 너는 오늘 하루는 방에 있으면서 계속 화난 척 연기하고 있으렴?”


님프 언니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혹시 티 났나요?”

“걱정 마, 둔감한 사령관은 전혀 눈치 못 챌 정도니까. 그러면 님프랑 방에 먼저 가 있으렴. 나도 조금 있다가 갈 테니까.”




안드바리가 방에서 나가고 이어서 레오나가 방에 들어왔다.


“또 안드바리한테 된통 혼났나 봐?”

“뭐, 그렇지. 애초에 혼날 생각 하고 한 짓이었으니까."

"그래서, 소감은?"

"최고였지."


사령관은 목덜미를 긁적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혼날 거라 생각했으면서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그거야, 그러고 싶었으니까. 죽기 전에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걸랑.”

“아하하하, 겨우 그런 이유일 뿐이야? 우리 안드바리한테 아무 말도 못 하는 이유가 있었네.”

“...처음부터 듣고 있었나 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중간부터 듣기는 아쉽지. 부탁했던 일이 일찍 끝나서 다행이야.”

“아, 그거.”


사령관은 의자에 풀썩 기대면서 앉았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어?”


“준비는 완벽해. 지정한 장소에 정말로 그 물건들이 있더라고. 아마 오늘쯤에라도 사용 가능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오늘은 역시 무리려나?”


레오나의 물음에 사령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일수록 더 좋지. 안드바리한테 미안한 것도 있으니까 말이야.”

“병 주고 약 주는 남자는 썩 좋은 편은 아닌데.”

“병만 주는 남자보다는 더 나을걸. 아무튼 부탁해.”




그날 밤, 레오나 언니가 나한테 찾아왔다.

아까 일을 사과하기 위해서 사령관님께서 발코니에서 부른다고 하였다.

어째서 발코니인가, 물어보니 레오나 언니는 잘 모르겠다는 시늉을 하며 곧장 떠났다.

무언가 수상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장난을 꾸미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나는 레오나 언니가 말을 따라 발코니로 가기로 하였다.


발코니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찬 바람만이 부는 한적한 장소,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찡했지만, 곧 사령관이 올 거라는 생각에 나는 잠시 난간에 몸을 걸치며 바다를 보았다.

빛 한점 보이질 않는 바다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에는 사령관님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혹시나 일찍 온 것인가 시간을 확인했지만 약속 시각은 이미 1분이나 지난 뒤였다. 혹시나 내가 잘못 안 건가, 두 사람이 나를 속이기라도 하는 것일까.

아니, 사령관님과 레오나언니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때였다. 멀리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습격이라도 있는 것인가, 나는 곧장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하늘로 날아가는... 노란빛의 불꽃이었다.


“저건...”


다시 한번 터지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올라간다.

이번에는 파란빛의 불꽃이다.

이어서 몇 발의 불꽃들이 쏘아 올라간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불꽃들이었다.

하늘로 쏘아 올려지는 불꽃들

그날, 그 하늘에서 보았던 불꽃들처럼 하늘을 메우지는 못했지만, 그런데도 하늘에는 불꽃들이 사방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추억처럼, 기억 속의 한 쪽에 묻힐 것으로 생각했던 그 풍경이 보인다.

눈을 비벼보았다.

혹시나 환상일까, 어젯밤 우연히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것 때문에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눈앞에서 하늘에 쏘아 올려지는 붉은빛의 불꽃은 실제였다.


“놀랐지?”


뒷목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자 사령관님이 언제부턴가 내 뒤에 서 있었다.

양손에 쥔 2개의 유리컵,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커피와...


“딸기 쉐이크야. 소완한테 부탁했어.”


컵에 꽂혀있는 빨대를 빨았다. 새콤하면서 달콤하지만 부드러운 쉐이크,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시원하지만 그렇다고 머리가 아파질 정도는 아니었다.


“아까 전 우유를 쓴 건 아니야.”

“제가 아무리 자원을 아끼라고 해도 쓰지 못하는 걸 어떻게든 재활용하라곤 하지 않아요.”

“그렇겠지.”


펑, 다시 한번 하늘에서 커다란 불꽃이 터진다.


“발할라 쪽의 기록을 본 적이 있어. 전투 쪽 보고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누군가의 일기더라고.”


그 말에 나는 사령관을 쳐다보았다.


“설마, 제걸...”

“아하하, 다행히 아니야. 발할라 쪽의 한 명이지. 하지만, 그 일기에서 꽤 재미있는 걸 봤었거든. 처음으로 안드바리를 놀이공원에 데려갔었다. 때마침 성대한 불꽃놀이를 하던 날, 처음으로 불꽃놀이라는 것을 경험한 안드바리는 그 누구보다 호기심 많고 밝은, 마치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날, 언니들이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날의 일은 기억이 안 난다. 언니들이 어떤 표정을 지은 것인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레오나 언니가 나를 끌어안고 발키리 언니의 어깨 위에 올려 태워 더욱 하늘이 가까워졌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그때, 언니들은 날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어쩐지 그것 하나는 확실했을 것 같다.

우리들 모두 하늘에 퍼져나가는 불꽃처럼 환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날, 소녀 같은 안드바리의 얼굴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했다. 그 아이를 데려가길 잘했다고.”


그렇게 말하며 사령관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끔은 이런 낭비도 괜찮지 않아?”


밝게 웃는 사령관님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사령관님을 바라보자 점점 일그러지는 미소, 혹시라도 실수한 게 아닌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런 속마음이 얼굴에서 드러나니 나는 그 얼굴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게요….”


언젠가, 일기에 이런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이 세상에 땅을 밟고 처음으로 불꽃놀이라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하늘에 보이는 것은 온통 눈보라 뿐이었다.

새하얀 눈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이었지만 그럼에도 난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보라를 벗어나 처음으로 마주했던 불꽃놀이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 어떤 말로 그 불꽃놀이를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저...

그 불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젯밤에 갑자기 삘나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