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아이디어 원전 : https://arca.live/b/lastorigin/9519950 , '사령관이 알고보니 노래 개 잘부르면 어캄'


0화 : https://arca.live/b/lastorigin/21324313

1화 : https://arca.live/b/lastorigin/21690587


궤멸적인 선곡센스와 부족한 필력으로 써낸 졸문으로 2화를 들고 돌아왔다 ㅇㅇ...

역시 글을 쓸 때는 최소한 일주일 이상 머리가 맑은 상태에서 여유롭게 써야 한다는 걸 절절히 체감하게 해. 지난 1화 작성 때도 저질렀던 실수를 이번에도 저지르다니. 하루이틀 만에 후닥닥 쓰려니 역시 힘들고 지치네. 게다가,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간 소재, 상황, 이벤트 등도 메모 형식으로나마 써 두지 않았다가 그대로 허망하게 사라져버린 것도 왕왕 있고 말이야.


쓸 때마다 자꾸만 걱정된다. 이전 화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지면 어쩌지, 이전 화에 비해 읽어주는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하면 어쩌지...... 그래도, 완결까지 우직하게 달려볼란다.


노파심에 다시 한 번 덧붙이지만, 라스트 오리진 원작의 기본 설정과 세계관 등과 충돌하거나 고증오류가 있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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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소문이라 한다면, 좋은 소문이 퍼지는 것에 비해 나쁜 소문이 퍼지는 것은 가히 순식간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마땅한 유흥거리나 여가가 없는 오르카 호에서만큼은 그것은 단순한 옛말일 뿐이었다. 내용이 좋건 나쁘건 잡담거리로 쓸 수만 있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너도나도 퍼나르며 순식간에 오르카 호 전역의 모두가 들어서 알게 되는 것이, 적어도 오르카 호에서의 소문이란 것이었다. 그리고 요 근래까지 퍼졌던 소문은 바로, ‘함교 근처에서 인어가 노래를 부르며 맴돈다’라거나, ‘바다의 여신인 세이렌이 오르카 호 근처에서 노래를 부른다’와 같은 허무맹랑한, 그러나 말단 병사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입씨름할만한 소재였다.

 

“레프리콘 792 상병님께 들었는데, 주로 오후쯤에, 난데없이 함교에 작은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는 일이 있대.”

 

“브라우니 4231 일병님. 무슨 노래였다고 함까?”

 

“그거야 모르지. 근데, 노랫말이나 멜로디가 정말 아름다워서 자기도 모르게 홀릴 수도 있을 정도라고 하더라. 혹시 그게 인어가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하더라고.”

 

“에이. 다 구라지 말임다. 제가 함교 근처에서 툭하면 주간 순찰 돌지 않슴까. 전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말임다.”

 

오르카 호의 다른 시설들을 이용할 짬이 아직 안 되는, 갓 제조되어 나오거나 신규 지역을 정찰하면서 탐색되어 합류시켜 일병 이하의 계급을 부여받은 신규 전투형 바이오로이드들(주로 브라우니였다.)은 각자가 배정된 소대 생활관에 삼삼오오 모여서 정체불명의 노랫소리에 대해 때때로 격한(?) 토론을 벌이며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한편으로는,

 

“나이트앤젤. 신기하지 않아? 정말, 아주 가끔씩, 함내에 알 수 없는 노랫소리가 감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게 사실은 요정이나 인어의…….”

 

“그래요? 귀신이나 유령의 짓이 아니라면, 기술적으로는 돌고래의 초음파 음향신호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잠수함에서 발신하는 통신 주파수 대역폭이 돌고래 초음파의 주파수 대역폭에 겹쳐지면 가끔 돌고래가 잠수함에 화답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하던데요.”

 

“……우리 대령의 낭만은 가슴 크기에 비례하는 거려나?”

 

“땅꼬마 대장님이 그 키만큼 유치찬란 유아틱한 건 아니고요? 아. 그 지방덩어리 흉부를 감안해서 유아라는 말은 회수하겠습니다.”

 

“야! 누가 땅꼬마 유아인건데! 납작이 보드 주제에!”

 

가끔씩 부관이나 지휘관 개체조차 잊을 만하면 이러한 소문들을 한 번씩은 언급하며, 난상토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카페테리아에서 저마다 기호음료를 주문해 마시면서 함내의 가쉽거리를 가볍게 주고받는 잡담을 주고받곤 했다. 그 와중에도 늘상, 둠 브링어의 지휘관 개체 ‘멸망의 메이’과 그 부관 ‘나이트 앤젤’은 대화가 진척되다 보면 늘 이렇게 다투곤 해서 이젠 지휘관 개체들도 그러려니 할 지경이었지만. 정작 사령관만큼은 이상하게도 이런 소문에 무관심했다. 아니, 레오나가 짜놓아 강행군을 펼치고 있는 교습과정에 한창 열중하느라 신경쓸 새도 없어 아예 몰랐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레오나와 설전을 벌이다 욱하는 심정에 우연히 노래 한 곡을 시연해보였던 바로 그 날, 함교 지휘통제실로 출근하면서 경호대장 리리스에게서 함내에 도는 소문에 대해 들었던 것이 바로 사령관이 그 소문들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았을 지경이었다.

 

여하튼, 이렇게 잠수함 주변에 인어가 맴돌면서 노래를 불러주고 간다드니, 바다의 여신 세이렌이 가끔씩 노래를 부르며 잠수함을 꾄다느니 하는 소문들은 틈만 나면 함내 병력들과 지휘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었지만, 이것들이 새로 업데이트되는 데에는 병사 두 명의 공이 혁혁했다.

 

“오. 이게 그 소문의 노랫소리인가 봄다.”

 

“브라우니. 딴 데 한눈 팔지 말고 일부터……. 어? 진짜다…….”

 

무선통신 및 통신중계에 기능적으로 특화된 바이오로이드 ‘커넥터 유미’와, 함내 수석 엔지니어를 맡고 있는 기술사관 바이오로이드 ‘포츈’의 요청으로 스틸라인에서 작업인원으로 차출된 병력 2명, 레프리콘 1477 상병과 브라우니 2056 일병은 때마침, 포츈에게서 받아든 각종 무거운 통신기기 부속품을 들고 유미가 한창 조정 시험중인 함내 통신실로 걸음을 옮기는 도중이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나긋나긋하면서도 부드럽고, 한편으론 애달프기까지 한,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에, 원체 활발하고 다른 데 신경쓰기 좋아하는 브라우니나 그런 브라우니를 데리고 작업을 이끌어가야 하는 레프리콘도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고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슴까? 소문과는 다르게 바다 속에서 나는 게 아닌 것 같지 말임다.”

 

“그러고보니 이상하긴 하네요. 소리가 나는 방향이 함내 같은데…….”

 

“이쪽에서 들리는 것 같슴다.”

 

자연히 소리의 근원을 찾아 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소리의 방향을 찾다가 자연스레 한 쪽을 포착하고서는 서서히 좁혀들어갔다. 그리고 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방향은 잠수함 주변의 바다로부터가 아니라 함교 중앙에 자리한 어느 한 대형 격실이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저항군을 통솔하며 총괄지휘하는 격실……. 함내에 집결한 각 부대의 지휘관들이 사령관에게로 모두 모이는 곳…….

 

“여기, 지통실 아님까?!”

 

“노랫소리가 왜 지통실에서……?!”

 

조금 전까지는 다소 왁자지껄한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온다 싶더니 갑자기 뚝 끊기고는 들리기 시작한 감미로운 목소리로 3, 4분 간 이어진 노래. 자세한 가사는 잠수함 공간 내에서 다소 웅얼거리며 울려퍼지는 것의 특성상 신경쓰지 않으면 알아듣기가 다소 힘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마음 속에서 어딘가 그립다는, 애절하다는, 형언할 길 없는 사랑스러움이 절로 꽉 차오르는 몽글몽글한 느낌. 생전 처음으로 느껴본 그런 감각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홀려서 시간을 그만큼 보낼 정도였다.

 

“혹시 그 노랫소리의 비밀을 풀 수 있을지도 모름다! 진짜로 인어나 세이렌을 잡아왔다든가 하는……!”

 

“브라우니.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세요. 세상에 그런 건 없어요. 어디서 음악이라도 틀어놨겠죠.”

 

작게 투닥거리면서도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던 레프리콘과 브라우니는 곧이어 두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레프리콘의 처음 생각대로 음악이라도 틀어놨겠거니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 노랫소리의 주인공 되는 목소리는 자기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목소리였다. 게다가, 평상시의 대화처럼이 아니라 아예 멜로디를 타고 흘러나오니 정말, 매우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문 너머에서 콘스탄챠나 리리스, CS 페로 등과 같은 부대원들이 저마다 ‘주인님’을 연호하며 연신 감탄하는 말이 쏟아지는 것까지 들리자 두 병사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음악을 틀어놓은 게 아니라, 사령관님이 직접 부르신 거였어요…….”

 

“와……. 그럼 사령관님, 노래 엄청 잘 부르시는 거지 말임다?!”

 

둘은 격실 출입문 너머로 작게 울려퍼지는 노랫소리를. 넋을 놓고 감상하고 있다 보니, 갑자기 지휘통제실의 문을 열고 도도하게 또각거리며 ‘정말, 쓸데없이, 노래는 잘 불러가지고선……!’라고 짐짓 성난 체 중얼거리며 걸어나오는 바이오로이드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바이오로이드가 그럼에도 얼굴은 왠지 빨갛게 달아오르고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고 알 턱도 없었다. 그저 둘의 시야에는 열린 문 너머에서 연신 감탄을 늘어놓고 있는 배틀 메이드, 컴패니언 소속 부대원들에게 둘러싸여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하면서도 싱긋 웃고 있는 사령관이 보일 뿐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떠돌아다니는 소문의 실체를 우연히도 맞닥뜨린 둘의 뇌리에서는 그저 대박이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특히, 여가시간에는 PX에서 공수해 온 군것질거리 주전부리를 늘어놓고 잡담하기를 좋아하는 브라우니에게 이 일은 그야말로 빅 뉴스였다.

 

그리고 이 둘에 의해 오르카 호 전역에 새로운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것은, 함내의 사설 인트라넷망인 오르카넷이 들끓는 것이 가세해서 3일이면 충분했다. 미지의 인어나 세이렌 등의 작품인 줄 알았던 매혹적인 노랫소리의 주인공이 사실은 사령관이었고 이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탄성을 내질렀던 이들이 누구였는지까지 정확히 지목하는 이 소문은 구르고 구른 끝에 황당무계하게 부풀어올라 다시금 오르카 호 전역에, 종내는 사령관의 귀에, 그리고 레오나의 귀에도 들어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어나 세이렌이 잠수함 주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간혹 있다더라. 노래 부르는 인어 혹은 세이렌의 정체가 사실은 사령관 각하였다더라. 그리고……. 레오나는 오르카 호 내에 사실상 정사로 굳어지다시피 하여 돌아다니는 이러한 소문들을 불현듯 떠올리며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출근하기 바로 얼마 전, 레오나는 진중서고에서 각종 전술 서적을 집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거는 좀 어려우려나……? 이 책은 응용만 실려 있고…….’

 

사단급 부대에 대한 기초 지휘통제법을 마친 사령관에게 심화 및 군단급을 교습할 계획을 머릿속으로 짜고 있던 레오나였지만 예전같지 않았다. 갓 구조된 사령관을 대상으로 처음 교습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답 없어 보이는 어리숙하고 유약한 남자를 자기가 바라는 이상적이고 멋진 총괄지휘관, 사령관으로 만들어야만 하겠다는 그런 목적의식을 강하게 투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령관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애써 외면하면서 강행군을 해 왔었다.

 

레오나는 한숨을 쉬었다. 자기도 꽤 물러졌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직 적군은 막강하고 우리의 군세는 6개월 동안 대대급에서 군단급으로 세를 키우기는 했지만 적에 비하면 여전히 열세이다. 이런 때라면 사령관이란 직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누구보다도 냉정하고 효율적이어야만 했다. 아직 여유 부리고 감정을 챙길 때는 아니라는 것이 이제까지의 레오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막강한 적의 군세에 맞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의 군세로 맞서 대응하게끔 하는, 필연적으로 희생이 전제될 수밖에 없는 그런 시나리오를 무리해서라도 계속 사령관에게 내보이고 가르쳤던 것이었고.

 

사령관은 자기의 교육을 힘들게 따라오면서도 그간 불평 한번 내색하지 않다가 2주 전쯤 있었던 교습에서 기어코 말싸움을 벌였었다. 실사 모형 워 게임 시뮬레이션에서 아군 측의 장기말이 자꾸만 우리측 부대 지휘관과 그 부대원으로 보인다면서, 도대체 왜 이들을 덧없이 희생시키는 작전만을 고집해서 가르치냐고 폭발했었다. 레오나는 사령관의 그런 태도가 정말 비효율적이고 쓸데없이 감정적이라고 생각해서 사령관과 충돌했던 것이라고, 그러니까 단순히 서로의 가치관이 달랐기에 그렇게 부딪혔던 것이라고 이해했지만 막상 그 날 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생활관에서 불침번 근무 인원을 제외한 모두가 잠에 들기 시작한 무렵인 오후 10시부터 자정에 이르기까지 레오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음 속에, 그리고 머릿속에 복잡하게 떠오른 그날의 기억들이 뒤죽박죽 섞이며 공명하고 있었다.

 

‘정말, 사령관……. 바보…….’

 

뚝. 어? 스스로도 흠칫 놀란 레오나는 서둘러 얼굴을 손으로 문질러냈다. 물방울 하나가 축축하게 닦여 나왔다. 내가 울었다니. 명색이 ‘북방의 암사자’라는 특수전의 귀재가 이깟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해서 눈물을 흘린다니. 스스로 애써 마음을 다잡고 다독이며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금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지만 떠오르는 기억은 주체할 도리가 없었다.

 

출근 시각에 정확하게 맞춰, 다른 지휘관들보다도 더욱 일찍, 더욱 빨리 지휘통제실에 출석하려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레오나의 마음은 일순간 불편해졌다. 그 순간에도 자기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콘스탄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령관. 사령관의 입장에선 퍽 사납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테니 자기에 대한 뒷담을 하더라도, 반경 5미터 정도 거리를 두는 것으로 대신하고 너그럽게 넘어가 줄 요량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사령관이 한 이야기는 자신에 대한 뒷담이 아니라, 부담감과 괴로움의 토로였고 콘스탄챠는 그런 사령관을 따스하게 다독여주고 있었다. 왠지 싫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힘들고 괴로웠다면 차라리 나에게 기대줬으면 했다. 그래서였을까. 일부러

 

“잘 알고 있네. 사령관. 그렇다면 더더욱 교습에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기척을 내었었지. 콘스탄챠는 사령관 모르게 나를 잠깐 흘겨보고는 다과를 가지러 갔었고, 사령관 혼자만 무슨 뒷담 하다 걸린 것마냥 혼비백산했었는데 생각 외로 너무 귀여웠다.

 

모형 장기말로 워 게임을 하는 전투 시뮬레이션에서도 비슷했다. 레오나 자신은 방어선을 구축했음에도 결국 전멸당하고 레오나 측 장기말에게 목표지점을 허락하고야 만 사령관이 구축했던 방어선을 우선 살펴보며 사령관의 기량이 어느 새 소름끼칠 정도로 발전했음에 우선 감탄하고 있을 때, 들었어야 했다. 헤아려야 했다. 사령관이 시뮬레이션에서나마 부대원들을 모두 잃고 애틋하게 젖어드는 목소리로 읊조리는 말을. 원치 않아도 말 하나하나가 오르카 호의 병력으로 이입되어 보이는 사령관이 대체 어떤 심정으로 이런 시나리오 교습을 받아들였고 마음이 어떻게 매순간 짓눌리고 찢겨나갔으며 그걸 어떻게 견뎠을지를.

 

‘내 눈에는 자꾸만 저 말들이 우리 부대 대원들로 보이는 거 알아? 여기는 마리가 이끄는 스틸라인, 저기는 로열 아스널이 전두지휘하는 AA캐노니어, 또 저기는 신속의 칸이 치고 나가는 앵거 오브 호드, 그리고 저기는……. 여하튼, 나 하나 믿고 따라주는 애들을 그렇게 덧없이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사령관이 레오나에게 언성을 높였을 무렵, 그간 꾹꾹 눌러담고 있었다는 것이 역력히 느껴질만큼 맺힌 목소리였고 말이었다. 얄궂게도 그 말을 들을 때의 레오나는 오전 9시에 막 지휘통제실에 들어섰을 때와 비슷하게 묘한 질투심이 앞섰다. 내심 자기의 부대, 나아가 자기 역시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고 사령관이 말하는 걸 듣고 싶었다. 그렇지만 ‘저기는…….’이라며 말끝을 흐리다가 ‘여하튼’으로 넘어가버린 사령관에 대해 조금은 심술을 부리고도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더더욱 사령관의 속을 긁었고 끝내는 “사령관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는데?”라는 말로 사령관의 심중에 비수를 찔러넣다시피 해버렸다.

 

말해놓고서 아차 싶었다. 정작 자신이 감정이 올라 결국 먼저 선을 넘은 셈이었다. 겉으로는 표정에 아무런 변화 없이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초조했다. 최후의 인간 남성이라는 점으로 예우해주는 것 외에도 엄연히 직제상으로도, 계급상으로도 자신보다도 상관인 이에게 이런 막말은 심각하게 무례했다. 이건 콘스탄챠나 사령관에게 당장 뺨을 맞아도 할 말 없다고 속으로 자책하고 또한 각오하고 있었지만 예상 외였다. “나도 할 줄 아는 거 있어!”라더니 갑자기, 뜬금없이 가곡을 불러버린 사령관이라니.

 

병사들의 사기 고양도 지휘 통솔에 빠질 수 없는 요소이고, 자신의 목소리와 이 재주가 그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다면 아낌없이 바치겠다며 역설하는 사령관의 모습을 두고, “좋을대로 해. 사령관. 오늘 교습은 끝이야.”라는 말로 지휘통제실에서 도도하게 뛰쳐나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레오나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붉었다. 가슴도 두근거렸다. 이제껏 알지 못한 사령관의 또다른 면모를 알게 된 것보다도, 사령관의 목소리가 저토록 아름다웠는지, 가슴 속을 저며 오는 형언할 길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한 저 노래는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레오나처럼 똑부러지게 지휘할 수는 없겠지만’이라던 사령관의 말까지……. 사령관은 정말 여자 다루는 데 선수인 건 아닐까? 가볍게 심술 좀 부려보려 했는데 ‘우리 레오나’라니. 정말 이건, 반칙이잖아……! 뭐 하나 잘난 거 없고 노래만 쓸데없이 잘 부르는 엉망진창 멍청이!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남자 같다고 느껴졌을지도? 아 모르겠어. 결국 그 날 밤, 전전반측하던 레오나는 혼자 울적해하다가도 다시금 웃어보이기도 하는 그런 감정 기복의 격류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2주가 흐른 지금. 역시나 출근 전에 진중서고에 들러 책을 고르고 있는 레오나의 손길은 예전보단 조금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 사단급 기초 지휘법은 마쳤으니 이제 심화응용으로 넘어가야 하나? 아니면 좀 이르지만 군단급을 가르칠까? 우리 사령관에게 이건 아직 좀 어렵지 않을까? 고민하며 서고를 뒤적이던 레오나는 필요하다면 아무리 어려운 난이도의 서적이라도 주저하지 않고 골랐던 예전과는 다르게 결국 한 권도 고르지 못한 채 오전 9시가 다 된 시각쯤에서야 부리나케 함교로 향했다. 책을 들고 가는 대신, 날선 혹은 냉정하게가 아니라 조금은 살갑게, 따뜻하게 사령관의 복습을 지도해볼까 라는 상상을 하면서.

 

다행히 지각은 하지 않아서 한 부대의 지휘관으로서나 군정부관이라는 직책상으로나 망신을 당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점심 시간인 정오 무렵이 될 때까지 3시간이 지나는 동안 별다른 잡담을 나눌 시간도 없을 정도로 눈코뜰 새 없이 서류를 결재하고 각 부처에 업무를 지시하거나 시찰을 하는 등의 일이 겹쳐서 바빴다. 하필이면 매 분기마다 부대 현황을 점검하고 이를 조사, 갱신하는 기간에 겹쳐있는 날이었기에 지휘통제실에는 사령관과 경호대원, 각 부관은 물론이고 타 부대 소속의 지휘관급 개체 혹은 부관 개체가 틈만 나면 들락날락거려 한층 부산스럽기도 했다.

 

‘아무래도 오늘 교습은 글렀네. 뭐, 우리 사령관, 그간 힘들었을텐데 오늘은 쉬게 할까…….’

 

점심 시간 무렵이 되어 대강의 업무가 끝나 한결 숨통이 틔워져 슬슬 업무를 정리하고, 모처럼 사령관에게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고 말해볼까, 지난번에는 너무 사령관을 몰아붙인 것 같다고 사과할까, 레오나가 온갖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령관은 계속 지휘 패널과 서류, 지통실 내의 비문서고 등을 반복적으로 왔다갔다 하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순간 방문객이 한 명 왔다. 그런데, 불청객도 한 명 따라온 모양이었다.

 

“스, 승리! AG-2C 세이렌, 지통실에 금 분기 호라이즌 부대 현황 보고 용무로 왔습니다!”

 

“어서 와. 세이렌.”

 

“크크크. 권속이여. 짐이 강림하였도다!”

 

“LRL?!”

 

호라이즌 부대의 부함장이자 무적의 용의 부관이기도 한 세이렌이 지통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문이 닫히기 전에 재빨리 다람쥐처럼 폴짝 뛰어들어와 방방 뛰는 꼬마 아이, LRL이 세이렌의 바로 뒤에 붙어서 따라 들어왔다. LRL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자. LRL. 주인님은 업무 때문에 바쁘니까, 언니하고 같이 음료수 마시면서 기다릴까?”

 

“정말? 응! 기다릴래!”

 

단 것 앞에서는 역시 애는 애였다. 언제 들어도 맨정신으론 받아들이기 거북할 정도로 진중한 그 말투를 순식간에 내려놓고 천진난만한 아이로 돌아간 LRL은 그렇게 콘스탄챠의 손에 이끌려 지휘통제실 한쪽 구석에서 콘스탄챠가 손님 대접용으로 마련한 달콤한 음료를 마시며 사령관을 기다렸다. 사령관은 점심 시간이 다 된 것도 있고 해서 세이렌의 보고를 요약해서 간략해서 받았다. 이윽고 세이렌이 돌아가려는 기색을 보이자 번개같이 LRL이 지휘통제실 구석에서 뛰어나와 예의 그 어울리지 않는 진중한 말투로 사령관에게 이야기를 걸었다.

 

“권속! 과연 심연에서 깨어난 자와 같도다. 권속에 대한 소문이 레비아탄 곳곳에 메아리치고 있으니!”

 

“소문? 무슨 소문인데 그러니?”

 

대충은 알 것 같았다. 2주 전 리리스로부터 보고받았던 그 소문. 잠수함 주변을 맴도는 인어 혹은 세이렌이 노래를 불러주고 사라진다는 그 소문. 그리고 닥터와 포츈에게 자기가 생각했던 일말의 가능성을 검증해달라고 보낸 내용들이 모조리 부정당함으로써, 그 소문이 가리키는 게 사실 자기의 취미생활에서 비롯된 오해였음을 그 때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령관은 짐짓 의뭉스럽게 모르는 척 하며 LRL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LRL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자기가 이미 알고 있던 소문의 내용보다 더욱 황당무계하게 확대된 바였다.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권속이여! 권속은 사람을 홀리는 피리꾼! 자유자재로 영혼을 연주하는 소울킹! 매혹적인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 여신 세이렌의 현신으로 불리고 있느니!”

 

소울킹? 세이렌의 현신? 일순간 사령관은 당황했다. 그리고 그것은 막 지휘통제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세이렌에게도 황당함과 당혹스러움을 안겨다 주었다. 사실 세이렌도 함내에 감도는 노랫소리에 대한 소문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나름 과학적으로 추론해서 기껏해야 돌고래의 울음소리를 착각한 것이 아닐까 라는 매우 합리적인 추론을 내리고 있었기에 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있었고 이 뒤로는 소문에 일절 신경쓰지 않고 있었기에 어떻게 소문이 다시 구르고 굴러 이렇게 발전했는지는 까맣게 몰랐기에, LRL이 언급한 소문에서 자기의 이름이 나오자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리고는 황당했다. 세이렌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개체는 다름아닌 자신인데 사령관더러 세이렌의 현신이라느니 하는 그런 소문이 붙다니. 세이렌과 사령관이 당혹스러워하건 말건 LRL은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권속이여. 심연에서 깨어나 레비아탄을 거느리고 있는 권속이여. 짐에게도 그 운율의 신화를 헌사할 것을 명하노니……. 아얏!”

 

“이 녀석. LRL. 주인님이 곤란해하시잖니. 이제 주인님하고 같이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가야지?”

 

“히잉……. 그래도……. 나도 사령관의 노래 소리가 엄청 이쁘다길래…….”

 

콘스탄챠가 꿀밤을 먹이며 타이르자 LRL은 금세 다시 그 예의 진중한 말투를 내려놓고 보통의 어린애 말투로 투정을 부렸다. 대체 소문이 어디까지 어떻게 퍼진 거야. 사령관은 속으로 한탄했다. 그러고보니 2주 전 그날, 그 때도 지휘통제실에 배석해 있던 소수의 바이오로이드들 앞에서 즉석으로 가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시연해보였을 때, 오늘 교습은 끝이라며 쌀쌀맞게 문을 열고 나가던 레오나의 뒤편으로 얼핏 스틸라인 병력 두 명이 매우 우연히도 마침 지나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설마 그 아이들을 통해서 함내에 소문이 더욱 퍼진 걸까. 저항군을 통솔하는 사령관으로써 군략 등이 아니라 이런 재주로 소문이 나는 게 과연 좋은 일인 걸까. 마음이 복잡하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LRL은 계속 사령관의 노래가 듣고 싶다고 떼를 쓰고 있었다.

 

저렇게 들어보고 싶다고 하는데, 딱 한 번만 더 시연해볼까? 아니 그래도, 그 때와는 다르게 여기에 다른 듣는 귀 보는 눈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살짝 고민하던 사령관은 LRL의 칭얼거림에 마음이 약해진 것도 있고, 까짓거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려울까보냐 라는 심정이기도 했다. 게다가, 욱 하는 심경에 억하심정으로 한번 시원하게 목청이나 뽑아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자기 목소리가 그렇게 예쁘다고 직접 칭찬까지 해 주지 않던가. 군정부관으로 사령관 업무를 보조하고 있던 레오나가 LRL을 따끔하게 혼내려는 순간 사령관은 모종의 결심을 하고 LRL에게 말했다.

 

“음……. 자신 없긴 한데……. 막상 지금 해 보려니 떠오르는 노래가 잘 없어.”

 

“괜찮……. 크흠. 상관없도다! 본래 태곳적 천상의 음율의 무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니.”

 

“가사가 외국어이긴 한데, 괜찮을까?”

 

“주인님. 그 점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원래 저희 바이오로이드들은 과거에 다양한 국가에 수출되기까지 했었기에 기본으로 탑재된 언어모듈 내에 내장된 모국어와 제1외국어 외에도 수출된 국가의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적어도 2, 3개의 제2외국어 라이브러리가 내장되어 있거든요. 필요할 때마다 선택적으로 라이브러리를 교체할 수도 있답니다. LRL도 알아들을 수 있을 거예요.”

 

사령관이 다시 한 번 노래를 우리들 앞에서 시연해 보이는 분위기인 듯하자 LRL은 물론 콘스탄챠까지 왠지 모르게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이오로이드의 언어모듈에 대해 해설하며 얼굴을 살짝 붉히며 싱긋 웃어보였다. 일단 결심은 했지만 혹시나 LRL이 노래에 대한 기대감을 거둘까 싶어 당장 떠오르는 게 외국어 노래밖에 없는데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봤는데, LRL이 만약 거절하면 그걸 명분 삼아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들려주겠다고 우선은 후퇴할 요량이었는데 예상치못하게 콘스탄챠가 외통수를 놓았다. 이젠 빼도박도 못한다. 그래도 사령관은 은근히 싫진 않았다. 그리고, 사령관의 노래를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레오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겉으로는 짐짓 토라진 척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제복 차림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사령관은 지휘통제실 한가운데로 나아갔고, 세이렌은 여전히 얼떨떨하게 서 있는 와중에, 지휘통제실 바닥에 콘스탄챠, LRL이 다소곳이 앉자, 멋진 무대식 인사를 보인 뒤에 사령관은 감정을 잡고서 팝페라 곡을 하나 시연했다.

 

 

 

Tonight, tonight

오늘 밤, 오늘 밤

 

Won`t be just any night

단순히 평소와 같은 밤은 아닐 거에요.

 

Tonight there will be no morning star

오늘 밤 샛별은 없을 거예요.

 

Tonight, tonight

오늘 밤, 오늘 밤

 

I`ll see my love tonight

오늘 밤 나는 내 사랑을 볼 거에요

 

And for us, stars will stop where they are

그리고 우리를 위해 별들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멈출 거에요

 

Today, the minutes seem like hours

오늘 1분이 1시간 같아요.

 

The hours go so slowly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가요.

 

And still the sky is light

그리고 여전히 하늘은 밝네요.

 

Oh Moon, grow bright

오 달이여, 밝아지세요

 

And make this endless day, endless night, tonight

그리고 끝없는 낮을 끝없는 밤으로 만들어주세요.

 

 

후)

Today, the minutes seem like hours

오늘 1분이 1시간 같아요.

 

The hours go so slowly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가요.

 

And still the sky is light

그리고 여전히 하늘은 밝네요.

 

Oh Moon, grow bright

오 달이여, 밝아지세요

 

And make this endless day, endless night.

그리고 끝없는 낮을 끝없는 밤으로 만들어주세요.

 

Tonight, tonight

오늘 밤, 오늘 밤

 

And make this endless day, endless night, tonight……!

그리고 끝없는 낮을 끝없는 밤으로 만들어주세요. 오늘 밤……!

 

 

인공적인 일러스트 등으로 구현된 밤하늘이 아니라, 실제로 오르카 호 위의 밤하늘을 그대로 촬영하고 약간의 보정으로 송출하고 있는 밤하늘 영상을 송출하고 있는 LED 배경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무대에서 사령관은 노래의 리듬에 따라 마지막 가사에서 양 팔을 하늘로 펼치며 목청껏 열창함으로써 순서를 마무리했다. ‘Tonight’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디자인된 무대 배경과 맞물려서 엄청난 호응이 쏟아지는 가운데 무대는 다시 암전되고 스포트라이트는 사회자인 스프리건과 총괄PD인 탈론페더를 비추며 사령관은 다시금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스프리건의 활기찬 목소리가 사회를 이어갔다.

 

“Tonight, ‘오늘 밤’이라는 팝페라 곡이었습니다! 사령관님의 장르적 소양이 정말 폭넓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네요. 첫 시작곡은 터프한 야성의 가을남자 느낌이 나는 스타일이었는데 R&B, 발라드, 록, 팝송 등 정말 다양한 장르에 걸친 노래들을 부르시면서 사령관님의 다양한 면모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탈론페더 소령님. 어떻게 들으셨나요?”

 

장장 3시간에 걸친 콘서트의 끝. 마지막 순서로 선곡되어 있는 곡이었다. 정말 다양한 장르에 걸친 곡들을 사령관은 열창했고, 그럴 때마다 영혼을 연주하는 소울킹이라느니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매혹과 고혹의 세이렌이라느니 하는 소문은 점차 사실로 굳어져갔다. 가을날 밤이라는 계절적인, 시간대적인 분위기와도 잘 어울러지는 선곡으로 콘서트에 직관 관중으로 입장한 1,500명의 바이오로이드는 물론, 이 콘서트를 각자 배정받아 생활하고 있는 생활관이나 개인 숙소 격실에서 함내 방송으로 시청하고 있는 여타 바이오로이드들 모두가 느끼고 열광하는 사실이었다.

 

“네. 저는……. 이 가을날 밤하늘 아래서, 사령관님만을 사랑하는 아가씨가 된 것만 같아요. 너무 행복하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만 같아 어쩔 줄 모르겠어요. 이 곡이 어느덧 마지막 선곡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예요.”

 

마지막 곡. 순간 관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야유와 ‘앵콜! 앵콜!’이라는 열화와 같은 함성이 객석과 각 생활관, 개인 숙소에서 터져나왔다. 스프리건과 탈론페더가 어떻게든 진정해달라고 관객석에 호소했지만 그럼에도 바이오로이드들의 성화는 그칠 줄 몰랐다. 무대 뒤에서 이제 콘서트를 끝내는 마무리 인사 멘트를 점검하고 있던 사령관은 당황했다. 지금 여기서 콘서트를 그대로 끝내버리면 왠지 저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두들겨 맞을 것만 같은 그런 배부른 공포였다.

 

그렇지만 사령관 역시, 3시간 동안 콘서트를 하면서 자기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해 주며 환호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보는 동안 점차 마음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3시간만 견뎌서 이 콘서트를 끝으로, 너무 일이 커져 버린 노래 관련 건으로는 다시는 재주를 뽐내지 말자고, 누가 떼쓰고 칭얼거리더라도 들어주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공연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노래에 환호하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열광적으로 반응해주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한 곡이라도 더 들려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어울리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꾼 사령관은 다시금 무대에 올랐다.

 

“다들,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불러본 내 노래를 잘 들어줘서 고마워.”

 

“꺄아아아아아!!! 사령관님!!!!!!”

“사령관님!!! 노래 정말 잘 부르세요!!!!!!”

“사령관님은 정말 매혹과 고혹의 세이렌이세요!! 꺄아아아아!!!”

 

객석에서 비명에 가까운 환호 소리가 터져나올 때마다, 같이 관객으로 참석한 몇 명의 세이렌이라거나 호라이즌 부대 숙소에서 시청하고 있는 세이렌들은 일순간 당황해서 움찔하는 와중에, 무대는 이대로 사령관을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듯이 엄청난 성화였고 이것은 함내 방송시설로도 어느 정도에 달하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음, 그래서 말인데……. 그 답례로, 10시까지라고는 했지만, 어떻게, 한 곡 정도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사회자와 PD는 물론이고 관객에 이르기까지 일순간 조용해졌지만, 이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서는 다시금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것은 객석에서 콘서트를 직관하고 있는 천오백 명의 바이오로이드는 물론이었고 생활관에서 콘서트를 시청하고 있는 바이오로이드 역시였으며 무대 뒤에서 사령관을 응원하는 콘스탄챠 역시 ‘앗싸!’하는 포즈를 취할 정도였다.

 

“다시 한 번, 콘서트에 방문해 줘서, 그리고 내 노래를 즐겁게 들어줘서, 그리고 좋아해줘서 정말 고마워. 그럼 모두들에게 많은 위로와 큰 응원이 되길 바라며, 정말 정말 마지막 곡, 시작할게. 즐겁게 감상해 줘. 그리고 모두들, 좋은 밤 되길 바랄게. 잘 자.”

 

정확히는 객석 한가운데의 카메라를 향해 윙크까지 날려보이는 사령관. 당연하다는 듯이 객석은, 노래 시작 전인데도 벌써부터 열광이었다. 서로 자기에게 한 것이라느니 투닥거리는 바이오로이드들도 있을 지경이었으니까. 아름다운 목소리와 더불어 귀여운 매력까지 발산하는 사령관에게, 이 콘서트를 보고 있는 오르카 호 내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사령관에 대한 선망이 생겨나며, 동시에 그간 전투 등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쌓여있는 전투피로나 기타 감정기복 등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사령관의 언동을 받쳐주는 스프리건과 탈론페더의 마지막 인사말을 끝으로, 잔잔하게 시작되는 전주와 함께 객석은 다시 조용해졌고 그 뒤로 사령관의 노래가, 약간 새벽 노을이 끼어 있는 하늘 사이에 뭉실뭉실 떠다니는 구름을 연출하는 LED 배경 스크린과 함께 다목적홀 1001호실은 물론 모든 생활관, 격실에 울려퍼졌다.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내 환상 안에서 나는 한 공정한 세계를 보았습니다.

 

Lì tutti vivono in pace e in onestà.

그곳에는 모두 정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들에 대한 꿈을 꿉니다.

 

Come le nuvole che volano,

날아다니는 구름들과 같이,

 

Pien' d'umanità in fondo l'anima.

영혼의 바닥에서 인간다움(humanity)로 가득한...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chiaro,

나의 환상 안에서 나는 빛나는 세계를 보았습니다.

 

Lì anche la notte è meno oscura.

그곳에서는 또한 밤이 덜 어둡습니다.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들에 대한 꿈을 꿉니다.

 

Come le nuvole che volano.

날아다니는 구름들과 같이...

 

 

Nella fantasia esiste un vento caldo,

나의 환상 안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있습니다.

 

Che soffia sulle città, come amico.

친구와 같이 도시를 향해 불어들어오는...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들에 대한 꿈을 꿉니다.

 

Come le nuvole che volano,

날아다니는 구름들과 같이,

 

Pien' d'umanità in fondo l'anima.

영혼의 가장 밑에서부터 인간다움으로 가득한...

 

 

“…….”

 

세상에. 이전보다 더욱 솜씨가 늘었잖아? 라는 듯이 지휘통제실에 배석하고 있던 모두가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감도는 적막. 아. 역시 좀 오바한 걸까. 다음부턴 자제해야겠다고 사령관이 속으로 자책하는 순간, 경외감까지 엿보이는 탄성이 지휘통제실에 울려퍼졌다.

 

“우와아아아아!!! 사령관! 소문보다 목소리 더 예뻐! 노래 정말 잘 불러!”

 

LRL은 평소의 그 말투는 어디 갔는지 연신 박수를 짝짝 치며 감탄사를 쏟아내고 있었고 그것은 콘스탄챠나 세이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세이렌은 왜 그런 소문이 사령관에게 붙었는지 정말로 알 것 같았다. 이제껏 오르카 호에 감도는 이런저런 소문들을 들어보았지만 대부분은 그냥 구름 위의 허구로 끝났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감히 소문 정도로 얼버무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압살하는 수준이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자기가 가끔씩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보다도 더욱 좋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역시 주인님이세요. 노래 정말 아름다워요. 우와아…….”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시여. 마음에 드셨는지요.”

 

콘스탄챠는 금방이라도 진심으로 사령관에게 반할 것처럼 황홀해했고, 제법 유화된 지통실 분위기를 타고 LRL에게 농담식으로 사령관이 중세 귀족 신사가 하듯 무대인사를 하며 말을 건넸다. 순간 LRL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짐짓 무게를 갖추고 “흐, 흠! 역시 짐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음률의 공물이었노라!”라며 받았다. 지통실에 배석해 있는 모두에게 웃음기가 어렸다. 레오나에게까지도.

 

“자. 이제 점심 먹으러 가야지. LRL.”

 

“응! 사령관!”

 

소문 그 이상의 노래를 무려 지휘통제실에서 직관했다는 영광을 안은 LRL은 매우 신난 듯 방방 뛰어다니며 진중한 말투의 무게감 있는 설정이 아니라 본연의 아이같은 모습으로 즐거워하고 있었고, 콘스탄챠는 그런 LRL을 사령관 대신 옆에서 챙기며 식당으로 향했다.

 

“레오나.”

 

“어, 응……. 응? 사, 사령관.”

 

“가자. 같이……. 점심 먹자.”

 

사령관은 뒤돌아서 싱긋 웃어보이며 레오나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제의했다. 연달아 두 곡을 시연해보이며 LRL에게 멋진 무대매너까지 선보인 사령관이란 남자에 대해 레오나는 어쩌면, 자기가 바랐던 완벽한 남자까지는 못 되더라도, 이 정도라면 충분히 멋진 남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 날, 레오나는 처음으로, 사령관을 대면한 시점에서부터는 물론 세상에 태어나 오르카 호에 합류한 시점으로부터 처음으로 빙그레 웃었다.

========================================================================= To be continued 


이제 콘서트 파트는 대강 마무리되었고, 이제 오리지널 아이디어 원전에 따라 이 이후의 일상 묘사로 넘어가야 할 텐데 어떻게 서술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되긴 한 것 같아 ㅇㅇ


모두들 잘 읽어줬길 바라. 내 선곡 센스나 필력이 워낙 궤멸적이라 흡족스러울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