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령관은 할 일을 마치고 집무실에서 나왔어. 최근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모두가 조금씩 일을 나눠 받아 과로는 하지 않고 있었지. 집무실을 나와 보니 시간은 분명 한창 밝을 시간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취침 등만 켜져 있고 사방은 어두컴컴했어.

 

 방금 밝은 곳에서 나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령관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제대로 될 리가 없었지. 잠시 고민하다 사령관은 벽을 짚고 나아가기로 했어. 혹시 자기랑 똑같이 길을 찾는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아? 그렇게 나아가다 누군가를 만나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발 한발 사령관은 조심조심 나아가다 어딘가 부드럽고 뭉클한데 닿았어. 분명히 가슴인 것 같긴 한데 누군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 나이트앤젤은 확실히 아니지만, 상처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을 꺼내진 않았어. ) ‘누구야?’하고 물으니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돌아왔어. ‘앞에 계신 분은 누구신가요? 레프리콘 상병님이신가요?’ 목소리를 듣고 사령관은 앞에 있는 사람이 스틸라인의 노움이란걸 알아챘어. 

 

‘ 사령관님이셨군요. 지금은 갑작스럽게 벼락이 쳐서 필요한 전원 이외엔 다 차단했다고 포츈자매님이 그러셨어요. 집무실에서 나오신지 얼마 안되셨다 하셨는데, 많이 놀라진 않으셨나요?’ 눈앞의 사람이 사령관 이란 걸 안 노움은 사령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어. 전투원들이 사령관을 보는건 흔치않은 기회였기에 그녀는 맘속으론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 한참 쓰다듬다 노움은 ‘사령관님이 이런 곳에 혼자 계시는 것도 위험할지 모르니, 일단 저희 생활관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라고 말하며 사령관의 손을 잡고 천천히 나아갔어. (허리춤에 손전등이 있었지만, 어쩐일인지 쓰지 않더라.)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같이 걸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노움은 ‘스틸라인 제 7생활관’이라 적힌 문 앞에 멈춰 섰어. ‘간만에 일정이 없는 날이라 몇 분이나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사령관님을 만나고 싶어 하실 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두어번의 노크 후에 문을 열었어.

 

문이 열리고 사령관이 본건 멸망전의 전자기기로 빵빵한 사운드로 탈론페더 에디션을 감탄하며 감상하던 브라우니 대여섯명과 얼굴을 손으로 가렸지만, 손너머로 흘끔흘끔 보며 얼굴이 빨개진 레프리콘, 그리고 생활관 구석에 짱박혀 자던 이프리트와 막 씻고 나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실키였어. 이게 오르카 눈나 들의 현실이란 것에 넋이 나가있던 사령관은 실키와 눈이 마주쳤단 사실도 잊어버렸어. 타올을 놓친 실키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져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걸 본 레프리콘이 생활관 문쪽을 보자 그곳엔 멋쩍게 웃고 있는 노움과 넋이 나간채 생활관을 바라보고 있는 사령관이 있었지. 곧이어 실키의 비명이 생활관을 가득 채우고 모두가 사령관을 보고야 말았어. 

 

잠시 후 잠에서 깬 이프리트가 어느 정도 교통정리를 한 뒤, 사령관은 생활관 안으로 들어와 침상에 걸터앉을 수 있었어. 브라우니들은 사령관의 주위로 와 천연덕스럽게 ‘사령관님 4시간SP를 보고 있더니 갑자기 진짜 사령관님이 와서 놀랬슴다!’ ‘브!’ ‘역시 실물의 사령관님이 더 귀여우시지 말임니다!’ 등등 열렬한 반응을 보였고, 레프리콘은 그런 브라우니들을 말리면서도 사령관에게 말을 걸고 싶어 움찔움찔 하고 있었지. 일련의 사건을 겪은 실키는 자신의 배낭에서 주섬주섬 과자를 꺼내 사령관 에게 주고 사령관이 먹는걸 보며 미소 짓고 있었지. (이프리트는 어디갔냐고? 견딜 수 없어서 다른 생활관으로 도망갔다나봐.) 

 

한창 생활관에서 이야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다 사건은 발생했지.

사령관의 건너편에 실키가 앉아있었는데, 사령관은 아까 얼핏 봤던 실키의 몸이 자꾸자꾸 생각나기 시작 했어. 그래서 실키를 바라보면 자꾸 알 수 없는 자극이 마구마구 느껴지는거야. 실키는 한참 이야기 하다 사령관이 문득 자신의 눈을 피하고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단 걸 알아버렸어. 어떤 것 때문에 그럴까 생각해보니 자신의 알몸을 사령관이 봐 버렸단걸 안 실키는 다시 한번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개졌어. 이 기묘한 분위기를 놓칠 브라우니들이 아니지. 브라우니들은 사령관의 주위로 와 가슴을 몸에 기대거나 사령관의 손을 자신의 허벅지에 놓는 등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고, 사령관은 버틸 수 없었어. 그날 사령관은 여체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