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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어색한 건 문뿐만이 아니었어.

부관 업무에 필요하지 싶어서 나름 열심히 공부한, 조직 구조도를 비롯한 온갖 서류가 올라간 책상도.

그것까지 포함해서 오르카 호에서도 사령관 다음으로 손에 꼽힐만한 업무를 처리한 다음 쓰러지듯 잠들던 침대도

지금부터 야스를 할 공간이라고 생각하니까 도무지 적응이 되지를 않는 거야.

물론 그 와중에 제일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건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사령관이었지.


저쪽도 일단 간편하게나마 옷은 갖춰입고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대놓고 알몸이었으면 비명부터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뭐 이딴 쓸데없는 생각으로 우물쭈물거리면서도 리제는 일단 사령관이랑 한 뼘 정도 떨어진 거리에 앉아.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사령관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고정되어 있다는 건 깨닫고 있었지만 차마 눈을 마주칠 생각은 들지 않았지.


혹시 또 장난을 걸어오려나 하면서 내심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의외로 사령관의 다음 행동은 조용히 자신의 손을 감싸쥐어 주는 거였어.

지금까지 손을 잡은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크기 차이가 와닿고, 그 이상으로 남녀로서 이 자리에 왔다는 게 실감되었지.

하긴,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리제는 살며시 사령관에게 몸을 기대.

얇은 천 두 장을 경계로 체온마저 오갈만한 거리에서, 사령관이 조용하게 물어.

긴장했냐고.


이제와서 부정할 수 있을 리는 없는데 같은 아다한테 그 소리 듣자니 공연히 진 기분도 들겠다,

리제는 그럼 처음인데 긴장이 안 되겠냐고 중얼거림.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사령관의 반응이 어째 요상했어.

굉장히 놀란 것 같으면서도 기뻐 보이는 그런 표정.

마치 자신이 이미 경험이 있는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이었음.


뭐지? 설마 오래 살았으니까 당연히 경험 정돈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사령관을 포함한 오르카 호 대부분에서 정설로 인정받고 있는 "잃어버린 주인을 잊지 못하는 불쌍한 리제" 썰을 알 리 없던 리제는 그 반응이 뭔가 화가 난달까 억울했지.

그래서 입을 삐죽이면서 남자랑 손 잡은 것도 당신이 처음인데 뭐 불만이냐고 툭 던지... 다가 뭔가 깨달음.


기나긴 과거가 있으면서도 사령관하고 만나기 전까지는 우주적 법칙으로까지 느껴지는 강제력에 의해 아다로 남는다니, 이거 완전 라스트오리진 바이오로이드 아니냐?


아, 내가 라스트오리진 바이오로이드구나.


거기다가 남자 입장에서 자기가 처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 상대가 사실은 처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면-

에 생각이 미친 순간 사령관의 팔이 단번에 뻗어와 자신을 감아오고, 앗 하는 사이에 그대로 품에 쏙 들어간 상태가 되어버림.

기껏 피하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해버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그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지.


일 났다. 제대로 불붙여버렸구나.


이대로 파워야스 돌입인가-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었음.

대신 볼에 가볍게 입맞춤이 들어왔을 뿐.

잠깐 멍해졌다가 원래도 붉었던 얼굴이 확 하고 붉어지는 리제에게 사령관이 물어봐. 이것도 처음이냐고.

당연한 걸 왜- 까지 말하자니 이번엔 귀를 살짝 깨물림.

튀어오를 듯 놀라는 리제에게 다시 질문이 들어옴. 이것도 처음이냐고.

설마, 하는 의혹이 담긴 시선을 향한 보람도 없이, 다음엔 입술이 맞닿음.

진즉부터 뿜어지던 뇌내마약은 이제는 숫제 활화산이 되어서 눈앞이 아찔거리고,

잡을 데가 없어서 파들거리던 손은 필사적으로 사령관을 끌어안음.


안 된다. 이미 지금도 못 견디겠지만 이게 계속되면 진짜로 안 된다.

반쯤 맛이 간 머리에 그 생각만 남아서, 입술이 떨어진 다음 눈물 맺힌 눈으로 애원하듯이 말해.


- 당신이 가질 내 모든 것이 전부 처음이니까. 그러니까-


방금 전까지 불 붙어서 큰일났다고 생각하던 주제에 자기 손으로 휘발유를 쏟아붓는 꼴이 되었다는 것도 판단하지 못한 그 말은 결국 다시 입이 막히면서 끝맺어지지도 못하게 됨.


*   *   * 


분명히 같은 아다끼리 하는 짓인데, 전개는 너무할 만큼 일방적이었어.

리제도 어떻게든 되돌려주려고 몸을 움직이려고는 했지만 죄다 힘없는 버둥거림으로밖에 끝나지 않았지.

더 기가 막힌 건 아직 야스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전희만 가지고 이 수준이라는 거야.

자존심이랍시고 신음 소리 참으려고 애쓰던게 역으로 숨이 가빠져서 더 정신을 못차리는 꼴이 되었다는 것까진 생각도 닿지 않았음.

어느 의미론 차라리 이대로 뭐가 뭔지 모르겠는 동안에 끝까지 가버리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유감스럽게도 리제가 정신을 못 차리는게 너무 뚜렷하다보니 사령관이 배려심 겸 아무리 그래도 첫경험인데 좀 더 알콩달콩하고싶다는 아다 스피릿으로 잠깐 정신차릴 텀을 두기로 해버림.


그리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리제한텐 그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음.

틀림없이 정신이 아득해졌다 돌아왔는데 이게 본게임은 시작도 안 한 거라고?

아다의 여체탐구 전반부만 가지고 이 꼴이 된 거라고?

이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음.

리제의 몸이 방어력 0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이런 의미라거나 이 정도일 거란 건 상상도 못했고,

자기가 생각한 파워한 즐떡 라이프는 뭔가 좀 더 상호 동등한 것 내지 자기가 꼬시는 것이었는데 이건 또 뭔가 싶었지.

근데 더 기가 막힌 건 이 상황에서도 본게임에 안 들어간 게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임.


가만 생각해보면 한 번 하고 끝낼 사이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일단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필요도 있지?

거기다가 첫날밤인데 중간에 끊는 건 불쌍하지?

뭐든 가져다붙여서 정당화를 하는 건 별로 어렵지도 않았음.

좋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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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뇌절이 오는 바람에 본방+마무리는 밤에 다시 올리겠스빈다



근데 생각해보니 야설 쓴거 첨임.

굳이 따지자면 이건 소설이 아니라 썰이지만.

무섭다 라오챈!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2098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