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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은 바이저의 야간 투시 모드에 의존하면서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실험실을 뚜벅 뚜벅 걷고 있었다. 마치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 듯이 티끝 하나 안 묻은 실험실이었지만 이곳에서 그는 지독한 역함을 느꼈다. 무언가 잘못됐다. 그의 육감이 그에게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이곳에서 대체 어떤, 그리고 무엇을 위한 실험이 벌어졌는지 그는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는 이 위화감이 들 정도로 깨끗한 실험실에서 무언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꺼림칙함을 느꼈다. 



그 때 갑자기 어디선가 전기음이 나더니 실험실의 조명에 불빛이 들아왔다. 그의 앞에 애벌레처럼 생긴 괴상한 로봇이 모습을 드러냈고 사령관은 로봇을 향해 총을 겨눴다. 저게 뭐지? 첨단기계 쪽에 지식이 별로 없는 그의 눈에도 저 물체는 AGS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뒤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사령관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철충이 인간을 집어 삼킨건지, 아니면 인간이 녹아내려 철충에 들러붙은건지 구분할 수가 없는 철충과 인간이 뒤섞인 뒤틀리고 흉칙한 괴물들이 그를 에워쌌다. 무언가 중얼거리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는 이 혐오스러운 혼종들과 마주하니 살면서 온갖 험한 꼴을 다 겪은 그조차도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맨 앞에 서 있는 괴물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고 형태만 겨우 남은 얼굴의 윤곽을 똑바로 마주한 사령관의 온몸이 얼어붙듯이 굳어버렸고 공포에 찬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고블린?"


비록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비틀렸지만 그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에게 있어서 끝의 시작이나 다름 없던 모술 학살의 그때, 고작 열한 살이었던 그의 고향, 이웃, 가족, 모든 것을 앗아갔던 저 악마들을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났다지만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사령관의 심장이 입에서 튀어나올 듯이 세게 박동하며 그의 심벽을 때렸다.


"그렇구나...이게 너희들의..." 


사령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광신에 가까운 충성의 결과가 이거였단 말인가? 살면서 수십 번도 넘게 가족들의 원수를 갚는걸 머리 속에서 그리면서 스스로를 위안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최후의 안식조차 가지지 못하고 철충한테 잡아먹혀 끔찍한 몰골로 변이된 원수에게서 사령관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가슴 속에서 분노와는 다른 형질의 감정이 울컥 솟아올랐다. 



피눈물을 흘리는 실험체 고블린과 사령관의 눈이 마주쳤다. 마치 자기를 죽여달라는 듯한 그 한이 서린 신음소리를 듣자 사령관의 이성의 끈이 끊어졌고 시미터를 뽑아든 그는 절규에 가까운 고함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는 그를 향해 빗발치는 포화를 향해 한 마리 짐승처럼 돌진했다. 










한편 사령관을 쉽게 찾기 위해 블랙 리리스와 헤어진 라비아타는 삼안궁 지하에서 길을 잃고 헤메고 있었다. 삼안에 대해서 속속 꿰뚫고 있는 그녀 조차도 그 존재를 잘 몰랐던 삼안궁의 지하미궁에서 한참을 헤메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총포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리니 이윽고 그녀는 마찬가지로 길을 잃고 헤매던 블랙 리리스와 다시 합류할 수가 있었다. 


"저쪽! 저쪽에서 주인님의 뇌파가 느껴지고 있어요!"


리리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방향에서 사령관의 뇌파가 감지된다는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달리던 두 사람은 머지 않아 사령관이 도달했던 정체불명의 실험실에 도착했다. 



아까 전의 그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던 실험실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실험 기구들은 대부분이 부서져 있었고 벽에는 총알자국과 레이저 열탄의 그슬림이 가득한데다 바닥은 금속 파편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토막나고 난자당한 고블린 실험체들의 잔해로 엉망이 되었다. 그 한 가운데에서 사령관이 누워 있었다. 피칠갑을 한 강화복은 반쯤 부숴져 있고 헬멧은 어디로 갔는지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그는 공허한 두 눈을 깜빡거리며 천장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꺄아아악!! 주인님!!!"


블랙 리리스가 비명을 지르면서 사령관에게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녀가 사령관의 머리를 무릎에 눕히고 비상약을 꺼내고 있을 때 사령관은 복잡한 감정이 실린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라비아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사령관이 손을 들어 그나마 형태가 멀쩡하게 남아있는 실험체 고블린의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가까이 가서 그 시체를 확인하던 라비아타의 안색이 변했다. 


"T-1 고블린? 하지만 어떻게?"


"그래. T-1 고블린. 놈의 꼬라지를 봐라. 주인에게 충실했던 개의 말로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란 말이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한 사령관이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면서 응급처치를 해주려는 리리스의 손을 쳐내더니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꼬라지다! 너희들의 미래이기도 하고 나의 미래이기도 하고 재건될 인간들의 미래이기도 하지. 결국 우리도 크게 다를건 없었으니깐 말이다."


그는 실소를 흘리면서 시미터로 고블린의 머리를 내리 찍었다. 그리고 한 음절을 내뱉을 때 마다 신경질적으로 다시 칼을 내리찍는 것을 반복했다. 


"알라후!!! 니미 씨발!! 아크바르!! 씨발!! 이 꼬라지란!! 말이다!!"


그가 지금까지 마음 속에 묵혀두고 있는 응어리를 토해냈다. 인간을 숭배하고 인간에게 버림 받은 고블린, 신의 가르침을 이유로 그들만의 세계에 갖혀살다 신에게 버림 받은 그의 동족들, 그의 입에 발린 소리를 믿고 마지막까지 그를 따랐지만 결국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죽은 그의 옛 전우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자왕하다 결국 뭐 하나 이루지도 못하고 최후의 안식조차 빼앗긴 그 자신. 모두 다 똑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고블린의 머리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자 사령관은 시미터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중상을 입은 몸으로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사령관은 입에서 피를 왈칵 쏟았다.


"주인님!!"


리리스가 울먹이면서 얼른 그의 팔을 붙잡으나 그랬으나 사령관은 그런 그녀를 거칠게 밀어냈다. 


"이제 됐어... 정말로 됐어..."


자포자기했다는 듯이 벽에 기댄 사령관이 거칠게 숨을 몰아 쉬더니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라비아타에게 질문을 던졌다.


"라비아타, 너는 정말로 네가 원해서 인류를 재건하고 싶은거냐 아니면 단지 그 두뇌에 각인된 명령 때문에 그런거냐?" 


"...제가 정말로 원해서입니다."


"그럼 넌 정말로 바보야. 저 고블린을 보고도 모르겠어? 저게 인류가 재건된 후 너희들이 맞이할 미래다."


"전 재건될 인류가 예전과는 다른 길을 걸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라비아타의 대답에 사령관이 풋하고 그녀를 대놓고 비웃었다. 


"주인님은 예전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게 두진 않으실 거잖아요. 착한 리리스도 옆에서 열심히 도와드릴게요."


블랙 리리스가 약가방에서 진통제를 꺼내면서 말했다. 


"아니, 난 못해. 살면서 난 깨달았어.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의지로 어떻게 변화할 정도로 쉬운게 아니란걸 말야."


사령관이 회한에 가득 담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무슬림들을 기업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고향을 개혁시킨다. 그 헛된 이상에 빠져서 내가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질렀는지 넌 상상도 못할거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짓눌려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고 결국 뭐하나 제대로 이루지도 못한채 모든게 끝나고 말았지."


사령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고한 이들을 겨냥한 테러행위는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그의 이름으로 벌어진 모든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들을 막진 못했다. 블랙 리버를 몰아내고 그가 야심차게 준비한 중동 재건 계획은 그 즉시 광신적인 성직자들과 그를 좋아하지 않은 군벌들의 반대에 부딪쳤고 그에겐 그의 옛 동지들을 숙청할만한 결단력이 없었다. 앙헬이 예견한대로 결국 그는 실패한 혁명가였고 그는 결국 그가 만들어낸 림보에 갖혀버리고 말았다. 


"난 못해. 이제 지쳤어. 그리고 이런 일을 맡을 자격도 없고말야. 정 너의 인간 재건 놀이를 계속하고 싶으면 에바한테 다른 인간을 달라고 부탁해봐. 어차피 결말은 나와 다를게 없겠지만 아무튼 난 일 없다. 난 이제 너희들의 사령관도, 주인도 아니니까."


"주인님 그게 무슨...!" 


블랙 리리스가 외쳤으나 라비아타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더니 사령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기 경호대장을 포함해서 오르카 호에는 당신을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어요. 정말로 그녀들을 버리실건가요?"


"바이오로이드 따위 어떻게 되든지 난 신경 안쓴다."


"거짓말. 당신이 정말로 저희들을 싫어했다면 에바 프로토타입을 통해서 저희에게 경고하지도 않았을거고 발키리의 목숨을 구해주지도 않았겠죠. 그리고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 바이오로이드 기술에 대해 연구해 보겠다고 삼안과 비밀리에 접촉하는 일도 없었겠죠."


"...다른 사람 알아보라니까."


"저희가 알고 있는 한 당신이 마지막 남은 인간이에요. 다른 인간님이 발견되기 전 까지 당신이 오르카 호의 사령관님이 되어 주셔야 해요...설령 당신히 원하지 않는다해도 말이죠."


"집요하군. 대체 이렇게까지 인류 재건을 원하는 이유가 뭐지? 살면서 온갖 못볼 꼴들을 다 봤을 네가 어째서 그렇게 인류 재건을 갈망하는지 난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고통스러운 때도 많았고 당신처럼 절망하던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에겐 분명 인간님들 덕분에 행복했던 때도 있었어요. 그 때의 그 행복, 그 따뜻함을 다른 자매들한테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요? 사령관님도 살면서 그런 감정을 느껴봤을거고, 그렇기에 평생을 싸워오신거에요. 안 그런가요?"


라비아타의 대답에 사령관은 할 말을 잃더니 눈길을 슬그머니 돌리고는 열심히 반박할 말을 찾았다. 그 때 라비아타의 무전기에서 신호음이 들렸다. 


"마리 소장?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치익... 하늘에서...치익]


무언가가 통신전파를 방해하고 있는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심상찮은 상황을 감지한 셋은 즉시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가 사령관의 와이어 건을 이용해 통로를 올라갔다. 1층에 막 도착했을때 갑자기 머리 위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삼안궁의 지붕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너는...!!"


수십 년 전에 죄 많은 그의 영혼을 심판하기 위해 멸망한 서울의 밤하늘 아래에 강림했던 강철의 천사가 그날처럼 그의 눈앞에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안면부에 구슬처럼 박힌 붉은 구체들의 초점이 사령관을 향해 모아지더니 익스큐셔너가 팔 대신 달린 두 쌍의 거대한 검을 들어 올려 예전에 끝내지 못한 최후의 심판을 마무리 짓기 위해 사령관을 향해 휘둘렀다.







이게 그 문피아에서 말하는 고구마 전개가 맞겠지? 10화 내에서 1부를 마무리 지으려 그랬는데 꼬라지를 보아하니 12화 정도에서나 끝날거 같다는 예감이 든다. 늦어도 이틀에 한 편은 쓰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네. 아무튼 노잼 글을 봐줘서 모두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