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벅이다 몸이 옆으로 고꾸라질 뻔한 것을 반사적으로 다잡았다. 


어제 저녁,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는 와중에 들이닥친 폭풍우를 견뎌내느라 잠이 부족한 탓이었다. 

오늘 아침이나 되서야 물러간 폭풍우 속에서 몸은 무사했으나 나뭇가지와 잎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텐트를 시작으로 끝부분에 작은 철쪼가리를 달아놓은 낚싯대, 인근 폐허 도시에서 그러모은 캠핑용품이나 조리도구, 비축해온 식수와 식량 나름대로 시간을 들여 차려놓은 살림살이라 부를만한 것들이 단 하루만에 날아간 것이다. 


다시 남은 것은 이 몸뚱아리 하나. 이번엔 오르카에서 떠나며 챙겨온 배낭 마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르카를 떠나 첫 발을 뗀 그 때보다 더 최악일 것은 없었다. 

오르카를 떠난 뒤 지난 이 네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나름대로 적응도 됐다. 


어설퍼 보이는 서바이벌 서적 한 권이 이렇게나 도움이 될 줄은. 폭풍우가 할퀴고 간 곳에서 유일하게 건져낸 것은 다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이 서적 한 권 뿐이었다. 실제 활용도는 의심스러웠지만, 의지 할 만한 것도, 장소도 없어 몇 번이고 정독하고 활용하게 된 서적을 나는 끌어안듯이 잡았다.


범고래의, 오르카의 사령관이었을 무렵, 밝은 구리 빛의 피부를 가진 한 소녀가 자원탐색에서 주웠으니 시간이라도 죽일 때 읽어보라며 건넨 서적. 따로 시간을 죽일 만큼 한가했던 나날은 아니었으나 눈을 피하고 뺨을 붉힌 채 내미는 것을 모르는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선물로 받겠다며 장난스레 웃으니 맘대로 하라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하고는 도망치듯이 떠나던 그 모습이 잠깐 아른거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제와서 선물이 왜 하필 이런 서적이었는지, 왜 준 것 인지 따위 생각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추억이라 부르기에도 뭣 한, 이제는 아무래도 좋을 한 때의 기억이다. 





차려놓은 살림을 폭풍우에 날려보낸 뒤, 돌고 돌아 그렇게 다시 이 연안에 돌아왔다. 쫓겨나듯이 떠나 첫 발을 뗀 장소, 두 번 다시 이 장소엔 오지 않겠노라 마음 먹은 것도 시간이 흘러 희석되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그저 생존에 가장 용이한 장소로 보일 뿐이다.

연안 근처에는 정면에 해안이 펼쳐져 보이는 동굴이 하나 있었다. 다시 살림만 꾸려내면 집이라 불러도 좋을 모양새의 동굴이었다. 

폭풍우는 액뗌이었나 라며 중얼이면서 연안에 오기 전에 들른 도시에서 그러모은 물건들을 이용해 다시 살림을 차렸다. 불, 그리고 침대와 이불이라 부를 만한 것은 금방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가 지금이다. 앉아 있던 바위가 꽤나 편안했기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급조한 낚싯대 앞에서 그만 꾸벅대고 말았다. 

해는 뉘엿뉘엿 지기 시작해 슬슬 어스름이 깔리는 바다를 보고 있으니 퍽 아름다워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니, 입에 물려던 참이었다.


잠이 모자란 탓이었는지, 아니면 어제 밤부터 물 이외엔 먹지 못한 탓인지 헛 것을 보는가 싶었다. 아무리 봐도 눈 앞에 물결치는 것은 파도 뿐이었지만, 그 외의 파문이 또 하나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일반적인 물고기가 일으키기엔 너무 크고, 그렇다고 고래만 한 것이 일으켰다기엔 너무 작은 듯 느껴졌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파문을 따라가 보기를 수십여초. 이제는 완전이 잠 든 해가 급히 일어나기라도 한 것 마냥,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빛이 일었다.





쿠웅- 하는 굉음은 빛이 일고 잠깐의 간극 뒤에 뒤따랐다. 저 빛이, 이 굉음이 말하는 것이 폭발이라는 것은 한 때엔 지겹게도 보았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다 한 가운데에서 폭발 할 만한 것이란 건 내게 있어 두 가지였다. 


잠수함과 배.


몸은 튀어오르듯이 일어나 서있었지만 머리는 의외로 맑았다. 

오히려 왜 몸을 경직시키고 있느냐고 자신에게 나무라고 싶을 정도였다.

저 빛이 내가 생각하는 그 것이라 해도,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나와는 이제 상관없는 것,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였다.

입에 물려다 만 담배를 다시금 꼬나문 채 불을 붙였다. 입에 담배를 가져다 댄 손이 이상하리만치 떨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빛은 점점 커지고 수를 늘려, 색을 입힌 아지랑이라도 되는 양 선명히, 아주 선명하게 일렁였다. 

아직은 저녁일 터였지만 바다 멀리 군데군데 빛나는 주홍 빛이 지금은 여명이라 거짓말을 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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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을 나와 해안으로 향했다. 새로 만든 이불과 침대가 썩 나쁘지는 않았는지 몸에 피로는 없었다.

해가 고개만 빼꼼 내민 모양새가 아침이라 부르기엔 모자랐지만 여명이 주는 운치가 또 좋았기에 걸음걸이는 차분했다.

어제 낚시는 결국 허탕이었지만, 급조해 설치해뒀던 조악한 통발이 의외의 수확을 가져왔다. 허기에 쫓겨 손질을 하는 둥 마는 둥 급히 구워먹은 해산물의 후폭풍이 밀려올까 뒤늦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큰 탈이 날 것 같진 않았다.  

걱정했던 허기도 일단은 해결했기에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여유롭게 시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느껴지는 긍정적인 것들이 꽤나 오랫만인 듯 했다. 기분이 상쾌했기에 몸도 상쾌해져볼까 싶어 몸을 먼저 씻기로 했다. 바닷물이라 조금은 아쉽지만, 여유롭게 씻을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이란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씻을 생각은 한 순간에 날아갔다.

해안으로 들어서서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조금 먼 발치에 있는 두 아이였다. 아이? 나는 자신에게 되물으면서 눈을 연신 꿈뻑였다. 아무리 보아도 저것은 아이가 맞았다. 떠내려오기라도 한 건지 한 명은 엎드린 채, 나머지 한 명은 누운 채 모래에 살짝 파뭍혀 있는 그 모습이 전혀 살아있으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모양새였다. 

죽은 것이라고, 분명히 죽은 것이라고 되뇌였지만 발걸음은 어느새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에겐 아무래도 좋을 것들, 상관 없는 것들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발걸음 멈추지도, 방향을 틀지도 못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두 아이의 모습이 보다 선명해진다.


밝은 흰색의 단발머리를 한 아이, 밝지만 살짝은 푸석해보이는 하늘빛 머리칼을 가진 아이.

알비스와 LRL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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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 시작한지 3주차 된 뉴비야. 라오 스토리 재밌게 정주행 했는데 라붕이들이 쓴 후회물은 더 재밌네 ㅋㅋ 나 이게 취향인가 봄

후회물이 너무 재밌어서 나도 한번 끄적여 볼까 싶어서 담담하게 써보기로 했어

필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많이 부끄럽네 ㅎㅎ 오타나 어색한 부분은 댓글로 알려주면 고맙게 확인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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