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3316232
이전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2783914
--------------------------------------------------------------------
'그 다음.'
그 말을 듣는 순간 리제의 시선 또한 소완에게 고정되어 버렸으니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한 척, 은 할 수 없었어.
그것이 만족스러운 양, 소완은 곱게 눈가를 접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감.
- 그 "시저스 리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방정한 품성과 주인을 향한 지순한 마음,
같은 분을 흠모하는 이로서 실로 공경하지 아니할 수 없사옵니다.
예, 주인께 제일의 총애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치켜세워주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서로의 입장을 동렬로 두려고 하고,
그 와중에 기종 등급 가지고 살살 긁기까지 하는 게 참 예술이구나.
하기야 그 소완이 날 이쁘게든 만만하게든 봐줄 여지가 없었으면
라비아타가 있건 없건, 칼부림을 벌이든 독을 타든 뭘 저질러도 진즉 저질렀겠지. 감동적이기도 해라.
물론 입 밖으로 꺼냈다간 정말로 소완이 리제를 재료로 쓴 메뉴를 개발하려 들지도 몰랐으니 금 같은 침묵을 고수하기로 함.
- 하오나, '제일'과 '전부'는 구분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 리제 양이 독점을 의도한 것도 아닌데, 그 건을 여기서 이야기해야 할 의미가 있나요?
이상하다. 왜 딱히 친하지도 않은 리리스가 계속 자기 편을 들어주는 걸까.
- 어머나, 그렇게 들렸다면 사과해야 하겠사옵니다.
예, 물론 리제 양께서 그렇게 탐욕스러운 이가 아님은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적어도, 주인께서 주변에도 신경을 쓰도록 권해주시는 것 정도는……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신 분으로서 충분히 배려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닐는지요?
속으로는 여차하면 자길 죽일 것이네 뭐네 하긴 했지만
사실 지금의 리제가 소완의 말을 무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부담스러운 건 아니었어.
애초에 무슨 수단을 쓸법한지를 알고 있는 시점에서 요령껏 대처하는 것도 가능하고
정 어렵다 싶으면 사령관에게 부탁해서 명령을 내리게 하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다만 그 말을 하는 찰나, 지금껏 여유를 가장해온 소완의 눈에서 비친 절박함이 그 선택지를 앗아갔지.
노력해보겠다고 대답하고, 리리스와 동행해 부관실까지 돌아오는 동안에도 그 푸른 눈빛이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았음.
그리고 리리스가 일이 있으면 호출하라면서 문을 닫고 나간 후,
리제는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서 떠돌던 의문을 내뱉어버림.
- 우리의 사랑에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 * *
블랙 리리스. 소완. 시저스 리제.
초창기에 삼얀으로 엮인 것 치고 각자의 캐릭터성은 시간에 따라 이래저래 갈라졌지만,
그렇다 해도 주인의 애정을 갈구하고 집착하는 성격이라는 공통점은 사라지지 않았지.
그리고 그 성격은 제조 당시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이고.
심지어 빙의에 의해 성격적 제약과 관계가 없었던 리제조차 주인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육체의 감정에는 거스를 수 없었음.
그렇다면.
무조건적이고 당연하도록 '정해진' 사랑은
당연하지 않은 상황을 거치며 쌓아올린 '자연스러운' 사랑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까.
초코 여왕 이벤트에서 사령관은 잠깐이나마 '마지막 인간이 자신이 아니었다면'이라는 고민을 했었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해도 지금까지의 추억은 자신이 쌓아온 것임을 깨달으면서 털어냈고.
글쎄.
제작자들은 사령관은 플레이어 자신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지만,
사령관이 바이오로이드도 충분히 존중해주는 상냥함과
모두를 위해 기꺼이 온갖 일을 떠맡는 성실함을 갖춘 인간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그렇기에 굳이 명령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모여든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인정, 혹은 연정을 받게 되는 것이고.
아마 원작 지고의 저녁식사 수준으로 미숙하기만 한 채 계속 진행했다면
후반부에서 지휘관기들이 보이는 존경 같은 것은 결코 받을 수 없었을 테지.
하지만 우리들은?
아니, 적어도 '리제'인 자신은?
과연 사령관이 아닌, 훨씬 저열하고 모자란 인간을 만나더라도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
처음으로 사령관을 조우하자마자 '망가져버린' 자신을 기억하는 리제는 그 가정을 확실히 부정할 수 없었어.
물론 자신이 만난 건 사령관이고, 지금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였어.
다만 - 그에게 내 준 자신의 모든 것에 사실은 대단한 가치가 없었는데,
그가 자신에게 과분하게 베풀어주고 있을 뿐이라면.
결국 독점하기를 바라는 건 애초에 과욕이 아니었을까.
그런 가정이 리제는 어쩐지 슬프고도 슬펐음.
--------------------------------------------------------------------
그냥 순수 바이오로이드면 애초에 의문을 안 가질 텐데
괜시리 인간의 자각이 있어서 삽질중인 리제였스빈다
어느새 30편을 넘겼다니 이게 다 수상할 정도로 추천과 감상이 후한 라붕이들의 힘이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