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어느 날 점심, 아니 정확히는 여태 지났던 날들에 비해 비교적 평화로운 날이었다.


 “평화롭네.”


 포티아가 전달해주었던 점심을 먹으며 그 평화로운 날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평화로움을 모두와 함께 이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몇 분을 고민해봤지만 확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


 똑똑똑 사령관실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있느냐!”


 목소리를 들어보니 LRL, 별칭 좌우좌였다. 그런데 뭔가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LRL, 무슨 일이야?”


 “오오! … 짐이 그대가 있는 곳에 친히 알현 할 수 있게 문을 열어다오!”


 오늘은 딱히 잡힌 일정도 없어서 바쁘지 않으니 LRL의 유희에 잠깐 놀아줘야겠다싶어 문을 열어줬다.


 “..히익! , 비키거라!”


 문이 열리자 보인 LRL은 복도 쪽을 보고 기겁하더니 황급히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뭐지? 하면서 책상 쪽을 보았다가 복도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바라보니 그리폰이 마침 이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 그리폰.”


 그리폰의 복장을 보니 평소 복장이 아니라 뭔가 연습에 편한 복장이었다. 꽤 잘 어울렸다.


 “안녕 못 해… 인간, LRL 이쪽으로 안 왔어?”


 “LRL?”


 뒤돌아서 볼 순 없지만 안 들키게 몰래 얼굴을 내밀어 나를 바라볼 LRL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오늘 내 방의 손님은 그리폰이 처음인걸.”


 “, 처음? 하하하. , 알았어! 난 정말 LRL 찾으러 온 거니까 괜한 오해는 하지 마!”


 그리폰은 그렇게 말하고선 왔던 길로 돌아갔다. 그리폰이 완전히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숨어있던 LRL에게 나오라고 손짓 했다.


 “후후후! 어리석은 불나방이 짐의 위대한 힘에 도망쳤구나!”


 “그래그래. LRL, 무슨 일 있었어?”


 “짐의 방대한 아카이브 속의 기록을 열람하고 싶은 게냐! 안 된다! 더 이상 파헤치려하면 그대는 저주로 인해 버틸 수 없을 것 이니라!”


 “어디보자… 오늘 보고서 중에 참치캔이 최근 도난이 잦아 발주가 어렵게 됐다는 게 있었던 거 같은데.”


 “? 짐은 최근에 물류창고에 간 적이 없다! 다 말 할 테니까 어떻게 해주면 안 돼?!”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니?”


 “그게


 LRL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LRL의 설명을 듣고 나는 LRL의 머리에 살짝 꿀밤을 먹여줬다.


 “잘못했지?”


 “히잉… 짐이 잘못했도다


 LRL이 한 짓, 최근 스카이나이츠 부대가 아이돌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그리폰이 나름대로 자기가 연습한 것을 영상을 찍어두고 파일을 오르카넷 네트워크 저장소 폴더에 보관 해놨는데 LRL이 모두와 함께 볼 멸망 전의 히어로물을 받으면서 실수로 그 영상 파일을 삭제해버렸고, 이를 안 그리폰이 화를 내며 LRL을 혼내려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리폰한테는 가서 사과 꼭 해. 혼자서 못 가겠으면 같이 가줄까?”


 “후후, 유구의 세월을 지내온 짐에게 그런 것은 일도 아니다!”


 “그래. 사과 하고 오면 상으로 참치캔 하나 줄게.”


 “진짜? !? 사령관 약속한거다?!”


 LRL은 기쁜 마음으로 사령관실에서 나갔다.


 “히어로물… 이라.”


 히어로물 같은 것은 오르카호 내에서 보통 LRL이나 핀토 같은 정신연령이 살짝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이 좋아한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런 게 있다. 라는 것만 보고를 받았지 실제로 접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LRL이 그런 작품을 받으면서 실수로 그리폰의 자료를 지웠다는 점에서 그만큼 재미있나? 하는 호기심을 불렀다.


 “이럴 땐 전문가를 불러보는 게 낫겠지.”


 호출 패널을 건드려 개인 호출로 바꾼 다음 히어로물의 전문가를 불렀다.

 

 잠시 뒤.


 “사장님. 부르신 대로 왔는데요. 중간에 만난 쿠노이치 자매 두 분도 데리고 왔어요.”


 히어로물의 전문가, 즉 연기자로 태어난 덴세츠 사의 바이오로이드.


 그 중에서도 대마왕 연기가 일품인, 연기력이 가장 뛰어난 뽀끄루를 호출 했었다. 그런데 쿠노이치 둘도 함께 올 줄은 몰랐다.


 “언니께서 따라가고 싶다고 하셔서 따라왔사옵니다.”


 “. 둘도 뭔가 아는 게 있으면 알려줄래?”


 “… 카엔… 설정 잘 아는 족고수……. 주공에게 알려줄게


 “언니,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주공이…… 말하는 히어로물… 정확히는… 특수촬영물… 통칭 특촬물. 벨트를 차서 변하는 거… 형형색색 쫄쫄이 입는 거… 거대해지는 거… 등 등… 여러 가지가 있어…….”


 카엔은 제로의 지적에 아랑곳 않고 설정에 대해서 읊어갔다. 카엔의 강의(?) 중간 중간 뽀끄루는 계속 호응 해주었고, 몰랐던 게 있었는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원래라면 자기가 설명해야 할 것인데 카엔을 배려 해주는 듯 했다. 정말 착한 마왕이었다.


 그렇게 카엔의 검에 불이 붙듯 강의에도 불이 붙어갈 즈음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난입했다.


 “동작 그만! 이런 대화에 제가 빠질 수는 없죠.”


 “뭐하는 녀석이냐!”


 제로가 난입한 누군가에게 외마디 호통을 쳤다.


 “저 말입니까? 지나가던


 어째서인지 복도 쪽 불이 꺼져서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나머지 부분이 보여 한 눈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가면… , 아니. 지나가던 길에 꽤 흥미로운 내용의 이야기가 들려서 말이죠.”


 “맞다. 흐레스벨그도 전문가였지.”


 내가 이름을 말하자 실루엣이 벗겨지며 그녀가 제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흐레스벨그는 이전 사건 이후 자신이 숨기던 걸 모르는 이가 없자 거의 커밍아웃 했었다.


 “근데 흐레스벨그는 마법소녀 모모만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 저는 어떤 작품 중에서도 마법소녀 모모 시리즈가 최고입니다! 하지만, 이래 뵈도 발이 넓은 편입니다. , 다시 자리에 앉으시길!”


 그렇게 카엔에 이어 흐레스벨그의 강의(?)가 시작됐다. 중간 중간 카엔과 의견 마찰이 생길 것 같은 언행을 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둘이 초협력 플레이 하여 나와 뽀끄루, 제로를 새로운 세계에 이끌었다.


 그리고 곧이어 둘의 열렬한 강의가 끝났다.


 “둘 다 고생했어. 이것저것 알려줘서 고마워.”


 “카엔… 주공의 도움… 되었어. 기분 좋아. 최고


 “그런데, 언니. 어떻게 그리 잘 알게 된 거에요?”


 “LRL이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랑 같이 모여서 여러 가지 보여줬어… 흥미 생겨서… 카엔이… 따로 여러 가지 알아봤어.”


 한참 전에 LRL이 말했던 모두는 LRL과 카엔을 포함한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었겠지. 제로의 말을 들어보니 제로는 전혀 몰랐던 눈치였다.

 카엔과 흐레스벨그의 열렬한 강의를 듣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을 바로 진행하기 위해 닥터를 호출했다.


 잠시 뒤, 닥터가 사령관실에 도착했다.


 “오빠~ 무슨 일로 불렀어?”


 “닥터, 미안하지만…….”


 호출을 받고 온 닥터에게 조곤조곤 요청사항을 전달했다.


 “어때, 가능 할 거 같아?”


 “……. 불가능 할 거 까진 없을 거 같아. 다만 언니들이 허락 해줄까? 특히 지휘관 개체 언니들.”


 내가 결심한 것에 대해 지휘관 개체들은 확실히 반론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모두를 위한 나의 결심이다.


 “내가 잘 설득해볼게. 부탁해.”


 “알았어~ 그럼 여기 있는 언니들 좀 데려갈게? 참고 자료가 여러 가지 있어야 할 거 같아.”


 “. 고마워, 닥터.”


 “완성 되면 전해주러 올게~”


 닥터와 나머지 바이오로이드들이 나가고 시간을 확인하니 곧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벌써 시간이


 카엔과 흐레스벨그, 둘이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소완이 가져다 준 저녁을 먹고, 조금 뒤에 리리스가 페더와 함께 와서 야간 순찰 진행 보고서를 갖다 주었고, 아르망이 주변 상황을 정리한 보고서를 전달하러 왔다.


 아르망은 나를 보고 잠깐 머뭇거리더니 말을 걸었다.


 “폐하. 지금 행하시려는 일이 옳고 그른가는 직접 경험 해보셔야 아시겠나요? 물론 저는 물론이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폐하를 믿고 있습니다만


 아르망의 말은 이 뜻이었다. 너무 위험하다. 위험이 동반 되는 것은 이미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위험을 넘어서야 모두와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아르망의 맑은 눈을 바라보자 아르망은 이내 졌다는 듯 한숨을 잠깐 내쉬었다.


 “알아줘서 고마워. 아르망.”


 “폐하를 어찌하겠어요. 폐하의 그런 점을 저희 모두가 알고 있기에 폐하를 믿고 따르고 있는 겁니다. 그 점은 명심해주세요. 그럼 이만

 아르망이 나가고 내일 처리해야 할 서류들을 어느 정도 미리 해두기 위해 의자에 앉았다.

 

 

 언제 잠든 것 일까, 책상에 엎어져 있던 상체를 천천히 일으키며 앉은 채로 기지개를 폈다. 시계를 보니 아침에서 조금 이른 새벽이었다.

 “……, ?”


 기지개를 피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어떤 것을 보았다. 어떤 것 옆에는 편지 봉투 같은 게 있었다. 일반적인 편지 봉투는 아니고, 어느 정도 크기가 있었다.


 입구를 살짝 뜯어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서 읽었다.

 

 오빠! 오빠가 부탁한 거 완성 다 됐어~

나중에 소감 한 번 부탁해~

그리고 봉투 안에 제대로 안 봤으면 잘 봐봐.

안에 여러 가지 준비해놨으니까.

 

 “여러 가지?”


 봉투의 나머지 부분을 뜯어보니


 “이건…… 부탁하길 잘 한건가. 너무 본격적인걸?”


 봉투 안에는 여러 무기가 있었고, 특히 가장 눈에 띈 것은 카드 같은 것을 담을 수 있는 도감이었다.


 도감을 집어 들어 열자 거기에는 모든 바이오로이드의 카드가 된 듯한 모습이 보였다.


 닥터가 남긴 사용법을 읽어가며 기능에 대해 알아갔다.


 전체 도감을 보니 전체 수에서 5개가 채워졌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5개라… 확인해볼까.”


 도감에 등록 된 5개를 확인하니 내 부탁을 거리낌 없이 들어 준 뽀끄루, 작품에 대한 열렬한 강의를 해준 카엔과 흐레스벨그, 그리고 이것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닥터 까지 4명의 바이오로이드가 확인 되었다.


 “나머지 하나는… 잘 안보이네. 모르겠다. 아침 회의 때 보면 되겠지.


 도감을 덮고 침대로 가 누워 기상시간 까지 자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 아침 회의 시간이 되어 지휘관 개체들이 모인 곳에서 한 가지 의논을 냈다.


 “지휘관들을 포함해서 모두에게 보여줄 게 있으니 다 모여 줄래?”


 지휘관 개체들은 처음에 의아했지만 각자 부대 인원들에게 지휘를 내려 오르카호 중앙강당으로 모이게 했다.


 “다들 모였지? 한 가지 중요한 거를 발표하려고 해.”


 바이오로이드들이 웅성웅성 거리자 지휘관 개체 중 마리와 무적의 용이 나서서 웅성거림을 중재시켰다.


 “모두, 나를 믿고 여태껏 따라와 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나는 모두가 함께 평화로운 오르카 호를 유지하고 싶어.”


 “그래서, 나는 한 가지를 결심했어. 모두가 함께 평화로운 오르카 호를 위해서는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그래서 지금 그 바뀌는 것을 보여줄게.”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숨을 죽이고 나를 바라보았다.


 등 뒤로 손을 뻗어 미리 가져온 버클」 과 도감을 꺼냈다.


 버클을 몸 중앙에 갖다 대자 벨트 띠가 촤라락 하는 효과음을 내며 내 허리를 감쌌다.


 그 후 버클의 양 옆이 당겨 돌려 열어졌고, 허리춤에 도감을 놓고 거기서 한 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점점 바이오로이드들의 표정이 놀람으로 바뀌어갔다. 그 놀람을 더욱 높은 놀람으로 바꿔 주기 위해 나는 외쳤다.

 

 “변신!”

 

 변신. 이라고 외침과 동시에 한 장의 카드를 버클에 있는 투입구에 넣고 버클의 양 옆을 양 손으로 중앙으로 몰아서 버클을 돌려 닫았다.


 LASTCOMMAND─── ORIGIN!

 

 이라는 기계음 영어 소리가 버클에서 나와 울려 퍼지며 여러 효과음을 내더니 내 모습을 바꾸어갔다.


 이윽고 검은 타이즈를 베이스로 검붉은 갑옷에 둘러싸이고 짙은 녹색 눈을 뜬 전사로 거듭났다.


 “나는 모두의 평화를 위해 직접 전장에 나서서 싸우기로 결심했어.”


 나의 한 마디가 끝나자 모였던 바이오로이드들이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몇 몇을 제외하고 크게 비명을 질렀다.


 “, 뭐야. 다들 왜 그래?!”


 “, 각하. 그 모습은…….”


 “? , 나도 이제 직접 마리가 지휘하는 스틸라인이나 다른 부대들과 직접 현장에서 싸울 거야.”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 모습은 오해를 부를 것 같습니다.”


 “주인님… 죄송하지만 저, 여기 제 칼에 비춰서 모습을 한 번 보시겠어요?”


 라비아타가 거대한 칼을 바닥에 꽂았다. 칼날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거기엔 기이한 모습을 한 철충이……


 “, 뭐야 이 모습은!? 닥터어어어어!!!”


 아니, 나도 크게 비명을 질렀다.


(제1장, 평화를 위한 전사, 라스트커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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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모습은 대충 이런 느낌인데 머리가 '철충 유충'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면 됨


중~단편.. 으로 예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