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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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딤.”


그의 뒤에는, 그의 말대로 네오딤이 서, 아니 떠 있었다.


“…왜 나왔어?”


“에릭이 화난 목소리를 내는 걸 들었어.”


네오딤은 이어서 사령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이 뭔가 잘못했어?”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큰 잘못이야?”


“그래.”


에릭은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려 하는 장면이 네오딤에게 보인 것이 영 불편했는지, 에릭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이 죽을 만큼의 잘못을 한 거야?”


네오딤의 이어진 질문에, 에릭은 대답하지 못했다.


“에릭이 말해줬잖아, 죽는 게 뭔지. 정말로 고통스럽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일이라고.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할 만큼 이 사람이 잘못한 거야?”


네오딤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목소리로 내뱉은 말을 들은 에릭은, 한숨을 내쉬며 사령관을 묶고 있던 잔해들을 해체시켰다.


잔해에 목이 감겨 있던 사령관은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격하게 기침했고, 그런 그로부터 에릭은 무감정하게 돌아서서 오르카 호로 향했다.


“…착한 사람이야.”


네오딤의 말에, 에릭은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누가, 저 인간이?”


“아니, 에릭이.”


그렇게 말하며, 네오딤은 짧게 깎인 에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하는 거야?”


“칭찬.”


네오딤은 무감정하지만, 순수한 얼굴로 에릭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그만해.”


“왜? 칭찬이 싫어?”


네오딤은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말했고, 에릭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른을 칭찬할 땐 머리 쓰다듬는 거 아니야. 버릇없는 짓이라고.”


“그럼 어떻게 칭찬해야 돼?”


“그냥 말로 해.”


“음…잘했어, 에릭. 이렇게?”


“그래.”


에릭은 그렇게 말하는 네오딤에게 살짝 웃어주었고, 네오딤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옅은 웃음을 지었다.




…잠시 뒤, 오르카 안의 회의실.


에릭은 자신을 노려보는 지휘관 개체들을 둘러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가 몹시 불편했지만, 결국 자신이 초래한 것이니 불만을 표시할 수도 없었으므로 그는 한숨만을 푹푹 내쉴 뿐이었다.


이내 회의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사령관은 목을 문지르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고, 그런 사령관을 본 지휘관들은 에릭에게 더욱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사령관은 자리에 앉더니, 에릭을 향해 적대감 하나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제안은 여전히 거절하실 생각인가요?”


사령관의 말에, 지휘관 개체들은 전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각하, 진심이십니까!? 방금 저 자가 사령관 각하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도 안 죽었잖아. 그랬으면 됐지.”


그렇게 말하는 사령관을 보며, 에릭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할 말이 아니긴 하지만, 자신의 안전에 너무 불감한 거 아닌가?”


그 말에, 지휘관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한꺼번에 에릭을 노려보았고, 에릭은 능청스럽게 두 손을 들어보였다.


“저걸 보십시오, 각하.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런 자를 오르카 호에-”


“마리.”


사령관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줘.”


“…알겠습니다.”


흥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던 마리는 분을 삭히며 자리에 앉더니, 계속해서 에릭을 째려보았고, 사령관은 에릭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조금 전에 말했듯이 제 제안은 거절하실 생각인가요?”


“내가 거절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네 주변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날 받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에릭은 지휘관 바이오로이드들을 가리키며 사령관에게 말했다.


“제가 설득한다면요?”


“설득하고 나서나 말하시지. 나 한 명조차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이들을 전부 설득할 수나 있겠어?”


“제가 협상가는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럼 나 말고 여기 있는 이 녀석들부터 설득해 보시지, 그걸 보고 생각해 볼 테니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에릭은 의자에 등을 쭉 기대며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에릭을 기가 차다는 듯이 바라보는 지휘관 개체들에게, 사령관은 설득을 시작했다.


그런 사령관을 바라보며, 에릭은 생각했다.


‘…네오딤이 말했었지. 은혜는 갚아야 하는 거라고.’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네오딤과 잠시 나눴던 대화에서, 그녀는 말했었다.


그 사람들이 에릭을 깨우고 고쳐줬어. 그럼 은혜라는 걸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자신이 네오딤에게 가르쳐 줬었던 것들을, 네오딤이 자신에게 정론으로 제시하는 것을 들으며, 에릭은 그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인간은 죽을 만한 죄를 짓지 않았고, 자신을 오랜 동면에서 깨우고 여러모로 망가져 있는 몸 상태를 잠시나마 돌봐 준 은혜를 입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 마땅히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에릭은 끝까지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다.


인류의 재건을 원하는 듯한 저들을 도와주는 것은 자신이 멸망 이전에 펼쳤던 주장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짓이었으니 대놓고 돕겠다고 하지는 못할 노릇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없다면 아쉬울 것은 그들이지 자신이 아님을 에릭은 알았다. 어차피 인간들도, 뮤턴트들도 멸망했으니, 에릭에겐 살아갈 이유가 딱히 없…


‘…네오딤.’


이유가 있었다. 에릭은 하마타면 그녀를 까먹을 뻔했다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목숨이야 이미 오래 전에 거의 내던지다시피 굴렸으니 죽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자신이 없다면…분명히 저들은 네오딤을 전장으로 내몰 것이라고 에릭은 확신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인간은 자신에게 힘을 빌려 달라고 했고, 만약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네오딤의 힘을 빌리려 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에릭은 의자에 기댔던 등을 세우며 말했다.


“협력하지.”


한창 지휘관들과 열띤 논쟁을 하던 사령관은, 에릭의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아니, 생각을 해 봐. 네오딤의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서 삼안 산업이 만들어 낸 게 레아잖아? 그리고 너희 모두 레아가 얼마나 강력한 지 알잖아. 가끔씩 자기는 아직 어린애라느니 이상한 소리를 하긴 하지만…”


“협력하겠다고.”


에릭은 목소리를 높여 다시 한 번 말했고, 그것을 들은 사령관과 지휘관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사령관은 자신이 무엇을 들은 것인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단, 조건이 있어.”


에릭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의식주는 당연히 제공받는 걸로 알 거고, 일단 첫 번째로, 네오딤을 절대로, 절대로 전투에 내보내지 않을 것.”


그 말을 들은 지휘관들의 에릭을 보는 눈빛은 적대에서 의아함으로 조금씩 바뀌어갔다.


“둘째, 내가 만약…죽는다면 말이지, 전투에서…그렇게 된다면, 네오딤의 안전을 보장할 것. 끝이다.”


“…조건 중에 당신에 대한 조건이 없는데요?”


사령관의 의아함이 담긴 목소리에, 에릭은 코웃음을 쳤다.


“난 어차피 한 번 뒤진 몸이야. 딱히 이번 생에 더 바라는 것도 없는데 뭐하러 조건을 더 붙여?”


에릭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은 아니겠지? 그럼 난 자릴 비워줄 테니 알아서들 의논 잘 해 보시라고.”


그렇게 말하며 에릭은 회의실을 나가버렸고, 그런 그의 자리를 사령관과 지휘관들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겨우 한 시간 전까지 사령관을 죽이려던 사람이…무슨 바람이 들었길래 저러는 걸까?”


레오나는 의아하다는 듯이 사령관에게 말했다.


“글쎄, 그래도 다행인 건 저 사람이 협조해주기로 했다는 거지.”


“…정말로 협조할 생각이 있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언제든지 저희 뒤통수를 칠 수도 있습니다.”


마리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그러진 않을 거 같은데? 네오딤을 지켜달라고 조건을 제시했잖아. 저러는 걸 보면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 아닐까?”


메이의 말에, 사령관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나도 메이랑 같은 생각이야. 그는 자길 위한 조건이 아니라, 네오딤을 위한 조건만을 걸었잖아. 우리가 그 조건을 지키는 이상, 그 남자는 우리에게 협조할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실 수 있습니까, 각하?”


마리의 말에, 사령관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어.”


“…눈이요?”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이 해변에서 날 죽이려고 했을 때, 눈을 보니까 화가 잔뜩 나 있더라고.”


“사령관 각하에게 말입니까?”


“아니, 그의 눈에 담겨 있던 건 갈 곳을 잃은 분노였어. 그리고 그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어. 그 분노를 어디로 향해야 할 지를 모르는 것 같이 말이야.”


“그래서 그 분노를 사령관 각하께 발산했다는 겁니까?”


“그렇겠지, 저 사람이 인류에 대해 왜 그렇게 극심한 분노를 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잖아. 저 사람에게도 두 번째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저 자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심지어 멸망 이전의 시간에 냉동되어 지금까지 그대로 그 사상을 간직했을 텐데-“


“너희는 인류에게도 두 번째 기회를 주려 하고 있지. 나를 사령관으로 삼아서, 철충들을 몰아내고 인류의 재건을 노리고 있잖아.”


사령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의 책상 주변을 천천히 돌며 말했다.


“심지어 너희는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너희의 권리를 짓밟고, 가축만도 못한 물건으로 취급해왔는지도 잘 알고 있지. 특히 마리, 그리고 칸은 말이야. 너희는 멸망 전쟁 이전부터 살아왔잖아.”


마리와 칸은 자리에 앉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희는 뮤턴트들의 처우가 어땠는지, 글로만 접한 나보다도 잘 알겠네. 마리, 한번 말해봐.”


잠시 망설이던 마리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의 저희들에 가까운 취급이었죠. 인간에 비해 기본적인 기본권만 보장받을 수 있었고, 그마저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몇몇 나라에서는 심지어 뮤턴트들을 수용하는 수용소가 지어지기도 했죠.”


“그래, 마리의 말대로야. 솔직히 이 정도만 말해도 난 저 사람이 왜 그리 인류에 대해 분노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는 사이, 회의실을 한 바퀴 돌아 제 자리로 돌아오며 말을 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렇게 인류를 증오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협력하겠다고 스스로 정한 거야. 그것도 자신을 위한 조건 하나 걸지 않고, 오직 네오딤을 위한 조건만을 내걸었지.”


“각하…”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마리의 목소리를 들은 사령관은 잠시 그녀를 쳐다보더니, 이내 회의실의 탁자에 둘러앉은 지휘관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저 사람을 믿어 보기로 했어. 하지만 단독적으로 결정하고 싶지는 않으니, 너희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어.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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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 라붕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