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인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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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인간이 음울하게 중얼거린 한마디에 사령관은 필연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리고 사령관의 예상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령관에게 휘감겨있던 리리스의 팔이 천천히 거두어졌다.


리리스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주인님? 저를… 봐주시겠어요?"


사령관은 뒤돌아 보고 싶지 않았다.


불굴의 정신을 지닌 그마저도 굳어버리게 할 만큼, 치가 떨리는 공포가 그의 몸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을 확신으로 바꾸는 묵직한 금속 부품의 소리가 들려오자, 사령관은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


사령관은 순간, 사신의 차가운 손아귀가 심장을 와락 움켜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리리스…."


리리스는 자신의 권총으로 스스로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사령관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두번째 인간의 안배였다면, 그는 확실하게 사령관에게 '한 방 먹였다.'


사령관이 상상해 본 적 없는 최악의 악몽이, 그의 눈 앞에 있었다.


그에게 있어 바이오로이드가 자살하는 상황은 상상하는 것 조차 두려운 상황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눈 앞에서, 자신의 잘못때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전투에서 누군가를 잃는 것?


상상하기 싫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일이다. 각오는 되어있다.


저항군의 궤멸?


그것 역시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적어도 마지막까지 바이오로이드들과 함께 할 수 있겠지. 각오는 되어있다.


하지만 사령관에게 있어 바이오로이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전혀 이야기가 달랐다.


그 어떤 사정과 이유가 있더라도, 그에 따르는 모든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사령관이었다.


사령관은 처음 눈을 뜬 이후로 가장 동요하고 있었다.


처음 연결체급 철충과 교전했을 때도, 심해의 어둠에 숨어 있던 괴물들을 마주쳤을 때도 이렇게 동요한 적은 없었다.


사령관이 지닌 그 불굴의 정신력의 근간은 바이오로이드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사령관'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자신을 따르고 사랑해주며, 자신이 없다면 가망 없는 투쟁속에서 죽어갈 가련한 여인들에 대한 사랑은 사령관이 그 어떤 고난과 괴로움도 버틸 힘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랑은 사령관에게 있어 무엇보다 커다란 약점이 되어 그를 괴롭게 하고 있었다.


이런 이별만큼은 각오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빛을 잃은 채 요염하게 웃고있는 리리스의 눈이, 사령관의 마음을 더더욱 초조하게 하고 있었다.


"제발 그러지 마... 총 내려놔."


"흐응… 싫어요."


가학적인 미소를 지으며 쿡쿡 웃는 리리스.


"사령관의 권한으로 명령한다. 총, 내려놔."


"안되는 거, 아시잖아요?"


"원하는 게 뭐야?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니?"


"주인님이 해주실 수 있는 건 없어요. 그저 지켜봐주시기만 하면 되는거죠."


"왜 이러는 거니? 나 때문이니? 내가 너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정말 미안해, 리리스. 난..."


"아니에요. 주인님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으셨어요. 단지… 리리스가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서 그런거예요. 이젠 그럴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리리스는 상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리리스는 스스로의 머리를 겨누고 있던 '블랙 맘바'로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생각을 조금 해봤어요. '첫번째'가 될 수 없다면… '마지막'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게 무슨 뜻이야?"

사령관은 리리스가 한 말의 뜻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차마 그것을 긍정할 용기는 없었다.


리리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인님께서 처음 눈을 뜨셨을 때 만나셨던 '첫번째' 바이오로이드가 콘스탄챠라면, 언젠가 주인님께서 돌아가실때 떠올리실 '마지막' 바이오로이드는 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갑자기 즐거워졌어요. '두번째'보다는 '마지막'이 더 나은 것 같아서. 어쩌면 '첫번째'보다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생각해봤어요. 주인님이 저를 영원히 기억해 주실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지. 그랬더니 이런 방법이 있었죠. 바이오로이드를 그 무엇보다 사랑하시는 주인님께서 절대 잊지 못하실 방법이요."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로 리리스는 말을 이어간다.


"이제 주인님은 저를 잊으실 수 없겠죠. 하루에도 수없이 저를 생각하시겠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떠올리고 떠올려서, 마침내 모든 일이 끝나고 눈을 감으시는 순간까지 저를 떠올려주시겠죠.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저는 '마지막'이 될 거예요."


"그런 짓을 하지 않더라도 너를 잊지는 않아! 리리스, 제발! 내가 어떻게 너를 잊겠니! 너와 함께 해온 날들을 어떻게 잊겠냐고! 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를 잊지 않아! 그러니까 제발 어리석은 짓 하지 마! 그건 너를 포함한 모두를 불행하게 할 뿐이야!"


사령관의 절망적인 호소에도 불구하고, 리리스의 눈이 점점 위험한 빛을 품었다.


그 빛에 자극된 사령관의 뇌가 미친듯이 돌아갔다.


"주인님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면, 전 죽어도 행복해요."


리리스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랑해요, 주인님."



"...이 씨발년이."



" 예? "


사령관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폭언에 리리스가 잠시 주춤한 순간, 빠르게 움직인 사령관이 리리스의 손에 들려있던 블랙 맘바를 쳐냈다.


"앗!"


블랙 맘바를 놓친 리리스가 중심을 잃고 비틀댄 순간, 사령관은 그 손으로 리리스의 목을 붙잡아 그대로 밀어붙여 벽에 찍어눌러 제압했다.


"악... 칵…"


숨이 막힌 리리스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냈다.


경악과 고통의 틈새에서,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감히 스스로의 목숨을 인질로 삼다니. 너의 목숨은 너의 것이 아니다. 너의 주인인 나의 것이지. 건방진 것."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누구보다도 자애롭고 상냥하던 사령관의 입에서,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말이 흘러나온다.


"네 주제를 잊었느냐? 내가 직접 분수를 가르쳐주길 바라느냐."


차갑고 비정한 눈으로 리리스의 눈을 바라보는 사령관.


하지만 그런 강압적인 폭력과 학대를 당하는 리리스의 신음에 조금씩 야릇한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그 얼굴엔 홍조가 피어올라 있었다.


"윽... 흐읏…"


"목을 졸리면서 느끼는 거냐? 지저분한 것."


계속되는 사령관의 매도에, 흥분에 이기지 못한 리리스의 다리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을 움켜쥔 사령관의 팔에 매달리다시피한 리리스는 사령관이 자신에게 학대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늘 자상하고 신사적이었던 주인이 정반대로 돌변하여 수컷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악력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고, 매도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리리스가 알지 못하던 자신의 본모습을 깨닫게 했다.


"이렇게 버릇없고 천박한 경호원이라니. 교육이 필요하겠어."


사령관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리리스의 목을 조르던 손을 풀어냈다.


다리에 힘이 풀려있던 리리스는 천천히 주저앉았다.


사령관은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리고는 매서운 눈으로 리리스를 노려보며 명령했다.


"이리와라."


그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순종적인 노예가 된 리리스는 비척이며 일어나 그 곁에 다소곳이 섰다.


갑자기 돌변해버린 사령관의 모습에 영문을 모르면서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얼굴로.


사령관은 자신의 무릎을 가리키며 말했다.


"엎드려라."


잠시 머뭇거리던 리리스는 그 위로 조심스럽게 엎드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올린 사령관은, 그대로 리리스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짝!]


"히익…!"


"나쁜 리리스."


[짝!]


"아앗…!"


"못된 리리스."


[짝!]


"하읏…!"


"건방진 리리스."


그대로 몇차례 더 리리스의 볼기짝을 때린 사령관은 흥분을 삭이지 못한 리리스가 마침내 절정에 달하자 때리는 것을 멈췄다.


사령관의 무릎 위에서 축 늘어져버린 리리스는 신음을 내뱉으며 경련했다.


"..........아흐윽....읏...!!"


"널브러져 있지 마. 일어서라."


[짝!]


"네, 네헤…"


사령관의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리리스는 절정의 여운에 경련하며 일어섰다.


그 얼굴에는 새로운 쾌락을 깨달은 암컷의 기쁨이 가득했다.


사랑하는 이의 기억에 남기 위해 죽어버리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따윈 새로운 쾌락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둘은 잠시 잊고있었다.


그 공간엔 다른 이가 한명 더 있었다는 것을.


"뭐하는 짓거리야… 뭐하는 거냐고, 리리스!"


분노한 두번째 인간의 목소리가 3번 휴게실에 메아리쳤다.


"사령관의 '마지막'이 되고 싶지 않은거야?! '두번째'로 남고싶다는거야?! 콘스탄챠에 밀려도 되는거냐고!! 대답해, 리리스!"


리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생기와 사랑으로 가득찬 눈으로 자신의 주인을 바라볼 뿐.


남자의 존재따윈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사령관이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앞에 선 리리스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사령관은 그 귓가에 속삭였다.


"아직도 내 허락 없이 죽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느냐?"


"아니요…"


"아직도 내게 '두번째' 라느니 '마지막' 이라느니 헛소리를 늘어놓고 싶으냐?"


"아니요, 주인님…"


"좋아. 착한 리리스구나."


리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사령관은 불현듯 리리스의 작고 하안 얼굴을 양 손으로 단단히 붙잡아 그 눈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오늘 밤은 해가 뜰 때까지 교육해주마. 기대하고 있거라."


"네... 주인님…"


리리스는 달콤한 숨결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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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인간을 향해 돌아서며, 사령관은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리리스에게 폭언을 해 일시적으로 그녀를 멈춘 것은 문자 그대로 사령관의 모든 것을 일순간에 건 도박이었다.


위기의 순간 극한까지 활성화된 사령관의 뇌가 떠올린 것은, 두번째 인간이 말했던 '진정한 리리스'라는 키워드와 '블랙 리리스 모델의 집착'이라는 키워드였다.


전용 감정 리미터가 적용되지 않은 리리스는 주인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리미터가 적용되어 있더라도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멸망전에는 몇몇 사고를 일으키곤 했다. 또한, 그 집착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에도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것이 두번째 인간이 노린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블랙 리리스 모델들이 가진 또다른 성격적 특성이 상황을 타개할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령관은 리리스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리는 것을 보며, 미친듯이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해냈다.


블랙 리리스 모델에게는 가학적인 성향과 피학적인 성향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학적인 성향은 이미 스스로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사령관의 반응을 보는 것을 즐기는 모습으로 직감했다.


그렇다면 피학적인 성향을 드러내서 틈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지?


사령관이 낸 답은, 리리스에게 폭언을 하는 것이었다.


사령관은 단 한번도 바이오로이드들에게 폭언이나 욕설, 폭행같은 일절의 학대를 가한 적이 없었다.


설령 누군가 실수를 하더라도, 얌전히 주의를 준 뒤 그런 실수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이 일해 커버했다.


따라서 바이오로이드들은 누구 하나 예외없이 사령관의 거친 언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들에게 있어 사령관은 언제나 상냥하고 자상하고 부드러운 주인님이었다.


사령관이 노린 것은 그 고정관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폭언의 충격에 이미 피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던 리리스는 더 큰, 그리고 생각지 못하게 기분좋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진 매도와 학대에 리리스는 본연의 자신이 지니고 있었으나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피학성을 완전히 자각함과 동시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강압적이고 지배적인 사령관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비록 사령관은 다신 하고싶지 않은 '연기'였지만 어찌되었든 도박은 성공해 리리스의 폭주는 멈췄다.


가장 어려운 것은 첫 기선을 잡는 것이었다.


종합적인 신체능력, 특히 순발력과 동체시력은 리리스가 압도적으로 높지만, 완력과 체력 만큼은 사령관이 앞선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리리스의 장점을 무력화 한 뒤, 자신의 장점을 살려 급습하지 않았다면 제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방아쇠에 손가락이 이미 올라가 있던 상황이었기에, 사령관은 블랙 맘바를 쳐내는 순간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실수한다면 도대체 어떤 무시무시한 결과가 따랐을지, 사령관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침내 그 악몽같은 상황은 끝났다.


리리스는 그 무서운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지 않도록 사령관이 계속 보살필 테니까.


이제 남은 것은 두번째 인간에 대한 것 뿐이었다.


사령관은 천천히, 절망에 빠진 두번째 인간을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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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의 나도 엔딩을 내지 못했다.


엔딩은 다음주의 나에게 맡긴다.


이번엔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엔딩....


분명히 제목란에 제목 쓸때 (엔딩!!!) 이라고 붙여놨었는데 안됐다.


두번째 인간이 사실상 주인공이었던 만큼 뭔가 임팩트 있는 최후를 주고싶어서 좀 더 생각해보고 쓰기로 했읍니다.


개추와 댓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생각보다 제 개똥글을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항상 놀라곤 합니다


여러분의 추천과 댓글이 다음 주의 저를 살아가게 할겁니다 홍홍


늘 고마워요 라붕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