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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다 뭐다로 바쁜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대회 당일.

개최지(?)로 선정된 항구는 시끌벅적하게 들떠올랐어.


양파를 튀기며 신나서 서로 팔짱을 끼고 노래를 부르는 브라우니를 막 합류한 네오딤이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알비스가 좀 더 달게 하자면서 설탕을 포대로 들고 오는 걸 님프가 말로는 곤란해하면서도 남김없이 써버리고,

워울프가 대충대충 술안주로 쓸법한 보존식들을 던져놓고 가버리면 퀵 카멜이 어쩔 줄 몰라하다가 모양새라도 그럴듯하게 잡으려고 헛된 노력을 하고,

지니야는 먹고.


오르카 호의 갑판에서 지휘관기들과 함께 그걸 바라보던 사령관은 시식용으로 날라져온 접시를 가리키면서 소완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봄.


어떠냐고 하셔도, 소완은 차마 찌푸려진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로 대답했지.

계량도 제대로 안 하고, 조리 과정은 그보다도 더 대충대충이고, 모양새만 겨우 잡은 게 전부라 차마 두고 볼 수 없을 수준이라고.

그래? 하고 가볍게 되물으면서 사령관은 주저 없이 양파 튀김을 집어다 입에 넣음.


- 그래도, 네가 오기 전까지는 이 정도도 꿈도 못 꿨어.


앵거 오브 호드랑 둠 브링어는 조금 엇나간 것 같지만.

웃음기 섞인 말에 칸이 태연하게 긍정하고 메이가 변명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리제는 좀 심하게 달짝지근한 팬케이크를 잘라먹으면서 납득함.

재료 자체의 수급이야 요안나를 비롯한 탐색조의 성과라고 해도, 그걸 부대별로 적절히 배분하면서 주어진 것들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식단을 정해주고, 조리법을 가르치고 하는 것들은 거의 전적으로 주방의 공이었고 소완이 그 중심에 있었으니까.


- 주인께서 드시지만 않으신다면 납득하였겠사옵니다만….


석연치 않은 어조로 소완이 대답하는 동안, 컴패니언과 배틀메이드 멤버가 주가 된 본격적인 요리 대회도 시작함.

예의 막요리에서 받은 충격의 반동인지 소완이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데다 여기 나온 바이오로이드인 시점에서 소완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적이 있는 게 당연한지라 이쪽은 꽤 그럴듯한 분위기로 진행되었지.


미트파이의 틀 안에서 극한의 바리에이션을 추구한 하치코라거나, 소박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시골풍 가정식을 낸 더치걸이라거나, 이제는 완전히 손에 익은 솜씨로 불을 쓰는 온갖 조리법을 선보인 포티아라거나,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배터리가 단칼에 두동강난 후에 절규하면서 끌려나간 그렘린이라거나.

그 중에서도 콘스탄챠는 라비아타가 기본적으로 학습한 기능을 훨씬 능가했다고 감탄할 만큼 그럴듯한 중화풍 정찬을 내놓아서 소완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음.


중간에 좀 이상한 게 있어서 레오나가 이마를 짚긴 했지만 그 외에는 소완도 진지하게 평가나 조언을 해주면서 점수를 주고, 참여자들도 진지하게 들은 다음 감사를 표하면서 차례를 마침.

그렇게 마무리로 집계 단계에 들어갔을 때의 소강 상태에서, 사령관이 소완에게 물어봄. 이건 어땠냐고.


- 송구하오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사옵니다.

- 말하자면 수제자들이잖아. 성장한 모습에서 보람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아?


침묵이 길지는 않았지만, 존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은 리제도 이해할 수 있었지.


- 주인께 지고의 쾌락을 선사해드리고자 하는 바람에 비하면, 그 정도는

- 없지는 않다, 라는 거네.

- ……굳이 있냐 없냐, 로 딱 잘라 물으신다면 부정하기 어려울 뿐이옵니다.


그것이 석연찮은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응하는 소완에게, 사령관은 다행이라면서 빙긋 웃어보임.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지 않더라도, 너희는 이미 하나하나가 나에게 유일무이한 존재니까.

오히려 자신 이외에서도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 주었으면 한다고.


- 그것은, 명령이시옵니까?

- 부탁이야. 소완 너에게는 '주문'이라고 하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까?

- 그리 말씀하시면 숙수 된 자로서 물러설 수도 없지 않사옵니까.


원망하는 말투면서도 목소리는 더없이 상쾌한 소완의 미소와 전체적으로 훈훈한 분위기에 리제도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기분이 되어서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어.

슬쩍 자신을 향한 푸른 시선이 처음 보는 빛으로 반짝이는 걸 보기 전까지는.


…저기 혹시, 이거 말이야, 오히려 대놓고 꼬셔버린 거 아니야?


불행하게도, 부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정리를 시작한 와중에 주방조를 인솔해 - 진정한 마무리로 스스로 솜씨를 다한 '지고의 저녁식사' 풀코스를 대접한 후 - 물러나던 소완이 싱긋 웃으며 속삭인 말로 의심은 확신이 되어버렸지.


- 소첩이 함께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맡겨두겠사옵니다.

  그렇게 되었으니, '마나님'께서도 꼭 붙잡고 계시옵소서?

- ….


뻣뻣하게 굳었다가, 유난히도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얹은 채로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다음, 리제는 갑판의 가장자리까지 뛰어가서 입만 벙긋거리며 소리를 지름.


- 어떻게든 되기는 개뿔!

 그러니까 차라리 야스를 하지!


분명히 실제로 목소리를 낸 건 아닐 텐데도, 어째선지 수평선 너머로 지- 지- 지- 하는 메아리가 돌아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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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지고의 저녁식사는 끝이빈다

바로 리오보로스의 유산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고, 세이렌네 함대의 합류나 이것저것해서 쪼끔 쉬어가는 편이 있을 예정이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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