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은 마리와 레오나를 만난 이후에도 다른 여러 부대의 바이오로이드들도 만나보았다.

앞서 만났던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모두들 금태양(사령관)을 잡겠다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오히려 평소보다 기분이 좋은 듯 들뜬 모습을 보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이는 부대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소설에서 전 사령관의 배신에 가담하지 않았던, 오히려 그를 지키려 했던 부대였다.


대부분은 함 내의 분위기를 생각해서 티를 내지 않는 듯 하나, 반대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자신을 뽐내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론 소설 안에서도 사령관을 지키다 최후를 맞이했던 블랙 리리스, 소완, 리제가 뽑혔다.


'후후-, 아-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네요. 지금이라면 그 누가 덤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어요.

참, 그건 원래부터 그랬지만. 아아, 저의 하나뿐인 주인님.. 책에서처럼 현실에서도, 리리스가 지켜드릴게요.'


'으음... 큰일이옵니다. 계속 이렇게 머리가 멍하면, 요리에도 지장이 생길지 모르는데..

허나.. 후후, 그렇다 하더라도 나쁜 기분은 아니옵니다. 주인.. 소첩은 제 숨이 다하는 그 마지막날까지, 저는 주인만을 연모하겠사옵니다.

그러니 부디, 평생토록 소첩의 곁에서 당신만을 위한 미식을 느긋하게 즐겨주시길...'


'히히힛, 내가 주인님을 지켰어..! 주인님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해주셨어...!

나도, 그렇게 되어야 해..! 소설 속의 나처럼..! 그러려면, 주인님을 해치려는 해충들을 미리 제거해야...!'


책을 읽고 기분이 좋아진 셋은 하루종일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사령관을 향한 애정어린 말들을 혼잣말처럼 쏟아냈다.

이런 공통점이 생긴 덕분인지 마주치기만 해도 틱틱대던 셋의 사이가 최근에는 절친이라 해도 좋을 만큼 부드러워졌다.


다만 셋의 사이가 좋아지는 대신, 그녀들은 소설 속에서 사령관을 배신했던 이들에 대해 조금 냉정하게 변했다.

리리스는 보통의 경호 때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사령관에게 다가갈 때마다 더욱 매섭게 경계를 했으며, 소완은 주방의  다른 대원들(하치코 제외)에게 더 엄격해졌다.


심지어 리제는 소설 속에서 함께 주인님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매들의 말을 잘 듣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엔 맏언니인 레아와 말싸움까지 할 뻔 했다고 하니, 분명 지금의 오르카호의 분위기는 심상치가 않았다.


이대로 두었다간 점점 부대원들 사이에 균열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이 책 한 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볼 때, 이 사건은 흔히 말하는 미디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태의 진정한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사령관은.


"으아아아악!! 이거 도대체 어떻게 수습해애-!!"


보시다시피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중이었다.

허나 소설을 쓴 장본인이니 자업자득. 가엽다고 여길 수도 없는..


"뭘 관찰자 시점으로 써갈기고 자빠졌냐?! 이렇게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애초에 네(작가)가 이딴 상황 설정만 안했어도 내가 이렇게 됐겠냐고! 소재에 눈이 멀어 완결도 생각안해서 연재도 늦어진 주제에! 읍-! 읍-!!"


자, 그럼 우리의 사령관이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 마저 지켜보도록 하자.


"으으으읍-!!!"





side-사령관




망했다. 진짜 망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

나는 못해, 이거. 철남충 사태도 이렇진 않았는데.


어떤 애들은 소설의 내용에 과몰입해 정신이 반쯤 딴 데 가 있고, 어떤 애들은 그럴수록 금태양을 꼭 잡아야 한다며 눈에 불을 켜고 있고.

이러다 애들끼리 싸움이라도 붙으면 그걸 또 뭐라 하면서 말리냐고.


그냥 사령관 명령으로 더 이상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고 싶어도, 불만은 사라지지 않고 쌓여만 갈 게 뻔했다.

덮고 가기에는 이미 사건이 너무나도 커져버린 것이다.


또, 나를 볼 때마다 자신을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내 안의 양심이 너무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심적으로 지쳐버린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방 안에서 잠시 휴식하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잠시 침대에 누워서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상황을 바꿀만한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곳에는 나보다 먼저 온 두 명의 여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딜 갔다 이제오는 거야? 휴식치고는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잖아.

하마터면 그냥 가버릴 뻔 했네."


"오, 오셨어요.. 주인님..?"


"어..? 메이..?. 라비아타..?"


메이와 라비아타. 각각 둠브링어와 배틀메이드의 지휘관이자 오르카 내에서 최장신, 최단신을 뽑으라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그 키 차이 만큼이나 성격도 거의 정반대인 두 사람일 텐데, 어쩐 일로 함께 이곳에 온 걸까.


거기에 왠지 모르게 붉어진 얼굴로 나를 보는 그녀들의 시선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버린다. 

조금이나마 이 이상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나는 능청을 떨며 그녀들에게 말했다.


"두 사람 다 여긴 어쩐 일이야? 그것도 수영복 차림으로..

여름은 아직 멀었는데. 하하.."


"바보. 우리가 바다 가고 싶어서 이걸 입었겠어? 그리고 새삼스레 왜 그래?

그동안 우리 말고도 이런 차림으로 여기 온 애들이 수두룩한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나는 한 번도 안 불러주고.. 흥!"


"그만해요 메이. 죄송해요, 주인님. 많이 놀라셨죠? 부디 이해해 주세요.

그녀도 저도 마음이 불안해서 그만.."


"응? 불안하다니.. 혹시 오르카 내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아뇨.. 이건 제 스스로의 문제에요. 그동안 용기가 없어서 망설였지만.. 그 망설임마저 사치였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달았어요..

그러니 주인님.. 부디, 너무나도 늦어버린 저의 사과를 받아주세요..!"


"어, 어어.. 잠깐..!"


어찌저찌 대화를 이어가던 그때, 갑자기 라비아타가 말릴 새도 없이 자신의 수영복을 모두 벗기 시작했다.

갑자기 드러난 그녀의 탐스러운 알몸에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나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손으로 감추었다.


이내 자신의 수영복을 모두 벗어던진 라비아타는, 무릎을 꿇은 채로 내게 몸을 숙여왔다.

그녀는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이라며 내게 사죄를 해왔지만, 정작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침묵이 그녀에겐 조금 무겁게 다가왔던 것일까.

라비아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주인님을 처음 뵈었던 그 날..! 전 주인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말았어요..!

주인님을 의심하고, 무기까지 휘두르려고 했던.. 그토록 찾아헤맸던 희망을 스스로 꺼뜨려버릴 뻔했던 죄..!

죄송해요, 주인님..! 정말, 정말 죄송해요...!"


"아... 그 일이라면 전에도 말했잖아. 난 이미 널 용서했어. 

더 이상 죄책감 같은 거 같지 않아도 돼. 어서 일어나, 라비아타."


"흥. 너무 물러터졌다니까. 사령관. 당신이 아무리 그런 말을 해도, 그 일은 분명 중죄였어.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야. 적어도 그 죄에 대한 벌을 내려야 용서가 가능한 거라고.

그렇지 않고선 본인은 절대 납득하지 않을걸?"


"벌이라니.. 그건.."


내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메이가 건넨 조언은 분명 틀린 말은 없었으나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처음엔 그 날 있었던 일 덕분에 라비아타가 조금 거북하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었으나, 지금은 이미 마음 속에서 털어낸 지 오래였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찾았다고 믿었던 인간이 철충 모습을 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의심했을 것이다. 

하물며 철충으로 인해 인류가 멸망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본 그녀라면 더더욱.


오히려 그 일로 인한 죄책감으로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그녀를 너무 방치한 것은 아닌가 싶어 후회를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고마운 일이 훨씬 많은데도, 그것을 표현한 적은 별로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줘, 라비아타.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네, 주인님..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을게요.."


"작년 크리스마스 파티했을 때, 기억나니? 숙취로 고생하던 내가 주방에 가니 네가 요리를 하고 있었지.

그것도 알몸에 앞치마만 걸치고서 말이야."


"네? 아.. 그, 그때는.. 숙취로 고생하실 주인님께 무언가 만들어드리고 싶어서.."


"사실, 그때 국밥이 무슨 맛인지는 잘 못 느꼈어. 눈을 둘 곳을 찾느라 정신없었거든.

지금 복장보다 덜하긴 하지만.."


"으으... 그, 그건.. 부끄러우니까 그만해주세요.."


"아, 크리스마스 파티 때의 음식도 거들었다면서? 그 맛은 확실히 기억 나.

엄청 맛있었는데.. 소완이 한 수 배웠다고까지 할 정도로 말이야."


".. 과찬이세요.. 주인님.. 그저, 살짝 돕기만 했을 뿐이에요.."


"음.. 그런데 그 외에는 별 추억이 없네. 

그 전까지 넌 늘 나에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그건.. 주인님께서 절 보시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아니? 오히려 반대야. 찾으려고 할 때마다 네가 안 보여서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피하고. 넌 그걸 나한테 미안해해야 해."


"죄송해요 주인님.. 지,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절 꾸짖어주세요..

체벌을 하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럼 다행이네. 드디어 이 말을 전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귀 열고, 똑똑히 들어.

정말, 정말 고마워, 라비아타. 넌, 내 은인이야."


"... 에..?"


오래토록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자, 라비아타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자신이 알몸인 것도 잊었는지 그나마 가렸던 가슴이 훤히 보였다. 어휴, 그래도 그렇지 그런 실수를 하면.. 감사합니다.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말 그대로야 라비아타. 난, 너에게 늘 고마워하고 있었어. 그래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고. 

네가 포기하지 않고 인간을 찾아주어서, 콘스탄챠와 그리폰이 날 찾아 깨울 수 있었어.

만약 네가 인간에 대해 포기를 했다면, 나는 영원히 잠들어 있었겠지."


"하지만.. 전 주인님을 해치려고..."


"너와 나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라도 그런 선택을 했을 거야. 그리고 덕분에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알게 됐잖아? 

그래서 몸도 교체할 수 있었고. 안 그랬으면 결국 병 때문에 어떻게 됐을지 몰라. 

내버려뒀으면 병이 더 진행되서 악몽 속에서 죽었겠지.."


"그, 그런 말씀 말아주세요 주인님..! 

저와 다른 아이들이, 절대 그렇게 되게 뒤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요."


"그래.. 알고 있어. 네가 얼마나 자매들과 나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는지.

그것도 자신의 몸은 신경 쓰지도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렇게나 열심히.. 그걸 보니까,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는 너희들한테, 나도 무언가 해주고 싶었어.

덕분에 쓰러져서 걱정만 잔뜩 끼쳤지만."


"흥, 알면 앞으론 일 좀 적당히 조절하면서 해.

사령관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몸관리를 못해서야."


"하하. 그래, 그래. 우리 메이가 또 울지 않게 조심해야지."


"무, 뭣?! 누가 울었다는 거야! 난 절대 걱정 안했거든?!"


안 울기는. 그 날 나이트앤젤이 술먹고 와서 다 이야기 하던데.

나 때문에 우는 저 찔찔이 대장을 언제까지 냅둘 거냐며 푸념도 하고 갔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그녀 또한 나로 인해 참 마음 고생을 많이 한 이들 중 하나였다.

이제는 더 이상 이들을 보고만 있어선 안되겠지.


그녀들이 용기를 내준 지금 이 순간, 나도 내 진심 그대로를 전해야 한다.


"나는 너희들로 인해 구원받았어. 그런 내가, 널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그러니 라비아타.. 이젠 그 죄책감은 내려놓고, 사랑해주렴.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너를."


"... 주인님...! 감사, 합니다...! 흐윽..! 저도.. 저도, 사랑해요..!

주인님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어요...!"


이윽고 나의 말에 라비아타는 내 품에 안긴 채로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를 토닥이며 부디 이것으로 그녀가 가지고 있던 묵은 감정들이 모두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녀가 울음을 그치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게 되자 왠지 모를 쑥쓰러움에 머리를 긁적였다.

묘하게 감도는 그 어색함을 깬 것은 다행일지 불행일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메이였다.


"쳇. 언제까지 멜로 드라마 찍고 있을 셈이야?

볼일이 끝났으면 다음 순번도 생각해줘야지!"


"아, 어어.. 그렇지 참..! 

어.. 그래, 에이는 무슨 일로 왔니?"


"어린애 취급하지 마. 그럴 여유도 없는 주제에.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정말 몰라서 묻는 것도 아니잖아?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너랑 진짜 물장구나 치려고 이걸 입고 왔겠어?"


"... 솔직히 말하자면, 믿기지가 않아서 그래. 

늘 그치만 하면서 도망가는 게 메이의 아이덴티티였는데."


"아이덴티티는 무슨..! 내가 그거 때문에 얼마나...! 후우.. 뭐, 좋아.

확실히, 여태까지의 나는 한심하게 밍기적거리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야.

나는 멸망의 메이, 원하는 건 무조건 가지고 마는 게 나야.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나는 사령관.. 당신을 가져야겠어."


이내 메이는 요염한 표정과 몸짓으로 나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살짝 찌르며 유혹했다.

평소와는 완전 다른 그녀의 모습에 정말 내가 아는 메이가 맞나 싶었다.


"... 역시 너무 갑작스럽게 변해서 적응이 안 되네.. 무슨 계기라도 있었던 거야?"


"변해? 내가? 그렇게 보여?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그 소설이 아니었다면, 난 여전히 우물쭈물 대고 있었을 테니."


"소.. 소설?"


"그래. 최근 오르카호에서 유행하는.. 그 빌어처먹을 삼류 소설..!

당신도 들어는 봤을 거 아냐?"


".. 아아, 그, 그거..."


그거였구나. 역시 그녀들도 그 소설을 읽었던 건가.

아니, 근데 그거 때문에 이렇게까지 바뀐다고?


"뭐, 뭐.. 신경 쓸 거 없지 않아? 네 말대로 그냥 소설일 뿐인데..."


"맞아, 그냥 소설이지. 근데 고작 그 소설이, 나를 그렇게나 열받게 할 줄 누가 알았겠어?

감히 나와 둠브링어를 그딴 배신자들로 묘사하다니...! 어떤 새끼인지 모르겠지만 걸리면 진짜 가만 안둘 거야...!!"


"그, 그래도 너무 심하게는.. 윽?!"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어.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만에 하나라도 사령관이 그걸 읽고 나를 멀리하면 어쩌지?

그런 바보같은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 절대 아니라고 스스로 부정해도, 지워지지가 않았어.

그래서 결정한 거야.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을, 전부 내보이기로."


"메이..?"


메이는 갑자기 내 멱살을 잡더니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

처음엔 역시 그 소설 때문에 화가 난 건가 싶었지만, 손아귀의 힘은 생각보다 그리 강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 또한 화보다는 마치 울음을 참는 듯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메이의 행동에 어리둥절하기만 한 그때, 그녀는 방금 전의 라비아타처럼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당신은 모르지..? 내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상상도 못할 거야. 매일, 매순간 내 머릿속엔 당신이 있어. 아침에 일어날 때도 잠이 들 때도 당신을 생각 나.

그러다 당신을 만나는 날이면 나는 바보가 되어버려. 당신의 말, 행동, 하나 하나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파.

뭐라도 말이라도 걸고 싶은데,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은데..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잘 되지가 않아..! 모진 말만 내뱉어버려..!

그런 날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밤새 울다 지쳐 잠들었어. 내 마음을 몰라주는 널 원망도 해보려 했는데, 그것도 안되더라.

그러기엔 이미, 널 향한 내 마음이 너무 커져버렸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메이..."


"그러다, 그 짜증나는 소설을 읽고 나니까 불안해졌어. 혹시나 당신이 날 싫어하는 거라면.. 나는 어쩌지?

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만약 당신에게 미움받게 된다면, 차라리 자폭이라도 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생각해버리니 그제서야 와닿더라. 내가 얼마나 쓸모없어졌는지... 그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높아야 할 이 멸망의 메이가...!

그렇게 되니까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나는, 나는...!"


"미안해, 메이...!"


그 순간, 눈물과 함께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메이를 나는 꼭 끌어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모른 척 했던 것을 끊임없이 자책했다.


정말 몰랐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고 있을 줄은.

그저 그녀의 행동이 귀여워서 놀리기만 했을 뿐, 그녀의 감정을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를 미워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오르카호의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 누구 하나 예외없이, 내 목숨보다도 더. 그것은 내 품에 안긴 메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나는 내 품에 안겨 나를 부르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난 널 절대 미워하지 않아, 메이. 나도 똑같아.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 나도 널 생각하고 있어."


"... 정말이야? 나, 미워하지 않아?"


"당연하지. 오히려 정말 사랑하는걸? 너의 화끈하고 귀여운 성격도, 내 품에 쏙 들어오는 몸도. 

그리고.. 지금 내 몸에 전달되는 풍만한 자극의 가슴도..."


"... 변태.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꼭 해야겠어?"


"남김없이 진심을 말해야 믿어줄 거 같아서."


"... 뭐, 좋아. 그럼, 사령관은 날 사랑하는 거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단 하나의 차이도 없이. 맞아?'


"응. 당연하지."


"그래? 그러면.. 증명해봐."


"어..?"


그렇게 메이의 대화 속에서 그녀의 질문에 흔쾌히 대답한 순간, 갑자기 내 몸이 붕 뜨더니 침대위로 엎어졌다.

엎어진 내 위에는 어느새 메이가 올라타 나를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의 눈물을 흘렸던 모습는 완전히 다른, 한 마리의 맹수를 보는 것과도 같은 눈빛.

왠지 모르게 오싹해지는 그 모습에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메, 메이? 이게 무슨.."


"왜? 대화도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 전투를 시작해야지? 각오해, 사령관.

여태까지 참았던 걸, 모두 쏟아낼 테니까."


"아, 아니.. 그건 좋은데, 지금은 좀.. 아직 대낮이고."


"걱정 마. 이대로 있다 보면 곧 저녁이 되겠지. 

아니면, 또 아침이 될 수도 있고."


큰일이다. 완전 눈이 돌아간 느낌인데. 마치 발정기의 펜리르를 보는 느낌이다.

이대로 당했다가 정말 하루를 넘겨버리면, 소설의 대한 사태가 더욱 커질 텐데.


메이에겐 미안하지만 우선은 벗어나야 했다.


"라, 라비아타..? 나 좀.. 어?"


"음..! 응읏..!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주인님..

부드럽게, 벗겨드릴게요."


"아, 아니! 옷을 벗기라는 게 아니라..! 아니, 그보다 왜 벗기는 거야!"


"응훗.. 서둘러서 죄송해요.. 사실, 저도 지금껏 주인님에 대한 애정을 참아왔는데..

주인님께 그런 말을 들으니..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서...!"


너도냐?! 둘이 눈빛이 완전 똑같잖아! 사과만 하러 온 게 아니었어?! 

그래서 둘이 같이 있었구만! 수영복을 벗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안돼, 이건 진짜 안 돼! 어떻게든 벗어나야 해! 

이대로 갇혔다간 언제 나갈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어!


제발, 아무라도 좋으니까 문이라도 두드려줘!

내가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하나님부처님알라아자젤님이시여어어-!!!


그렇게 소리없는 절규를 내지르고 있던 그때, 나의 엉망진창인 그 기도가 통한 것일까.

정말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문쪽에서 났다.


쿠-쿵-!!


어? 노크치곤 좀 큰 거 같은데.


쿠-쿵-!! 


뭐야, 왜 이래. 누가 사령관실 문을 이렇게 세게 두드려.


쿠쿵, 쿠쿵, 쿠쿵, 쿠쿵, 쿠쿵, 쿠쿵, 쿠쿵-!!


뭐야, 뭐야, 뭐야, 뭐야!! 뭐가 일어나려는 거야?!

누구길래 바닷속에서 상어라도 쳐들어오는 장단으로 문을 치는 거냐고!!


콰앙-!!


"잠시 쳐들어가겠다, 사령관-!!"


"와아아악-?! 에, 아, 아스널..?"


"음? 뭔가. 벌써 선수를 친 녀석들이 있었을 줄이야.

이거 우리가 한 발 늦었구나, 칸 대장."


"이 내가 뒤쳐졌을 줄이야, 방심할 수 없군."


"카, 칸...?"


재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노크 소리를 내며 쳐들어온 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캐노니어와 호드의 지휘관인 로열 아스널과 칸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요란한 등장보다 내가 더 놀랐던 것은, 그녀들이 입고 있는 복장이었다.


놀란 것은 메이나 라비아타도 마찬가지였는지, 방금 전의 기색을 감추고 놀란 표정으로 그녀들에게 물었다.


"뭐, 뭐야..! 너희들이 여긴 왜...! 게다가 그 옷은...!"


"응? 아, 이 옷 말인가? 어떤가, 사령관. 마음에 드나? 

오드리에게 받아두었던 옷이다. 신부가 결혼식 때 입는 의상이라더군.

웨딩 드레스라고 했던가?"


"으음.. 이런 옷은 처음이라 어색하군. 속옷을 입어야 하나 망설였지만.. 상황을 보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것 같군.

자, 그럼 사령관. 시간이 아깝다, 신속하게 서두르도록 하지."


"서두르다니.. 뭘?"


"하하핫. 뭘 묻고 그러는가 그대. 신부가 쳐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이지 않겠나.

바로, 신랑과 결혼을 하기 위해서지! 그러니 쓸데없는 저항 말고, 얌전히 우리들의 프로포즈를 받아라!

설마, 결혼식 날, 신부를 바람 맞히지는 않겠지?"


"......"


아니... 누가 프로포즈를 이런 식으로 해.

아, 큰일이다. 머리가 더 아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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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러분. 다들 이 소설을 기억하고 있으려나.

지난 편 올린 지 3달 좀 안됐네.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그래도 어떻게든 완결 시키려고 간신히 쓰긴 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사실 남은 애들로 조합 짜는 게 여간 쉽지가 않더라고. 한 명 한 명 해버리면 너무 길어지고.

최근 이벤트에서 아스널과 칸이 어울리는 장면이 나와서 그거 보고 정했어.

근데 메이랑 라비아타라.. 조금 생소한 조합이긴 하네. 

그래도 키로 엮어보니까 그럴 듯 하.. 려나? 쓰면서 보니까 얼추 어울리는 부분도 꽤 있다고 생각했어.


라비아타나 메이나, 사령관이랑 조금 거리두는 캐릭터들이고.(라비는 6지역 참사, 메이는 성격 변화)

메이는 화끈하게 보이지만(리오보로스 때까지만 해도..) 호감도가 높아지면 부끄럼쟁이가 되고, 오히려 라비아타가 호감도가 높아지면 대담해지는 성격이더라고.


아무튼 그렇게 해서 둘이 조합을 짜고, 메이의 경우 리오보로스 때의 성격이 살짝 나올 수 있도록 써봤어.

다소 어색한 부분이 있더라도 감안하고 봐주길 바라.

물론, 피드백 해줄 게 있다면 정말 감사히 받을게.


그럼 모두들 편안한 밤 보내길 바라고, 다음화에서 보자.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