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운 게임 - prologue 

크라운 게임 - 1


                                                         


모든 사람이 추측하는 비밀만큼 잘 지키는 비밀은 없다.

- 조지 버나드 쇼, 언어명언


"이건 말도 안 되는 처사입니다."


C-77 홍련은 침착한 어투로 입을 열었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분노가 쌓여있었는지는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이해할 수 있었다.

회의가 끝난지 이제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몇몇 지휘관들은 복귀할 생각도 없이 왕도 오르카의 근처인 [카이저 관문]에 모여들었다.

오르카 만의 좁은 해로에 설치된 카이저 관문은 철충에 침입을 막기 위해 구인류가 세운 관문이자 성채였으나 모든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왕도 오르카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요새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이 요새를 지키던 컴패니언 부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회의를 마친 지휘관 개체들이 방문해 차가운 공기를 덥히고 있었다.


"총사령관님께서 계셨더라면 이런 처사는 결코 용납 받지 못했을 겁니다."


홍련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리에 모인 다른 지휘관들을 둘려보며 말했다. 자리에는 모인 지휘관들은 홍련의 말에 하나, 둘 사족을 덧붙이며 그녀의 말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1년이라는 시간은 지휘관들이 기다리기에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고, 그 시간 동안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마음은 무너진 둑과 같이 범람해 넘치고 있었다.

물론 일부 지휘관들은 이런 사태에도 방관이나 중립을 선택한 경우도 있었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지휘관들은 전혀 그런 마음을 품고 있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이번엔 로열 아스널의 당당하면서 어른스러운 말투가 지휘관들의 시선을 끌었다.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특수한 컨테이너를 뒤에 내려놓은 채 회의장에 앉아있던 그녀의 모습에는 언제나와 같이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홍련의 말대로 우리도 콘스탄챠와 마찬가지로 총사령관의 아이를 가졌지."


평소의 웃음기 넘치던 모습과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가던 로열 아스널은 자신의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며 잠시 추억에 빠져들었다.

왼손에 끼워진 작은 반지는 과거의 오르카 호 위에서 치러진 소박한 서약식이 전부인 초라한 추억이었지만, 총사령관이 잠들어버린 지금이 되어서야 무엇보다도 소중한 추억이 되어있었다.


'그 시절에는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도 않았거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잡념에 빠져있던 로열 아스널은 자신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어 있음을 상기하고는 작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총사령관은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콘스탄챠와 그 아들, 세바스티안은 자신들의 욕심에 빠져 그 본래의 목적을 상실해버리고 말았지."


총사령관이 잠들고 처음 7년 동안은 아이들이 인큐베이터의 안에서 급속 성장을 하고있을 시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바스티안의 통치에 따르게 되었지만 그 뒤에 보인 1년간의 행보는 지휘관들의 불만이 쌓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7년 동안의 편안한 잠에 취해, 대의를 잊어버린 자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 부끄러움을 가르쳐줘야 하지 않겠나?"


로열 아스널은 자신의 의견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지휘관들을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직책상 지휘관 개체의 명령권자는 총사령관의 명령으로 인해 총사령관의 아이들에게로 돌아갔지만 결국 전장에 서서 전투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이 장소에 모여있는 지휘관 개체들임이 분명했다.

결국 이곳에 모인 의견이 곧 지방에서 숨죽이고 칼을 갈던 바이오로이드 군대의 총의가 되는 것이다.

주위의 동의가 이어지자 홍련과 로열 아스널의 눈이 마주쳤다. 사전에 이야기가 와갔던 사이였으니 이미 모든 준비가 만전을 가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남은 지휘관들을 설득하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괜찮겠나?"


육중한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분위기를 헤쳤다. 짙은 눈 화장에 날카로운 턱 선, 그에 맞지 않게 귀에는 귀여운 동물 귀가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원래는 지휘관이 아닌 모델이었으나 실전에서 그 빛을 발해 지휘관으로 발탁된 바이오로이드. 기동전의 대가이자 게릴라 부대로 유명한 앵거 오브 호드의 리더, 신속의 칸은 평소에 이런 자리에 모습을 비출 인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지휘관 회의에서도 총사령관은 물론, 지금의 임시 사령관에게도 반대의 의견을 내비친 적이 없는 충신 중의 충신. 그러한 이미지가 일반적인 그녀의 이미지였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초기의 홍련과 로열 아스널도 그녀를 부르는 데에는 거리낌이 있었지만 여기까지 대세가 무너진 상태였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초대했으며 의외로 그녀는 흔쾌히 자리에 참석하였기 때문에 그녀가 의견을 꺼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찰나라, 로열 아스널은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곧 그녀의 질문에 맞받아쳤다.


"뭐가 말이지?"


"현재 임시 총사령관은 왕도 오르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손가락이 테이블 구석에 있던 지도 한 곳으로 향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이들의 시선도 지도 속으로 집중되었다.



왕도 오르카는 두 개의 다리로 이어진 반도의 끝에 위치한 도시였다. 남은 삼면이 바다로 막혀있고 아래쪽도 [브루노 언덕]으로 막혀있어서 다리만 막는다면 왕도 오르카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은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왕도로 이어진 두 개의 다리는 엄격하고 철저한 방위기구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장을 한 채로 다리를 넘어간다는 것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연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요새였던 만큼 왕도 오르카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자연을 통한 접근법만이 존재했다. 바다나 [오르카 만]을 건너 배를 타고 왕도에 접근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오르카 만의 아래에는 왕도에 적이 접근하면 반응할 수 있도록 돌핀 해군기지가 준비되어 있었으며 오르카 만을 통해 내려오려고 해도 카이저 관문을 포함하여 오르카만 일대에서 대기 중인 컴패니언 시리즈의 검문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컴패니언 시리즈 부대는 대대로 총사령관의 곁을 지키는 근위대의 역할을 자청하였다. 이번에도 역시 왕도 오르카로 향하는 수문장의 역할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와일드 컴패니언]이라는 컴패니언 시리즈 부대만을 위한 성채를 하사받아 그 영주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회의에서도 컴패니언의 수장, 블랙 리리스가 부재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컴패니언 시리즈 부대가 지키고 있고 세바스티안이 왕도 오르카에서 나오지 않는 이상, 세바스티안을 잡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결국 왕도 오르카로 들어가려면 무력행사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왕도 오르카가 얼마나 철벽의 요새인지는 두말할 것도 없지."


신속의 칸은 그렇게 말하면서 테이블에 앉아 지도를 노려보는 메이를 슬쩍 바라보았다. 메이는 어느샌가 지도에 몰두한 나머지 자신을 바라보는 칸의 시선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칸은 잠시 메이의 부대, 둠 브링어에 의한 공중폭격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곧 포기하고 말았다. 둠 브링어의 공중 폭격도 스카이 나이츠 공군 기지의 주변을 지나면서 격추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총사령관이 그 위치에 오르카 호를 선착시킨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총사령관은 혹시라도 생길 외적에 대비해서 쌓아올린 상아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해둔 것이다.


무엇보다도 왕도 오르카에 위치한 수많은 AGS들도 무시할 수 없었다. 몬카나 산 북부에 위치한 데일리 AGS 생산공장은 왕도 오르카의 무력의 근원지라고 볼 수 있다.

브루노 언덕 아래를 가득 채우는 공장들의 존재는 왕도 오르카의 내부에는 얼마나 많은 AGS가 몸을 숨기고 있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침입하기도, 정작 침입에 성공해도 뚫고 들어가기도 어려운 철옹성, 그것이 바로 왕도 오르카였다.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손을 잡아도 모자랄 마당에, 이 정도의 병력으로 왕도 오르카로 들어갈 수 있겠나?"


그녀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이 장소에 모인 바이오로이드는 단 8명. 회의에서도 큰 소리를 내던 용과 레오나, 메이 그리고 아자젤을 포함하여 불굴의 마리와 로열 아스널, 홍련과 칸까지.

쉽게 모이는 것을 보기 힘든 면면들이었으며 사실상 현 인류가 가진 병력의 대부분이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르카의 대표적인 무력집단을 이끄는 지휘관들이었다.

심지어 가장 물량이 많다고 알려진 스틸라인의 불굴의 마리까지 합류한 상태에서, 무엇이라도 가능할 듯한 자신감이 생길 법도 하건만, 직접 왕도에 들어간 기억이 있는 지휘관들은 오르카에 침입하기에는 벅차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열 아스널은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다른 지휘관들의 설득을 위해서라도 확실한 근거가 필요했다.


그러나 칸의 질문에 대답을 건넨 것은 로열 아스널이 아니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남성의 목소리에 자리에 앉아있던 모든 지휘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장을 꺼내들었다. 부하들을 포함한 그 누구의 침입도 금지해둔 상황에서 제3자가 이러한 자리에 방문하는 것은 꺼림칙한 일일 수밖에 없을테니.

그러나 단 두 사람, 홍련과 로열 아스널만이 침착한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의가 저희에게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커튼의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붉은 머리의 남성이었다. 새하얀 피부에 호리호리한 몸매와 더불어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 매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특히 왼쪽 눈 아래에 자리 잡은 눈물점은 얼핏 보기에는 매혹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뒤로 넘긴 붉은 머리카락과 이마를 걸치듯 내려온 짧은 머리카락이 정갈한 인상도 풍기고 있었다. 남성스러우면서도 여성스러운 매력을 가진 단정한 미장부. 딱 한마디로 그를 표현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 계신 줄은 몰랐군요."


어느새 권총을 내린 불굴의 마리가 표정을 찡그린 채로 말을 걸었다. 항상 총사령관에게 충성을 바쳐온 불굴의 마리에게 있어서 자신의 눈앞에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C-77 홍련의 아들, 강연도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런 등장은 취향이 아니었는지, 척 보기에도 언짢은 분위기가 불굴의 마리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뿐 만이 아니라 홍련과 로열 아스널, 칸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갑작스러운 등장에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오,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혼란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강연은 부드러운 몸짓으로 고개를 숙여 테이블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강연의 형제들은 모두 인큐베이터의 안에서 성장하였으나 각 부대의 특색이 달랐던 만큼, 학습방향에는 차이가 있었다. 비록 씨앗은 같았으나 토지가 달랐으며 비료가 달랐으니 같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성장했음에도 각자 개성적인 열매를 맺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자신의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강연에게 경계심을 느끼던 지휘관들은 그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주위의 침묵을 사과를 받았다는 표식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강연은 다시 고개를 들어 지도를 바라보았다. 왕도 오르카의 일대가 정리된 지도의 위에는 현재 모여든 8명이 이끄는 부대와 왕도 오르카를 지키는 부대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공격하는 입장이 불리한 상황이었으나 강연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지도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왕도 오르카를 함락시키기에 병력은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강연은 어디선가 가져온 다른 부대의 마크가 그려진 깃발들을 테이블의 위로 쏟아내었다. 주사위가 굴러가는듯한 묵직한 소리가 테이블 위로 흘러나오자 조용한 회의장에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골든 워크즈, 비스마르크 코퍼레이션, 애니웨어 시리즈, 시티 가드... 수많은 깃발들이 강연의 손을 거쳐 테이블 위에서 지도 위로 자리를 차지했다. 

거의 모든 바이오로이드의 군대가 왕도 오르카를 공격하는 형태로 자리 잡자 다른 지휘관들의 눈초리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뭐 하자는 것이오?"


무적의 용이 차가운 목소리가 질문을 던졌다. 시티 가드나 애니웨어 시리즈와 같은 부대들은 총사령관의 아이라도 가졌으니 이 전쟁에 합류할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골든 워크즈와 비스마르크 코퍼레이션과 같은 부대들은 그러한 메리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세바스티안의 통치에 방관하는 부대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존재들이었으니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날카로운 눈초리들이 강연에게 화살처럼 쏟아지고 있었지만 강연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만 유지할 뿐,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오히려 자신감 넘치는 자태를 뽐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이번에는 왕도 오르카의 근처를 지키고 있는 컴패니언 시리즈와 스카이 나이츠는 물론, 공장이 있는 왕도 오르카 남부를 지키는 페어리 시리즈의 말들도 집어 들어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겼다.

이로써 사실상 왕도 오르카를 지키는 것은 AGS와 배틀메이드 프로젝트 뿐이었다. 아까와 비교해본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만한 전쟁이 테이블의 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미쳐버린 거야?"


악의조차 없는 무례한 어투가 자연스럽게 메이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으나 주위의 그 누구도 의견을 달지 않았다. 왕도 오르카를 지키는 친위대조차도 반기를 들 것이라는 의견은 행복 회로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가까웠다.


"미쳐버린 것 같나요?"


강연은 메이의 말에 예상했다는 듯이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이듯이 다가갔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얼굴에 메이는 당황한 듯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한 반응을 즐기듯이 웃음소리를 새어내고는 다시 주위의 지휘관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홍련만이 자신의 아들의 장난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전쟁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건 뭘까요?"


갑작스러운 질문이 강연에게서 던져오자 지휘관들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잠깐의 시간 동안 각자의 답은 나왔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사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강연은 이미 답을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무력도, 전략도 모두 중요한 것이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명분입니다."


강연의 말은 이어졌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전쟁의 시작을 열 수 있는 열쇠, 그리고 아군도 적이 되도록, 적도 아군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마법입니다."


"그래. 명분은 좋지."


강연의 연설이 이어지던 사이, 레오나의 말이 끼어들었다. 레오나는 특유의 새하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베베 꼬으며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강연이 만들어둔 말도 안되는 전선이 레오나의 눈에 들어왔다. 평소였으면 가벼운 악담을 던지며 말도 안 되는 망상이라고 질책했을 그녀였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그림은 표현할 수 없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모든 상황을 역전시킬 명분이 있겠어?"


명분은 고작해야 명분. 결국 만들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거짓된 허울에 불과했다. 문제는 적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은 단순한 명분이 아니다. 그때부터는 대의가 되는 것이다.

즉, 강연이 가져와야 하는 것은 모든 바이오로이드를 통합할 수 있는 대의였다.


이에 강연은 특유의 헤실거리는 웃음으로,


"예. 있습니다."


자리에 모인 모든 지휘관들에게 선언하였다.


그 대답에 당당한 어투에 말을 걸었던 레오나는 물론이고 주위의 바이오로이드들도 눈썹을 들어 올리며 흥미를 가지고는 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했던 대답과 달리 강연은 새로운 질문을 꺼내들었다.


"여러분, 현재 아버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고 계시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레오나는 본능적인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야... 왕도 오르카의 지하 의무실이겠지?"


왕도 오르카의 지하에 설비된 대규모 의무시설은 오직 총사령관의 치료를 위해서만 구비되었다. 오르카 호의 시설은 물론, 남아있는 의료 설비를 모아 만든 의학의 총 집합체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에 총사령관의 치료는 오직 지하 의무실에서만 행해질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총사령관은 왕도 오르카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지하에 잠들어 있었다. 이제 와서는 모두가 아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모습에 레오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아버님은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 그렇게 알려져 있지요."


강연의 손가락이 한 마리의 새처럼 지도 위를 날아가 왕도 오르카가 그려진 곳으로 내려앉았다. 다시 봐도 철옹성임을 증명하는 자태의 위로 강연의 손가락이 가볍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벼운 리듬감이 테이블 위로 통통 튀어오르며 지휘관들의 신경을 거스르고 있었으나 가볍게 눈을 찌푸리기만 할 뿐, 이 상황에서 흐름을 끊는 지휘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가 마음에라도 들었다는 듯이, 가벼운 눈웃음을 지은 강연은 곧이어 진지한 표정으로 탈바꿈하고는 주먹으로 왕도 오르카가 그려진 지도를 내려찍었다.


- 쾅!


둔툭한 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는 분노한듯한 강연의 목소리가 이어져 나갔다.


"정말로, 아버님은 지하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까요?"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회의실에는 진득한 침묵만이 끈적이듯이 녹아들고 있었다.






공백 제외 6321자, 공백 포함 8327자입니다.

시작한지 2주만에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ㅠ 워낙 이번주는 현생이 바빠서...

대신 처음으로 지도도 만들어보고 보시기 편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풀리셨길 기원합니다 ㅠㅠ...


ps. 전쟁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긴한데 전쟁씬을 어떻게 그려야할지 고민이 되네요.

지휘관 개체들이야 1기밖에 존재하지 않을테지만, 몽구스팀이나 앵거 오브 호드, 발할라 같은 팀들은 사실상 팀 수준에 그칠 정도로 인원이 적지 않을까 싶은데 그에 비해 스틸라인은 브라우니만 1만기 가까이 존재할 것 같아서 밸런스가 너무 안맞네요.

여차하면 전쟁중에 발키리 같은 개체들도 대량 생산했다고 하고 물량을 늘리는 수 밖에 없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