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원래 모바일 게임에 돈을 쓰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소 보수적인 부류였음

차라리 게임 자체를 구매하면 하지, 인게임 결제라는 구조는 유저의 지갑을 털어먹고 가격책정도 불합리하다고 여겼었고

지금이야 패키지 게임도 DLC와 인게임 결제 등 다양한 구성을 지원하지만 

내가 스마트폰을 처음 접한게 10년도 더 전이니까 지금과는 양상이 좀 달랐거든

그리고 모바일 게임은 그 특성상 볼륨과 퀄리티가 패키지보다 떨어질거라는 편견 아닌 편견도 있었음

그러다 가챠라는 것을 처음 맛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게임을 만나게 됨

2012년 말 즈음에 나왔던 확산성 밀리언 아서

당시 나름의 붐을 일으켰고 나도 거기에 휩쓸려 가챠게임이라는 것에 발을 담그게 됨

이게 막상 해보니 묘한 중독성이 있더라고

평소라면 절대 안할 가챠를 시도하게 됐고 이게 내 첫 과금이었음

막상 하고 나서도 스스로가 이해되진 않더라

10만원이면 패키지 타이틀 2개를 구입할 수 있는 거금인데 이걸 인게임 캐릭터 몇개를 얻을 확률에 허비한다는다는게 참....

어쨌든 이걸로 가챠가 뭔지 몸소 체감하고, 바람직한 경제관념을 위해선 다시는 손도 대면 안되겠다 확신함


그 후 과금한 또 다른 게임인 퍼즐앤드래곤

무수한 모바일 게임 중 그나마 입맛에 맞아서 나름 오래 플레이했던 것으로 기억함

물론 밀아 당시 교훈이 있었기에 과금 없이 꿋꿋하게 해나갔지

그러던 어느 날 에반게리온 콜라보를 하네?

내가 에바 팬인지라 그거 보고 눈이 돌아갔음

원하는 캐릭터를 얻고자 계속해서 과금을 했고 어느순간 결제한도에 도달했다며 경고메시지가 뜨더라

과금 자체를 한 역사가 거의 없기에 구글 결제상한이 20만원으로 묶여있던거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 전화상담을 시도하기도 하고, 

당시 전화를 받은 구글 직원이 정말 친절하게 응대하며 도와줬던게 아직도 생생하다

어찌나 친절하던지 상담을 끝내고 수십분 후에 그쪽에서 전화가 한번 더 왔음

아까 상담했던 내용이 걱정되어 혹 잘 마무리됐는지 노파심에 전화해봤다고

주어진 업무를 떠나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주는 친절함이 묻어나오는 나름의 추억이었다


해당 시점까지 모바일 게임 중 가장 열정적으로 플레이했던 소녀전선

오픈 첫날이던 2017년 6월 말 즈음부터 시작해 하루도 빠짐없이 플레이함

처음에는 중국산 게임이다, 총기 모에화다 해서 약간의 편견이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는 할만하더라고

나름의 스토리도 매력적이었고

지금까지 보이듯 난 진짜 어지간하면 과금을 안하는데 이 때 또 과금함

가챠라는 요소에 대한 호기심과, 스펙 상승을 위해 새로운 캐릭터를 뽑으려 했던 밀리언 아서,

오랜 팬이었던 에반게리온이라는 IP를 인질로 잡아 콜라보를 진행했던 퍼즐앤드래곤의 케이스와는 달리

이번에는 스킨이라는, 게임에 실질적인 이득을 안겨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개인적인 만족에 불과한 영역에 과금을 할 정도로 

어느정도 거부감이 덜해짐

그럼에도 누적 20여만원은 내겐 적지 않은 액수였고, 난 여전히 가챠라는 것에 경계감을 품으며 이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음


그렇게 플레이하다 게임의 이런저런 단점과 한계에 슬슬 지쳐가던 차, 

정말로 좋아하는 IP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모바일 게임이 드디어 국내 런칭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옴

이것만큼은 타협도 이성도 필요가 없었기에 결과가 사뭇 달라짐


그게 한그오

오픈 첫날부터 시작해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단 하루도 접속하지 않은 적이 없었음

게임 자체는 민망할 정도로 어설픈 2000년대 플래시 게임 수준이지만, 달빠에게는 페그오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자 안식처였음

그렇게 정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

올해 초에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넷마블의 작태는 도를 넘었었고 난 정말 크게 분개함

결국 소중하게 일궈온 칼데아를 스스로의 손으로 없애버려야 했을 정도로

행동으로 옮기면서도 몇번이나 갈등하고 고민했지만, 그럴수록 내가 아끼는 이 칼데아의 미래를 넷마블에게 저당잡힌다는 생각이 들어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그 후 트럭시위에도 동참하고 간담회도 지켜봤는데, 

결과적으로 현 시점에는 넷마블이 어느정도 정신을 차리고 개선된 운영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생각이 들지는 않음

그정도로 손바닥 뒤집듯이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임한게 아니었거든

난 내 행동을 무를 수 없다 생각했고, 설령 넷마블이 복구 등을 지원한다 한들 무르지 않을 결단 하에 움직였음

그래야 진심이 전해지고 유의미한 결과로 빚어질거라 생각했거든

이제 와선 어느정도 결실을 본 것 같으니 그걸로 된거겠지

솔직히 그 때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지치기도 했고


그런 나에게 위안이 된게 라오였음


그오는 워낙 구성이 단순해서 메인게임으로 삼기엔 아쉬운지라 할만한 서브게임을 찾던 차,

당시 꽤나 신선하고 개성있는 신작 모바일 게임이 나오려 하던걸 봄

호기심과 기대감에 건드려봤는데 여러가지 의미로 짜릿한거임

흥미와 분노, 한탄과 기대가 뒤섞인 나날을 보내며 어느덧 지금까지 왔음

이제 와선 편안한 시골집같은 느낌이 든다

지붕에 구멍이 나있고 대들보도 휘어있지만 언제나 따스하고 아늑하게 맞이해주는, 

끼니때가 되면 많이 먹으라며 산더미처럼 고봉밥을 퍼담아주는 친숙한 그런 집

무엇보다 키우는 댕댕이들이 많이 예쁨


그래서인지 과금도 가랑비에 옷 젖듯 이렇게 누적됨

앞서 보았듯 난 페그오라는 이례적인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모바일 게임 과금에 그렇게 돈을 많이 쓰는 타입은 아님

라스트오리진은 가챠와는 거리가 있는 과금모델이라 과금규모도 상대적으로 한계가 있고

그럼에도 내가 누적 백만원을 넘겼다는건 그만큼 이 게임이 내게 지니는 의미가 큰거라 생각함


그런데 난 천상 달빠더라고

한그오가 터진 후 내 선택은 라오에 보다 애착을 가지면서 동시에 일그오에서 새시작을 하는거였음



나온지 5년이 넘은 게임을 맨땅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압박감,

한그오에서 쌓아온 것을 모조리 잃고 맨손으로 일궈내야 한다는 절망 속에

남은건 페이트라는 IP에 건 애착과 집념 뿐

은퇴계를 사서 보다 수월히 유입되는 방법도 있지만 일부러 맨땅으로 시작함

그게 진심을 담은 접근법이라 생각해서

첫번째 칼데아를 내 손으로 날려버렸으니 두번째 칼데아는 온 힘을 다해 온전히 내 손으로 일궈내고 싶더라고

이 선택이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개척생활 80여일만에 어느덧 가랑비에 옷젖듯 이리됨

빗발이 좀 세더라



내가 봐도 이 유사 플래시게임 따위에 왜 이러나 이해가 안되지만,

달빠는 이해하는게 아니야


아아 죽이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