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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한 차례 멸망해도 양육비 문제는 사라지지를 않는구나.


"하아……."


지금까지 중 가장 시무룩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사령관을 보며 리제는 그렇게 생각했다.

리제 본인도 원작의 설정을 떠올려가며 겉핥기 수준으로만 찾아봤던 만큼 제시된 값은 꽤나 어림한 수치긴 했다.

그 모호한 추정치로도 사령관이 육아의 무게감을 이해하기엔 충분했을 뿐.


다방면에 걸친 노력 끝에 오르카 호의 운영이 안정세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라 하나, 어디까지나 확장을 고려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

최고급 바이오로이드 하나 하나가 해낼 수 있는 일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을 사령관이, 그만큼의 자원을 경솔하게 육아로 돌릴 리가 없다는 것은 리제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오히려 사령관이 이 정도로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 더 의외라면 의외였을까.

처음으로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 두 번째 동침에서는 철충 감염으로 인한 건강 문제로 몰린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사령관 본인이 아이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바이오로이드에게는 항상 좋은 보호자 역할을 해주는 것도 그렇고.


'…라고 납득한 건 납득한 거고.'


일단은 좌절중인 반려를 달래는 것부터 시작하자.

신혼 첫날은 자느라, 둘째 날은 냉혹한 현실에 좌절하느라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는 건 과연 웃어 넘길 수 없으니까.

그렇게 결정하고 나면 이번엔 방법을 고르는 것이 과제였다.

물론 사령관이 일을 마친 후에 자신에게 응석을 부리며 피로를 푸는 경우가 적잖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보통은 사령관 쪽에서 먼저 다가온 것이니까.

자신 쪽에서 뭔가 해주려면…….


"당신."

"응…?"


결론은 빨랐다.


"가슴, 만질래요?"


깊이 생각하다 꼬이느니 왕도로 가는 편이 낫겠지.


*   *   *


"하아……."


같은 사람이 내쉰 한숨인데 어쩜 이리 방향성이 다를까.

자신을 품에 안은 채 일심불란하게 가슴을 주무르며 흐물흐물 풀어진 사내의 얼굴을 곁눈질로 확인하고, 리제는 작게 키득거렸다.


"그렇게 좋아요?"

"응."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과연 이런 부분에서는 이 가슴 게임의 주인공스러움이 남아 있구나.

고양이처럼 등을 부비적거리며 조금 더 품 속으로 파고들자 바뀐 무게중심을 따라 자연스럽게 몸이 옆으로 눕는다.

그 움직임에 맞춰주는 와중에도 손은 멈추지 않는 것이 기가 막히다 못해 대견하다 해야 할 수준이다.


"별로 크지도 않은데."


물론 오르카 호라는, 상식에서 270도 정도 빗나간 집단을 기준으로 둘 때지만.


"리제니까 좋은 거야."


이런 판에 박은 대답도 지금은 나쁘지 않다.

그러신가요- 하는 대답을 끝으로 다시 나른한 분위기로 돌아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

"리제?"


리제가 뭔가 꽁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사령관을 마주 보았다.

도무지 짐작가는 부분이 없어서 의아해하는 사령관에게,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와닿았다.


"…언제까지 만지기만 하려고요?"


요컨대, 성적인 함의는 전혀 담지 않은 건전함이 불만이란 이야기다.

그야 작정하고 '그런' 의도로 만졌다면 애초에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지도 못하고 있었겠지만.


"그야… 아직 낮이잖아?"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리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건 리제 본인의 잘못 - 이라고 하기엔 다소 과하다는 감이 있지만 - 혹은 영향이었다.

성적으로 개방적인 정도를 넘어서 폭발 중이라 표현해야 할 원작에 비해 리제 본인은 (사령관과 막 만났을 즈음의 광란 상태를 제외한다면) 보수적이라 해야 할 축이었으니까.

정신적-신체적인 방향을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민감한 몸에 의한 수치심과 인간으로서의 상식이 섞이고 섞인 끝에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낸 결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배려할 필요 없어요."


시선을 고정한 채 몸을 바짝 붙이자 얇은 실내복 너머로 서로의 살같이 닿을 듯 느껴진다.


"저 혼자서는, 정서적으로는 몰라도 육체적으로 당신을 완전히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건 알아요."

"리제. 설마―"

"다른 누군가를 안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예요. 그렇지만……."


그제야 비로소 내리깔린 자홍색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지.


"래 그런 것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 결론지은 채 방치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사령관만이 언제까지고 저에 대한 욕망을 갈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리제는 그렇게 말했다.


"…괜찮을까?"

"너무 비상식적인 것만 아니라면야, 좀 안 괜찮으면 또 어때요."


그렇달까 술을 남겨둔 건 제가 아닌 줄 아냐는 말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웃고, 리제는 사령관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댄 채 속삭였다.


"부서질 만큼 사랑해주세요.

 지금은 신혼이고―"


나는 당신의 아내니까.


*   *   *


그런 경위로.

눈앞에 들이밀어진 남근을 보며 리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손으로는 그럭저럭 만져왔으니 익숙해졌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시하니 또 박력이 다르다.

잘도 이런 게 자신 안에 드나들었구나.


"그, 역시 무리 같으면―"

"지, 집중 중이니까 조용히!"


소파에 앉은 사령관의 만류를 단번에 물리치고, 무릎 꿇은 자세 그대로 느릿하게 고개를 숙인다.

어느 한 쪽이 물러날 리도 없으니 거리는 순조롭게 좁혀져서-

촉, 하고. 입술이 스치듯 귀두에 닿았다.


딱히 비유할 것이 떠오르지 않는 생경한 감각에 몸이 굳은 것도 잠시.

짧은 키스를 남기고, 벌려진 입술이 조심스럽게 남근을 삼킨다.

그대로 고개를 움직여 입 안으로 받아들이다, 눈짐작보다도 더한 부피감에 혀를 놀리기는 커녕 이를 세우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는 걸 깨달아버린 탓에 다시 움직임이 멎는다.

알렉산드라에게서 배운 이론을 곧바로 능숙하게 실천할 수 있으리라고는 본인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건 또 경우가 다른데.

슬쩍 고개를 빼며 간신히 찾은 여유로 귀두 부분에 집중해봤지만 아무래도 애무라기보단 오물거림에 가깝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아서, 리제는 당황 속에 옆머리를 쓸어넘기며 슬금슬금 시선을 올렸다가.

말 그대로 불이라도 타는 듯한 시선에 한 차례 더 당황했다.


그야 객관적으로 능숙하냐 서투르냐를 따지면 서투른 것은 분명했지만, 행위에 대한 감상은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서투른대로 최선을 다 해서 집중하는 모습 자체도 사랑스러운데, 채점이라도 받으려는 양 조심스럽게 올라온 시선과 마주하는 순간에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리제."

"아, 잠깐. 저 아직…."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라며 분함 섞인 아쉬움을 드러내는 아내의 귓가에 그걸로 충분하다고 속삭이고, 사령관은 몇 번이고 안아 온 작은 몸에 다시 한 번 스스로를 겹쳤다.


전반부의 공백 따위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날려버릴 만큼 농밀하고,

부서질 만큼 사랑해달라 했던 말에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할 신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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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썰 푸는 방식(일반 넘버링)이 아니라 평범하게(Ex) 쓰는 건 순도 100프로 야스씬 쓰기에 편해서인데 정작 야스씬이 밀리고 밀려서 세 편째 Ex가 되어버린데다가 야스가 아니라 펠라가 메인이 되어버렸스빈다

실제로 이 커플은 구속플까지 한 거 치고는 전체적인 야스 진도는 갱장히 더딘 편이빈다

아무튼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만족하빈다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417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