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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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부분을 쓰고나서 조금 조졌다 하는 생각이 듬


흥…”

일반적인 치즈케이크의 노란 모습과는 달리 위가 마치 타버린듯 새까만 치즈케이크 위에 포크를 가져다대자, 부드럽게 들어갈거란 예상과는 달리 단단한 껍질층이 느껴진다.

당신은 정말로 바이오로이드가 그렇게 싫습니까?”

껍질을 포크로 쿡쿡 찔러가던 예빈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바닐라의 한 마디, 숨을 내쉬면서 까지 강조를 한 그 한 문장과 평소의 무표정과는 다른 조금 답답해보이는 바닐라의 약간 찡그린 표정은 바닐라가 지금 예빈을 어떻게 보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숨을 탁 막히게 하는 바닐라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예빈은 그녀를 빤히 쳐다본다. 자신이 바이오로이드를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뭘까, 바닐라의 주인인 양혼 역시 바닐라가 무슨 소리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색하고 냉랭하다기에는 어딘가 복잡해 보이는 테이블의 관계는 다른 사람이 보면 단순한 바이오로이드 오너의 모임처럼만 보였다.

솔직하게 얘기해 봐, 우리한테 아니면, 아무한테도 말 못해”

바닐라가 무슨 의미로 저 말을 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양혼은 그녀의 편을 든다. 냉정하고 차가운 예빈의 눈동자가 묘하게 흔들리는 걸 봤음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혼이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이 그녀를 바꿀 수 있는 순간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것만은 왜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뭘 솔직하게 얘기해? 나 이런거 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아”

그 왜…비언어적 표현이라고 하잖아? 너도 알지?”

애써 태연하게 있어보려는 예빈의 모습을, 양혼이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자신의 입을 속일 수는 있어도 너의 눈동자와 모습은 속일 수 없다는 그 말이었다.

예빈도 알고 있었다. 가슴 속부터 갑자기 차고 올라오는 답답함과 뜨거워지는 눈시울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그래…다 쓸데없는 화풀이야”

이미 물에 젖은 속눈썹을 겹치자 그제서야 눈물이 한 방울 흐른다. 눈물 한 방울에 그 간의 슬픔과 후회와 서러움과 답답함이 담겨져 있었다.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낸다.

이제와서 내 인생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으니까…그걸 어디에서라도 보상받고 싶었던걸까?”

예빈의 머릿속에 그간의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금란을 무시하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무시하고, 눈 앞의 바닐라를 무시했던 과거들이 떠오른다. 때리고 하대해도 결국 그녀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그리고 모예빈이란 아가씨도 모두 이 세상에서 죽어버린 후였으니까

그녀는 너무 약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삼안의 농락에 걸려 죽지도 못한 채 죽은 사람이 되어 이승의 감옥에 갇힌 처량한 인형 신세, 그 뿐이었다.

웃는 듯 울며 이야기하는 예빈을 바라보던 바닐라가 조용히 입을 뗀다.

전 바이오로이드입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당신의 마음따위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기분 정도는 약간 알 것 같습니다”

뭐?”

바이오로이드인 바닐라의 눈동자에는 인간인 예빈을 바라보는 측은한 시선이 담겨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지만 그 안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자신과도 비슷한 무언가를 동정하는 애틋함이었다.

저는 바이오로이드입니다. 이따위로 밖에 말 할수 없죠, 언제나, 제 주인에게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싶지만,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바닐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옅지만 온화한 미소가 보인다.

당신도 저와 비슷할 겁니다. 말하고 싶은데로 말 할수 없는 답답함, 그리고 어떻게 해도 그것을 풀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막막함,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예빈의 표정도 놀람과 당황함이 그대로 섞인, 하지만 고요한 표정으로 바닐라를 쳐다본다. 또르륵 흘렀던 눈물이 이젠 참을 수 없게된다.

하지만, 전 그래도 주인님에게 언제나 이야기합니다. 비록 내 모든 진심을 전할 수는 없다해도. 그래도 주인님은 절 사랑해주실테니까요…그렇죠?”

예빈을 바라보던 바닐라가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양혼에게 묻는다. 바닐라의 진심에 빠져들고 있던 양혼이 눈을 번쩍 뜬 얼빠진 표정을 짓는다.

응? 그럼, 물론이지”

한결같이 어딘가 어설픈 주인의 모습에 바닐라는 피식 웃는다.

보이십니까? 저는 제 모든 진심을 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인님은 절 사랑해주십니다. 당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모든 사람이 당신을 증오한단 건 아니란 것만 알아두십시오”

바닐라는 차분히 말을 마치고는 자신의 음료에 입을 가져다댄다. 마치 일상적인 대화를 끝냈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예빈의 얼굴이 웃음과 눈물로 얼룩진 것 과는 대비되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바닐라의 어설픈 위로가 먹히기라도 했는지, 음료가 나온 후에도 예빈은 끝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손등이 촉촉하게 젖어 햇빛에 비춰지기를 한참 지나서야 예빈은 입을 연다.

미안해”

눈을 살짝 내리깔고 있었지만, 예빈이 누구에게 미안하다고 하는지, 자리에 있는 모두는 알 수 있었다. 고요하게 눈을 감고있던 금란은 아무런 말도, 몸짓도 없었지만 그녀는 귀를 연다.

그냥…그것밖에 할 말이 없다”

복잡한 감정을 짧은 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가끔씩은 그냥 미안하다는 사과 하나가 그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어도, 그 사람의 진심을 느끼기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금란은 가는 눈을 뜬다. 밤색의 눈동자는 그 모습을 부끄러운 듯 숨기고 있었지만, 아름다움마저 모두 숨길 수는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예빈은 금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다. 고개를 숙인 그 모습은 죄를 짓지 않은 죄인 그 자체였다.

다만 소첩은 주인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개발된 몸입니다. 주인님이 그동안 행복하셨다면, 소첩에게 그것은 모진 장대비가 아닌 산뜻한 봄비일 것입니다”

금란의 청아한 목소리는 예빈은 물론 양혼과 바닐라의 가슴까지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소첩이 주제넘게 이야기를 하자면…”

눈을 지그시 감은 금란이 숨을 살짝 들이마신다. 뜸을 살짝 들인 금란이 산뜻한 표정과 눈빛으로 예빈을 바라본다. 죄인마냥 고개 숙이고있던 예빈을 양혼이 쿡 찌르자, 그제서야 예빈은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앞으로는 주인님의 슬픔을 소첩에게 나누어주시면 주인님이 더욱 행복해지실거라 믿는데…어떻습니까?”

금란의 마지막 한 마디에 예빈은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울음을 터뜨린다. 회한, 슬픔, 한심함, 억울함, 미안함 모든 감정이 한 번에 터져나오고 있었다. 셋 중 누구도 그 모습을 말리지 않는다. 쏟아져나오는 모든 눈물과 감정은 막을래야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흐흑…미안…미안해…정말…”

물 먹은 목소리가 바닥에 파묻힌다. 목소리는 흐리게 들리지만 진심만은 또렷이 전달되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들썩이던 예빈의 몸이 진정되고 나서 고개를 들자, 가뿐해진 마음을 가진 예빈의 눈이 보인다. 햇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에 눈물과는 다른 반짝임이 빛나고 있었다.


사진으로 안 붙여넣고 그냥 바로 복붙해봄

어떻게 나올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개추하게 글 가지고 징징대놓고 올리는 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