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래 모델 바닐라 A1와 같이 생활해보니 감상이 어떻던가?』


예 회장님...이런말하긴 뭐하지만 바닐라는 일반 메이드 모델로서는 조금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흠...이유를 설명해줄수있는가? 


기본적으로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전무한것같습니다 제가 하는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매도하거나 제가 뭘 해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것같았습니다 


그거 참 희한한 일이군 바닐라 A1은 메이드 바이오로이드이니 주인에 대한 충섬심은 충분히 높게 설정되어있는데 말이야 


혹시 개발 과정에서 뭔가 착오가 일어난것은 아닐까요? 


.....아 그래! 좋은생각이 났네 자네 잠깐 이리로 와보게나 할얘기가 있으니 





나와 바닐라는 함께 연구소의 복도를 걸어가고있다 


익숙치않은 복장에 걸음거리가 우스꽝스러워지니 바닐라가 다시 내게 잔소리를 해댔다


주인님의 경망스러운 걸음거리에 내가 다 창피하다는 등 


이런 날씨에 그렇게 두껍게 옷을 입는건 빠지지않는 군살을 녹아내려는 부질없는 노력이냐는 등


일일이 적어내려가서는 끝이없을 정도다 


그리고 연구소의 모퉁이를 돌아 가려는그때 김지석 회장이 나타났다


긴장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나의 옆에서 바닐라는 회장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이 연구소 안의 바이오로이드는 모두 주인이상으로 회장에 예의를 표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러니 건방진 이녀석도 회장에게까지 매도할수는 없겠지


그런 바닐라를 보고 회장은 싱긋웃어보였다 그리고서는 자켓안에 손을 넣어


권총을 꺼내들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표정을 굳힌 바닐라를 신경쓰지도않고 회장의 총구는 확실히 나를 향하고있었다


정확히는 나의 복부를 노리고있는거겠지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도망치려하지도않고 무언가 말을 하지도않았다 


쓸데없이 몸을 움직여 조준이 빗나가는 사태만큼은 피하고싶었으니


순간 회장과 내 사이에서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바닐라와 눈을 마주쳤다


공포와 당혹 그리고 지금의 사태에 사고가 따라가지 않는듯한 눈치였다


그런 바닐라를 신경쓰지도않고 회장의 손가락은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동시에 탕 하는 마른소리와 함께 권총이 발포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닐라가 내 앞으로 튀어나왔다 


150cm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몸을 조금이라도 크게하기위해 양손을 벌려 그자리에 우뚝 서있었다


회장의 손가락은 쉬지않고 방아쇠를 당겨댔다 


9mm권총은 바이오로이드인 그녀를 즉사시키기에는 부족했지만 고통스럽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썩어도 바이오로이드인 그녀의 튼튼한 몸이였기에 탄환이 관통되어 내쪽으로 닿는일은없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납덩이가 그녀의 몸안을 휘젓고있는것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자리를 비키지않았다 휘청이기는 했었어도 올린 팔을 내리지도 않고 발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윽고 총알이 다 떨어지는 권총이 틱틱거리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바닐라가 쓰러졌다


그녀의 입에서는 끝없이 피가 쏟아져나왔고 동시에 확실히 피가아닌 뭉쳐지고 흐물거리는 반액체 상태의 무언가도 함께 쏟아져나왔다


자신의 피거품에 질식해 죽어나가면서 바닐라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주...님...괜.....습니...까?』





뭐 이걸로 모델 바닐라의 충섬심에 문제가 없다는건 증명되었군!』


........ 


하하하! 사실 나도 꽤 긴장했다네 사격경험이 있다해도 자칫 방탄복이 아닌 다른곳으로 총알이 튀지않을까 내심 조마조마했어 


.......... 


하지만 그런 걱정도 내 기우로 끝났군 총알은 그녀가 말끔히 받아내줬으니 말이야 


....... 


마지막으로 자네에게 하나 물어보고싶은게 있네 


....예 


그녀가 죽었을때 어떤 기분이었나? 


....확실히 바닐라는 건방지고 입도 엄했지만....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말한 모든일들은 저에대한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래서....그녀가 죽었을때 전 슬펐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그래 좋은감상이네 확실히 콘스탄챠처럼 맹목적인 충성도 좋지만 인간은 반응없는 인형에는 금방질려하니 말일세 


모델 바닐라 A1의 캐치프레이즈는 이걸로 하지 당신의 옆 가장 인간스러운 바이오로이드로! 




회장이 떠나고 피웅덩이에 잠긴 바닐라의 옆에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옷에 피가스며들었지만 그런걸 신경쓸 기분은 아니었다


의도한것은 아니었지만 주저앉은 나의 손옆에는 바닐라의 손이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보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지만 천천히 식어가는 그 손을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생활했던 시간들을


그 시간들을 곱씹으니 다시 조금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