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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지컬 프린스 & 프린세스와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할 일을 확인하고, 상황이 상황이니 명령엔 군말없이 따르겠지만 뽀끄루 대마왕을 부활시킨 오활함은 반성해야만 한다고 몇 번이고 지적한 백토가 모모와 함께 물러간 후.
함교엔 잠시 침묵이 흘렀어.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마냥 조용한 것이 아니라 다음 차례를 위한 준비 기간에 가까웠지.
무슨 준비냐고?
짝, 짝, 짝.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박수 칠 준비.
-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매지컬 ☆ 프린세스 엘리자베스.
- 하지 마요, 진짜!!!
오그라들던 손발을 분노로 파닥파닥 휘둘러가며 항의했지만 사령관은 웃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머지 멤버도 시선을 피하긴 했지만 볼이 씰룩거리는 건 감출 수 없었지.
아니, 분위기에 떠밀려 동의했던 건 사실이니 이제와 강하게 항의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쪽팔림이 이 정도로 강하게 밀려올 줄이야.
- 어때? 아자젤 언니에게서 배워온, 성스러워 보이는 특수효과 21선은!
- 소극적으로 표현해서 최고였어. 다음 신 네오 뉴 트리아이나 탐사대가 출발할 때에도 부탁할 수 있을까?
차라리 저 둘처럼 순수하게 기뻐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그렇게 자신 안의 무언가가 끝장난 감각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 리제를 레아가 다독여주는 동안, 함교 구석에 숨어있던 뽀끄루가 쭈뼛거리면서 걸어 나옴.
- 그,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 아뇨…….
그래, 할 거 다 하고 나서 혼자 괴로워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어.
아직도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채 다가온 사령관을 밉지 않게 흘겨본 다음, 리제는 내밀어진 손을 붙잡고 일어나서 뽀끄루를 바라봄.
땅에 발을 디디고 보니까 단번에 머리 하나 가까이 키 차이가 나는데 저 덩치로 생존개체에 성격은 순둥이라 고생했을 거 생각하니 참 안쓰럽기도 하고.
거기에 지금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 정말 이걸로 괜찮으시겠어요?
여러모로 얼렁뚱땅이긴 해도 마법소녀로 "갱생"한 원작과는 달리 여기의 뽀끄루는 여전히 대마왕 행세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지.
결국 백토와의 화해는 이뤄지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뽀끄루는 그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순하게 웃어보임.
- 괜찮아요. 물론 백토랑 바로 친구가 될 수는 없었지만……
대신 백토는 오르카 호를 더 잘 받아들이게 될 테니까요.
……그야 뜬금없이 마법소녀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뽀끄루를 잡아온 다음 전기고문을 하는 것보다야 설정과 현실의 갭이 줄어든 버전이긴 하지.
거기에 뽀끄루가 마왕 행세를 유지한다는 건 역으로 백토가 뽀끄루를 의심하면서 일어날 이후의 촌극들은 예방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 그리고, 한때의 적과 등을 맞대며 싸운다는 건 가슴 뛰는 전개잖아요?
거기에 당사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상 이쪽이 미련을 보이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못하다는 생각에, 리제는 뽀끄루에게 오르카 호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다시금 말 하는 것으로 이번 일을 마무리짓기로 함.
* * *
그리고 그날의 함장실.
둘만 남게 되자마자 리제가 한 건 의자에 쓰러지듯 파묻혀서 길게 한숨을 내쉬는 거였지.
- 정말이지, 어쩌다 이런 연기를…….
- 농담을 빼더라도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
- 과대평가에요, 과대평가. 말 더듬는 건 저도 알겠던데.
판타지틱한 분위기를 내겠답시고 간만에 펄 메이크업을 한 것도 어색하기 그지없고. 뭣보다-
- ……맨정신으로 수영복보다 더한 옷을 입을 거라고는.
여름에 오드리에게서 받았던 (그리고 실제로 써 본 적은 거의 없는) 수영복은 원작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등이 크게 파여있긴 했어도 적어도 앞은 제대로 가렸는데, 이쪽은 반쯤 비치는 천을 덮듯이 감은 것이 아자젤보다는 낫다 수준이었으니까.
- 잘 어울렸어. 누가 봐도 마법의 공주님이었다니까?
- 그,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나마 함교에서 소수의 인원만 참가한 상태로 끝났으니 이 정도지, 더 공개된 장소였다면 차라리 혀를 깨물었겠지.
아무튼 다시는 안 입을 거라고 진저리를 치는 리제를 보고 사령관은 아쉽다는 듯 눈썹을 기울임.
- 그럼 추억으로 남길 수 밖에 없겠네.
- 네, 네. 부디 그렇게 해 주세…….
잠깐.
'추억'이라는 단어에 숨은 묘한 뉘앙스를 읽은 리제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짐.
- ……혹시, 찍었어요?
- 응.
- 누가?
- 탈론페더가.
죽을까?
- 물론 공유는 금지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 그런 건 좀 미리 말해요!
벌떡 일어났다가 순간 긴장이 풀려서 휘청이는 리제를 사령관이 가볍게 받아듬.
- 그렇게 싫었어?
- 싫다 좋다의 문제가 아니라…….
- 난 좋았는데. 평소와는 다른 식으로 아름다운 리제를 볼 수 있어서.
- 듣기 좋은 말로 넘어가려고 해도――
- ――공주님.
이런 미친.
귓가에서 속삭여오는 목소리에 온몸에는 소름이 쫙 돋는데 왜 심장은 멋대로 날뛰지.
자기도 자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그대로 굳어버린 리제를 재차 의자에 앉히고, 사령관은 리제의 손끝을 잡아 들어올린 후 가볍게 입술을 가져다 대었음.
- 부디, 감히 바라선 안 될 것에 손을 뻗는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이 인간이 어디서 저런 걸 배웠지.
아, 백토 건 사전조사랍시고 덴세츠 작품들 어지간히도 봤다고 했던가.
솔직히 맨정신으로 듣기 힘들 만큼 근질근질한 것도 사실인데, 자기만큼은 아니라지만 나름 평소보다도 더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령관이 그런 말을 하니까 또 뭔가 동하는 것도 같고.
애초에 둘만 있을 때 한 부끄러운 짓에 비하면 이 정도 수치는 오차범위 내고.
그래, 그거 조금 맞춰준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다고는 해도 저렇게 능글맞게 구는 건 역시나 무리였던지라, 작은 목소리로 기꺼이, 멋진 기사님. 이라고 중얼거리는 정도가 리제에겐 최선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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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많이들 예상하셨을 코스프레 컨셉플레이 야스이빈다
근데 제 손발은 어디로 갔을까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 :
사령관이 탈론페더 이야기를 꺼낸 건 애초부터 초반에 충격적인 발언을 하는 것으로 소장용으로 남겨두는 것 만큼은 은근슬쩍 인정받을 심산이었다.
물론 정말 잘 먹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