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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거 올리려고 할때만 페미떡밥임?



* * *


일단 오르카 호 내부에 있는, 현 사령관과 적대적인 바이오로이드들과 연락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통신은 이쪽의 위치가 들키거나 내용을 해킹당할 위험이 있으니...


"드라큐리나, 내가 편지 한 장 써줄 테니까 돌아가면 전해주지 않을래?"


"편지? 누구한테?"


사실 자필로 된 명령서를 보내는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대체 이게 몇 년 전으로 후퇴한 거람.


같은 맥락에서, 철남의 필체를 알아볼 만한 바이오로이드는 많지 않다. 


지휘관 회의 때 몇 번 보드에 글을 쓰면서 설명하긴 했으나, 그걸 기억하고 편지의 진위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건... 


레오나와 칸 정도겠지. 


"칸에게 전해줘."


철남의 선택은 호드의 대장인 칸이었다.


아무래도 레오나는 전 사령관에게 깨진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감시의 눈이 있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호드의? 알았어, 그 정도야 문제없지. 부대원을 통하기보단 본인한테 직접 주는 게 맞지?"


"가급적이면 그렇게 해줘. 대장을 직접 만나는 건 자연스럽지 못하겠지만.. 호드는 어디로 튈지 모르니.."



* * *


드라큐리나가 마저 토마토 쥬스를 축내는 사이, 철남은 조용한 방에서 혼자 펜을 들고 칸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어차피 새로운 사령관이 독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연락을 취할 기회는 흔치 않을테니, 지금 그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쓰던 편지를 몇 번째 버리고 고쳐쓰던 그에게, 방해꾼이 나타났다.


"누구~~게?"


갑자기 가려진 시야에, 철남은 펜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뭐야, 미호잖아? 급한 일이 아니면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텐데."


"피-."


미호가 볼을 부풀렸다. 그녀는 몇 시간 전의 사태에 대해 상당히 삐져 있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같이 요안나 아일랜드에서 고생한 자신들에겐 별다른 애정표현도 없던 그였다.


그런 그가 자신을 잡으러 온 침입자에게는 모두의 앞에서 그런 찐한 키스를 하다니. 불공평하다.


"칸 대장은 좋겠네."


미호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구겨진 종이들을 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려운 임무를 맡게 될 텐데 뭐가 좋겠어."


"아잇! 나도.. 사령관이 쓴 편지... 받고 싶다고, 바보야!"


철남은 등짝에 불이 나고서야 미호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깨달았다.


"하하.. 알았어. 이것만 마저 쓰고 우리 미호랑도 잠시 시간을 가져볼게."


"둘이서?"


"응, 우리 둘만의 시간을."


"히힛.."


배시시 웃는 미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 * *


한편, 달아오른 미호의 얼굴만큼이나 오르카 호 내에도 열기를 더해가는 곳이 있었으니...


"자, 곧 마감합니다. 더 거실 분 없나요?"


"발견한다에 3참치!"


"발견 못한다에 5참치!"


바로 오늘도 성황인 오르카 호 내 샐러맨더의 도박장이다. 


오늘의 내기는 발칙하게도 <수색대가 숨은 전 사령관을 발견할지>에 관한 토토였다.


"발견 못한다에 10참치!"


"발견한다에 4 참치!"


아무래도 바이오로이드들의 베팅은 발견하지 못한다 쪽이 우세한 듯 했다.


그렇게 예상해서인지, 아니면 그러길 희망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현상이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리긴 충분했다.


"발견한다에 100참치."


갑자기 나타난 어마어마한 베팅액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감당할 수 있겠노?"


"아하하.. 사령관이구나? 그렇게 많은 참치가 들어오면 음... 배당이 좀 더 낮아지긴 할거야."


샐러맨더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새로운 사령관이 온갖 섹돌들의 유희에 '불편함'을 제기하며 갈아엎고 있었지만, 샐러맨더는 사령관의 불쾌한 표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심기를 살짝살짝 자극하면서 줄타기하는 걸 즐긴다고나 할까.


"자 여러분, 이제 발견 못한다 쪽이 역배입니다.. 마감 전에 탑승하실 분??"


샐러맨더는 사령관으로부터 참치를 받아들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진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얼마 뒤 라비아타의 보고가 도착했고, 샐러맨더의 내기는 누군가의 돼지 울음소리에 가까운 절규만을 남기고 마감되었다.



* * *


"또 한 건 했나 보네."


소파에 누워 있던 워울프가 참치캔을 한가득 안고 들어오는 샐러맨더를 보면서 힘없이 말했다.


사령관이 바뀐 후 더 신나게 도박판을 벌이고 있는 샐러맨더와 반대로, 워울프는 자신의 취미를 박탈당한 상태였다.


"워울프, 벡델 테스트(Bechdel Test)가 뭔지 아노?"


"그게 뭔데, 사령관?"


"모르면 공부해라 이기. 벡델 테스트는 영화가 얼마나 양성 평등을 지향하나 알아보는 간단한 실험이다." 


"뭐야 그게..."


"앞으로는 이 실험을 통과한 영화만 볼 수 있게 할 거다 이기야."


"???"


사령관이 밝힌 벡델 테스트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① '이름 있는 여성'이 2명 이상 등장하는가

② 두 여성이 서로 대화를 하는가

③ 대화의 내용이 남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가


"뭐야, 별 거 아니잖아?"


안타깝게도 워울프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 이 테스트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서부극은 모조리 탈락하고 만다.


"이 시파아아아알 왜 쟤 이름 안나오는데!!!!" 


"니들은 얘기를 좀 해!!!!!!!!!!!"


결국 워울프는 자신이 즐기던 영화를 모조리 빼앗기고 새로운 사령관의 추천 영화나 봐야 했다.


"하.. 공유 잘생겨서 참는다 진짜..."



* * *


똥같은 영화, 아니 영화같은 똥을 보고 현자타임에 갑판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던 워울프는,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대장이잖아? 대장도 한 대 피우려고?"


"아니. 불 좀 빌려줬으면 해서."


칸의 대답에 워울프는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 칸을 향해 휙 던졌다.


그리고 공중에서 돌고 있던 라이터를 잡아챈 칸은,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더니 거기에 불을 붙였다.


재가 되어가는 종이를 응시하던 칸에게 워울프가 말을 걸었다.


"뭐길래 불타는걸 그리 아련하게 보는 거야? 우리 전 사령관님께서 보낸 편지라도 되나?"


"........"


"..... 진짜?"


"후우.. 천천히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워울프, 앵거 오브 호드 전 대원을 소집해라. 조용히."


"아.. 알았어!"


허겁지겁 피우던 담배를 바다로 던지고 선내로 사라지는 워울프를 바라보던 칸은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전 사령관이 미친 여자의 폭주를 멈추러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 역할을 다른 이도 아닌 자신에게 믿고 맡긴다고 한다.


그 설렘과 고양감을 만끽하며,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칸은 오랜만에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 * *


대원들을 소집한 칸은 침착하게 전 사령관에게 편지를 받은 경위와 그 지시를 설명했다.


어차피 자유분방한 호드에서 프로불편러인 현 사령관을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희망에 찬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던 대원들에게 입단속을 당부하려던 찰나, 황망한 얼굴로 샐러맨더가 일어났다.


"샐러맨더, 어디 가나?"


"그.. 그게.... 드라큐리나도 수색대였잖아?"


"그래서?"


"수색대가 전 사령관을 발견한다에 걸었던 사람들한테 참치 돌려주러 가야 할 것 같아서..."


"아이 미친 도박꾼 샛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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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편에서 중간에 링크를 따로 분리한 덕에

5편까지 오면서 실독자가 몇 명 남았나 알 수 있었다. 

창작물에 무지성으로 들어왔다가 안 읽고 뒤로가는 사람들 생각보다 더 많구나



Q. 글쓴이는 어떻게 벡델 테스트라는 좆같은 걸 알고 있음?

A. 이래봬도 머학에서 여성학 관련 교양 수강하면서 A+ 맞은 사람임 


과제로 그 전해에 흥행한 한국 영화 Top20을 대상으로 이 테스트를 검증했는데

최근에 나오는 K-영화들도 반 넘게 탈락하긴 하더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