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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을 테니까.

단 두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이었음에도, 피어나는 음울함은 사령관은 물론이거니와 샬럿과 앨리스에게도 선명했어.

불편한 침묵이 찾아온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지.


- 실례하겠어요, 마담. 그런 곳이라면 오히려 아이들을 물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 문제 없어요. 깊이만 안 들여보낸다면.


본래 언행이 과할 만큼 낭만적일 뿐, 총명한 샬럿은 그 정도 언급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

아이들을 위한 축제인 할로윈과 자신이나 앨리스가 알고 있던 조금 특별한 할로윈 뿐 아니라, 그 아래에 도사린 시커먼 악의까지.

그 셋을 더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옛 인류의 할로윈이 되는 것이라고.


- …이런 삼총사는 전혀 반갑지 않은데, 곤란하군요.


샬럿의 촌평이 씁쓸함을 에둘러 토로한 것이라면, 앨리스의 반응은 좀 더 이성적인 - 상황 자체를 조감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의 것이었음.


-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요는 그런 불쾌한 장소에 주인님을 초대하려는 시도가 있었단 거잖아요?

 목적이 뭔지는 알 수 없다는 것까지 더해서 거슬리기 그지없네요.


명령만 주신다면 흔적도 없이 치워드리겠는데요? 라는 말과 함께 평소대로 웃어보였지만, 그 아래에는 틀림없는 우려가 내비치고 있어서 리제는 어쩐지 의외라고 생각했음.

앨리스가 사령관을 걱정했다는 게 의외란 게 아니라, 사령관이 상처받을 것이라는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그 의아해하는 시선을 받은 앨리스가 숨김 없이 짜증을 드러내는 건 어찌되었든, 잠깐 생각에 빠진 듯 보였던 사령관은 금방 답을 내놓았지.


- 나는, 내가 직접 봐야 할 거라고 생각해.


미안해, 리제. 라는 보충이 들어오긴 했지만 사실 리제는 그렇게 충격 받거나 하진 않았음.

아아, 역시. 하는 체념 섞인 수긍을 하게 되었을 뿐.


*   *   *


- 생각보다 금방 찾아오셨네요?


늑대 아가씨의 심부름값을 좀 더 두둑하게 쳐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라며 키득거리는 키르케에게선 술냄새가 진하게 풍겨왔음.

샬럿은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신나서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콘스탄챠 및 바닐라들이랑 (정말) 필사적으로 말리러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지금 키르케와 대면중인 건 사령관과 앨리스, 리제의 셋이었어.


- 저는 이 파크의 관리인인 키르케라고 하는데… 


당연하지만 셋 전부 관광객의 명랑함과는 거리가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것을 한 박자 늦게 알아채고, 키르케는 난처하다는 듯 웃으면서 머리를 긁음.


-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필요 없었던 모양이죠?

- 입을 신중하게 놀리는 게 좋을 거예요. 과분하게 호화로운 묘지에 묻히고 싶은 소망이 있는 게 아니라면.


위협을 숨기지 않는 앨리스를 한 손으로 제지하고, 사령관은 매우 짤막하게 설명함.


- 우리 리제는 멸망 전을 기억하고 있어서.

- 아아, 그렇군요.


가면처럼 걸려있던 미소 사이로 꾸덕꾸덕 눌어붙은 절망이 스쳐지나가듯 드러났다가 이내 모습을 감춤.


- 물론 찾아오신 분을 안내하는 것이야말로 관리인의 일. 이벤트 하나가 빠진 정도로 당황할 것도 없죠.

 그러니 손님, 제 초대에 응해주신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 알아야 하니까.

- …무엇을?

- 옛 인류가 저지른 죄를.


그것을 선명하게 죄라고 인정하는 시점에서, 키르케가 사령관에 대한 경계를 다소 거두었으리라는 건 명확했어.

뭐, 마음고생 심하게 했기론 어지간한 입장이었을 테고, 멸망 전 마지막으로 접했던 인간도 그런 거였으니 사령관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로 여기리라는 것 정도야 이상하지는 않았지.

그건 그런데, 말이지.


- 그리고. 내가 널 어떻게 도와야 할지도.

- 어머, 도움은 제가 방문객 여러분에게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 그랬다면 이런 식으로 초대장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야.

 무엇보다―


그 뒤로 이어진 사령관의 키르케 통찰은 넘겨두기로 하고.

저 숨 쉬듯이 무자각으로 꼬시는 언행은 진짜 체질인가?

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그 어떤 상상보다도 끔찍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것과는 별개로 속이 깝깝해져서, 리제는 앨리스랑 시선을 마주하다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하늘로 올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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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사령관이 리제 원픽이라고는 해도 근본이 개쩌는 하렘겜인 라오의 주인공이란 것은 변하지 않스빈다

비는 시간에 철탑런 해보다가 늦었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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