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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의 속도 자체는 결코 느리지 않았지만, 규모가 규모인 만큼 필요한 시간은 적지 않았음.

그리고 리제와 사령관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구 근처의 벤치에 앉아서 그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지.

키르케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온 것은 그 모든 것이 마무리에 접어들 즈음이었음.


- 손님, 그러니까……. 감사합니다.


특유의 헤실거리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가, 막상 단어를 고르지 못해 한참 머뭇거린 결과 치고는 심히 소박했지만 그만큼 진심이 담겨있었지.


- 고마워. 고맙다고 해 줘서.

- 뭔가요, 그게.


깔깔 웃으며 사령관이 한 말을 받아쳤을 즈음에는 다시 평소의 키르케로 돌아왔지만.

어색하게 웃는 사령관을 바라보는 시선에 순간 섞인 애틋함도 천연덕스럽게 지워내고, 키르케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손을 과장스럽게 펼쳐 보임.


- 그러면, 다른 구역으로 가보시겠어요?

- 괜찮겠어요?


사령관을 대신해 물어본 리제에게 키르케는 가볍게 윙크를 하면서 대답함.


- 손님의 취향에 맞지 않는 구역으로 안내해서 기분만 상하게 하고 끝, 이라는 건 관리인의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다고요.

 게다가 다른 두 구역은 정말 '자랑스럽게' 소개해드릴 수 있답니다?


작지만 뚜렷하게 드러난 자긍심은 키르케가 항상 짓는 미소가 가식 뿐은 아니었다는 증거이기도 했지.

그것이 마음을 움직인 것인지, 사령관은 가볍게 자신의 뺨을 친 다음 리제의 손을 잡고 일어났음.


- 우선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부터 들러볼게. 드론의 좌표는―

- 주문 받았습니다! ……어머?

-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

- 아뇨, 제 기억이 맞다면 저 위치는….


*   *   *


- 크윽! 이 얼마나 강대한 어둠의 힘……!

 설마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 아니겠지!

-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구나, 백토.

 본좌의 힘이 쇠하지 않았음은 굳이 논할 필요도 없으나, 너희 족속들을 몰아내던 때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거늘.

- 뭐…라고?!

- 그래, 본좌가 강해진 것이 아니다. 미망에 사로잡힌 네가 약해진 것이야.

- 네녀석!


뭐 야 이 거.

아니, 노천 공연장에서 전기톱과 채찍을 맞부딪히는 두 명이 누구인지는 뻔하고도 뻔했지만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지?

그리고 암만 봐도 실제 상황인데 왜 아이들은 하나같이 관중석에 모여 앉아서 눈을 반짝이고 있는 거야?


- 아아, 무대가…….


그 와중에 키르케는 실시간으로 갈려나가는 설비의 몰골이 그간 쌓인 심로에 결정타가 된 것인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였고.

그나마 다행인 건 싸우느라(다른 한 쪽은 맞춰주느라) 정신없는 백토와 뽀끄루보다 안절부절 못하던 모모가 먼저 사령관을 알아봤다는 거지.


- 진정해, 백토야! 뽀끄루 대마왕이 아이들의 부름에 응했다는 소식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다짜고짜 매지컬 핑크 문라이트를 휘두르는 것도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해!


쉽고 빠른 설명, 대단히 감사합니다.


- 백토, 뽀끄루. 거기까지.

- …흥. 목숨을 건졌군.

- 매, 매지컬 프린스?!


여유있는 악당의 연기를 충실히 해내다가 고개를 돌려서 시선이 마주하는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뽀끄루가 짠한 건 어쨌든, 백토는 사령관을 보고 당황하며 핑크 문라이트의 날을 집어넣었다…가, 리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림.


- 프린세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전혀 마법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잖아요.


글쎄요, 지금 그쪽이 제 사회적 생명에 즉사 마법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경련하는 입가를 애써 억누르면서 리제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변명을 생각해냈어.


- ……마, 마력을 아끼기 위해 취하는 모습이라서요.

- 과연….


그럼 그냥 프린세스인가, 하는 중얼거림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리제에겐 아주 잘 들렸지.

내가 풀메 안 하는데 보태준 거라도 있습니까?

턱밑까지 차오른 항의를 어떻게든 삼키려고 리제는 시선을 주변으로 돌렸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해선 안 되는 일이었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던 연기에 갑작스럽게 난입한 사령관과 부관.

길지 않은 대화에서도 아낌없이 사용된 파워 워드.


그야말로 2스라도 날릴 기세로 눈을 반짝이는 좌우좌와, 그보단 덜하지만 아무튼 흥미가 적어 보이지는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리제는 속으로 피눈물을 삼켰음.


이런 식으로 C구역의 기억을 밀어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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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즈도 할로윈 이벤에서 스킨 광고 수준이긴 하지만 슬쩍 나오긴 했었으니 끼워넣어 봤스빈다

덕분에 생각보다 쪼끔 더 길어질 느낌이빈다


아니 왜 한 문장이 빠졌지. 2일 0시 20분에 추가했스빈다.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55630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