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밖에 남지 않은 스카이나이츠의 숙소. 당신은 막 춤 연습을 마친 하르페이아와 그녀의 침대에 위에서 푹신한 분홍색 쿠션에 등을 기댄 채로 딱 달라붙어 책을 읽고 있었다. 하르페의 풍성하고 결이 고운 금발을 이불처럼 휘감고 냄새를 맡자 얼굴을 붉히는 그녀였다. 

 

그러면서도 당신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쁘다는 듯이 당신과 어깨를 더 가까이 붙이고 어색한 목소리로 활자를 읽어내려갈 뿐이었다. 

 

막 아이돌 연습을 마치고 온 탓에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땀으로 촉촉하게 젖은 피부가 닿을 때마다 오묘한 기분을 느끼는 당신이었다. 끈적이는 촉감이 불쾌하게 느껴질 법도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르페의 체취와 뒤섞여 당신의 의식을 기분 좋게 흐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르페도 당신과 살이 맞닿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인지, 당신과 어깨를 붙일 때마다 섬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저기... 프로듀서...?” 하르페가 엷게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나 씻고 올까...?” 당신은 고개를 저었다.

 

“읏... 냄새 안 나?” 당신은 짓궂게 웃으며 좋기만 하다고 반문했다.

 

“진짜... 변태...” 나온 말과는 하르페는 베시시 웃고 있었다.

 

책의 내용은 단순했다. 여리고 연약한 소년이 정의감만으로 군대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한 여군과 전쟁을 함께 겪으며 사랑에 빠진다는, 단순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어느덧 중반, 두 사람이 서로의 진심을 알아채고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었다. 하르페는 그 낯부끄러운 장면을 소리 내어 읽어주고 있었다. 전까지는 자신감 있던 목소리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조금씩 떨리며 점차 기어 내려가더니 어느덧 완전히 잦아들었다.

 

소리가 멎은 줄도 모르고 책에만 집중하고 있는 당신을 애틋한 미소로 바라보는 그녀. 당신은 책의 내용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곧 정지한 페이지의 끝까지 읽은 당신은 더 진도가 나가지 않음을 깨닫고 눈을 굴려 하르페를 바라보았다.

 

왜 책장을 넘기지 않냐고 물을 필요도 없이, 당신은 하르페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당신과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친 그녀는 허둥지둥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머리를 헝클여주자 슬며시 눈을 감고 베시시 웃는 것이 아닌가.

 

어째 연인이 아니라 강아지를 키우는 기분이었다. 당신은 하르페의 저런 단순하고 순수한 모습이 좋았다. 감정에 숨김이 없이 솔직한 성격 탓에 본래 같은 바이오로이드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은 그녀였으나 당신에게만큼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처음에는 스스럼없이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였지만, 사이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오히려 쑥맥이 되어버린 그녀였다. 연애는 소설로만 공부했던 하르페는 당신과 감정을 나누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성장해갔다.

 

남녀 간의 배려를 배우고, 깊어지는 사랑에 대해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나누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알아가고...
 
순수한 하얀색에 가까웠던 하르페는 어느새 당신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당신의 웃음소리, 당신의 미소, 말투까지 닮게 된 그녀. 하르페는 사랑하는 당신을 닮아가는 것마저 행복한 듯싶었다.

 

“... 책, 계속 읽을까?”

 

하르페는 책장을 넘기던 손을 떼어 당신과 손을 겹쳤다. 

 

“넘겨야 할 때가 되면... 신호를 줘...?”

 

하르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다시 다음 장을 속삭이듯이 읽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부드럽고 담담한 목소리의 서술. 하르페의 매혹적인 목소리 덕분에 당신은 금방 다시 책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당신, 당신은 지금 이 감정을 알고 있나요?” 소설 속 남자가 말했다.

 

“아아, 물론이에요. 당신은 나와 같은 심정이겠죠,” 소설 속 여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하르페가 당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날 사랑해줘요.”

 

은은한 미소. 상기된 뺨. 당신은 그에 맞춰 살풋 웃어주었다. 하르페는 이어서 다음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두 남녀가 서로 마주 보며 행복하게 웃음 짓고, 춤추고, 마침내 밤하늘 너머로 수없이 펼쳐진 은하수 아래에서 입술을 맞추고...

 

하르페는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 직전에 읽기를 멈췄다.

 

“... 프로듀서.” 떨리지만 강단있는 목소리로.

 

“부탁이 있어.” 당신은 무엇이냐고 상냥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이 앞에 나올 내용... 나에게 그대로 해줄래...?” 당신은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르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심호흡 몇 번을 거친 그녀는 곧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와줘, 프로듀서.”

 

당신은 두 손가락으로 하르페의 턱을 부드럽게 감쌌다. 떨림이 느껴졌다. 하르페는 분명 떨고 있었다. 기쁨과 설렘, 미지의 쾌락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었다. 

 

당신과 하르페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멀게만 느껴졌던 당신은 어느덧 하르페의 유일무이한 사랑이 되어 있었다. 차갑고 쌀쌀한 바닷속의 밤도, 그녀와 함께하니 두렵지 않았다. 하르페의 숨결이 당신에게 닿아 흩어진다. 

 

뜨거운 숨, 그녀의 생명을 그대로 들이마시며 당신은 입술을 겹쳤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촉촉하고 생기 있었다. 조금 거친 당신의 입술이 닿자 하르페의 눈에서 작은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뺨을 타고 흐른 그것은 이내 당신의 옷 위로 툭툭 떨어졌다. 

 

당신은 분위기에 휩쓸려 그녀의 목을 팔로 감아 지탱해주며 천천히 눕혔다. 서로를 야릇하게 음미하는 입술은 떼지 않았다. 하르페는 풀린 눈을 얇게 뜬 채로 당신을 애틋하게 응시했다. 누워도 여전히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하르페의 가슴이 당신의 몸에 밀착되어 눌렸다. 부드러운 촉감이 당신의 이성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따금 혀를 놀릴 때마다 흘러나오는 달콤한 신음이 당신을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하르페는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당신에게 꼭 매달린 채로 팔을 놓지 않았다. 침대 위로 흐드러진 머리카락이 마치 여신의 광휘처럼 보였다.

 

어린아이처럼 더 진하게 키스해줄 것을 보채는 것과는 반대되는 음란하고, 심지어 신성하게까지 보이는 모습.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당신의 움직임에 맞추어 입술만 움찔대던 하르페였으나 지금은 그쪽에서 먼저 혀를 감아오는 것이 사랑스러웠다.

 

계속되는 입맞춤에 숨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산소가 부족해진 탓인지 하르페의 호흡이 조금 거칠어졌다. 약간 고통스럽게까지 보이는 그녀였지만 당신과 이어진 입술을 떼기는커녕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달라붙는 것이었다.

 

폐가 타는 듯한 감각과 함께 당신은 입술을 뗐다. 하르페는 침대 위에 축 늘어진 채로 참아왔던 숨을 마구 내쉬었다. 헉헉대며 겨우 내쉬는 신음이 안쓰럽게 보일 정도였다. 괜찮냐고 물어도 하르페는 힘겹게 웃어 보이며 기분 좋았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격렬했던 첫키스의 여운이 조금 잠잠해지고, 안정을 되찾은 하르페가 당신을 뒤에서 껴안았다. 그녀의 푸짐한 가슴이 당신의 등짝에 눌려 푹 퍼졌다. 그러면서 하르페는 당신의 귓불을 깨물며 야릇하게 속삭였다.

 

“프로듀서가 원하면... 아이돌로서 해서는 안될 짓도 할 수 있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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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가 꼴리는 이유 = 내가 못하니까 


린티의 첫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