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범주




"이번에도?"


"네. 이번에도 입니다."


금주 부관인 바닐라는 담담하게 사령관의 질문에 대답했다.


사령관은 전달받은 '금일 부상자 구조목록'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바닐라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철충들에게 포착되는 것을 막기위해 바다 속에서 나오지는 않고있지만, 요근래 한 달 가까이 오르카 호는 한 장소에 머물고 있었다.


한 달전, 점령지에 주둔 준비를 하던 스틸 라인 1개 중대가 갑작스러운 철충의 대공세에 몰려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쏟아져 나오는듯한 철충들의 공세에 1개 중대의 구조작업에 무려 한 달 가까이 걸린 것이였다.


본함인 오르카 호의 적극적인 지원에 오늘 구조를 마지막으로 중대전원의 생사가 확인되어 구조작업을 마무리 지을 참이였다.


"바닐라. 만약 너와 나 단 둘이 저 숲속에서 아무것도 없이 한 달동안 살아야한다면 어떻게할래?"


"...끔찍한 생각을 하시는군요."


"다치기라도 했다면 살아남을수 없겠지?"


"주인님은 워낙 명줄이 기시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으실겁니다."


"하하. 그래, 괜한걸 물어봤네."


늦게 구조된 인원일수록 생존물품도 없이 오랫동안 숲속에서 지냈다.


그 중에는 철충에 의해 다친 인원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작업의 생존률이 95%인 것은 정체모를 AGS 때문... 아니, 덕분이였다.


구조된 스틸라인의 바이오로이드들 대부분이 그 AGS에게 도움을 받았다고한다.


식량이 필요한 인원들은 영양제를 받았다.


상처는 꿰메졌고,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사망한 채 발견된 인원들에게도 치료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AGS의 도움이 없었다면 훨씬 많은 수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은 자명했기에, 사령관과 지휘개체들은 그 AGS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구조작업이 막 끝난 참에 다시 수색작업을 벌일 수는 없었다.


철충들도 남아있는 넓은 숲속에서 AGS 하나를 찾는것은 어려운 일이였다.


더군다나 예상보다 길어진 구조작업에 의해 오르카 호의 자원관리에 문제가 생기고있었다.


총괄자원을 관리하던 안드바리가 우는 얼굴로 사령관을 찾아왔을 때는 다들 꽤 놀랐다.


다들 구조작업에 치중해 자원소모를 신경쓰지 못했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이동해 자원을 보충해야했기에 다들 사령관의 결정을 기다리며 출발을 준비하는 상황이였다.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난 역시 알아야겠어."


"무엇을 말입니까?"


"그 정체불명의 AGS의 목적."


포춘의 데이터베이스에도 등록되지않은 그 AGS는 어쩌면, 아주 적은 확률이지만, 멸망 후에 개발된 개체라면 개발자가 있을 것이고, 그 개발자가 살아있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사령관의 생각을 들은 바닐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주인님의 컬렉션을 100% 채우고 싶으신거 아닙니까?"


"무슨 그런 말을...."


"아니면 안드바리양이 우는 모습을 또 보고 싶어지신겁니까? 정말 주인님의 변태성은..."


"엣헴! 좀 있으면 밤이니까 오늘 수색은 무리일테고, 내일 일출을 기점으로 정오까지만이라도 잠깐 찾아보자고. 그래도 안된다면 포기하고 출발한다."


"알겠습니다. 모두에게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바닐라는 다른 결제서류들도 챙겨들고 방을 나섰다.


사령관은 몸을 젖혀 의자에 기대며 생각에 빠졌다.


그 AGS는 어떻게 철충들을 피하며 부상자만을 찾아다닐수 있었을까?


이 고민이 AGS수색의 실마리라고 생각하며 바닐라가 두고간 케이크를 한 입 베어먹었다.


그리고 추위와 배고픔 속에 떨었을 바이오로이드들을 떠올리며 조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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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짜해야만 합니까?"


"아, 빨랑해! 나도 무섭다고!"


"아무리 저라도...이런 일을 시키시면.."


"에잇! 명령이야! 빨리 까, 바닐라!"


사령관은 주먹만한 돌을 들고 있는 바닐라에게 명령했다.


바닐라는 사령관의 명령대로 들고있던 돌을 있는 힘껏 휘둘러 사령관의 이마를 찍어버렸다.


"아아아아악!!!!"


사령관의 추측대로라면 수수께끼의 AGS는 모종의 방법으로 부상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방법까지는 추측하기 어렵지만, 분명 살아있는 인간이 다친다면 그 AGS가 찾아올거라는 사령관의 주장에 다른 인원들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사령관 또한 바이오로이드들처럼 신체가 강화된 상태. 넘어지는 정도로는 생채기도 나지않았다.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려고 했지만, 어쩌면 자해로 인한 상처는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닐라에게 짱돌을 쥐어주며 자신의 이마를 까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 것이였다.


그 결과. 사령관과 바닐라, 호위를 맡은 블랙 리리스와 스파르탄 캡틴 모두가 숲 속 한 가운데에서 사령관의 이마를 바라보게 되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사령관의 이마에서 피가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리리스는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며 사령관에게 응급조치를 취하기 위해 자신의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다.


"아니야, 리리스. 조금이라도 치료하면 그 AGS가 안올지도 몰라."


"하..하지만...그치만..소독만이라도."


리리스는 울 것같은 얼굴로 사령관을 바라보면서도 가방을 뒤적이고있었다.


사령관이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젓자 작은 핏방울들이 흣날렸다.


리리스는 그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바닐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이 지을수있는 가장 잔인한 표정으로 바닐라를 노려보았다.


자신이 한 일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바닐라는 아직도 그 돌을 든채 리리스의 시선은 느끼지도 못하고있었다.


스파르탄 캡틴만이 주변의 경계를 계속 하고있을뿐.


사령관은 바닐라를 보며 말했다.


"바닐라, 굳이 너에게 나를 상처 입히라고 명령한 이유를 알겠니?"


"......모르겠습니다."


"언제가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필요해질지도 몰라. 넌 유독 마음이 여려서 그러지 못할까봐 걱정이야. 오늘은 명령에 의한 것이였지만, 그것의 연습이였다고 생각해줘."


"싫습니다...아무리 그래도 주인을 때리는 연습이라니.."


고개를 돌린 바닐라를 바라보던 사령관의 시선은 리리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리리스. 방금의 일에 대한 책망과 비난은 어떤 경우라도 금지. 이곳에 있는 우리끼리의 비밀이야."


"...주인님, 아무리 명령이였다 하더라도 바닐라양은..."


"리리스는 나를 때릴수있어?"


"그런!! 리리스는 그런 명령을 받으면! 차라리 자결을..!"


"나는 니가 더 우수한 기체라고 생각했는데, 바닐라도 할 수 있는걸 리리스는 못한다는건가?"


리리스는 말문이 막혀 입만 움찔거릴뿐 대답하지 못했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도 사랑해줘. 너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다시는 자결 같은 단어는 입에 담지마."


출혈은 많지 않았지만 점점 흘러내린 피는 사령관의 상의에 닿기 시작하고있었다.


그리고 사령관의 시선은 스파르탄 캡틴에게 돌아갔다.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해, 캡틴."


"없습니다."


"심술궂게 부하들을 괴롭히는 상관이라 욕해도 된다고?"


"상관을 평가하는 것은 제 역할이 아닙니다."


사령관은 표정없는 AGS를 향해 멋쩍게 웃어보일 뿐이였다.


그 때 조금 떨어진 장소의 풀숲이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세 개의 총구와 네 명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을 향했지만 발포는 하지않았다.


풀숲에 더 이상의 움직임이 없자 사령관은 어색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파라~ 너무 아파~ 치료가 필요해~"


그리고 몇 초후 풀숲을 헤치고 무언가 다가왔다.


그것은 스틸라인의 증언대로 대략 1m 크기의 AGS였다.


사람처럼 두손, 두발이 있지만 머리에는 커다란 렌즈 하나만이 박혀있었다.


피부에 해당하는 장갑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거의 없고, 골격만으로 이루어진 몸체는 부실하지만 날렵해보였다.


움직일 때마다 손에 들고있는 의료함과 몸에 달고있는 의료기구들이 달그락거리며 소리를 냈다.


자신을 향하는 총구를 경계하면서도 피를 흘리는 사령관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은, 사령관이 찾던 수수께끼의 AGS임이 분명해보였다.


거리를 5m 정도 남겨놓고 캡틴이 외쳤다.


"신원불명의 AGS에게 경고한다! 허락없이 그 이상 접근할 시 발포하겠다!"


AGS는 그 자리에 멈춰서며 사령관과 캡틴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두 분은 같은 편이 아니십니까?"


사령관은 캡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맞아. 이 친구는 내 부하야."


"그런데 어째서 치료하지 못하게 막는겁니까?"


그 말을 듣고 화가 난듯한 리리스가 대신 대답했다.


"니가 우리 주인님께 해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말을 듣고 그 AGS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이라고요? 그 말은 거기 계신분이 바이오로이드가 아닌...인간이란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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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모델명은 왓슨 - 02. 부상자를 이송할 때까지의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응급조치가 제 역할이였습니다.


제세동기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 배치되는 것을 목적으로 PECS사에서 시험기 5대 정도만 생산되었습니다.


태양열 패널을 통해 어디서든 전력보급이 가능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항상 외부에 배치되어야 했습니다.


어딘가에 배치되면 평소에는 수면모드로 있다가 통증을 호소하는 소리나 뇌파에 작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소한 상처에도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다보니, 인간님들 뿐만이 아니라 바이오로이드와 동물들의 신호에도 반응하게 된 부작용도 있습니다.


비바람에도 견디는 내구성을 위해서 고급철강이 쓰이고, 정확한 부상진단을 위해서 소형화된 의료용 장비를 탑재하다보니 꽤 많은 자본이 들었나봅니다.


덕분에 예산에 맞추다보니 크기도 작고 골격만 남아있지만, 덕분에 더 빨리 목적지까지 달려갈 수 있게됬습니다.


마지막 시범운용으로 어떤 도시에 배치되었습니다만, 어디였는지는 알려드릴수가 없게됬습니다.


제가 작동을 시작했을 때 무너진 건물의 콘크리트 더미에 깔린채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철충의 침공이 시작된 날, 하필이면 건물이 제 위로 무너져버린 탓에 저는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고통을 호소하는 많은 존재들이 저를 찾는듯 했습니다.


쓸데없이 예민한 감지기관 때문에 도시 전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몇일이 지나고 마침내 도시 어디에서도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철충에게 발견되지 않은 것이 유일하게 기쁜 일이였습니다.


예비전력까지 바닥난 채 다시 수면모드에 들어간 제가 깨어난건 지금으로부터 5년 쯤 전이였습니다.


수십년의 시간에 걸쳐 자라난 풀과 나무들이 제 위에 덮인 콘크리들을 쪼개며 자라나 미세한 햇빛이 저에게까지 닿을 수 있었고, 몇 년에 걸쳐 제 전력을 충전시킨 것이였습니다.


식물들로 인해 조금씩 생겨난 틈 덕분에 저는 간신히 그 아래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맞아준 것은 식물에 뒤덮인 도시와 철충들 뿐이였습니다.


죽는다는 표현은 AGS인 저에게는 이상하겠지만, 저는 몇 번의 죽을 위기를 넘으며 도망치고 또 도망쳤습니다.


저에게는 전투를 위한 모듈이나 무기가 탑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와의 접촉이 전투로 이어진다면 저는 도망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와도 만나지 않으며 도망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상처입은 소리는 무시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시스템은 치료임무가 생존보다 높게 설정되있는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다시 깨어난 후 처음으로 마주한건 어떤 바이오로이드였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저항군이라고 말했습니다.


살아있는 인류가 다시 나타날때까지 철충과 싸우는 저항군 말입니다.


주변에는 같은 옷을 입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살아남은건 그녀 뿐이였습니다.


교전에서는 승리했지만 말그대로 목숨을 건 승리.


변변한 붕대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던 저로서는 그녀가 곧 죽을거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스스로의 무능함을 탓하는 저에게 그녀가 말했습니다.


'내가 죽는건 니 탓이 아니야. 니가 계속 그러고 있는건 내 죽음을 모욕 할 뿐이라고. 그냥 계속 옆에서 말을 걸어줘. 사소한거라도 좋아. 쓸쓸하게 가고 싶지않아.'


저는 제가 알고있는 의료지식들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타박상, 열상, 영양소의 중요성, 혈액형의 종류.


제 메모리에 있는 내용은 그런 것들 뿐이였으니까요.


그녀는 고통을 애써 감추며 잠들듯이 눈을 감았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사망선고는 의사들만이 내릴 수 있습니다. 저의 역할을 넘어서는 것이죠.


저는 그곳에 있던 분들 모두의 무덤을 하나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눈 앞의 생명을 살리지는 못하고 묻고있는 저의 역할이 한심스러웠습니다.


물자가 부족하니까, 지식이 부족하니까, 애시당초 응급치료 목적으로 제작되었으니까.


그런 변명을 늘어놔도 들어주는 것 또한 저 자신뿐.


그 이후로는 도시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멀쩡한 의약품들을 챙기고, 의학책으로 공부도 했습니다. 유머집도 찾아봤고요.


그리고 저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왔다는거지?"


"예. 그렇습니다."


사령관은 그 뒤의 이야기가 뻔하다고 생각하여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버렸다.


이야기를 들으며 총구들은 모두 내려가 있었지만 경계하는 자세는 풀리지 않고있었다.


사령관은 캡틴에게 말했다.


"캡틴, 저 친구 이야기에서 이상한 부분이 있지않아?"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왓슨은 자신이 이상하다는 말을 들을줄은 몰랐기에 당황했다.


"제가 이상한...! 어떤 부분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자가진단에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사령관은 대답할 기회를 캡틴에게 미뤘다. 


"왓슨-02. AGS는 감정을 느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느낀 것은 상황에 따른 치료효과 향상을 위해 입력된 가상의 감정입니다."


"확실히 저에게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한 기능도 탑재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감정은 진짜였다고 믿고싶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자가진단 기능에도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측됩니다. 타인에 의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캡틴과 왓슨의 대화는 그런 식으로 계속되었다.


사령관은 AGS들의 논리적인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고, 바닐라와 리리스는 흥미없다는 듯이 주변을 경계할 뿐이였다.


하지만 둘의 논쟁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계속되었고 보다못한 사령관이 결국 말을 잘랐다.


"아무튼 왓슨을 찾아냈으니 1차 목표는 달성했네."


다른 모두가 사령관을 쳐다보았고 바닐라가 대표로서 말했다.


"그러면 그 다음 목표도 있습니까?"


"물론이지."


사령관은 정자세로 경례하며 말했다.


"당신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항군 대표 사령관으로서 귀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왓슨은 사령관의 갑작스러운 진지한 태도에 자신이 감사를 받는 입장이라는 것도 깜빡할 정도였다.


다른 이들은 자신들의 사령관이 일개 AGS에게 고개 숙인다는 사실에 놀랐다.


왓슨은 뭔가 대답하려다가 사령관에게 경례를 해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령관은 만족한듯 웃으며 다시 흐느적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게 2차목표. 줄건 없어도 감사하다고는 직접 말해야지."


"주인님. 그런것이라면 다른 지휘개체들이 해도 충분했다고 생각됩니다."


"됐어. 이미 해버린걸. 그러면 이어서 3차목표 차례."


"대체 몇 차까지 있는겁니까?"


사령관은 바닐라의 질문을 무시하며 다시 한 번 왓슨에게 말했다.


"우리랑 같이 갈래?"


"?? 어디를 말입니까?"


"우리 오르카 호에 탑승해서 철충과의 싸움에 도움을 줬으면 좋겠어."


이런 제안을 예상하고 있던 바닐라를 제외한 다른 인원들이 다시 한 번 경악했다.


"사령관님. 중대한 사안을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주인님! 저번의 그 불여우도 그렇고...!"

"정말이지. 도감을 채우야한다는 욕심 때문에...공과 사를 구분해주세요."

"다른 분들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 제안을 이렇게 갑자기라니요!"


다들 한마디씩 마친 모습을 보고 사령관이 말했다.


"난 왓슨이 좋다면 데려갈꺼고, 싫다면 그만둘 뿐이야."


모두의 시선이 왓슨에게 향한 채로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채 왓슨의 대답만을 기다리자 왓슨이 말했다.


"지금 바로 대답해야합니까?"


"아쉽게도 우리 사정도 여의치 못해서 말이야. 좀있으면 이곳을 떠나야해."


왓슨은 모든 연산능력을 사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마침내 대답했다.


"저는...지금과 같이 떠돌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제가 사령관님을 따라간다면 누군가를 도울 기회를 놓칠것만 같습니다."


의외의 거부의사에도 사령관은 웃어보였다.


그러고 별다른 말없이 주머니에서 작은 뱃지를 꺼내보였다.


왓슨은 사령관의 손바닥에 놓인 뱃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무엇입니까?"


"우리 저항군의 소속이라는 징표. 사실 공식적으로 누군가에게 주는건 처음이네."


"그런데...그런 것을 왜 저에게?"


"가져가. 혹시라도 우리 소속의 누군가와 문제가 생겼을 때 이걸 보여주면 왠만한건 해결될꺼야."


왓슨은 뱃지를 조심스럽게 받아들며 그것에서 눈을 떼지못했다.


사령관이 손짓하며 오르카 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다른 이들도 아무말 없이 사령관을 따라나섰다.


왓슨은 당황 속에서 사령관의 뒷모습을 보며 뭐라도 말해야 할 것같았다.


"사령관님!"


사령관은 고개만 뒤로 돌리며 아무 말 없이 왓슨을 바라보았다.


"저의...제가 한 일들은...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였습니다. 제가 만들어진 이유이자, 목적이였기 때문이였습니다."


왓슨은 할 말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말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제가 선택했습니다. 인간님의 명령을 거부하며 지금부터는 제가 원해서 이 일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본래라면 처분되었을 저는 불량 AGS입니까? 고장난 것일까요?"


"널 만든 인간들은 더이상 없잖아. 니가 불량인지 판단할 인간들도 없고. 니가 하고싶은대로 살아."


사령관은 손을 뒤로 흔들고 다시 걸음을 때며 한마디 덧붙였다.


"다음에 만날때는 서로 농담집이 필요없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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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호에 돌아오자마자 사령관은 잊고있던 이마의 상처를 치료해야했다.


피는 멎어있었기에 치료는 금방 끝날수있었다.


하지만 사령관의 욕심으로 출항시간이 조금 늦춰지면서 모두의 눈치를 보게된 사령관은 함장실에 혼자 있길 원했다.


면담요청이 받아들여진 스파르탄 캡틴만이 사령관실에 들어온채로.


"캡틴이 직접 찾아온건 처음이네."


"바쁘신 와중에 요청드려서 죄송합니다."


'뭐지. 비꼬는건가?'


사령관은 캡틴이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까?"


"네. 왓슨-02에게 감정을 중요시하라고 말씀하신 진위가 궁금합니다."


"AGS에게 감정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감정은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성공할 일도 실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면 더더욱 중하지 않습니까."


"음...미안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 이전에 나도 캡틴에게 질문을 좀 해야겠는걸."


"제가 아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인간은 AGS보다 위대한가?"


"물론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AGS가 해내더라도?"


"AGS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어불성설입니다."


"그렇다면 AGS가 인간을 부활시키면 그 인간은 AGS의 아래가 되는걸까?"


"아닙니다. AGS는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않습니다."


"하지만 너희를 만든 인간과 너희가 만든 인간은 다른 존재인걸?"


"인간이라는 종족의 범주안에 속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인간인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여성의 배에서 10달간 있다가 태어나야지만 인간일까? 종족의 범주안에 들어간다면 시험관에서 1달만에 태어나도 인간일까? 뇌만이 남은채 의식이 살아있어도 인간일까?"


"......."


캡틴은 대답하지 못했다.


"미안.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였는데."


"아닙니다. 제가 대답 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좀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정리하자면 이래.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생각이 묶여있어서 좋을건 없다는거지. 예상외의 상황에 대비해야하는 우리들은 특히나 그렇겠지."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해서 좋네. 하지만 그게 캡틴이니까, 난 그런 태도의 캡틴이 좋아. 스파르탄 개체들을 통솔하는 개체로서의 캡틴도 좋고 말이야."


"감사합니다."


"캡틴은 내가 어때?"


캡틴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상관으로서의 사령관님은 평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사령관님은 좋으신분이라고 사료됩니다."


웃음으로 대답하는 사령관에게 경례하며 캡틴은 사령관실을 나갔다.


자신의 대답이 캡틴에게 충분한 답을 주었을지 고민하던 사령관은 의자에 기대며 누웠다.


그리고 어디에 있을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정처없이 떠돌아 다닐 한 명의 AGS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르카 호의 자원추진계획과 안드바리의 글썽이는 얼굴을 상기하며 슬며시 잠이 들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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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까지 대회시간 늘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작 ags 왓슨-02는 인공지능 의사 왓슨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흐린기억속의나라 이벤트가 나오기 전에 지은 이름인데 딱히 떠오르는 대체명이 없어서 그냥 썼읍니다

생각하고 느끼는 로봇은 흥미로운 주제지요

갑자기 잘느끼는 에이다 생채로봇이 보고 싶네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