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회의에서 사령관의 일성은 엄청난 폭탄이 되었다. 닥터에게서 고간에 중증 습진이 발생했다는 진단서를 받은 사령관은 한 번도 높이지 않았던 목소리로 지금까지의 문란한 생활을 성토하면서 습진이 나을 때까지 사령관 명령으로 일체의 자신과의 성관계를 금지하며 도구나 다른 신체부위를 사용한 회피시도 또한 금지한다고 명령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스널은 현실을 부정하며 옆에 서 있던 칸을 때려눕히고는 울면서 뛰쳐나갔고. 마리는 뜨거운 커피를 원샷하고는 선 채로 기절했다. 무적의 용은 내리깐 눈으로 홍차를 마시면서 모두의 안색을 살폈고, 리리스는 뒤에서 손톱을 전부 뜯어먹을 기세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슬레이프니르는 퀭한 눈으로 뭐라 중얼거리며 과자를 갉작였고, 콘스탄챠는 요안나를 도우러 자리를 비운 라비아타를 떠올리며 안경을 닦았다, 레오나는 잘 버티는 듯 했지만 쥐고 있던 찻잔을 그대로 쥐어 터뜨려 새하얗게 얼어있던 뽀끄루에게 홍차를 뒤집어 씌웠다. 하지만 그 꼴을 보고서도 사령관의 명령은 철회되지 않았기에 다들 회의 때마다 사령관의 다리 사이와 닥터만 바라보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닥터가 말한 치료 시한은 한 달. 한 달 동안 누구도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닥터는 어느 순간부터 사령관의 습진이 낫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들키지 않은 몰래카메라에서 그 원인을 알아냈다.


사령관의 명령이 내려진 시점에서 사령관은 성관계를 하려고 하지 않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는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사령관이 일부러 고간을 습하게 만들었다는 말이 되어야 하지만. 치료를 원하는 이상 그럴 확률도 낮다. 그런데 사령관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무언가 착상한 닥터는 사령관실 출입 기록을 검토하여, 안건에 비해 너무 오래 머무르는 바이오로이드 하나를 추려냈다.


"....그게 나라고?"

"응."


멸망의 메이는 닥터가 내민 증거를 살펴보고는 몇 가지 다른 가설을 꺼냈지만. 닥터는 전부 기각했다. 지능으로 이길 수 없었던 메이는 다른 방법을 취했다.


"그래 내가 했어. 어쩔래?"

"...."


더 복잡한 두뇌전을 기대한 닥터는 순간적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잠시 버벅였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 아!"


닥터는 상기했다. 메이는 현재 오르카에서 사령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개체라는 걸.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왜?"

"왜냐니? 아무도 안 하면 그때가 기회잖아?"


나이트엔젤이 들었으면 바이오로이드가 고혈압으로 기절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이트엔젤은 일이 어떻게 되었건 간에 드디어 위장약을 끊었다면서 싱글벙글한 얼굴로 밴시와 레이스를 데리고 인싸의 놀이법을 가르치러 떠난 상태였다. 그래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은 닥터만 지어야 했다.


"그... 괜찮았어?"

"뭐, 안 어렵던데? 처음만 좀 아팠지. 젤을 쓰니까..."


진짜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얼굴로 싱글거리며 무용담을 늘어놓는 메이를 보면서 닥터는 이렇게 쉽게 할 걸 왜 그렇게 질질 끌었나 하는 고민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다른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지금 상황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메이만이 아니다. 자기 혼자 헤죽거리는 메이를 내버려두고 닥터는 급히 연고와 베이비파우더를 챙겨 사령관실로 내달렸다.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닥터는 작은 주먹으로 애절하게 문을 두드렸다.


"오빠! 문 열어! 오늘도 이거 안 바르면 진짜 큰일난다고!"

"닥터, 조용히 하시오, 사령관은 지금 입이 바빠 대답할 수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