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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리제가 각방을 쓰면서 쌓인 무료함을 친정 생활(?)로 풀려고 하고 있을 무렵.

사령관은 기술부랑 같이 축제 준비에 한창이었음.

원작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딱히 서프라이즈 파티는 아니었단 거야. 


- 대원 전부가 즐길 규모의 행사를 준비하는데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아?


라는 매우 상식적인 생각 덕분이었지.

해서 구체적으로는 도시를 발견한 계기가 되어준 비행선을 개조한 물건 - 세인트 오르카 호 - 을 타고 순회하는 식으로 각지에 퍼져있는 대원들과 만나고 다닌 다음, 마무리로 다들 중심 업무 지역에 있는 광장에 모여서 연회를 여는 식으로 예정되었어.


- 정말, 오빠는 가뜩이나 바쁜 사람을 너무 부려먹는다니까?

- 미안, 미안.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까 닥터는 언제 투덜거렸나는 듯 배시시 웃어보였지.

밉지 않게 삐죽이는 게 귀여워서 피식 웃다가, 사령관은 뭔가 걸린듯한 감각에 고개를 갸웃거렸음.


- 내가 더 부탁한 일이 있었던가?


당분간 복원할 대상은 전부 유전자 지도를 확보해 둔 상태라 추가적으로 보완할 것도 없고, AGS 연구도 알바트로스랑 에이다, 로크의 유지보수가 가능해진 시점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겠거니- 하고 멈춰져 있는 상태였고.

세인트 오르카 호의 제작 정도가 할 일이라면 일이었는데, 이것도 그렘린들에 포츈은 물론이거니와 AGS들도 달라붙어 처리했으니 정말 뚝딱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금방 끝나 버렸거든.

어린 바이오로이드에게 관대한 사령관 성격상 애초에 닥터가 정말로 무리를 할만한 상황이었으면 뭔가 더 얹어주지도 않았을 테고.


해서 의문 반 우려 반으로 물어봤는데, 닥터는 순간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바로 시선을 피했음.


- 취, 취미로 시작한 개인 연구가 있거든!

- 흐음.


당연히 변명이라는 건 꿰뚫어봤지만, 뭐.

원래 엉뚱한 구석이 있는 아이고, 정말로 사고가 될 만한 일은 안 저지를 테니까.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준비하고 있겠거니 하고 사령관은 다시 순회 일정을 확인하기 시작했음.


*   *   *


한편, 페어리 시리즈는 어디에 있었느냐면-


- 아, 엘리. 딱 좋을 때 왔네. 거의 정리가 끝난 참이었어.


멸망 전에는 꽤나 화려했을 것이 틀림없는 호텔 - 의 옥상에 설치된 공중정원이었음.

언니 오면 보여주려고 찍어놨어! 라며 아쿠아가 보여준 사진에서는 덩쿨이 사방 팔방으로 뻗어있고 말라죽은 나무가 널부러져 있는, 그야말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이었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번듯하게 손질 되어 있었지.


- 관상용 식물들까지 전부 살려내지는 못한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씨앗은 조금 찾아내서 키워볼까 한다고, 수복실 담당이 아니던 다프네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보고했음.

원작 리제도, 리제를 발견하고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기 전까지는 전정한 나뭇가지들을 나름 만족스럽게 쳐다보고 있었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리제에게도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감개가 있었음.


사령관이나 레아를 만났을 때처럼, 몸에 새겨진 본능에 관한 부분은 아니었어.

모듈을 통해 정원사로서의 기능은 익히고 있긴 하지만 기껏해야 좌우좌랑 지낼 때 풀 구분하는 데나 쓴 정도였고.

하지만, 뭐라고 할까.


멸망한 옛 문명의 흔적을 뒤덮어가던 자연을, 다시 인간이 바랐을 목적대로 가꿔내는 그것은-

언젠가 맞이할 싸움의 끝에서 자신들이 맞이할 광경과도 닮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야.


- 역시, '우리'에겐 이런 게 어울리지 않니?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옆에서 레아가 건넨 말에, 리제도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음.

바이오로이드로서의 자각이 없는 리제에게, 본연의 모습을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지만-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된 마음만큼은 다르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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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또 상태가 안 좋아서 짧고 늦었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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