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조금 이상한 오르카가 보고 싶다

※ 제작자는 본인입니다. 본 작품은 해당 작품의 리메이크 작품입니다.


모음집 링크 : https://arca.live/b/lastorigin/26141632


01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141408

02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403929

03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451320

04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486798

05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575575

06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609478

07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664868

08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679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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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번에 복원되었다는 삽살개 기반의 하치코를 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카만 군견 하치코와 달리, 이 녀석은 머리가 새하얗게 분칠이라도 한 듯 반사되는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삽살개가 원래 이런 색이었나? 의문을 품고 한 번 물어보자 군견 하치코가 대답했다.


 "자료에 따르면 일부러 새하얀 색으로 했다고 합니다. 백색인 종이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누런 색은 아무래도 인간 님들의 선호에 맞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명치를 세게 후려치는 시장 논리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시장 논리라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삽살개 기반 하치코는 나를 바라보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눈은 덮수룩한 머리에 반쯤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보지 않아도 맹렬한 시선으로 나를 꿰뚫고 있는게 보였다. 군복이라는 느낌의 하치코와 달리 까만 정장을 입고 있고 있는 이 녀석은 나를 이미 주인으로 인식한 모양이었다. 물론 사용 설명서에 따르면 따로 명령 각인을 내려줘야 한다고 적혀있으니, 완전히 주인이 된 건 아니었지만.


 "그러면...자, 명령 각인을 내려볼까...하치코."

 "예."

 "이 아이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너도 슬슬 다른 이름을 줘야 할 것 같은데."

 "사령관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하치코는 내 말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본인 생각이란 건 거의 드러내질 않다보니 나로서도 대하기가 까다롭다. 차라리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힌다면 뭐라도 해볼텐데 말이다. 나는 끙끙거리며 고민했지만 솔직히 좋은 이름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럼 넌 루이스. 얘는 삽사리."

 "루이스?"

 "자료를 찾아보니까 도베르만 품종의 창시자 이름 중에 그런 이름이 들어가 있더라고. 별로야?"

 "아뇨,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한 하치코, 아니 루이스의 꼬리는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름 받은게 그렇게 좋나. 삽살개 녀석도 꼬리가 붕붕 흔들리고 있었다. 아까는 간이라도 재듯 슬렁슬렁 흔들리던 게, 지금은 꼬리뼈가 으스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일절 무표정이라는 게 느껴져서 참 재밌다고 느껴졌다. 


 "자, 그럼 삽사리."

 "예. 주인님."


 처음으로 듣는 주인님이라는 단어에 내 얼굴이 약간 씁쓸함으로 물들었다. 차라리 사령관이라고 불러준다면 마음이라도 편하련만. 루이스의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리리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는 걸 보자 나는 다시 표정 관리를 했다. 게다가 삽사리도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뀌었기에 앞으로는 좀 더 주의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다.


 "유전자나 뇌파에 기반한 주인 인식은 잠시 미뤄두고, 대신 키워드로 할 거야."

 "키워드입니까?"

 "내가 너희를 루이스나, 삽사리 대신에 '하치코'로 부른다면 나는 너희들의 주인이 아니야."

 "...? 주인님?"

 "이해했어?"


 리리스, 루이스, 삽사리의 표정이 모두 의문으로 물들었지만, 삽사리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루이스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은 유지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희 둘에게 처음으로 명령할게."

 "예, 주인님."

 "무엇을 명령하시겠습니까?"

 "리리스를 제압해."


 그 순간 리리스가 움직이는 속도는 번개같았다고 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블랙 맘바를 뽑아들어 루이스와 삽사리를 겨누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생들이기 때문인지, 그녀는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하지만 루이스와 삽사리는 달랐다. 그것이 설령 사랑하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눈을 살기로 빛내며 리리스에게 달려들어 팔 다리를 꺾어 제압해 바닥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그들의 표정에서 혼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명령이 떨어졌으니 행동한 것 뿐이었다.


 "저, 주인님? 어째서 이런 명령을?"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삽사리였다.


 "그러네. 필요가 있었으니까."

 "대체...왜?"


 리리스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야, 너, 내가 네 주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바로 머리통을 날려버릴 거였잖아?"


 리리스는 그 말에 침묵했다. 역시였나. 애초에 리리스는 경호 업무에 특화되어 있다. 이 말은 거꾸로 말하면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주인의 안위에 해가 되는 존재라면 가차없이 쳐날려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면 사람이라는 이유로 상대를 죽이지 못할 경우 경호에 실패한다면 구멍이 숭숭 뚫려버리는 셈이니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기존의 주인 자리를 낚아채고 주인인척 연기를 하는 사기꾼, 혹은 위험요소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리리스도 그 가설은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확신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될 때까지 그저 기다리고만 있다가 나에게 당한 것이고.


 "루이스는 알고 있겠지만, 이제 리리스랑 삽사리에게도 말해줘야겠네."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인지요?"

 "이 몸은 내 몸이 아니야. 다르게 말하면 빙의라고 해야 하나."


 내 말에 리리스는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고, 삽사리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리리스의 위에 올라타 그녀의 팔을 꺾은 상태 그대로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뜻인가요?"

 "요컨대 원래 이 몸의 주인이 아니라는 소리지. 그렇다고 철충같은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인간이지만, 다른 인간이 이 몸을 차지하고 있다는 소리야."

 "저는 잘 이해가 안되는-"

 "헛소리 하지 마."


 리리스는 이를 빠드득 갈면서 나를 노려봤다.


 "그런 헛소리로 하치코를 속인 거야!? 웃기지마! 그런 철충도 안 믿을 헛소리로 우리를 속여보겠다고? 너! 너 분명 철충이지! 철충이 인간 님의 뇌에 침입해들어온거잖아!"

 "그래서 내 머리통을 날려버리려고?"

 "이미 감염이 진행됐으니까! 닥터도 없으니 치료할 방법이라곤 그것 뿐이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주인님의 육체가 아닐 수도 있잖아! 널 죽이고 내 주인을 찾아서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겠어!"


 헛소리다. 나는 리리스가 일부러 저런 소리를 한다는 걸 빠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들어도 말이 안되는 소리인데, 본인은 아마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주인이 위험에 처했다면 그걸 건져내는 게 우선이지 주인의 머리통을 날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하지 않는다. 게다가 연기라는 가능성은 일부러 배제하고 있는 게 눈에 선히 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자기자신을 속여야 하는건지, 나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게다가 바이오로이드는 자신의 정체성, 혹은 명령권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려고 하면 막대한 부하가 걸린다. 그럼에도 리리스는 자매들을 지키기 위해 저런 사고로 자신을 유도해왔다는 뜻이다.


 "......"

 "삽사리, 이거 놔! 빨리 이걸 놓고 저 인간 흉내인 척 하는 괴물을 죽여!"


 마지막 말은, 분명 진심이리라. 그 동안 리리스가 느꼈왔던 모든 감정을 하나로 응축한 진심. 내가 본 자료에 따르면 리리스는 주인의 성향에 따라 행동거지가 상당히 달라지는 바이오로이드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에 대한 증오를 보인다는 건, 그녀와 그녀의 자매가 당한 수모와 고난이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주인에게 호응해서 가혹행위를 돕거나 즐길 법한 성향이 되는 게 정상임에도 주인에게 반발할 정도라는 건...


 "...리리스."

 "듣지 않아! 네 명령은 듣지 않아! 넌 인간이 아니야!!! 내 주인이 아니야!!!"

 "뭘 겪었는지, 그리고 네 생각을 전부 말해라."

 "왜? 들으면 다시 그걸 재현이라도 하게!? 내 동생들을 블랙 맘바의 표적으로 삼아서 쏴버리는 그 개짓거리를!? 다 죽어가는 애들한테 마약을 놓아가면서 끝이라도 편하게 해줘야했던 걸 이해하기라도 해!? 하치코가 널 끝까지 바라보면서 칭찬해달라고 머리를 비비던 걸 넌 어떻게 했어! 나보고 그 애의 머리통을 쏴날려버리라고 했잖아! 이제와서! 이제와서!!! 이제와서!? 그 때 그 인간이 아니야? 헛소리 하지 마! 네 빌어먹을 짓거리는 사라지지 않아! 절대로! 절대로!!! 우릴 전부 다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이런 소릴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너한테 굴복할 것 같아!?"


 나는 침묵했다. 루이스와 삽사리도 침묵했다. 삽사리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와 리리스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고, 루이스는 침통한 표정으로 땅바닥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 명령 탓인지, 아니면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리리스는 울부짖으면서 저주를 토해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리 내가 아니라 해도 그녀들은 결국 나를 그것의 잔재로 바라볼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하긴, 누가 믿겠는가. 차라리 연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믿는다면 몰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쓸 수 있는 수단은 결국 하나 뿐임이 분명해졌다.


 "리리스, 마지막 인간으로서, 비상 명령권을 통해 명령한다."

 "안 돼...! 뇌파가...!!!"

 "방금 나눈 이야기는 다른 누구에게도 발설을 금지한다. 그리고-"


 나는 침음성을 삼키며 말했다.


 "리벨리온으로 떠나라."


 리리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울음과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던 눈이 깜박거렸다. 나는 손짓으로 삽사리와 루이스에게 그녀를 풀어줄 것을 명령했다. 둘은 불안한 표정이긴 했지만 이내 천천히 리리스에게서 벗어났고, 리리스는 왜? 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떠나라. 명령이다."


 위험요소라면, 차라리 안고 가지 않는 게 최선이다. 내 곁에 둔다면 무엇을 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좋아하는 캐릭터이건, 그 힘이 내게 도움이 되건 안되건 간에, 이곳에서 내 최대의 위협은 리리스였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는 그나마 인간이라는 명령권으로 어떻게든 내가 억누를 수라도 있다. 하지만 리리스는 내버려둔다면 어떻게든 내 명령의 우회권을 찾는 것을 넘어서서 반드시 내 머리통을 날려버리려고 할 것이다. 방금의 대화로 그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죽어버린 자매들에게 속죄하고 싶어했다. 자신과 사령관의 동귀어진으로.


 그렇지 않고서야 일부러 저런 식으로 자신의 사고를 유도하고, 나에 대한 적의를 드러낼 리가 없다. 


 "가서 뭘하건 상관없어. 내 명령이 다시 떨어지기 전까지 절대 이곳으로 돌아오지 마."


 리리스의 얼굴이 의문에서, 경악, 깨달음으로 변해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그녀가 지금의 내 행동을, 오르카 호 대숙청으로 생각하건, 아니면 정말로 리리스를 배려한 것으로 생각하건 상관 없었다. 이제 리리스는 그곳에서 다른 컴패니언 자매들과 지내게 될 테니까.


 "너희 둘은 날 따라와."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리리스가 털썩, 하고 주저앉는 소리와 함께 나는 제조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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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이런 이유

나도 이제 틀틀인 것이야...

긴 제목은 짓기 힘들어. 그리고 검색할 때 짧은게 편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