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엡실론_EP1 https://arca.live/b/lastorigin/26648771

라스트 엡실론_EP2 HARD RAIN#1 https://arca.live/b/lastorigin/26720767

라스트 엡실론_EP2 HARD RAIN#2 https://arca.live/b/lastorigin/26747149 

라스트 엡실론_EP2 HARD RAIN#3 https://arca.live/b/lastorigin/26770620

라스트 엡실론_EP2 HARD RAIN#4 https://arca.live/b/lastorigin/26816922



17분 전 : 첫번째 예상 저격 포인트에는 없었다. 


현재 : 두번째 예상 저격 포인트로 이동 중.


능선은 피한다.

계곡의 경사를 타고 최대한 소리를 죽인다.

가지와 바위 뒤로 은엄폐하며, 천천히 지그재그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올라간다.


ㅡ 배터리 잔량 76%


아직은 여유가 있지만, 장기전이 될 지도 모른다.

보조 배터리는 다 썼다. 연료전지의 여분도 없다. 기상상태로 봐서 태양열 충전은 당분간 불가능하다.

전력이 언제까지 버텨줄까? 그래도 이 방법밖에 없다.

 

규칙적으로 쉴새없이 이파리를 두들기는 빗소리가 청각센서의 볼륨 창을 가득 메운다.

전자두뇌의 연상기능이 작동한다. '승전 기념연주회'라는 자동 연관검색어로 이어진다. 

그게 뭐였더라. 

이런.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발 끝의 조약돌을 옆으로 차내고 발걸음을 디디며 두 번째 포인트 공격준비와 '승전'의 개념을 동시에 검색하려는 순간...





약 8m 경사 아래. 암반 근처의 자작나무.

대구경 탄환의 파공성이 빗소리의 연주회를 가르며 압도하다 저만치 사라져간다.

탄환의 잔향음이 끝나기도 전에 이어서 돌 튀는 소리가 청각 센서 디스플레이에 거친 물결을 일으킨다.



내 보행과 기상상태가 불러온 우연이다. 


발끝에 채인 조약돌이 우연히 돌출되어 있던 그 옆의 흙더미를 때렸고,

비에 젖어 약해진 흙더미가 무너지면서 그 위의 잔해가 경사 아래쪽의 암반으로 쏟아졌다.


그 쪽으로 큰 소리가 나자마자 거의 즉시 저격이 날아왔다. 처음부터 이 방향을 경계하고 있었군.


우측면이었나. 위치를 들켰다면 거의 확실하게 선제공격당하고, 확실히 피격당했겠는걸.

소리만 듣고 쏜 거 같은데 저 정도 정확성인걸 보니 중장거리 교전으로는 승산이 없을 것 같다. 


먼저 상대의 위치 파악부터. 

레이더에 잠시 희미하게 붉은 점이 떴다가 사라진다.

세번째 포인트 방향이군. 거리는 약 550m.

레이더에 지속적으로 표시되지 않는 걸 보니 스텔스 미채 능력을 갖춘 철충이다.

좋지 않다. 즉시 레이더 감도를 최대로 올린다. 전력 소비가 극심해지겠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

동력을 최대로 뽑아내 감지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며 움직인다. 


그래도 이제 녀석이 움직이면 포착할 수 있다. 아까의 지점에서 더 이상 새로운 빛은 뜨지 않는다.

잔뜩 경계를 하고 있는지 움직이지 않는군. 


이제 시간 싸움이 됐다. 

분 단위로 배터리의 퍼센테이지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교착상태보다는 달리는 쪽이 낫겠군. 남은 연막수류탄은 두 개.


먼저 하나 던진다.

놈과의 최단직선경로. 한가운데 위치 정도로 착탄하게.


연막이 터지자마자 엄폐물 밖으로 뛰쳐나간다. 이제 멈출 수 없다.



동력이 전부 떨어지기 전에 녀석을 잡아내면 내 임무는 계속된다. 그렇지 못하면 거기서 내 임무는 끝이다.


그리고 나는 작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방법을 모색하고 실행토록 프로그래밍된 존재다.


그것이 내 임무다. 나는 임무수행의 중지를 아직 명령받지 않았다. 그건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철충은 아니다.


ㅡ 제 2목표 재확인.

철충은 말살한다.


측정된 목표물과의 거리 HUD에 표시.

전술회로 작동. 목표물과의 최단거리 계산. 

불규칙한 나무줄기들 사이사이를 엄폐물삼아 회피기동과 동시에 달려 올라간다. 

수소 연료전지의 배터리킷이 달아오르며 반응로를 최대출력으로 가속시킨다. 

하이브리드 엔진의 구동음이 빗줄기 소리를 찢어발긴다. RPM미터기의 수치가 레드존까지 치솟는다.

전자두뇌의 사고가 호응하듯 뒤따라온다. 목표물 위치 추산. 예측 수정. 재연산. 수정. 재연산. 재수정.


저격형 철충의 사격. 차탄이 날아온다. 코어를 노리고 날아오는 대구경 아음속탄. 

정확하군. 

예상했던 정도만큼만. 

2m 앞. 엄폐물에 몸을 숙이며 겹친 덕에 코어 덮개의 흠집으로 끝난다.


350m.


저격이 날아온 순간부터 철충의 재장전 시간까지, 타이머를 세며 뛰어오른다. 

경사가 가팔라진다. 출력을 올린다. 배터리가 훨씬 더 빠르게 줄어든다.


ㅡ 배터리 잔량 52%


250m. 


장전됐겠군. 최대한 멀리 마지막 연막탄을 던진다. 

바로 뛰어나간다. 암반으로 덮인 갈림길이군. 엄폐물도 이제 별로 없다.

올라갈 루트는 두 방향ㅡ



녀석이 왼쪽 통로의 바위 상부를 쐈다. 좌측으로 돌아올라가는 길 입구가 굴러떨어진 바윗덩이들로 덮여버린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군.



무너진 바위로 인해 루트 하나가 막혔다. 아직 거리는 200m 정도 남았다.

이제 올라가는 통로는 하나. 엄폐물은 거의 없다. 전력질주해도 최소한 한 발이 더 날아올 거리다.

주간이라면 이 거리의 목표물이라도 HUD에 보이겠지만 암흑과 폭우가 시야를 가린다. 훨씬 더 접근해야 한다. 


끝인가?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동력이 바닥난다. 임무 실패다.

달리며 생각하자. 그 편이 더 가능성이 있다.


그대로 연막 속을 질주해나간다. 부서진 자갈들이 발걸음에 채여 튕겨져나간다.

이 흔적만으로도 위치를 예측해서 사격이 가능하겠지만, 연막 밖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확실하게 조준해 쏘겠지.


180m.


달리면서 백팩의 남은 보급품을 체크해 본다.


170m.


대전차 클레이모어?

가능할까?


160m.


최대한 계산해본다. 변수가 많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거의 연막의 끝자락까지 왔다. 노출되는 순간 틀림없이 쏘겠지.


150m.


이제 결정해야 한다.


ㅡ 스러스터 최대출력. BOOST.


최대출력으로 전방 도약한다. 약 50도 방향으로. 

스러스터 출력을 유지하면 잠시나마 활공이 가능하다.


140m.   130m.


느릿느릿한 속도로 엄폐물도 없는 공중에 훤히 노출되었으니, 저격형 철충이라면 놓칠 수가 없는 목표물이겠지.

활공으로 이동하며 카메라를 아래로 돌려본다. 대각선 아래 쪽. 놈이 보인다.


120m.


막 스텔스 미채가 풀린 길쭉한 총신이 공중에 떠오른 내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상대해봐서 안다. 저격형 철충의 스나이퍼 라이플은 쏘기 직전에 총구 안쪽이 달아오르는 게 보이지.


지금 쏘겠군.


ㅡ 격발.


대전차 클레이모어를 쥔 매니퓰레이터를 철충과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향하여 격발시킨다.

대폭발이 일어나며 밤하늘로 대전차 산탄이 떠오르는 별처럼 흩뿌려진다.


클레이모어의 폭발력이 동반된, 상대의 예상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의 가속. 

예상 이상이긴 하지만 이 높이라면 내 코어가 파손되지는 않겠지. 

격발했던 매니퓰레이터는 이미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100m.   80m.   60m.   40m.   20m.



쾅! 쿠당탕. 



충돌했다. 

이건 예상 못했는데.

아마 놈도 예상 못했겠지만.


다행히도 저격형 철충은 직접적인 물리적 충격에 대한 내성이 폴른 모델보다 약한 편이지.


일어나는 건 내 쪽이 빠르다. 한 쪽 다리는 그래도 안 망가졌군.


직전의 충돌로 쓰러졌다가 비틀대며 일어나 총구를 돌리려는 철충의 찌그러진 카메라에 한 발 쏘아넣는다. 

이제 놈은 장님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도 체액을 뿜어내며 발버둥치는 게 보인다. 

쾅. 

그냥 허공에다 무의미하게 쏴대는군. 

아음속탄이 아까울 지경이다.


침착하게 코어 위치를 확인한다. 장갑이 약한 저격형에겐 할로포인트로 충분하다. 

2발 조준사격. 그래도 아직 안 끝났다. 


기생체가 기어나올 것 같은데. 그래. 도망치면 안 되지. 철갑소이탄 한 발. 잘 타는군.


끝났다.




청각센서가 맛이 갔다. 덮개도 금이 갔군. 이건 보급지에서 교체하지 않으면 손보기 힘들 것 같다.

다음에도 코앞에서 대전차지뢰를 터트려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이 부분을 주의해야겠다.

지면에 충돌할 때 오른쪽 다리가 부서졌다. 백팩도 터져서 보급품이 흩어진 것 같은데...일단 수리도구부터 회수해야겠다.

동력이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수리할 시간 정도는 있을 것 같다. 

레이더를 확인한다. 철충의 신호는 없다. 따로 은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비가 잦아들고 있다. 아침 해가 뜰 시간이다. 수리 후에 재충전이 가능할지도.

이제 내려가면 곧 보급지다. 



수리와 재정비를 수행하는 동안 사고회로의 여유가 생겼다. 

전술 정보 학습 준비. 전쟁사 기록 랜덤 서칭 시작. 





"우리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우리를 끝내리라"

- 존 F. 케네디(1917~1963)




나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지금 없다.


전쟁이 날 끝내지 않는 한, 난 전쟁을 끝낼 이유가 없다.





인간을 찾기 전까지, 

전쟁을 끝낼 이유는 없다.

철충을 끝내기 전까지,

전쟁의 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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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tional objectives>

제 1목표 : 살아있는 인류의 발견 및 생존과 수호


제 2목표 : 모든 철충의 제거 및 박멸


제 3목표 : 제 1목표와 제 2목표에 위배되지 않는 한, 본 기체의 작동 활성화 상태를 유지ㅡ생존할 것


기록:

육군 32사단 AGS 1연대 4중대 3소대 

엡실론 분대 1/5

CT2199W 폴른 No.63



LAST EPSILON_EP2 HARD RAIN#5 [完]















<하드 레인> 편은 이걸로 끝.

다음 편은 시간 날때 또 써보겠음.

재밌었으면 리플 좀 많이달아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