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내내 이 노래 들으면서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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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구체 위로 하얀 돛이 보였다.

 

  드문드문 찢어져 파란 허공이 보이는, 하늘하늘 움직이는 자연의 돛이.


  코코는 숨을 한 번 내뱉었다. 반투명한 헬멧에 아주 살짝 입김이 서렸다가 사라졌다.


  고요한 심연 속에서 보이는 색채는 마치 보석 같았기에 그녀는 한참 동안 멍하니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코코. 무슨 문제라도 있어?]


  통신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코는 고개를 휘젓고 대답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갑자기 멍하니 있길래 무슨 문제라도 있나 했지. 빨리 끝내고 복귀하자. 몸이 근질거리는 게 운동 좀 해야겠어.]


  [네. 알겠어요.]


  코코는 조종간을 당겼다. 반투명한 헬멧 위로 무겁고 커다란 철제 해치가 덧씌워졌다.


  보석 같은 색채는 한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인터페이스 특유의 여러 정보가 나열된 채로. 코코는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


  그저 한 겹의 덧씌움일 뿐인데.


  조종간을 다시 당겼다. 화이트쉘의 무거운 팔이 거대한 암석을 붙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코코는 꿈을 꿨다.


  불그스름한 황야. 먼지와 모래, 돌풍이 몰아치는 황량한 그 들판에 코코는 홀로 서 있었다.


  코코의 눈앞에는 노을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시선을 내리자 발 앞에는 봉긋한 봉분 하나가 보였다.


  언제부터 있던 걸까.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언제 여기 왔던 걸까.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코코는 그저 자리에 쪼그려 앉아 봉분을 매만졌다. 아니, 매만지려 손을 뻗으려 했다. 그녀는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드넓은 황야인데도, 하늘과 땅이 펼쳐진 행성인데도 코코는 우주복을 입고 있었다.


  팔 부근이 길게 찢어지고, 돌가루가 잔뜩 묻은 우주복을.


  코코는 머리의 헬멧을 매만졌다. 그제야 그녀는 머리를 뒤덮고 있는 유리에 커다란 금이 갔다는 것을, 깨진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우주복에서 경고음이 들려왔다.


  산소 부족. 피난 권고. 응급 상황.


  산소 부족. 피난 권고. 응급 상황.


  턱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코코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산소가 매섭게 빠져나가는 틈새를 손으로 막고 눈을 감았다. 천천히 숨을 쉬려 노력했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다 지나간 일이야.


  코코는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상처가 아닌 포근했던 무언가. 


  항상 덮고 자는 따뜻한 이불. 


  몸을 감싸는 커다란 화이트쉘. 


  작업이 끝나고 마시는 따뜻한 코코아. 


  언제나 환하게 웃던…….


  “괜찮아?”


  눈앞에는 스파토이아가 있었다. 코코는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은 어두웠다. 천장이 있었고, 벽이 있었고, 이불이 있었다. 


  코코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갑자기 끙끙대길래.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


  “……그런 거 같아요. 네. 네. 악몽인 거 같아요.”


  뭔가 미심쩍은 대답에 스파토이아는 뒷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정말?”


  “네. 괜찮아요. 좀 앉아있으면 괜찮을 거예요.”


  “그럼 난 잔다? 너도 빨리 자. 눈 뜨면 또 작업해야 하잖아.”


  “네. 그럴게요. 신경 써줘서 감사해요. 편히 주무세요.”


  “너도 잘 자.”


  이불 뒤집어쓰는 소리가 사락사락 들린다 싶더니 금세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피곤해서 바로 곯아떨어진 것 같았다.


  희미한 빛이 어린 어두운 방. 코코는 이불을 꼭 그러안았다.



 

  작업 시간은 길었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끝났다.


  마지막 암석 더미를 스테이션에 밀어 넣은 코코는 화이트쉘을 격납고에 집어넣고 연료와 구동부, 기타 안전 사항을 점검했다.


  멀리서 스파토이아가 다가왔다. 벌써 외골격 점검을 끝낸 건지 가벼운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는데, 양손에 머그잔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수고했어 코코.”


  “수고하셨어요. 그런데……. 여기서 운동하시려고요?”


  코코는 주변을 둘러봤다. 훤칠하긴 했지만, 작업용 장비를 점검하는 곳이다 보니 여기저기 지저분한 데다가 각종 기계로 가득해서 소음이나 안전은 여의치 않았다.


  “아니. 외골격 점검은 어차피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니까 옷부터 먼저 갈아입었어. 그것보단 자.”


  스파토이아는 손에 들고 있는 머그잔을 내밀었다. 코코가 고개를 까닥여 고맙다 표시한 뒤 잔 안을 확인했다.


  적갈색의 걸쭉한 액체. 다디단 향기와 몽글몽글 올라오는 반투명한 김.


  코코아였다.


  코코는 숨을 살짝 들이마셨다. 코와 목구멍 사이에 설탕과 코코아의 진한 향기가 꽉 들어찼다. 갑작스러운 마주침에 파문이 일었다.


  “……이걸……. 왜……?”


  코코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말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짜내는 듯한 목소리를 의아하단 목소리로 포장하려 애를 쓰는 사이, 스파토이아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축하 기념! 오늘은 우리가 같이 일한 지 1년째 되는 날이거든. 물론 축하 기념이라 하기엔 조촐하긴 한데, 뭐 따로 차릴 게 없으니까 이걸로 만족해야지.”


  스파토이아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코코의 머그잔에 자기 잔을 살짝 부딪쳤다.


  “그동안 고마웠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코코는 크나큰 요동을 느꼈다. 입이 다물어지고, 뭔가 말을 하려다가도 이가 꽉 다물어졌다. 목이 울렁거렸다.


  화이트쉘에서 안전 점검이 끝났다는 소리가 길게 울렸다. 


  추진제를 압축하는 기계 소리가 요란했다. 


  코코는 저도 모르게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분도 제게 코코아를 주셨어요.”


  자기 주먹 두 개만 한 크기의 머그잔. 그걸 바라보는 코코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래성 같았다.


  “자료로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걸 왜?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 그분이 이렇게 말했죠. 스테이션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고. 같이 일하게 돼서 기쁘다고.”


  코코는 머그잔에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세라믹 재질의 머그잔은 열기를 머금어 따뜻했다. 그 열기는 코코의 이마를 타고 천천히 눈가로, 목구멍으로, 가슴으로 내려갔다.


  “그분은 늘 그렇게 친절했어요. 언제나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저를 격려하고 칭찬해주셨죠.”


  스파토이아는 코코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몸에서 전해지는 뭉근한 열기에 억눌려있던 코코의 감정은 불쑥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파도처럼. 뒤로, 뒤로 밀려나다가 앞으로 들이 닥쳐오는 밀물처럼.


  “스테이션엔 우리 둘뿐이었어요. 가끔 오는 보급 물자와 작업지시 말고는 저랑 스파토이아님 둘 뿐이었어요. 둘이서 지내기엔 크고 세계라고 하기엔 좁은, 여기 쇳덩이로 만들어진 공간이 우리 둘의 세상이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코코는 목구멍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목소리엔 점점 물기가 어렸다. 스파토이아가 코코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코코가 쥐고 있던 머그잔을 바닥에 내리고 그녀를 꼭 감싸 안았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제 괜찮아.”


  코코는 더 말하지 못했다. 뭐라 말을 하려 해도 입에서 나오는 건 흐느낌과 훌쩍거림, 뭉개지고 짓눌린, 감정으로 똘똘 뭉친 울음소리.


  스파토이아의 손길 한 번, 위로 한 번, 포옹 한 번. 코코의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텅 빈 우주 한가운데의 스테이션. 


  강철 팔과 고리로 이루어진 빙빙 돌아가는 거주구역. 


  그곳에 사는 따스한 살결을 가진 생명체.


  서로가 유일하지만, 코코에겐 둘이기도 한 당신.


  반경 400km의 고립무원에서 코코는 구슬피 울었다.



 

  그날 밤, 코코는 다시 꿈을 꿨다.


  불그스름한 황야의 꿈. 먼지와 모래, 돌풍과 노을, 봉분이 있는 지난 밤의 꿈.


  그러나 코코는 동요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언제 여기 왔는지도 고민하지 않았다.


  코코는 그저 자리에 쪼그려 앉아 봉분을 매만졌다. 까슬까슬한 흙이 손에 만져졌다. 작업이 끝나고 장비에 잔뜩 묻은 돌가루 같은 촉감에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이젠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코코는 봉분 앞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


  “점점 무뎌져요. 그렇게 슬퍼했는데. 이젠 점점 무뎌져요.”


  노을빛이 길게 내려왔다. 불그스름한 빛이 불그스름한 땅에 드리워져 눈이 아팠다. 봉긋한 봉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매일 죽은 것처럼 살았는데……. 어딘가 죽었다고 생각했고 매일 죽어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문득 손에 뭐가 잡혔다. 쥐고 있던 손을 펴니 머리 장식 하나가 있었다. 하얀색과 주황색이 반씩 있는 네모난 장식. 스파토이아의 머리 장식.


  코코는 봉분 위에 머리 장식을 올려놓았다. 손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결국 그녀는 손을 떼어 뒤로 물러나는 데 성공했다.


  “이젠 그냥……. 다시 살아가도 될까요? 그래도 될까요, 스파토이아님?”


  대답은 없었다. 봉분은 그저 봉분이었다. 바람도, 소리도 없었다. 그저 기나긴 빛과 기나긴 그림자. 가슴 아프도록 붉은 세상뿐이었다.



 

  우주 한가운데에서 코코는 추진제를 주의 깊게 분사하며 경로를 설정했다.


  화이트쉘의 거대한 몸체가 빙글 돌고, 앞으로, 위로, 아주 살짝 아래로 내려가길 반복하니 소행성이 점점 거대해졌다. 


  코코는 추진제를 앞으로 분사했다.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고 화이트쉘은 소행성에 몸을 붙일 수 있었다.


  [여기는 코코. 소행성 접근 완료했습니다. 발파 작업을 시작할게요.]


  [스파토이아에서 확인. 접근 중인 데브리는 없어.]


  스파토이아가 대답하자마자 코코는 조종간을 당겼다. 화이트쉘에 달린 파쇄기가 거칠게 돌아갔다. 천천히 조종간을 기울이자 파쇄기는 소행성 일부를 갉아내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 소행성만 정리하면 끝이었나?]


  스파토이아의 질문에 코코는 고개를 들었다. 꽤 거대한 소행성이라 시야의 절반은 회색 돌덩이로 가득했다.


  [오늘 다 끝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일단 절반까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가. 그래도 빨리 다른 구역으로 가고 싶단 말이지. 주변 소행성 정리가 끝나가니까 너무 할 게 없어.]


  [그래도 충돌 걱정은 좀 덜게 되니까 그건 좋지 않나요?]


  [그래서 더 지루해. 내가 할 일이 아예 없잖아. 차라리 나도 파쇄 작업을 할까 싶을 정도야.]


  코코는 살짝 웃었다. 그녀는 파쇄기를 멈추고 조각난 돌덩이를 모아 끌고 온 보관함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해보실래요?]


  [그래도 돼?]


  [스파토이아가 말한 대로 오늘 이 소행성을 정리해야 하니까요. 데브리도 없고요. 여차해도 스파토이아 실력이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거예요.]


  [좋았어! 가볼까 그럼?]


  스파토이아는 잔뜩 흥분했는지 소행성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코코가 돌덩이를 보관함에 다 담자마자 그녀 앞에 도착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파쇄용 장비가 있었나요?]


  [걱정하지 말라고. 이거면 가능하니까!]


  코코가 묻자 스파토이아는 허리춤에 달린 길쭉한 장비를 들어 보였다. 매스 드라이버였다.


  단순히 총이라고 알고 있었던 코코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스파토이아는 매스 드라이버의 하부를 손으로 콩콩 두들겼다. 그러자 총 하부에 달린 길쭉한 판 아래로 고열의 빔이 튀어나왔다.


  [이거면 대충 할 수 있겠지?]


  스파토이아는 화이트쉘 뒤쪽을 지나 소행성을 휘감듯 위로 올라갔다. 코코는 파쇄기를 다시 작동시키며 말했다.


  [조심하세요. 스파토이아는 동체가 드러나 있으니까요.]


  [괜찮아. 나는 정예 중의 정예라고.]


  몇 시간 동안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소행성을 파쇄했다. 스파토이아가 말하면 코코는 그걸 들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운동하는 것도 좋지만 스파링을 할 대상이 없다는 얘기. 지구에선 남자가 여자한테 청혼한다는 얘기. 별자리마다 얽힌 얘기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코코는 즐거웠다.



 

  충격이 덮쳐왔다.



 

  붉은 등이 쉴새 없이 깜빡거렸다. 화면의 정보 수치는 마구 바뀌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코코는 조종간을 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오른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뻣뻣한 목을 겨우 돌려 팔을 보니 언제 다친 건지 우주복이 길게 찢어져 있었다.


  산소 부족. 피난 권고. 응급 상황.


  경고음에 코코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숨을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산소 부족. 피난 권고. 응급 상황.


  작게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이 감겼다.



 

  [코코!]



 

  스파토이아의 목소리. 코코는 조종간을 움직였다. 화이트쉘의 부스터에서 푸른 화염이 길게 이어졌다.


  스파토이아는 저 멀리서 빙빙 돌고 있었다. 오른발과 오른팔의 외골격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고, 상처를 입었는지 붉은 핏방울이 여기저기 튀어 우주를 떠돌았다.


  [오지 마! 스테이션으로 복귀해 코코!]


  순간, 코코는 스파토이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종간을 밀고 있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코코! 젠장, 통신기도 터졌나? 코코! 오지……!]


  [괜찮아요! 같이 가요!]


  코코는 빽 소리쳤다. 경고음이 들렸다. 추진제 잔량 15퍼센트. 붉은 등이 깜빡거렸다. 배터리 10퍼센트.


  [충격 때문에 너무 멀어졌어! 계속 오면 너도 중력권이야!]


  [같이 갈 수 있어요!]



 

  [코코!]



 

  [스파토이아님?]


  [정신이 들었구나! 크게 다쳤을까 봐 걱정했어! 괜찮아! 이젠 다 괜찮아!]


  코코는 가물거리는 눈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스파토이아가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저 멀리 화이트쉘이 보였다. 오른팔과 다리가 부러지고 파편이 여기저기 흩날리고 있었다.


  공기 빠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니 헬멧이 깨져 있었고 스파토이아가 균열을 손으로 막고 있었다. 그런데도 공기는 아주 미세한 틈새로 사납게 빠져나갔다.


  [무슨……일이…….]


  [데브리야! 연쇄 충돌이 일어나서 제때 다 치우지 못했어! 빌어먹을!]


  코코는 숨을 헐떡거렸다. 스파토이아는 코코를 더 꽉 끌어안았다.


  [괜찮아!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스테이션에 들어가서 정비만 하면……!]


  경고음이 길게 이어졌다.


  다시 충격이 느껴졌다.



 

  [코코!]



 

  세상이 빙빙 돌았다. 텅 빈 세상에 파란색이 가득 들어찼다가 다시 검은색으로, 다시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군데군데 붉은 빛이 떠올랐다. 경고음이 몇 개나 겹쳐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나 코코는 조종간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화이트쉘의 다리를 움직였다. 추진제를 분사했다.


  통신기에서 째지는 소리가 들렸다. 


  코코는 스파토이아의 위치를 확인했다. 고작 몇 미터 앞에 스파토이아가 있었다.


  폭발 잔해와 부딪혀 화이트쉘의 기능이 몇 정지했지만, 그만큼 앞으로 더 가속할 수 있었다.


  코코는 화이트쉘의 오른팔을 움직이려 애썼다. 전깃불이 조금씩 튀긴 했지만, 어찌저찌 움직일 수 있었다.


  스파토이아가 손을 내밀었다. 화이트쉘의 손을 잡았다. 코코는 스파토이아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괜찮아요! 이제 다 괜찮아요!]



 

  [코코…….]



 

  스파토이아는 도금된 보호경을 위로 올렸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스파토이아가 미소짓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스파토이아님은……?]


  코코는 최대한 정신을 차리려 했다. 하지만 계속 빠져나가는 산소와 붉게 점멸하는 경고등, 귀를 어지럽히는 경고음이 너무나도 시끄러웠다. 그래서 그녀는 스파토이아의 행동을 놓쳐버렸다.


  [힘들겠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 알았지?]


  [네?]


  코코가 되묻는 것과 동시에 스파토이아가 코코를 밀쳐냈다. 둥실 밀려나는 감각에 코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상처에서 피를 흘리는 스파토이아.


  외골격 다리가 없는 스파토이아.


  지구를 등에 진 스파토이아.


  코코는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날아오는 데브리를 스파토이아가 몸으로 막았다는 것을, 무서운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중력권을 탈출하기엔 추진제가 얼마 안 남았어. 둘이 같이 움직이기엔 모자라지만, 가벼운 너라면 어떻게든 스테이션에 갈 수 있을 거야.]


  [스파토이아님……?]


  [미안해. 널 지켜야 하는데 내가 실수했어.]


  코코는 자기 발치를 내려다봤다. 다리에 스파토이아의 외골격이 붙어있었다. 가슴팍엔 외골격과 연결된 패널이 있었는데, 급하게 뜯어내서 만든 건지 이어진 전선이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조작은 어렵지 않을 거야. 스테이션에 도착하면 긴급 사고 절차에 맞게 본부와 통신하면 돼. 그러면 날 대신할 기종이 올 거야.]


  [스파토이아님!]


  코코는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멀어지기 시작한 거리가 좁혀지는 일은 없었다. 통신기에서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괜찮아. 다 내 잘못이야. 바다에서 앞을 제대로 안 봤으니 좌초당한 거지.]


  통신기에 점점 잡음이 끼어들었다. 스파토이아의 모습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지구의 푸른 바다, 하얀 구름만이 보였다.


  [싫어요……. 싫어요! 스파토이아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내질렀지만, 통신기에선 힘없는 웃음이 들려왔다. 코코는 손을 휘저었다. 그러나 몸은 기우뚱 기울어질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지구가 보였다. 

  파란 지구가.

  스파토이아의 머리카락처럼 파란 지구가.



 

  코코는 화이트쉘의 해치를 열었다. 스파토이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 코코.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코코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에요. 제 잘못이에요. 스파토이아. 작업용 장비가 아닌데도 파쇄 작업을 허용했으니까요.]


  [하, 하지만……!]


  코코는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그녀는 왼손을 움직여 조종간을 조작했다. 화이트쉘은 느릿하게 움직여 스파토이아의 외골격을 붙잡았다. 


  [코코……?]


  스파토이아가 코코를 불렀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화이트쉘을 조작해 그녀의 외골격과 화이트쉘을 연결했다.


  추진제 잔량 10퍼센트.


  배터리 5퍼센트.


  그제야 스파토이아는 코코가 하는 일을 이해했다. 스파토이아는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화이트쉘과 연결된 외골격 탓에 그녀의 동체는 검은 세상을 헛되게 차는 것에 그쳤다.


  [힘드시겠지만 스파토이아님은 정예병이니까 잘 하실 거라 믿어요.] 


  코코는 외골격과의 연료 연결을 끊었다. 스파토이아가 막 움직이려 했지만, 코코는 그녀를 밀쳐냈다.


  외골격이 없어진, 상처 입은 스파토이아는 화이트쉘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그녀는 화이트쉘의 반대 방향으로, 푸른 지구의 반대 방향으로 밀려났다. 


  검은 땅과 푸른 하늘이 있는 반경 400km의 고립무원.


  반대 방향으로 밀려나는 두 사람.


  [스테이션에 도착하면 긴급 사고 절차에 맞게 본부와 통신하면 돼요. 그러면 절 대신할 기종이 올 거예요.]


  [코코!]


  스파토이아는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멀어지기 시작한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코코는 희미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


  [같이 갈 수 있어! 같이 갈 수 있어!! 코코!!!]


  스파토이아가 작은 점으로 보였다. 빛을 받은 그녀는 하얗게 빛났다. 별로 가득한 검은 세상에서. 그 어떤 별보다도 하얗게.


  헬멧 안에서 붉은빛이 떠올랐다. 경고 중력권 진입. 경고. 응급 상황.


  코코는 조종간에서 손을 뗐다. 왼손으로 배를 만졌다가 들어 올렸다. 붉은 피가 손에 가득 묻어나왔다. 오른팔엔 감각이 없었다.


  [괜찮아요. 스파토이아. 이건 그냥 파도일 뿐이에요.]


  코코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파란 하늘이, 주황빛의 땅이 보였다. 별이 점점이 박힌 검은 땅 위로.


  스파토이아의 머리카락 같은 파란색과 주황색이 코코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잡음이 가득 흘러나오던 통신기가 뚝 끊겼다. 화이트쉘에서 드문드문 튀던 스파크가, 푸르게 빛나던 화면이 꺼졌다.



 

  푸른 구체 위로 하얀 돛이 보였다.


  드문드문 찢어져 파란 허공이 보이는, 하늘하늘 움직이는 자연의 돛이.


  보석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스파토이아의 헬멧 안에서 다이아몬드가.


  코코의 헬멧 안에서 루비와 다이아몬드가.


  보석 하나가 빛을 내뿜었다.


  심연과 푸르른 하늘 사이에서 환하게 빛나는.


  덧없이 사라지는 붉고 하얀 보석 하나가.


  파도가 쳤다. 별들의 바다에서. 


  누구도 듣지 못하는, 누군가는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고요한 파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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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꽃밭을 가꾸는 하치코' 라고 글 쓴 놈이에요.

링크 : https://arca.live/b/lastorigin/25467346?mode=best&category=%EC%B0%BD%EC%9E%91%EB%AC%BC&target=all&keyword=&p=1


노래 듣다가 왠지 오비탈와쳐 같은 우주 작업자 생각나서 글 씀.


오비탈와쳐 붐은 온다.


재미 없었으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