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3316232

이전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7289502


--------------------------------------------------------------------


그렇게, 골판지 상자의 신비한 힘을 빌려 암행한 결과―.


- 심려를 끼쳐드린 것 같아서 면목 없습니다.

- 아니, 놀 때는 확실하게 노는 게 좋긴 하지….


정작 사과하는 마리는 태연한데 사령관의 표정에서는 떨떠름함이 사라지지 않았음.

확실히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없던 대신에, '저래도 괜찮을까?' 라는 걱정이 들만한 사건은 심심찮게 목격되었거든.

물론 주로 브라우니에 의해서.

별 기행을 다 하면서도 경상조차 잘 안 나오는 건 다행이긴 한데…

전사자 제로라는 신화를 쓰고 있는 입장에서 안전사고로 사망자가 나와버리면 웃을 수 없지 않을까.

고민하는 포인트가 너무 사령관다워서 마리는 작게 웃고야 말았음.


-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각하.

 브라우니가 태생적으로 위기감이 부족한 면은 있습니다만, 언제든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강인함이 없었다면 저희 스틸라인의 얼굴이 될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 흔한 일이었어?

- 예, 지난 세기를 전부 돌아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는.


바이오로이드의 세계는 신비하구나.

납득을 해야 할까 말까 흔들리는 사령관에게 마리가 가볍게 덧붙여왔지.


- 하물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할지 명확하지 않습니까?

 미혹이 사라진 병사는 더욱 강해지는 법입니다.

- 음. 그런 말을 들으면 조금 부끄러운데.

- 익숙해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제와 존경의 표현 정도로 민망해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마리의 한결같음은 또 무게감이 다르구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칸에게 했던 약속을 스틸라인에게도 지켜주자고 결심하면서 사령관은 상자를 들어올렸음.


- 우물우물... 우왓!! 각하에 마리 대장님?!


막 지급받은 스팸을 까먹으며 돌아다니던 브라우니 중 하나가 거의 즉시 둘을 발견하고 혼비백산,

결과적으로 일대에 패닉이 번지는 사건도 있긴 했지만- 그 정도야, 마리의 말마따나 '흔한' 일이었으니까.


*   *   *


그렇게 해서 23일 새벽을 기해 주요 부대는 전부 돌았으니 이제는 소규모 부대와 만날 차례였지.

머릿수가 적은 만큼 시간을 오래 들이기도 어려웠고, 그 중에서는 '부대'로 엮일 만큼 강한 소속감이 없어서 그냥 개별로 휴가를 즐기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딱딱 짜임새를 맞춰서 방문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페어리와 컴패니언, 베틀메이드가 한 곳에 뭉친 것에는 그 부분을 배려도 - 서로 협력해서 사령관이 체류하는 시간을 늘리려는 계산도 살짝 얹어서 - 있었던 거고.

해서 점심 즈음부터는 그 쪽에 들르기로 한 상태에서, 지금 사령관과 함께하고 있는 건-


- 맙소사. 정말로 도시를 한 바퀴 다 돈 거야?

- 뭐, 실제로 걸어다닌 건 아니니까.

- 그래도 수고가 많네- 알아서 잘 하겠지만, 쉴 때는 쉬어둬?

- 맞아. 급할수록 돌아서 가라는 말도 있잖아. ……어? 그러면 어지러워지는 거 아닌가?


몽구스 팀이었지.

날아다니며 주변을 정찰하던 핀토가 팔로 크게 O자를 그린 것을 신호 삼아, 일행은 도시 밖 - 구체적으로는 온천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음.


사령관이 중간에 끼어있거나 말거나 평소랑 다를 바 없이 허물없이 떠드는 것은 호드와도 비슷했지만, 호드의 그것이 날 것 그대로라는 느낌이었다면 이쪽은 좀 더 또래 친구들의 수다에 가깝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지.

그런 관계로 오가는 이야기도 제비뽑기에서 이겨서 자기들보다 먼저 온천에 들어간 시티 가드에 대한 불평이라거나, 도시에서 찾아낸 패션 용품의 후기, 요즘 취향인 간식 같은 가벼운 것들이 주가 되었음.


들을 건 듣고, 맞장구 칠 건 치고, 시티 가드와의 알력은 만류하는 식으로 대꾸하다 보니 어느새 온천 입구 - 그 사이 그럴듯한 간판까지 내걸린 - 도 코앞이었어.

이제 리제를 픽업하고 페어리 시리즈를 만나러 가면 되려나.

사령관이 앞으로의 예정을 떠올리는 동안, 몽구스 팀은 기민하게 시선을 교환했고.


- 앗. 오는 길에 립글로즈를 하나 빠뜨린 것 같아.

- 라고 하기로 했었지! 안 잊어버렸-읍!

- 야.


실로 무상하게도 드라코의 발언 한 번에 망했지.

그나마 다행인 건 사령관이 그 정도 눈치도 없는 건 아니었다는 걸까.


- 한 바퀴 정도는 돌아볼 시간이 있을 것 같은데.

- …그거 참 고마우신 말씀.


드라코를 연행해가는 친구를 떠나보내고, 미호는 복합적인 이유로 붉어진 얼굴을 한숨과 함께 쓸어 내렸지.


--------------------------------------------------------------------

원작하고 전개가 다르더라도 원작에 요소는 살짝살짝 반영하려고 하다 보니 역시 미호는 빼놓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스빈다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74337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