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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리제는 억울했음.

아니, 그야 자기가 먼저 까불거리면서 선빵(?)을 때렸으니 역습 정도야 얻어맞을 수 있다손 쳐.


- 아읏……?!


하지만 이건 너무 과잉보복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사령관이 집요하게 지분거리고 있었거든.

애당초 리제는 '상'을 주더라도 어디까지나 나중 - 구체적으로 24일 밤까지는 유예 기간이 있을 거라는 예상하고 있었어.

물론 그 예상은 세인트 오르카가 이륙을 끝마치기도 전, 마실 것을 가져다 달라는 사령관의 부탁에 바닐라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사령관이 기다렸다는 듯 귀를 가볍게 깨문 순간 박살났지.


상정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일에 기함하면서 시선을 향했지만 사령관은 역으로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무구함을 가장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고.


그 후로는 그야말로 일방적인 유린이었어.

귓가에 숨을 훅 불어넣거나. 뒷목을 명백한 의도가 느껴지는 움직임으로 쓰다듬거나. 턱을 가볍게 간질이거나, 허벅지 위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리거나.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손을 마주잡았더니 하다못해 손바닥을 긁는 움직임까지도 야해서 꾸준히 대미지를 누적시켰을 정도니, 뭐어.


그나마 보는 눈을 신경 쓸 생각은 있는 건지 객실에 누가 들어오면 적당히 멈춰주긴 하는데, 그런다고 받은 딜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보니 결국 태연한 척 하느라 고생하는 건 리제였지.

그렇다고 할지, 다른 동승자들 눈에는 평범하게 꽁냥거리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이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라비아타, 콘스탄챠, 바닐라, 알렉산드라, 세이렌, 운디네에 이르기까지 - 잘해봐야 살짝 민망해하는 정도고 보통은 묘하게 따뜻한 눈빛을 보낼 뿐.

이 달착지근한 고문의 본질을 알아차려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음.


- 폐하. 페어리의 레아 님으로부터 도착 예정 시간에 대한 문의를 받았습니다만―


딱 한 명. 아르망 빼고.

리제랑 사령관을 번갈아 본 후에 바로 미간을 좁히는 모습에 본래라면 움찔하게 되었을 테지만, 지금의 리제에겐 아르망이야말로 동앗줄이나 다름 없었지.

그래. 원래부터 각방을 쓰라고 지적했던 아르망이라면 이 풍기문란한 상황에 한 소리 하지 않을 리 없어.

그러니까 좀 말려주세요.


그런 간절한 마음을 담은 눈빛을 쏘아보내자, 아르망은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 예측된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을 것이라고 연통을 보내두겠습니다.

 혹시 더 필요할까요?

- ?!


그야말로 통렬하기 그지없게 리제의 기대를 배신했어.

예상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대답에 리제가 어버버거리는 동안, 아르망은 사령관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깊이 고개를 숙인 다음 뒤도 안 보고 물러났어.


- 저기, 당신? 10분이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고-

- 응.


그러면, 뭐. 그 다음이야 뻔하지.


- 그러니까 남김 없이 쓰려고.


아르망 너마저. 라는 원망조차 쏟아지는 사랑에 휩쓸려 떠내려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음.


*   *   *


한편으로, 리제가 한 가지 오해를 해도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어.


- 그리 깊이 걱정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 리제 양 쪽은 어떨까 했는데, 그렇다면 안심이네요.

 레아 양이 뭔가 해 준 걸까요.

- 타인을 편하게 해 주는 타입이니까요, 그 아이.


아르망은 물론이거니와 알렉산드라나 라비아타도 사령관이 리제랑 - 혹은 리제로 - 놀고 있었던 건 아주아주 똑똑히 알고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도 아무 말이 없거나 오히려 부추기는 것에 가깝게 행동한 건 어째서였냐면-

그야 당연히 둘이 다시 찰싹 달라붙어도 별 문제는 없으리라고 판단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어.

애당초 각방을 권한 근본적인 원인은 관계의 빈도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너무 의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으니까 말이지.


-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되면 구태여 취미를 권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싶군요.

- 괜찮을 거예요. 독서를 통해 얻은 교양도 주인님께는 소중한 자산이 될 테니까요.


사령관의 경우에는 이끄는 대원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리제는 가볍게 여기저기 어울리는 정도로 해소된 건 과연 놀라웠지만.


- 결국, 두 분 다 책임감이 강하다는 뜻이겠죠.


리제 님 쪽은 확신하기 어렵지만 - 이라는 뒷말을 아르망이 삼키는 것으로, 셋 사이에서는 잠깐 안도감 섞인 침묵이 흘렀음.


- …그렇긴 해도. 정말로 안 들킬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 주인님은 파악하고 계셨겠죠.

 단순히 리제 양의 반응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 아닐지?

- 조금 짓궂은 구석이 있으시니까요.


동생이 장난끼가 좀 있더라도 귀여워서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라비아타의 첨언에 다른 둘도 고개를 끄덕였음.

저 방문 너머에서 자지러지고 있는 리제가 알았다면 어이가 없다 못해 넋을 놓았을 결론이지만, 아무려면 어떻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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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이 보느라 늦었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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