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부대 바꿔줄까?"


"아니에요 별일은 없어요 그저....."







"티아멧 뭐 만들어?"

"이 디저트에는 슬픈 설이있데"

"응? 뭐가?"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은 오랜 지병이었던 고혈압으로 쓰러졌어 향년 55세였고,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또 한 번의 정권연장을 위해 유신헌법을 통과한 지 한 달 만이었지 많은 인파가 몰린 그의 장례 행렬에는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도 그 뒤를 잇고 있었데. 백야 김좌진 장군의 국가유공자 연금 전액을 매달 '삼애 고아원'이라는 곳에 기탁한 이유였지. 김두한, 그는 일제 말 우리가 주권을 잃었던 식민지 시절부터, 해방 이후 좌·우익의 대립에 이어서, 자유당 부패 정치와 5.16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생애 온 몸을 다 던져 불의와 싸운 김두한의 기일을 잊지않기위해 만든 디저트야"

"그럼....이건...."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아직 김두한에 대한설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김두한은 건국준비위원회의 일원이 되어, 자기 패거리들을 다이너마이트와 둔기만으로 무장시켜 대동한 채 경성의 일본 해군 무관부를 양측 사망자 없이 털고, 일본군 대좌와 벼랑 끝 협상 끝에 일본군들을 무장 해제하고 주둔지에서 퇴거시켰지. 이 때 아리사카 소총 수백 정 등 다량의 무기와 몇 달치 식량, 육군 피복 수백 벌을 노획해 창고에 보관했어. 이 활약으로 건준과 백의사의 주목을 받게되. 

백의사가 뭐냐면 대한민국 해방 이후 미군정기 시기에 있었던 우익 단체 즉 1945년 11월경에 월남한 청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조직되었어 여기서 독립운동가 박기수가 임정국내특수공작대 백의사의 공작자재 요원으로 활동했다고 하지. 중국 국민당의 남의사를 모방해 조직한 전문 테러단체로, 해방 이후 미군정기 시기 혼란한 상황 속에서 수많은 정치인들을 암살하고 각종 테러를 자행했어. 총사령관은 염동진이었고 .백의사는 신익희를 거쳐 김구에 연결돼 있었지. 간부인 이성렬에 의하면 백의사는 김구의 테러조직 소리를 들었는데, 좌익들 사이에서는 이승만의 테러조직은 삼우회, 김구의 테러조직은 백의사라 할 정도라고 해. 임시정부 국내특파원이었던 백창선에 의하면 1948년 만주에도 백의사에서 8명과 함께 갔다 왔다고 하고. 조카로 김종진이 있었어. 최서면은 본명 최중하, 장덕수 암살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감형받았지 아무튼 최서면 연구소장이 이영신에게 보낸 '京高特秘 第3210號 金九 一黨의 愛國團員 檢擧에 關한 件'에 염동진에 대한 자료가 있는데 이것은 훗날 백의사와 염동진에 대한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백의사 출신 인원들은 후일 북파공작경험을 살려 KLO 부대 창설에 합류, 부대 성격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미소공동위원회를 앞두고 원산에 침투해 북한 실상을 파악해 오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백의사 공작원 10명은 출발에 앞서 1946년 2월 25일 김구 선생을 예방하여 윤봉길 의사처럼 총과 수류탄을 들고 태극기 앞에서 김구 선생과 기념촬영을 했다"는 증언이 백의사가 아니라 KLO 부대원 회고담에서 나오기도 한다. 참고로 이 대북 침투단원들 중 백의사 결사대가 바로 김일성, 강양욱, 김책, 최용건 등에 대한 폭탄 테러를 일으킨 그 백의사 단원들이지

아참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맞다 김두한은 이화룡과 시라소니와 만나기는 하나 별 다른 충돌 없이 친분 관계를 유지하게 되지, 이화룡과는 맞붙었을 때 좀 더 유리한 상황에서 황병관의 중재로 싸움을 멈췄고 시라소니와의 만남에서는 시라소니의 강함을 인정하고 싸워봤자 이득이 전혀 없기 때문에 형님으로 모셔, 이때 시라소니 역시도 김두한의 대인배스러움을 인정하고, 그에게 주먹 한 번 제대로 날려보지도 못하고 졌다면서 김두한을 의형제로 받아들이지, 반공 활동을 하며 조직을 운영하던 와중에 절친한 친구인 정진영의 꾀임에 넘어가 좌익에 몸을 담게 되어 조선청년전위대의 전위대장으로 활동하지만, 얼마 안 가서 백의사 단원 박용직과 백의사의 두령 염동진, 김좌진의 의형제인 이규갑, 그리고 유진산에 의해 자신의 아버지 김좌진을 암살한 범인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공산주의에 물든 정진영과 결별해 우익으로 가. 이 떄 '사고야마'라는 야쿠자가 접근하여 대량의 아편을 전매국 창고에서 훔쳐줄 것을 제의하였고, 우미관 패거리들은 청년단 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분 하에, 전매국 창고를 폭탄테러하고 아편을 모조리 훔쳐가버려,  주먹들이 아편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일제강점기가 끝났음에도 우미관 주먹패들이 법과 질서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면이지, 아무튼 우미관 패거리들은 아편을 중국에 팔아넘기고자 했으나, 이를 수사하던 조병옥은 김무옥을 제외한 우미관 패거리들을 잡아들인 뒤, 김두한이 보는 앞에서 아편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려. 조병옥은 우익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법을 대놓고 어기는 행위는 눈감아 줄 수 없었을 뿐더러, 그 아편으로 인해 수 많은 중독자들이 짱깨라고 할지라도들이 발생하는 참사를 막아야 했기 때문이었어.그 후, 백의사에서 활동하면서 국군준비대 습격 사건, 심영 암살미수 사건 등을 터트리며 좌익과 싸워나간다. 이때 김두한의 연이은 공산당에 대한 테러로 보복에 눈이 벌개져 있는 공산당을 피해 잠시 애기보살의 집에 숨어있던중 정진영 패거리에게 습격당해 상하이 조와 김관철이 부상당하고, 아구도 포로로 잡힌 상태에서 정진영의 쏜 총에 머리를 맞고 목숨이 위태로운 적도 있었지만 .좌익이 파업을 주도하자 금강을 쓰러뜨리고 부하들과 함께 조선청년전위대를 밀어 붙여 파업을 막기도 해. 그런데 금강과 싸우기 전에 패배한 쪽이 물러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공산당 일당이 이를 어기고 김두한 별동대와 경찰들에게 총을 난사하기 시작, 교전하는 과정에서 김무옥이 사망했어. 사태가 진정된 후, 부하들이 공산당 간부를 잡아오자, 김영태와 개코는 경찰에게 인계하자며 말렸으나 김두한은 김무옥의 복수에 눈이 뒤집혀 부하들과 함께 해당 간부를 무참히 살해하게 되.이후 정진영의 전위대와 김두한의 대한민청 청년별동대는.....

"미안 티아멧 나 좀있으면 시설에서 자재를 만들어야해서 조금 있다올게"

"....그래 아쉽지만 어쩔수없네"

"다음엔 심영에대해 알려줄께"







"이런 일이 있어서요...."

"그 마음 나도 이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