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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카 호의 근해를 탐색하고 있던 호라이즌 대원들은 탐색을 마치고 다시 오르카 호로 귀환을 하려던 중 전파 탐지기에서 미약한 구조 요청 전파가 감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구조 요청 전파가 감지되었다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보고한 네레이드와 달리 부함장 세이렌은 앳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태도로 구조 요청 신호가 보내지는 장소를 찾을 것을 명령했고 호라이즌 대원들은 귀환을 뒤로 미루고 어느 섬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과 수풀들이 울창한 숲을 형성하고 있는 넓은 섬, 공중을 비행하며 섬을 정찰하던 테티스와 운디네는 섬에서 구조 요청 신호가 아닌 다른 전파들을 감지했다. 

울창한 나무들이 섬을 덮어 하늘에서 내려다봐도 지상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전파 감지기는 지상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었다. 

철충들이었다.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교전이 일어나면 호라이즌 대원들에게 충분히 위험이 될 수 있는 정도의 숫자였다.

운디네는 세이렌에게 섬에 철충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에 오르카 호로 귀환해 사령관에게 보고를 하고 병력을 증강한 연후에 돌아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세이렌은 구조 요청 신호를 감지하고 그 장소에 도착한 이상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고 답했다.

 

 부함장의 뜻에 따라 호라이즌 대원들은 해변에 상륙했다. 세이렌과 네레이드는 숲에 들어가 구조 신호를 보내온 이를 찾고 운디네와 테티스는 공중에서 계속 엄호를 하기로 했다.세이렌을 필두로 네레이드들은 신호를 따라 걸었다. 

높이 솟은 나무의 줄기에서 뻗어 나온 나뭇가지들에 걸려 있는 나뭇잎들은 내리쬐고 있는 햇빛마저 가려 숲은 대낮에도 컴컴했고 바닷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들리는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는 스산한 분위기를 더했다.

운디네와 테티스가 무전기로 송신해주는 안전한 길을 따라 신호의 근원지로 계속 걸어가자 세이렌은 수륙양용 메카 잠수정과 선수용 수영복을 입고 있는 한 푸른 머리카락의 바이오로이드를 발견했다. 

 

 수풀을 흔들리더니 안에서 철충이 아닌 금발에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나타나자 푸른 머리카락의 바이오로이드는 한껏 졸였던 가슴을 놓을 수 있었다.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이 당신이냐는 세이렌의 질문에 푸른 머리카락의 바이오로이드는 오랫동안 기다린 구조대와 마침내 만난 듯 환하게 웃으며 그렇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푸른 머리카락의 바이오로이드는 스스로를 트리아이나라고 소개했다. 인류가 멸망하기 전 삼안, 블랙리버와 함께 가장 거대한 기업으로 손꼽혔던 세 기업 중 하나인 팩스에서 제작된 심해 탐사용 바이오로이드이며 인류가 멸망한 현재는 세상을 누비며 보물을 찾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트리아이나의 자기소개에 세이렌은 우선 이곳을 빠져나가자며 트리아이나의 손을 잡았다. 트리아이나는 순순히 세이렌의 말을 따랐다. 트리아이나는 잠수정에 탑승했고 세이렌은 운디네와 테티스에게 바다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무전으로 물었다. 

하지만 무전기에서 들려온 대답은 세이렌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철충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당장 거기에서 빠져나오라는 운디네의 다급한 무전이 돌아왔다. 

무전이 끝나기도 전에 주변에서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이렌은 곧바로 전투 준비를 명령했다. 출격하기 전 탐색 도중 철충들과의 전투가 불가피할 경우 보고 없이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사령관에게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대원들을 망설임 없이 무기를 전개하고 수풀 너머 있을 철충들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한시라도 빠르고 안전하게 오르카 호로 귀환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세이렌은 속전속결로 바다로 향하는 길을 뚫고 그대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수적인 열세로 인해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테티스와 운디네의 미사일은 호라이즌 대원들이 휩쓸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차마 발사할 상황이 아니었다.

세이렌도 주무장인 대포를 발사하기에는 숲이라는 지형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에 부무장인 대공포를 철충들에게 발사했다. 네레이드가 미니건으로 철충들을 쉬지 않고 공격했지만 서서히 철충들이 총알마저 뚫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위기를 직감한 세이렌은 바로 무전기를 들고 사령관에게 직접 무전을 보냈다. 

 

 “사령관님, 세이렌입니다! 철충들에게 포위당한 것 같습니다! 즉시 구ㅈㅗ...”

 

 하지만 세이렌의 무전은 사령관에게 끝까지 전송되지 못했다. 철충 한 마리가 발사한 미사일이 땅에 떨어져 터졌고 폭발 반동에 날아갈 뻔한 세이렌을 트리아이나가 받아주어 위기를 모면했지만 손에 쥐고 있던 무전기를 놓치고 말았다. 

 

 “부함장님! 철충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요!”

 

 다급히 세이렌을 찾는 네레이드의 말에 세이렌은 빠르게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기 위해 애썼다. 현재 위치는 섬, 공간이 한정되어있는 이 폐쇄된 장소에서 철충들로부터 안전한 곳은 바다뿐이다. 하지만 바다로 가기 위해 길은 철충들이 막고 있었다. 사면초가, 완전히 갇혀 버리고 말았다. 머릿속이 점점 하얘지기 시작했다. 1초가 1분 같은 다급한 상황에 시야가 뿌예졌고 끊이지 않는 총성이 판단을 집중을 방해했다. 

 

 겨우 정신을 다잡고 명령을 내리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할 때, 철충들이 돌연 공격을 멈췄다. 철충들끼리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금속음을 내더니 머리를 돌려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세이렌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적지 않게 당황해 어안이 벙벙해졌을 때 뒤에 서있던 트리아이나가 잠수정 입구를 열고 그녀를 불렀다.

 

 “그 세이렌이라고 했던가? 이리 좀 와줄래?”

 

 트리아이나의 부름에 세이렌은 알겠다며 잠수정으로 다가갔다. 트리아이나는 세이렌에게 잠수정에 설치되어 있는 무전기를 겨누며 누군가 너를 찾고 있다고 말했고 세이렌은 곧바로 무전기에 말을 걸었다.

 

 “여기는 세이렌, 누ㄱㅜ..”

 

 “세이렌 대위, 오르카 호로 돌아가면 나와 둘이서 대화 좀 해야겠군.”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말을 들은 세이렌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 사령관이었다. 실망스러움이 묻어있는 사령관의 말 한 마디에 세이렌은 그저 짧게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무전이 끊어졌다. 트리아이나는 세이렌이 갑자기 풀어 고개를 푹 숙여버리자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그리고 방금 무전을 건 그 남자는 누구인지 물었지만 세이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운디네와 테티스는 갑자기 저 멀리서 구름을 뚫고 소닉붐까지 일으킬 만큼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의문의 슈트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겉보기에도 철판 여러 장을 덧댄듯한 육중한 크기를 자랑하고 날카로운 인상의 페이스 플레이트, 전체적으로 푸른색을 띄는 색상에 곳곳에 붉은 도색이 인상적인 슈트. 

양손과 발에 추진기가 장착되어 있는지 양손과 발바닥 부분에서 끊임없이 부스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 슈트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세이렌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무전기를 입가에 가져가려고 할 때, 누군가가 먼저 운디네에게 무전을 보내왔다. 

테티스에게도 무전이 닿았는지 무전기에 신호가 잡혔다.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운디네와 테티스는 함께 무전기를 귀에 대고 버튼을 눌렀다. 

 

 “여기는 사령관, 지금 너희들의 옆에서 비행하고 있는 슈트에 탑승하고 있다. 세이렌의 구조 요청을 받고 오르카 호에서 초음속으로 날아왔다.”

 

 무전기에서 사령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운디네와 테티스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손에서 무전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지금부터 공중에서 비행을 하고 있는 모든 호라이즌 대원들은 내 지휘를 따른다. 알겠나.”

 

 “아..아..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사령관의 등장에 운디네와 테티스는 대답이 꼬여버렸다. 운디네와 테티스가 기억하기로 분명 사령관이 작전에 참여할 때마다 착용했던 강화외골격은 작전 중 고장 났다. 

그 후로 사령관이 전장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령관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슈트를 입고 섬에 홀로 나타나자 대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사령관이 정비소 대원들에게 새로운 무기를 제작하라는 명령을 내려 만든 슈트일 것이라는 추측이 오갔다.

 

 “그...사령관님, 지원군은 더 오지 않는 건가요?”

 

 “아니, 나 혼자 왔다.”

 

 지금 있는 병력으로는 지상에 있는 철충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운디네는 혹시 지원군이 더 오고 있는지 물었지만 사령관은 짧게 답했다. 

 

 “내 목표는 저 섬에 있는 철충들을 섬멸하는 것이 아닌 아군의 부상자를 최소화시키고 오르카 호로 귀환하는 거다. 철충들과 오랜 시간 교전을 할 생각은 없다.”

 

 사령관은 슈트의 추진기 출력을 조금씩 낮추고 서서히 지상으로 하강했다. 

 

 “잠시 후 지상에 착륙하면 슈트에 작동하고 있는 뇌파 차단 장치를 해제할거다. 다들 전투 준비를 하고 나에게 철충들이 몰려오면 곧바로 미사일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해라.”

 

 사령관을 태우고 있는 슈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에 착륙했다. 사령관이 예고한 대로 슈트가 지상에 닿자 방금까지 감지할 수 없었던 뇌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령관이 슈트에 작동하고 있던 뇌파 차단 장치를 해제시키자 숲속에서 들려오던 총성이 한순간에 그쳤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숲속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총성처럼 귀를 아프게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군대가 진군하는 것 같은 대지를 진동시키는 울림, 철충들이 몰려오는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철충들이 머지않아 숲속에서 쏟아져 나올 것을 감지한 사령관은 슈트에 내재되어 있는 AI 헬퍼에게 말을 걸었다.

 

 “헬퍼, 플라즈마 캐논을 연발 모드로 바꿔라.”

 

 “알겠습니다.”

 

 사령관의 명령에 헬퍼는 대답과 함께 곧바로 캐논을 연발 모드로 바꿨다. 페이스 플레이트의 HUD 화면에 모드 변환이란 문구가 떠오른 것을 확인한 사령관은 플라즈마 레이저 캐논 4문을 전개시키고 양 전완에 내장되어 있는 기관총을 꺼냈다. 

외장형 미사일 포드를 전개하고 모든 미사일들을 숲에 겨누었다. 전투 준비를 마친 사령관은 방금 전 무전을 보낸 트리아이나라는 바이오로이드가 탑승하고 있는 잠수정으로 다시 무전을 보냈다. 무전을 받은 이는 트리아이나였다. 

사령관은 트리아이나에게 세이렌에게 무전기를 넘기라고 말했고 곧 무전기에서 세이렌의 기어가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이렌, 지금쯤이면 철충들의 포위망이 풀렸겠지?”

 

 “예...사령관님.”

 

 “그렇다면 꾸물대지 말고 바로 바다로 튀어가라. 너가 구출한 그 바이오로이드와 함께 오르카 호로 귀환해라.”

 

 “알겠습니다, 사령과ㄴ.”

 

 세이렌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사령관은 먼저 무전을 끊어버렸다. 말을 끝까지 들어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철충들이 진격해오는 소리가 점점 선명해졌고 숲속에서 수풀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서서히 커져갔다.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올 만큼 철충들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암시하는 신호였다. 

 

 “전원 공격 준비는 완료했나?”

 

 ““그럼요!””

 

 “좋다. 숲속에 철충이 한 마리라도 나오는 순간 있는 미사일을 죄다 쏟아부어라.”

 

 사령관의 명령에 공중에 비행하고 있는 호라이즌 대원들이 당차게 대답했다. 페이스 플레이트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흔들리고 있는 수풀 너머에서 달려오고 있을 철충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때 HUD 화면의 레이더가 흔들리는 수풀에서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무언가를 감지했다. 찰나의 순간 HUD 화면 레이더에 개미 때 같은 수의 생명체들이 감지되었다. 

레이저 캐논의 포문에 플라즈마 에너지가 충천되어 레이더에 감지한 생명체를 조준해 발사되었고 미사일 포드에서 미사일이 전탄 발사되었다. 

흔들리는 수풀 속에서 새까만 철충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거대한 폭발음과 불기둥이 솟아올라 숲을 휩쓸었다. 

 

 ---

 

 철충들의 포위가 풀리고 트리아이나와 대원들과 함께 숲을 빠져나가고 있던 세이렌은 멀지 않는 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오고 섬이 진동하기 시작하자 철충들간의 교전이 지금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사령관이 닥터와 포츈이 합작해 만든 슈트를 입고 혼자 왔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세이렌은 자신의 그릇된 판단 때문에 대원들을 철충들과 교전하게 만들었다고 자책했다.

오르카 호로 돌아가 사령관에게 혼날 것이라는 사실에 무서운 것도 있지만 모든 상황이 자신 때문에 일어났다는 자책감이 세이렌을 짓눌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는 트리아이나의 질문에도 세이렌은 한시라도 빨리 섬에서 벗어나 대원들이 퇴각할 수 있도록 수풀을 해치고 해변가를 찾아 달렸다.

 

 총성이 끊이지 않았고 미사일이 발사되어 터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섬이 진동했다. 수풀을 해치며 쉬지 않고 달렸지만 아직까지 숲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땀이 맺혀 이마를 타고 내려와 떨어지고 세일러복이 젖혀 몸에 달라붙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세이렌은 계속 달렸다. 

항상 바다에서 전투를 하던 세이렌은 육지에서 이렇게 빨리 달려본 적이 없었다. 넘어질 수도 있으니 조금 천천히 가라는 네레이드의 말을 계속 들었지만 세이렌은 멈출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순백의 깨끗함을 유지하던 신발도 지금은 흙이 잔뜩 묻어 더러워졌다. 신발에 흙이 들어갔는지 아니면 축축한 흙바닥을 달리고 있어서인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물컹거리고 축축한 감촉이 들었다. 

 

 가장 앞에서 긴 금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달리고 있는 세이렌을 보며 네레이드는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네레이드가 알기로 세이렌의 체력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언제나 기운이 넘쳐 지치는 법이 없는 자신과 달리 세이렌은 여려보이는 겉모습처럼 금방 지쳐버린다. 어째서 철충들의 맹렬한 공격이 갑자기 멈췄는지 그리고 무전을 받은 세이렌이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하게 달리는지는 네레이드로서 알 수 없었지만 달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저쳐 소중한 부함장이 다치지 않으면 좋겠다며 세이렌을 걱정했다.

 

 “악!”

 

 귀신의 장난처럼 세이렌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전력질주를 하다가 넘어진 세이렌은 그대로 땅에 고꾸라졌다. 호라이즌의 제복인 민소매 형태의 옷을 입어 훤히 들어나 있는 세이렌의 팔과 팔꿈치 살이 쓸리면서 완전히 까졌고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부함장님! 괜찮아?!”

 

 세이렌이 넘어지자 네레이드가 곧바로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세이렌의 팔에서 피가 많이 흐르는 것을 본 네레이드는 트리아이나의 잠수정을 두드리며 혹시 붕대처럼 지혈을 할 수 있는 물건이 없는지 물었다. 네레이드의 말에 트리아이나는 곤란한 얼굴로 붕대 같은 것은 없다고 답했다. 네레이드가 옷이라도 찢어 상처를 지혈을 하기 위해 옷소매를 손과 이빨로 물으려고 할 때 세이렌이 괜찮다며 땅을 짚고 일어났다. 

 

 “부함장님...설마 우는 거야?”

 

 “아니에요. 우는 거 아니에요.”

 

 절대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훌쩍이며 양손으로 눈가를 비비는 세이렌의 모습은 말과 전혀 대칭이 되지 않았다. 

 

 “자, 빨리 다시 가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뛰려고 했지만 트라아이나가 잠수정 팔을 움직여 세이렌은 막았다. 트리아이나의 눈에 비치는 세이렌은 모래성이었다.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무너져버릴 것 같은 약한 모래성, 잠수정 팔이 앞을 가로막자 세이렌은 뒤돌아 잠수정 안에 있는 트리아이나와 눈이 마주쳤다.

 

 “장난하지 마세요. 저희는 지금...빨리 가야 한다고요...”

 

 트리아이나는 사납게 요동치는 바다처럼 흔들리고 있는 세이렌의 눈동자를 보았다. 터질 것 같은 감정의 쓰나미를 안간힘을 쓰며 꾹 누르고 있음을 한 눈에 알아봤다. 트리아이나는 세이렌을 가로막고 있는 팔을 치우며 잠수정 입구를 열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타. 유능한 탐험가인 내가 봤을 때 이 이상 뛰었다간 다칠 수도 있어.”

 

 트리아이나는 세이렌에게 잠수정에 올라타라며 손짓을 했다. 

 

 “괜찮아요. 호라이즌의 부함장답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요. 아직 뛸 수 있어요.”

 

 세이렌이 완강하게 거부하며 고집을 부리자 트리아이나는 잠수정 입구를 닫았다. 그리고 세이렌을 잠수정의 양손으로 집어 안았다.

 

 “다들 빨리 바다로 가야 하는 것 같은데! 어서 가자!”

 

 트리아이나는 세이렌이 못 나갈 만큼 적당한 강도로 잠수정 팔을 조작했고 다시 길을 걸었다. 호라이즌 대원들도 트리아이나의 뒤를 따랐다.

 

 ---

 

 “주인님, 세이렌 양과 트리아이나 개체가 숲을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방금 해변에 도착해 바다로 나가 현재 오르카 호로 귀환하고 있습니다.”

 

 “그래?”

 

 헬퍼의 말에 사령관은 운디네에게 무전을 보냈다. 

 

 “여기는 운디네! 사령관님 이제 다른 명령을 내리실 건가요?!”

 

 “숲속에 있던 호라이즌 대원들이 숲을 빠져나가 무사히 바다로 퇴각했다. 전원 퇴각하라.”

 

 “사령관님은 어쩌시려고요?!”

 

 “나는 철충들에게 줄 선물이 남아있어서 나중에 돌아갈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퇴각하겠습니다!”

 

 무전을 종료하고 운디네는 공중에 있는 호라이즌 대원들에게 사령관의 명령을 전달했다. 무전을 받은 호라이즌 대원들은 사령관읜 명령대로 일제히 공격을 멈추고 퇴각했다.

사령관도 공격을 중지하고 발바닥에 있는 추진기를 작동시켜 하늘로 날아올랐다. 무기를 슈트 안에 집어넣고 헬퍼에게 말을 걸었다.

 

 “폭탄창을 열어라 헬퍼, 철충 녀석들에게 시원하게 선물 한 번 뿌리고 가야지.”

 “알겠습니다.”

 

 섬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높이까지 상승한 사령관은 섬을 가로지르며 등부분에 내장돼있는 폭탄창을 열고 초소형 항공 고폭탄을 전부 섬에 투하했다.

폭탄들이 폭탄창에서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나고 몇 초 후 시원한 폭발음이 연속으로 하늘에 울렸다. 불꽃의 소용돌이가 섬을 삼켰고 레이더에 감지되던 철충들의 신호가 한순간에 소멸되었다. 폭탄을 전부 투하한 사령관은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활활 타고 있는 섬을 내려다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성능 확실하군. 이제 돌아가볼까.”

 손바닥 추진기를 재점화시키고 사령관도 오르카 호가 부양하고 있는 장소로 뒤돌아갔다.

 

 ---

 

 오르카 호 함장실, 사령관이 새로운 슈트를 입고 호라이즌 대원들을 구출하러 나갔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오르카 호 전체로 퍼졌다. 

사령관은 승조원들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이 싫어 출격 포드가 아닌 정비소에 있는 포드를 이용해 함 내부로 들어왔고 곧바로 함장실로 돌아왔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사령관은 세이렌이 제 발로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세이렌과 할 말이 많다.

 

 “사령관님, 실례하겠습니다.”

 

 문이 열리면서 세이렌이 함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팔은 왜 그 모양이냐?”

 

 사령관은 세이렌의 양팔에 감겨져 있는 붕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조금 긁힌 거에요. 큰 상처는 아닙니다.”

 

 세이렌은 상처를 숨기고 싶은지 팔을 등 뒤로 옮겨 붕대가 보이지 않게 가렸다. 

 

 “가까이 와라.”

 

 사령관은 손바닥을 까딱하며 세이렌에게 탁자 가까이 올 것을 명령했다. 세이렌은 가슴을 졸이며 탁자 가까이 다가갔다. 
사령관은 탁자에 A4 용지 한 장을 올려 세이렌에게 가까이 밀었다. 용지에는 3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 숫자가 뭔지 알고 있나?”

 

 사령관은 손가락으로 용지를 치며 세이렌에게 물었다. 세이렌은 용지에 적혀 있는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곰곰이 숫자를 보았다. 

3이란 숫자를 곰곰이 보던 중 세이렌은 저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냈다. 정답을 알아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령관에게 입을 열 면목이 사라졌다.

 

 “이번...교전으로 인한 호라이즌 대원들의 부상자 숫자입니다...”

 

 사령관은 용지를 구기고 쓰레기통에 던졌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이렌에게 고개를 들고 자신을 똑바로 보라고 명령했다. 세이렌은 고개를 천천히 들어 겨우 사령관과 눈을 마주쳤다.

실망감, 사령관의 눈에는 그런 감정들이 진하게 담겨져 있었다. 사령관의 비수 같은 날카로운 시선이 세이렌의 가슴을 후볐다. 

세이렌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싶었지만 사령관의 눈은 절대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작전에 나간 20명 호라이즌 대원들 중 3명이 부상을 당했다. 20명 중 운디네와 테티스처럼 숲 외부에 있던 8명을 제외하면 총 12명 중 3명이 부상을 당한 것이지. 이 일에 대해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호라이즌 부함장 세이렌 대위.”

 

 사령관은 모든 바이오로이드를 계급이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 지휘관들과 월례회의를 진행할 때도 계급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자가 바로 사령관이란 남자이다. 하지만 그런 사령관이 계급이나 군번으로 바이오로이드를 호명할 때가 있다. 

특정한 바이오로이드를 꼭 집어 할 말이 있을 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부를 때, 그리고 아주 가끔 사령관으로서 부하인 바이오로이드에게 화를 낼 때.

세이렌은 사령관이 자신을 호명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에 온몸의 근육이 경직됐고 무거운 바위에 깔린 듯한 압박감을 받았다.

 

 “사령관에게 보고 없이 단독 행동, 철충들이 떡하니 있는 섬에 진입해 하지 않아도 되는 교전을 발생시키고 부상자를 유발, 내가 없었다면 구조 요청을 보낸 바이오로이드와 사이좋게 다 죽을 뻔했군.”

 

 “무적의 용의 전속부관이었다는 네가 이런 실수를 할 줄이야.”

 

 무적의 용, 이 한 단어가 세이렌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자책감과 부끄러움으로 감정이 복받쳐 섬에서 빠져나왔을 때부터 참았던 눈물이 터질 뻔했지만 더 이상 사령관에게 추대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눈물을 참았다.

사령관은 절대 화를 낼 때 고함을 치지 않는다. 고함을 치면 감정에 휩쓸려 낼 필요가 없는 성질까지 부리기 때문이다. 오로지 사실에 근거한 책임과 잘못을 문책하는 것 그것이 사령관의 방식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령관의 이런 방식은 상대방의 마음을 더욱 난도질했다. 

 

 “나는 너에게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교전을 허락한 것이지 단독 행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았다. 나는 너에게 탐색 명령을 내렸지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낸 이를 구출하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너는 아무런 보고도 없이 구조 요청 신호를 따라갔더군.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네...맞습니다...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세이렌은 사령관의 말에 그저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녀에게 다른 말을 할 권한은 없었다. 이 사태의 원인이 세이렌 본인이기 때문이다.

자책감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는지 세이렌은 작게 훌쩍거렸다. 세이렌의 반응에 이제는 몰아붙이지 않고 달래줄 때라고 사령관은 판단했다.

 

 사령관은 세이렌에게 탁자를 지나 자신에게 오라고 손가락을 까딱했다. 사령관의 손짓에 세이렌은 탁자를 돌아 사령관 앞에 섰다. 사령관은 콘스탄챠가 업무를 보좌할 때 사용하는 의자를 꺼내 세이렌에게 앉으라고 했다.

세이렌은 의자에 다소곳이 앉았고 사령관은 날카롭게 노려보던 방금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눈으로 세이렌에게 말했다.

 

 “세이렌, 네가 무적의 용의 부관으로서 오래 전 갑자기 대장을 잃고 바다로 흩어져 많은 부하들을 잃었고 그 때문에 구조 요청 신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이번 일도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낸 바이오로이드를 구출하겠다는 좋은 의도로 했다는 것도 안다.”

 

 “네가 오르카 호에 합류한 날, 나는 네가 무적의 용의 부관이었다는 것만으로 너를 지휘관 대리로서 호라이즌을 통솔하도록 했다. 내가 비록 마리나 아스널처럼 무적의 용과 대적해본 적은 없지만 그런 지휘관들을 통솔했던 지휘관이 바로 무적의 용이었기에 옆에서 보좌를 했던 너의 능력을 믿은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번 일로 너에 대한 믿음과 호라이즌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이번 일을 거울 삼아 반복되지 않도록 해라. 알겠나?”

 

 사령관은 세이렌의 부드러운 금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이렌은 블랙리버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를 통솔했던 무적의 용의 전속부관이었던 바이오로이드이다. 

인류가 멸망하고 알 수 없는 연유로 대장을 잃어 혼비백산으로 흩어진 호라이즌 대원들을 규합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오르카 호에 합류할 만큼 그녀는 유능한 군인이다.

그런 세이렌이라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사령관은 믿었다.

 

 “예 사령관님...”

 

 “그래, 이제 가서 너가 구출한 트리아이나라는 바이오로이드를 불러와라. 그 녀석에게 물을 것이 있다.”

 

 세이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함장실을 나가기 전 다시 한 번 경례를 하고 세이렌은 함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몇 분 후, 함장실 문이 열리고 선수용 수영복을 입은 바이오로이드, 트리아이나가 들어왔다.

 

 “안녕! 당신이 사령관님이라고 불리는 인간님이지? 나는 심해의 탐험가 트리아이나야!”

 

 트리아이나가 활기차게 사령관에게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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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등 하고 싶은데 나 대신 1등 해줄 사람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