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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 …….


잠에서 깬 리제는 자기가 여전히 사령관의 품 안에 들어가 있다는 의외의 사실에 눈을 깜빡였음.

아닌 게 아니라, 압도적인 전력차와 살인적인 사령관의 업무량 때문에라도 함께 밤을 보낸 다음 일어날 즈음에 사령관은 자리를 비우는 게 보통이었거든.

그야말로 2박 3일을 야스만 한 신혼 정도가 예외였을까.

거기에 지난 밤은 중파가 아니라 대파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격하게 - 다소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리제는 자기가 입으로든 마음 속으로든 살려달라는 애원을 했으리라는 것에 사흘치 식사도 걸 수 있었음 - 당했을 텐데, 어째 몸이 생각보다 가볍네?


혹시 의식을 잃은 사이 자기도 모르는 힘에 각성해서 사악한 사령관과의 결전에 승리하고야 만 것일-


- 잘 잤어?


리는 없지, 응.

또렷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걸 보면 승패는 분명했음.

휴가 기간이라고 그냥 기다려준 거려나. 그럼 나도 응석이나 부려야지.

그렇게 꾸물거리면서 가슴팍에 파고들었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옆얼굴을 부드럽게 쓸어주는 손길에 절로 고롱거리는 소리가 나왔음.


아, 좋다.

그렇게 찰싹 달라붙은 상태로, 두 명은 한껏 게으름을 피웠음.

대화조차 필요 없을 만큼 평화로운 시간이었지.


*   *   *


―그래서, 리제의 몸이 묘하게 가뿐했던 비밀이라면.


- 그냥 조금 더 신경써야겠다 싶어서.


이런 상식을 초월한 대답이 나오는 바람에 리제는 머리 위에 물음표 밖에 띄울 수 밖에 없었음.

내가 이렇게까지는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진짜 개처럼 당했거든요?

거기의 어디에 신경의 ㅅ자가 들어갈 여지가 있다는 거지?


근데 또 막상 따지려니 컨디션이 좋은 건 사실이라 할 말이 없네.

이게 그 방중술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개쩌는 하렘물 주인공이 되려면 그 정도는 기본으로 체득해야 하는 걸까?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리제는 몇 번이고 머리를 휘휘 내저었고, 사령관은 그걸 보면서 마냥 즐겁게 웃었음.


*   *   *


그렇게 날짜는 어느덧 24일.

오전에는 개별 활동 중인 대원들과 만나고, 오후부턴 D-엔터테인먼트 / 코헤이 교단에 합류해 크리스마스 당일에 있을 연회를 점검하는 식으로 빡빡한 일정이 남아있었던지라 사령관은 아침 식사 후에는 아쉬워하면서도 나머지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비웠음.

리제는 리제대로 다시 온천 관리로 돌아갈 겸, 페어리의 자매들과 함께 날아서 이동하게 되었고.


그거야 뭐, 좋다손 쳐.

치는데.


- ~~

- …….


왜 자기도 아니고 레아가 이렇게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걸까?

비행 중이 아니었으면 자길 들어서 둥기둥기라도 해줄 것 같은 기세라 솔직히 리제로서는 부담스러울 정도였지.

신혼부부가 친정에 묵은 다음 날 눈치를 보게 되는 것과도 좀 다른 맥락인 것 같고.

그나마 나머지 페어리들은 레아의 기분이 좋다는 사실에 함께 기뻐할 만큼 순수한 게 다행… 인지 모르겠네.


원작 리제 쪽은 불만스러운듯 입을 삐죽 - 아마 사령관이 봤으면 자기가 가끔 짓는 것과 똑같다며 박장대소했을 - 내밀고 있긴 했지만, 여차하면 밤일 이야기로 쫓아내면 되겠지.


아무튼 리제의 찜찜함을 제외한다면 페어리 시리즈는 순탄하기 그지없게 온천에 도착했고,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다 같이 가장 큰 욕탕을 사용하게 되었음.


연상조끼리 분담해서 아쿠아 들을 붙잡아 씻겨주고 - 좌우좌 덕분에 목욕탕에서 아이들을 다루는 주의사항을 숙지하게 된 것은 천만의 다행이었지만, 그 때와는 달리 몸에 수건을 신경 써서 둘러야 했기 때문에 좀 다른 방향으로 불편했어 - 돌아가며 탕에 들어가 있거나 몸을 씻거나 어느샌가 구비된 다른 편의시설을 이용하거나 하다 보니 시간 또 정신없이 지나갔지.


그 막바지 즈음에는 레아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도 있었고.

구체적으로는 안마의자에서.


- 아, 으아아…….

- 하아아…….


나란히 앉아서 얼빠진 감탄사를 내고 있는 꼴이 퍽 우습긴 했지만, 그만큼 분위기가 이완되었으니 좋다고 할까.

아쿠아 중 누구는 어떤 물장난을 좋아하더라, 다프네끼리 리본 색을 바꿔보려고 하고 있더라 같은 이야기를 마냥 하다가, 리제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음.


- 너무 연장자 같네요, 우리들.


아차.

말한 본인이 깜짝 놀랐는데, 의외로 레아는 가볍게 웃어넘겼음.


- 그럴 땐 언니답다고 하는 거야.

- 그럼 제가 둘째인가요?

- 직위나 연식을 생각하면 그쪽이 장녀여야 하지 않을까요, 리제 언니?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에 서로 웃기도 하고.


- 어머, 내 정신 좀 봐. 조금 있으면 배틀 메이드의 자매들이 오겠네.


드론들을 보내 페어리를 소집하는 레아를 확인하고, 리제도 슬슬 일로 돌아가기로 했음.


- 엘리.

- 네?

- 정말로, 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 …감사합니다?


다소 맥락을 알 수 없는 이야기라 아리송해하며 대답했는데, 레아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리제를 가볍게 안았다 풀어줬음.

자매라는 느낌은 여전히 없지만- 그래도 이런 취급은 쑥쓰러울지언정 싫지는 않아서 - 리제는 괜히 평소보다 조금 오래 레아를 배웅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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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인트 오르카도 후반부이빈다.


레아 쪽 이야기는 초코여왕 관련 밑밥이긴 한데 언제 풀릴지는 모르겠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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