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3316232

이전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7746964


--------------------------------------------------------------------


번쩍 들어올려지는 거야 익숙하지만, 테이블 위에 올라간 건 또 처음이네.

차갑고 단단한 유리의 감각에 리제는 잠깐 진저리를 쳤음.

침대가 아니라 테이블에 올린 건 복장 컨셉 존중해서인가?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자신의 머리 양 옆을 팔로 짚으면서 그림자를 드리운 사령관의 눈빛을 본 순간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이 남자, 침대까지 갈 여유가 없구나.

평소였다면 그 후에 있을 처참할 만큼 일방적인 패배를 직감하고 - 설령 그것이 아무리 기분 좋다고 해도 - 살짝이나마 굳었겠지만, 오늘의 리제는 그 대신 승리에 도취한 미소를 지었음.


아무리 조급해졌다고 해도 사령관이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는 없었지.

마주친 시선에 담긴 의문에, 리제는 관대하게 설명해주기로 했음.


- 당신도 제가 그랬던 만큼은 조급해진 것 같아서.


그러니까, 사령관의 방치 플레이에 대한 리제의 '복수'라는 게 이거였던 거야.

어차피 정직하게 붙어서 이기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니, 자기가 애태운 것의 십분지 일만이라도 느껴봐라! 라는 거였지.

음. 정말로 완벽하게 멋져.


그렇게 내심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는데, 사령관은 잠깐 놀란 것 같더니 이내 장난기 어린 - 밤일에서는 1급 경보를 의미하는 - 표정을 지었음.


- 그렇게나 하고 싶었어?


여기서 수치 플레이냐.

하여튼 한 마디도 순순히 져 주지를 않아.

골이 나서 입을 삐죽이려고 했더니 예상했다는 듯 볼이나 목덜미에 키스가 퍼부어지는 바람에 그것조차 실패한지라, 리제는 그냥 대놓고 대답하기로 했음.


- …일 주일이나 안 하다가 달아오르게 만들고 내버려두면 그야 하고 싶죠.


미쳤나 봐. 일 주일 '이나'래.

대답하고 나니 퍼뜩 충격도 받았지만 사령관은 리제가 마냥 그쪽에 대해 고찰하게 둘 생각이 없었지.


- 그래서 이렇게까지 준비한 거야?

- ……네.


솔-직히 말해서, 결과물만 보면 그럴듯한 이벤트지만 준비 과정은 참으로 난잡했지.

높이가 맞는 격벽을 옮겨와서 상자 모양을 만들고, 천을 덮고, 커다란 리본이랑 쪽지를 얹고, 야시시한 속옷 (※ 의류 기능 없음)을 골라 입은 다음 빈 곳에 크림을 바르고, 마지막으로 자기도 '포장'을 마치고.

그 와중에 처덕처덕 발린 느낌이 그렇게 편하냐- 하면 그럴 리도 없으니.

사령관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었다면 아마 틀림없이 중간에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그만두지 않았을까?


아니, 지금도 살짝 후회되는 것도 같은데.


설명하기 힘든 덧없는 기분에 리제는 고개를 젖혀서 창 너머의 야경을 바라보려다가-


- 으으응?!


일말의 예고 없이 가슴에 달라붙은 사령관의 행동에 퍼드득 몸을 떨 수 밖에 없었음.


- 아, 당, 신. 조금만 천천히-이잇?!


그러는 동안에도 사령관은 그야말로 한입에 전부 먹어치울 생각인 양 집요하게 젖무덤을 핥아내렸고.

반면 귀에서부터 목선을 따라 내려오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스치듯 가벼워서, 리제는 그 대비되는 자극만으로도 가볍게 가버리고야 말았음.


혼란 섞인 쾌락에 리제가 어쩔 줄 몰라할 즈음에서야, 사령관은 가슴에서 얼굴을 떼어서 귓가에 속삭였음.


- 네가 그랬던 만큼은 조급해지길 바란다고 했지.

 …좀 과하게 성공했다고 생각해.


평소보다도 낮고 울리는 - 마치 짐승이 그르렁거리는 것 같은 소리.

그제야 리제는 자신의 계획이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음.


- 지금도 미칠 것 같거든.


사령관이 지닌 초인적인 밤일 재능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주제에, 고작 각방 처분을 받을 정도였다는 이유로 그 정도가 바닥일 거라고 지레짐작하다니.


- 포, 포장은 뜯어야 하지 않을까…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시간벌이를 위해 포장-이런저런 궁리 끝에 리본으로 묶는 것에 성공한 자신의 손목과 발목-을 지적해 봤지만


- ….

- 아, 거기! 읏, 으응……!


사령관의 취향을 생각해 보면 포장이 아니라 맞춤해 나온 것에 가깝지?

지금 상태 그대로 뭘 더하고 뺄 것도 없을 정도로.


그렇게 되어서.

야스를 식사로 치환하는 거야 이제 와서는 비유라고 하기도 어려울 만큼 식상한 표현이지만.

굳이 케이크로 분한 상황을 고려해서 써먹어 보자면-


리제는 사령관한테 홀랑 먹히고야 말았음.

그야말로 걸신들린 기세로.

전채부터 후식까지, 풀코스로.


--------------------------------------------------------------------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7885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