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 큰일났슈. 이걸 워쩐댜"


조금은 이른 아침, 블랙웜의 목소리가 사령관실 문 너머로 들려온다. 


"하아암...벌써 일어날 시간인가? 금방 나갈게"


잠결에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사령관은 늘상 있는 아침인사로 생각하고,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준다.


"일어나셨슈?아침에 일어났드만 주댕이에서 요래 이상한 소리가 자꾸 나오는디, 환장하겄슈. 이를 우째유"


블랙웜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하소연하듯 괴상한 말투를 늘어놓았다. 생전 처음 듣는 특이한 어조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잠결에 잘못 들은거라

생각한 사령관은 그녀에게 다시 한번 천천히 말해달라 부탁했고, 우물쭈물거리던 블랙웜은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긍께, 시방 주디에서 나오는기 거시기 혀가지고 거시기혀유. 하이고, 내가 몬살겠네. 와이런댜"


생각처럼 나오지 않는 말에 블랙웜은 답답한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줄 몰라했다.


"언어모듈 고장인가? 우선 닥터한테 찾아가보자"


사령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를 달랜 뒤 우선 닥터가 있는 실험실로 향했다. 그리고 실험실로 가는 도중 이제 막 기상을 마친 선원들과

마주치게 되었고, 그녀들 또한 블랙웜과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단 사실을 눈치챘다.


"한저옵서예, 사령관님"


"으따, 아침부터 으델 그리 싸돌아댕기는교"


"사령관 동무, 오랜만입네다. 요즘 통 못봤었는디 이래 보니 참말로 감회가 새롭습네다!"


서로 말하는 말투는 달랐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저런 말투는 태어나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단 것이었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않은 이들에게서 간신히 빠져나온 사령관은 블랙웜과 함께 간신히 닥터의 실험실에 도착하게 되었다.


"어서와, 오빠. 생각보다 늦었네"


"너는 괜찮은거니?"


"아니, 안괜찮아"


실험실에 도착하자, 닥터는 자신보다 더 큰 안락의자에 앉아 사령관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이 헤괴망측한 말투에 감염되었다 이야기 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평소와는 전혀 다름없는 것처럼 들렸다.


"안괜찮다니, 평소랑 다를게 없는데?"


"좀 설명이 필요할것같네. 평소라면 자연스럽게 머리에서 신호를 보내 성대를 거쳐 입으로 목소리가 나오는건데, 지금은 중간단계에서 직접적으로

의식하며 이야기 하고 있어.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요래코롬 쫌만 방심을 혀면 주댕이에서 요런 소리가 나온다 이 말이여"


닥터는 시범을 보인 뒤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음....무슨 소린지 대충 알겠네, 그럼 선원들 전원이 지금 같은 상황이란건가?"


"그렇지,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원인을 금방 찾을 수 있었어. 물론, 나니까 가능한거였지만"


"그게 참말이유? 그러믄 고치는것도 금방 가능한겨?"


"고치는건 가능한데....쉽진 않을거야. 이건 멸망전 사용됐던 나랏말싸미 2.0이란 악성 교란프로그램의 소행이야. 주 목적은 적군의 통신교란을 유발해 내부부터 마비시키는 공작용으로 개발되었어. 제1차 연합작전 당시 연합군 측에서 사용해 잠깐동안 재미를 봤는데....뭐, 대기업들 상대로 얼마나 오래 갔겠어? 변수채널만 공략하면 해결되는 문제였어서 금방 사장됐지"


"해결법이 정해져있긴한가보네, 그러면 그 변수채널만 처리하면 된다는거지?"


"맞아, 그런데"


"그런데?"


닥터는 난처한듯 말을 머뭇거렸고, 그녀의 설명을 들은 뒤에야 왜 그렇게 머뭇거린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선 1차 신호의 발생지는 알레스카. 즉, 오메가가 교란신호를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당장에 알레스카 기지를 급습해서 1차 근원지를 없에는게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는 구 연합군 본부에 있는 나랏말싸미 2.0을 회수해오는거지"


"회수? 폭격팀을 투입해서 전역을 쓸어버리면 안전하게 파괴가 가능할것같은데. 굳이 회수하려는 이유가 있어?"


"오빠 말대로 폭격을 해버리면 작동은 중단하겠지. 근데, 그 한 곳만 파괴한다고 깔끔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닐거같아.

신호를 발생시키는 원인제공자를 저지하던지, 아니면 앞으로 가동될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의 안티코드를 만들어 대비책을 마련할 것인지.

이 두가지가 우리한테 있어선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신호를 보내는 쪽을 없에는게 아닌 이상, 이런 일은 몇번이고 더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

단순하게 파괴만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선택지는 2가지네. 오메가를 쫒을지, 아니면 연합군 본부를 탐색할지"


"맞아, 하지만 오빠도 잘 알지? 연합군 본부가 어떤 곳인지"


"알고는....있지"


연합군은 한때 AGS를 주력으로 내세운 화력전을 중시했었고, 그런 연합군의 본부라면 당연하게도 최후의 보루를 지키기 위한 최강의 AGS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곳이다. 그말은 즉, 그 곳엔 어떤 형태로 변형되었는지 상상조차 되지않는 철충들이 득실거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를 우짠댜....이를 우쨔"


그녀의 설명을 들은 블랙웜은 어쩔줄 몰라하며 발을 동동 굴렸다. 연합군 본부를 탐색하는 것도 어려운 임무였지만, 그렇다고 알레스카에 있는 오메가를

찾는 것도 그렇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메가가 준비해 둔 병력이 어느정도 수준인지, 그리고 알레스카의 어디에 숨어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선원들을 임무에 투입하는 것 또한 녹록치 않은 상황, 2가지 중 가장 덜 손실을 입을만한 선택지를 골라야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령관이 고민하던 중, 기다렸다는 듯이 연구실 문이 열리며 3명의 선원이 들어왔다.


"우리 싸령관님, 무신 고민이 그래 많아가꼬 몰골이 죽을상입니까? 이 쏘완이가 다 해결해줄터이 말 해보이소~"


"이 여시같은 계집아가 어서 선수를 칠라그라노. 지도 다 듣고 있었지라. 정보하믄 알파, 이 레모네이도 아잉교"


"멍....멍멍"


"아니, 이터니티 넌 왜 개처럼 짖니"


"전에 주인님께서 지보고 개가 되라 하셨잖슈. 그래서....이래 되았심다, 멍"


닥터의 연구실을 방문한 이들은 다름아닌 소완과 레모네이드 그리고 이터니티였다.


"마침 잘 왔네, 언니들 설명은 들었죠?"


그녀들이 등장하자 닥터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었고, 세 사람은 해맑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잠깐만. 저 셋으로 뭘 어떻게 하려고?"


"알레스카를 수색하던지, 아니면 연합군 본부를 탐색하던지. 그 둘 중 하나지"


"저...셋으로?"


"오빠, 나 못믿어?"


전혀 예상밖의 조합이 당황스러웠지만, 닥터는 오히려 자신을 안믿어주는 사령관을 노려보며 되물었다.


"하이고~싸령관님이 내를 이래 걱정해가꼬 우짜스까. 요래 여리여리한 가시나가 나가가꼬 다칠까봐 조래 걱정을 해주시니 이를 우짜면 좋을꼬"


"지금 뭐라그랬슈, 우리 주인님이 시방 그짝을 걱정한다 한겨 지금?"


"나...나가 뭐 틀린말 했남? 그짝이야말로 개 같은 꼬라지 하고 와가꼬 꼬랑지나 살랑살랑 흔들믄서 무신"


"거기....일로 와보쇼"


"와?"


"이 관짝 보이쥬? 여 들어가나 안들어가나 함 재볼라꼬 그라니 일로 좀 와보소"


"다들 그만하고, 하....장난치려고 온거면 돌아가줘. 이번 작전은 솔직히 너희들만으론 무리야"


사령관이 진지하게 그녀들을 만류하자, 세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 사령관의 말에 박장대소했다.


"아이고 마, 우리 주인님이 조래 농담을 잘하셔가꼬, 이 레모네이도 배꼽이 저짝으루 튀어부렸심다. 아이고, 배야"


"농담할 기분 아냐, 다들....왜 그러는거야. 사람 무안하게"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한 세 사람을 보며 사령관은 답답해했다. 하지만, 그런 사령관을 답답하게 보는 이는 다름아닌 닥터였다.


"오빠, 내가 뭐라 그랬어"


"나 못믿겠냐고 했지"


"내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저 셋을 불렀을거같아?"


닥터는 테블릿 피씨에 기록되어있는 세 사람의 전투기록이 촬영된 영상을 사령관에게 보여주었고, 이를 본 사령관은 더이상 그녀들의 실력에

토를 달지 않았다.


닥터가 보여준 영상에서 세 사람은 익스큐셔너라 불리는 철충의 처형자를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놀고 있었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파괴된 익스큐셔너를 보며 농담을 주고 받는 셋을 보자 사령관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했다.


"참고로 지는 추운데는 가기 싫심다~선선한 바람이나 맞으믄서 피끄닉이나 좀 다녀올랍니다"


소완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식칼을 꺼내 혀로 핥짝거리며 베시시 웃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