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 마음같아서는 오르카 호에서 열심히 복무하고 싶었지만 명령이 내려온 걸 어떡하냐."


이프리트-225가 깝죽대며 말을 하였다.

한 시간 전에 제조되어 오르카 호에 대한 지식을 안지 얼마되지 않은 이 개체는 분해 명령을 받고 곧바로 오르카 호를 나가게 될 운명이었다.

그렇기에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박격포와 헤어지게 된 이프리트의 입꼬리는 눈끝에 닿을 정도로 올라갔다.


"아유, 먼저 온 브라우니도 레프리콘도, 같은 동기인 775도 미안하게 됐어. 난 먼저 간다."


방금 들어온 생활관에는 브라우니, 레프리콘 등의 스틸라인 인원들이 있었으며, 같은 개체인 이프리트-775 또한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프리트를 향해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말을 할 수 없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을 보며 이프리트는 또한번 입을 털었다.


"아무튼 사령관님 잘 지키고, 난 너희들을 위해 요안나 아일랜드에서 열심히 보급품을 만들게."


이후 몇마디 더 하려는 순간 생활관에 임펫 상사가 들어왔다.

임펫 상사는 이프리트-225를 지목하였고, 225는 때가 되었다는 듯이 일어나며 십분밖에 보지 않은 후임들에게 인사를 나누었다.


임펫과 동행하며 이프리트는 오르카 호에서 나왔다.

자신과 똑같이 분해되어 요안나 아일랜드로 가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네레이드 개체의 지휘 하에 작은 선박에 탄 후 오르카 호를 떠났다.

항해는 반나절동안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요안나 아일랜드를 직접 보고자 생각하며 바다를 쳐다보던 이프리트였지만

이내 금새 질려서 다른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잠에 들고 말았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한 선박이 멈추고 네레이드가 대기실에서 잠든 자매들을 다시 깨웠다.

비몽사몽 잠에서 깬 이프리트는 창 밖을 보자 그는 몸이 굳고 말았다.

그리고는 네레이드에게 혹시 요안나 아일랜드는 경유해서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네레이드가 아니라고 하자, 이프리트는 오르카 호를 떠나기 직전의 거만한 태도가 싹 사라지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무적의 용 소속의 함선을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모두들 안녕하세요!"


활기찬 목소리가 이프리트의 귀에 들린 동시에 자매들의 경례소리가 들렸다.

이프리트 또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칼같이 상대방에게 경례를 하였다.

경례를 받자 기분이 좋은 듯 목소리의 주인인 세이렌은 말을 하였다.


"역시 스틸라인 자매분들이라 그런가, 모두들 군기가 바싹 들어서 좋네요!

그렇지만 저희 함선은 그렇게까지 빡빡하지 않으니까 편하게 대해주세요!"


이프리트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같이 온 자매들이 전부 스틸라인 소속의 바이오로이드들 뿐이었다.

랭크에 상관없이 분해되기로 예정되어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 하나같이 스틸라인 소속의 자매들 뿐이었다.


"아무튼 다시한번 수병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잠시 후에 저희 선박에 대한 간단한 설명 이후 각자의 소속에 맞게 장비를 지급해드릴게요!"


이프리트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세이렌은 이프리트의 손을 보고 질문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하였다.


"저... 죄송한데... 저희는 분해되는 자매들인데 괜찮나요...?"


"분해요? 자매분들의 장비는 오르카호에서 일찌감찌 분해했잖아요."


세이렌은 당황한 듯이 말을 하였다.

그러다가 네레이드가 옆에서 귓속말로 세이렌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더니, 세이렌의 얼굴은 다시 풀리고 이프리트에게 말했다.


"아, 이프리트 자매분은 제조되자마자 여기로 오신거구나!"


세이렌은 양손을 허리에 받치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설명을 하였다.


"이프리트 자매분은 분해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안나 아일랜드 말고도 저희 저항군의 인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저희가 소속된 무적의 용님 산하 함대도 그렇고요.

때문에 원활한 관리를 위해서는 적재적소의 인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자매분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분해의 개념은 바이오로이드의 장비를 분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투 모듈은 그대로 남아있죠.

그래서 여기 자매분들이 여기 있는 것이고, 다시 말해 사령관님의 철저한 인력 관리로 오게 된 것이다 이 말입니다!"


이프리트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다시한번 질문을 하였다.


"그...그럼 저희가 여기 온 이유는..."


"물론 자매분들의 훌륭한 전투모듈 때문이죠!

스틸라인의 전투 모듈은 예로부터 저희에게 있어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모자란 해군 인력을 메꾸기 위해서는 군대와 무관한 자매보다는 그래도 군용으로 태어난 자매가 더 좋지 않겠어요?"


이프리트는 쓰러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태어난지 하루도 안 됐지만 그는 그토록 원하던 전역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 다가온 것은,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지옥의 해군 생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특히 이번에 온 이프리트 자매,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해군 생활에 있어서 많은 기대가 돼요."


생활관에서 225를 바라보던 자매들의 표정은 부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정에 가까운, 도살되는 것도 모르고 최후의 만찬을 맛있게 먹는 돼지를 바라보는 듯한...


"그 외에 또 질문은 없나요?"


이프리트를 제외한 자매들은 일제히 없다고 외쳤다.


"225 자매분은?"


이프리트 또한 없다고 대답하였다.

225는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럼, 다시한번 저희 함선에 복무하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


2


"...해서 마지막에 애프터쉐이브를 발라주면 면도가 끝나요."


보련이 메이드들에게 설명하였다.

보련의 앞에는 사령관의 얼굴을 쏙 닮은 실리콘 덩어리가 있었다.

닥터의 협력 하에 얻은 이 실리콘 머리는 마치 실사람처럼 수염이 자라있었으며, 방금 보련의 면도로 인해 깔끔하게 털이 밀려있다.


"다시금 말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령관님의 피부에요!

아무리 면도를 잘해도 피부에 상처가 나버리면 안 한 것만 못하니까요."


보련의 수업을 받는 메이드들의 앞에는 보련과 똑같이 실리콘 머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일자면도기, 쉐이빙 소프, 브러쉬 등의 면도 용품이 비치돼있었다.

보련은 휴대용 블랙라이트 조명을 키고 실리콘 머리를 비췄다.

깔끔하게 밀린 부위에서 작은 점만한 흔적이 한 두 군데 보였다.


"이번에 마련된 쉐이빙 소프를 통해 실리콘에 상처가 난 여부를 알 수 있으니까 이제 자매분들도 다같이 연습해보도록 합시다."


보련이 말을 마치자 메이드들이 일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미리 준비된 스팀타올로 얼굴을 감싼다.

브러쉬의 물기를 빼고 쉐이빙 볼에서 거품을 만든다.

털이 난 부위에 폼을 정성스레 바르고 면도기를 든다....


보련은 돌아다니며 메이드 자매들이 면도를 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히루메 언니! 그렇게 면도날을 세워버리면 면도가 아니라 피부를 베는 거에요!"


끙끙대던 히루메가 깜짝 놀라며 보련을 쳐다보았다.

보련은 면도날을 대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친 후에 자리를 옮겼다.


"앨리스 언니는 빠르게 해서 좋은데 그만큼 털을 놓치는게 많네요."


재빠르게 끝낸 앨리스의 실리콘을 만지작거리며 보련이 말했다.

앨리스는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블랙라이트로 면도 부위에 수많은 상처들이 보이자 이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바닐라 언니는 다 좋은데 쉐이빙 폼이 조금 묽은 것 같아요.

여기 거품이 목 밑까지 흘러내려온게 보이시죠?"


바닐라는 머쓱해하며 쉐이빙 브러쉬를 만지작거렸다.


"금란 언니는 잘했어요! 그 정도로 미세하게 나온 털은 신경 안 써도 되니까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보련은 계속해서 자신의 실리콘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해하는 금란을 위로하였다.

이후에도 다른 자매들의 면도를 살펴본 후에 수업을 마무리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굳이 자매 언니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나싶어요.

전 일개 바버일 뿐인데 어떻게 메이드 언니들에게 뭘 가르치겠어요.

근데도 제 말을 잘 들어주고 따라줘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수업을 주최한 것은 다름 아니라 사령관이었다.

보련 합류 후에 사령관이 그에게 면도를 받자 매우 편안해서 좋았다며, 다른 자매들에게 면도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 것이었다.


"모두들 훌륭하게 면도를 잘 해주셔서 고맙고요.

또... 음... 이번이 제 첫 수업이라 미숙한 점이 많았는데도 잘 따라와줘서 고맙고요...."


가르치는 입장은 처음이라 어떻게 수업을 마무리 지을지 몰라서 당황하던 보련이 이내 말을 흐리면서 당황하자 메이드들은 귀엽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그것을 본 보련은 부끄러운 듯이 황금히 수업을 끝마쳤다.


"아무튼 이걸로 보련의 면도 수업은 마치겠습니다!"





"네? 이번엔 컴패니언 자매들 보고 가르쳐 달라고요?"


...


3


"오늘도 내 한탄을 들어줘서 고맙네."


칸이 소파 위에 누운 채 다프네에게 이야기했다.


"매번 이렇게 찾아오는 것도 염치 없는데, 나중에 뭔가 보답받고 싶은 거라도 있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자매들의 심리 상담 또한 저희 의료인들의 업무니까요."


의자에 앉아있는 다프네는 칸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본 칸은 안심이 됐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언제 와도 한산하구나."

"대부분의 자매분들은 여기가 아니라 코헤이교의 고해성사실로 가니까요."

"후후, 사이비라 해도 종교인은 종교인이라는건가."


코헤이교에서 제공하는 고해성사는 페어리 자매들의 심리 상담과는 다르게 서로의 얼굴, 목소리를 변조함으로써 개인의 신변이 보호받을 수 있었다.

또한 종교적인 의미가 섞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코헤이교 자매의 상담 능력이 페어리 자매보다 더 좋다는 오르카 호 내의 평가 때문에 심리상담하면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코헤이교의 고해성사를 떠올렸다.


"방금 내 발언이 불편하거나 문제 있었나?"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래, 역시 난 뭔가 사람을 직접 마주보고 이야기를 해야 마음이 열리는 기분이네.

코헤이교의 자매들이 나쁘다거나 하는게 아니라, 그냥 서로의 맨 얼굴을 마주보고 얘기하는게 편한 것 같아."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일로 제게 찾아오셨나요? 칸 대장님."


칸은 웃음을 멈추고 잠시동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몇 초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카멜이었네."

"늘 말씀하시는 멸망 전의 꿈...인가요?"


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는 다른 자매들보다 많이 굼떴지.

호드답지 않게 순수했다고 해야되나, 좋게 말하면 우리들보다 유독 더 신중했어.

그런 성격이 우리 부대의 운용이랑 맞지 않아서 문제였지.

한창 연합전쟁 때 그 친구는 너무 신중한 나머지 적의 공격을 피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어.

그래서 장비는 물론이고 신체까지 크게 다치고 말았지.

처음에는 상관들도 어떻게든 빨리 수복시켜서 다시금 전장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그 친구의 상처는 깊었어.

그래서 금방 다시 복귀할거라는 그 친구의 말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

결국 전투도 끝나고 작계지역에서 퇴각할 때가 되자 인간님들은 그 친구를 그냥 퇴역시켜버렸지.

퇴역 전에 군인으로서 마지막으로 본 그의 새하얀 피부가 아직도 기억나네.

분명 현장에 있었을 때는 태닝으로 시커맸던 그 피부가 말이지."


칸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 반쪽을 짚었다.

다프네는 상담요구자의 요청 사항에 맞게 종이에 상담 내용을 적고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서류 받침대 위에 볼펜으로 글씨를 적는 소리가 조용히 상담실에 퍼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물론이고 대원들도 그에 대해 잊어버릴 즈음에 상관이 날 불렀네.

지독한 인간의 장난이라고 해야되나.

전역한 그 친구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었네.

처음에 그 이유를 물어보자니, 최근 부대 기강이 해이해졌다면서 대원들 관리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더군."


칸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막상 말은 그렇게 하면서 상관의 얼굴은 실실 웃고 있었지.

명령대로 전역한 카멜을 만나기 위해 주소를 듣게되자 순간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네.

주소가 멸망 전의 유명한 테마 파크였으니까.

그래도 인간님이 주신 명령인만큼 날을 잡아서 거기로 갔네.

안내자였던 키르케 자매에게 이야기를 해보니 그 친구의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활짝 웃으며 안내를 해주더군.

조금은 불쾌할 정도로.

그렇게 카멜이 지내는 곳으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C구역이었네.

B구역에 있었으면 마음이 한숨 덜 놓였을텐데."


칸은 말하는 것은 잠깐 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불안한 마음을 붙잡으며 어떻게 방 앞까지 다가갔네.

불쾌한 체액 냄새 말고도 살이 타는 냄새, 피비린내 등 오만 불쾌한 냄새가 그 건물 안에 배어있었어.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에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난 문을 열었네.

그리고 문을 열자, 예전과 똑같은 그 친구의 뒷모습이 보였지.

차라리 그것만 보고 바로 깔끔하게 뒤돌아 나갔으면 더 좋았을 것을."


칸은 눈을 뜨고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조금 잔인한 얘기를 해도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다프네는 인자한 미소를 칸에게 지었다.

칸은 다시 고개를 위로 돌리고 천천히 이야기를 했다.


"그래. 그 친구의 나체는 그 때 처음봤지만 뒷모습만 보고도 그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됐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를 불렀지.

이름을 부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친구는 고개를 돌렸고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지.

얼굴 반쪽이 완전히 타버렸어.

속까지 완전히 타버렸는지 얼굴 반쪽이 시커멓게 탄 채로 움직이질 않았어.

나중에 보였던 온 몸에 생긴 흉터보다도 그 반쪽이 탄 얼굴이 너무나도 기억에 남았네.

그 친구는 1초 정도 눈을 마주치자, 재빠르게 미소를 보여주었어.

그리고는 한쪽 발을 절뚝거리며 내게로 다가왔지.

현역 때 당했던 사고 이후로 절뚝거리던 것마저 그가 내가 본 그 카멜이 맞구나라는 걸 상기시켰어.

하지만 그것 뿐, 난 그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전장에서 수많은 자매들의 시체를 봐왔지만 인간이 멀쩡한 자매들을 단순한 쾌락으로 그렇게 만든 것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어.

꿈이었는데도 그 순간만큼은 꿈이길 바랬지.

꿈이어도 끔찍한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칸은 쓴 미소를 지었다.


"카멜은 내게 다가오자 자연스럽게 내게 키스를 했네.

느닷없이 키스를 당하자 당황스러운 나머지 그 친구를 밀쳐버리고 말았어.

바닥에 넘어지자 그 친구는 순간 당황했지.

그러다가 재빠르게 미소를 되찾으며 나보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게 좋냐며 질문을 했네.

그리고는 너무나도 당연한듯이 다리를 벌리고...."


칸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

그 친구가 어쩌다가 그런 몰골이 되었는지, 나를 못 알아보는건지 전부 다 이야기할 수가 없었어.

그저 한 때 우리의 일원이었던 자매가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도 구별 못하고 다리를 벌린 채 유혹하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어.

그 친구의 죽은 눈동자를 멍청하게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어.

그 때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하질 못했어.

그러다가 카멜이 멀뚱히 선 날 유심하게 보더니,

나보고 자기 군 시절 대장님과 닮았다고 서비스를 더 준다고 말을 했어."


칸은 오른쪽 팔로 두 눈을 가렸다.


"자기 군 시절 대장님과 닮았으니 서비스를 더 준다고.

그 말을 하고나서 잠에 깨어버렸네."


몇 초동안 볼펜이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그것마저 사라졌다.


"...괜찮으시다면 그럼 대장님께서는 실제로 그 이후에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


잠깐의 침묵 후 칸은 대답하였다.


"기억나질 않네.

정신차려보니 나는 테마 파크 입구 앞에 있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상관은 거기에 있었지.

그 후로는 뭐... 똑같이 재미없는 멸망 전의 호드 부대장으로서의 기억이 전부일세."


또 몇 초동안 볼펜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다프네, 너라면 어떡했을 것 같나?

너와 가까운 자매가 C구역에서 너를 인지하지 못한 채 끔찍한 꼴로 살아있는 것을 본다면?"

"저는... 아무리 저라도 결국은 칸 대장님처럼 행동했을 것 같아요."


칸은 얼굴 위의 팔을 치우고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저는 대장님보다 모자란 존재이니까, 아마 더하면 더하지 대장님보다 빠르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런가..."

"대장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정말로요."


칸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다프네를 향해 누웠다.


"자네는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하는구먼."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의료 지원은 심리상담에 취약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미흡한 대답을 드린 점에 있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네.

내 한탄을 항상 들어주는 것은 자네밖에 없지 않은가."


다프네는 테이블 위에 있는 태블릿을 들더니, 몇 번의 조작 후에 칸에게 말을 했다.


"한탄하니 말씀드리는 것인데, 최근에 상담요청을 신청하시는 기간이 전보다 많이 늘어나셨습니다.

전보다 꿈을 꾸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거나, 칸 대장님께서 그만큼 정신적으로 강해졌다는 것이겠죠."


칸은 다시 한번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런가?

사령관이 승선한 이후로 세월이 순식간에 지난 것 같은데 말이지.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는 자네도 고생이구먼."

"칸 대장님보다 더하겠습니까."


다프네도 칸을 향해 다시한번 미소를 보여주었다.

칸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기지개를 한번 핀 후, 칸은 다프네에게 말을 했다.


"다시한번 오늘도 내 한탄을 들어줘서 고맙네.

역시 자네에게 털어놓으면 뭔가 개운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야."

"저도 언제나 칸 대장님과 상담을 하여 영광입니다."


칸은 웃으면서 양 팔뚝을 문질렀다.


"그런데 오늘따라 상담실이 조금 쌀쌀한 것 같군.

페어리 자매들은 원래 더위를 잘 타는 편인가?"

"아, 그거라면 옆에서 티타니아 언니가 상담받는 것 때문일 거에요.

상담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화풀이에 가깝지만."

"화풀이?"

"네, 사령관님께서 언니가 고통을 참을 수 없을 때는 직접 불러서 화풀이하는 걸로 만족하라면서 부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가끔 티타니아 언니가 참을 수 없을 때에는 저렇게 상담실에서 사령관님께서 도와줍니다.

도와주기보다는, 언니의 일방적인 화풀이를 상대하는 거긴 하지만요."

"사령관님도 고생이 많구먼.

근데 티타니아 자매라면 꽤 강할텐데 사령관의 신변에는 문제가 없나?"

"아직까지는 그럴 정도로 큰 문제는 없었어요.

결국 언니가 마지막에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 사령관님과 껴안는 거라서 둘이 나올 때는 항상 둘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어요."


칸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역시 사령관은 재미있는 사람이야.

그 매서운 얼음여왕도 자기 품에 안을 수 있다니."


칸이 상담실 문을 열기 직전에, 다프네는 칸을 불렀다.

다프네는 검지를 입술 위에 갖다대며 말했다.


"칸 대장님, 방금 저희 언니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밖에 유출시켜주지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니에 대한 이야기라니, 우리 둘은 방금 나의 일방적인 한탄을 듣는 것밖에 더 했나?"


칸은 웃으면서 문을 열었다.

그에 다프네 또한 웃음을 지으며 칸에게 인사를 나누었다.

평소와 같이 활발한 미소를 지으면서 칸은 상담실 밖으로 나오고, 상담기록을 정리하는 다프네를 위해 조용히 문을 닫았다.


...


4


"내일 아침 재료 손질 및 준비까지 전부 끝났습니다, 쉐프!"


아우로라가 힘차게 얘기하였다.

아우로라 앞에 서 있는 쉐프-소완은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당번인 포티아 자매님은 오르카 호 소등 전까지 식당을 지키다가 소등 후에 식당 문을 전부 잠근 후 중앙당직에게 열쇠를 인수하면 되겠사옵니다."


소완 앞에는 아우로라 말고도 수많은 포티아 개체들이 일행으로 서 있었다.


"내일 아침 담당 자매님들은 시간에 맞춰서 식당 문을 개방하여 준비된 재료들로 식사 준비를 하오면 되고,

점심에는 특식이 준비돼있기 때문에 나머지 자매님들은 가급적 일찍 출근해주시길 바라옵니다.

질문 있습니까?"


주방은 침묵만이 가득했다.


"없으면 이것으로 오늘 일과를 마치겠사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사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쉐프!"""""


소완을 제외한 모든 조리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이후 주방 내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짐을 챙기며 숙소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참, 아우로라 자매님과 포티아-1024 자매님은 잠시 저랑 얘기 좀 나눠요."


아우로라-552 는 최근에 오르카 호에 합류한 일원 중 하나였다.

그는 비록 자신의 전문분야인 디저트, 넓게 보면 빵 등의 서양식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많진 않았지만 어렵지 않은 요리 방법과 익숙한 식당 운영 방식으로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아우로라에게 있어서 오르카 호는 신비의 잠수함이었다.

이만큼의 많은 근무 인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르카 호에서는 육지에서의 정기 보급만으로도 충분히 자매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특히 신선한 고기의 경우 멸망 전의 대형 목축업을 전문으로 하는 구역이 따로 있나 생각될 정도로 풍부하게 나왔고,

이는 저항군의 사기를 언제나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든든한 지원이었다.

비록 고기요리가 대부분 향이 강하여 고기 본연의 향과 맛은 거의 못 느껴지지만 이 정도가 어디냐고 아우로라는 생각했다.


소완과 아우로와와 포티아-1024를 따로 주방 구석으로 불러낸 후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포티아 자매님은 여기 온지 얼마나 되셨사옵니까?"

"그... 그게 이제 한 달 정도 된 것 같아요..."


포티아는 우물쭈물하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혼내키는게 아니니 그렇게 위축될 필요는 없사옵니다."


소완은 고개를 돌려 아우로라를 바라보았다.


"아우로라 자매님은?"

"네? 아, 저...저도 그 때 쯤에 여기 생활을 시작한 것 같아요."


소완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두 분은 혹시 지금까지 주방에서 생고기를 직접 손질해본 적이 있사옵니까?

단순히 요리하는 중에 고기를 투입하고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우로라와 포티아는 둘 다 고개를 저었다.


"흐음, 다른 자매님들이 나름 신경 써준 듯 하옵니다만..."


소완은 또 눈을 감고 생각을 한 후에 말했다.


"그럼 두 분은 오늘 소등 후 00시에 코헤이교 예배당으로 와주시길 바라옵니다.

당직분에게는 적당히 둘러대시거나, 안되면 제가 명령했다고 말씁하시면 되겠사옵니다."


코헤이교? 고기 때문에 위령제라도 지내는건가?


"자매님이 생각하시는 위령제가 맞사옵니다.

다만 조금 특별한 위령제인만큼 저희 주방에서 일하게 된 이상 필수적으로 한 번 참여해야되옵니다."


포티아-1024는 조금 당황하며 다음에 참여할 수는 없냐며 조심스럽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소완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지금 자매님에게 위령제 참여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것이 아니옵니다.

오늘 밤에 참여하셔서 주방에서 계속 일하든지, 아니면 여기서 나가서 다른 일을 하는지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것이옵니다.

그 정도의 각오가 없으면, 지금 당장 그만둬도 괜찮사옵니다."


포티아는 금새 위축되어서 참여하겠다고 조용히 의사를 밝혔다.

아우로라도 참가의사를 밝히자 소완은 다시 미소를 띄며 대답하였다.


"좋사옵니다. 00시에 예배당에 도착하면 베로니카 자매님이 있을텐데, 제 이름을 부르시면 들여보내주실 것이옵니다.

그 때가서 다시 만납시다."


...


00시의 코헤이교 예배당.

소등 후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예배당 안 쪽은 위령제로 인해 사람의 기척이 존재하였다.

모두가 들어오자마자 받은 가운으로 얼굴까지 가리고 있어서 아우로라는 누가 누군지 몰라서 허둥대며 소완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런 아우로라를 예상했다는 듯, 소완은 재빠르게 입구 앞에 서 있던 아우로라의 손을 붙잡고 제자리에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먼저 온 포티아와 조용히 인사를 나눈 후, 세 명은 자리에 앉아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주방의 세 명 외에도 몇 명의 참석자들이 더 보였다.

모두들 가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 중에는 어린아이로 추정될 정도로 작은 몸집을 가진 자도 존재하였다.

예배당 주위를 둘러싸는 수많은 양초들이 예배당을 밝히고 있었다.

아우로라는 기도하는 자들 앞에 관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보았다.

시간이 되자 예배당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연설대 위에 빛이 들어왔다.


"지금부터, 위대한 희생에 대한 위령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연설대 위에 선 베로니카가 얘기했다.

조용한 피아노 소리가 울려펴지면서 베로니카 뒤에서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코헤이교 소속 자매가 아니지만 종교에 몸을 담기로 한 다른 자매들이 부르는 것이겠지, 라며 아우로라는 생각했다.


추도가가 끝나자 베로니카의 말대로 다같이 묵념을 실행하였다.

코헤이교의 추도문이 조용히 울려퍼졌다.

아우로라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멸망 전이나, 멸망 후에도 도축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을 위해 진심으로 미안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읊조렸다.


"다음으로, 구원자님의 추도사가 있겠습니다."


구원자라는 말을 듣자 아우로와와 포티아는 깜짝 놀랐다.

사령관이 직접 참여할 정도로 중요한 위령제인 것을 알게 되자, 둘은 평소보다 더 긴장된 채 두 손을 모았다.

그것을 본 소완은 귀엽다는 듯이 조용히 웃었다.

사령관은 연설대 앞에 서자 가운을 들춰서 얼굴을 드러낸 후에 추도사를 시작하였다.


"저희는 끝이 보이질 않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령관이 추도사를 시작하자 아우로라는 집중해서 듣기 시작하였다.

추도사는 현재 저항군의 상황과 그로 인한 불가피한 희생을 이야기하며 서두를 시작하였다.

평범한 추도사임에도 불구하고 사령관이 직접 말하는 것을 들으니까 뭔가 더 좋은 듯한 기분이 들어서 아우로라는 자기도 모르게 실실 웃었다.


"-그들은 멸망 전의 인간들의 욕심을 위해 바이오로이드들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러다가 추도사가 길어지자 점점 웃음은 사라지면서, 머릿속에서 의문점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동물들이 바이오로이드들의 제물? 인간의 욕심?

단순 사치품이나 동물성 재료의 원본이라 생각하려고 했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말 때문에 의문은 점점 더 늘어났다.


"-단순히 모듈을 보관하기 좋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이 없는 육체가 만들어지고, 목적을 다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습니다.-"


모듈? 동물 바이오로이드를 말하는건가?

그렇지만 바이오로이드 동물이라 하여도 각자의 정신이 있고 스스로 행동할텐데.

그리고 애초에 정신이 없는 육체 때문에 위령제를 지낸다는게 무슨 의미지?

아우로라는 슬쩍 옆을 보았지만 소완은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저희 자매님들과 같은 육체를 지녔지만 저희들보다 더 도구화가 된 불쌍한 존재들을 다만 가엽게 여기며, 조금이나마 이 위령제로 인하여 그들의 위대한 희생에, 그리고 그들의 끔찍한 운명에 조금이나마 구원이 존재하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사령관의 추도사가 끝나자 그는 다시 제자리로 조용히 들어갔다.

이어 연설대를 비추는 빛이 꺼지더니, 조금 앞을 비췄다.

아우로라가 처음에 얼핏 보았던 관의 형태가 더 자세히 보였다.

위에서 비추는 빛으로 그것은 더 선명하게 보였고, 아우로라는 그것을 보자마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관으로 보였던 것은 인큐베이터로, 그곳에는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 몸과 함께 머리의 뒷부분은 복잡한 기계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인큐베이터 옆면에는 일련번호가 적혀있었으며, 공격력과 적중 향상이라는 라벨이 붙어있었다.

인큐베이터 속의 여인은 움직이질 않았다.

그저 배양액 속에서 둥둥 뜬 채 잠수함의 희미한 출렁임에 맞춰서 희미하게 움직일 뿐,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이는 일이 없었다.


'강화 모듈...!'

그것을 보자마자 아우로라의 머릿속에서는 모든 기억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고기 본연의 냄새마저 묻어버릴 정도로 향이 강한 고기 식단, 이상하리만큼 여유로운 고기 수급,  소완을 포함한 주방 인원이 참여하는 위령제, 사령관님의 추도사.

모든 것이 아우로라가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는 그간의 기억들이 짜맞춰져서 하나의 결론이 나오고 있었다.

애써 부정하려고 해도 그가 받아들인 수많은 정보는 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였다.


'왜 제가 생고기 손질을 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는지 아시겠사옵니까?'


옆에서 소완이 속삭이자 아우로라는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를 뻔했다.


'주인님이 말씀하신대로 모듈 사용이 끝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저 완벽한 육체가, 자원 하나라도 아쉬운 우리에게 있어서 그대로 버려지는 것이 도움이 되겠사옵니까?'


소완은 평소와 같은 미소로 아우로라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그러나 아우로라는 오히려 그의 미소가 이런 상황에 어우러져 더 무서워 보였고, 마음만 같아서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질 정도로 소완의 미소가 잔인해보였다.

아우로라는 소완 옆에 앉았던 포티아를 보자 그를 감싼 가운이 덜덜 떨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포티아는 두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곧 위대한 희생을 하게 될 자에 대한 예우를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인큐베이터의 위가 열리더니, 전투 모듈의 육체가 배양액 위로 떠올랐다.

기계와 연결된 머리 부분을 제외하면, 몸은 바이오로이드 자매들의 그것와 완전히 똑같아 보였다.

전투 모듈은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으며, 마치 잠에 든 바이오로이드처럼 보이기에 충분하였다.


피아노와 합창이 들렸다.

처음은 사령관이 앞으로 나섰다.

인큐베이터 옆에 선 사령관은 천천히 그의 오른손을 들어올리더니 손등에 가벼운 키스를 하고 다시 내려놓았다.

전투 모듈의 손은 죽은 듯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힘없이 배양액 속으로 빠졌다가 다시 천천히 떠올랐다.

이후 인큐베이터를 돌아서 다시 제자리에 가자, 순서대로 다음 자매가 일어나면서 똑같은 행동을 하였다.


'저희 셋은 한꺼번에 나가도록 하옵시다.'


둘이 덜덜 떨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소완은 때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포티아와 아우로라의 손을 잡고 같이 일어났다.

처음 키스를 한 것은 포티아였다.

덜덜 떨면서 키스를 시도하려고 해서 처음에는 손을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두 번째 시도 때는 무사히 키스를 하고 허겁지겁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후 소완의 차례가 끝나고, 아우로라의 차례가 왔다.

살짝 끈적한 배양액에 담가져 있던 전투 모듈의 오른손을 붙잡자 그것은 살짝 차가웠지만 죽은 사람의 손이라 생각될 정도로 차갑진 않았다.

희미하게 손바닥을 흐르는 맥박이 느껴지자 아우로라는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지만 참아냈다.

천천히 입술을 손등에 대자 끈적한 느낌과 더불어서 손등의 부드러운 피부가 입술로 느껴졌다.

키스가 끝나고 손을 내려놓자, 다른 사람들이 내려놓을 때처럼 힘없이 배양액 속으로 빠졌다.


'두 분 다 수고하셨습사옵니다.

여기 배양액을 닦아낼 때 쓰십시오.'


아우로라는 소완이 받은 티슈로 입술과 손을 닦아냈다.

옆에 있는 포티아를 보자 그는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덜덜 떨면서도 입술을 계속해서 닦고, 계속해서 닦아냈다.


'자매님 두 분 다 도중에 포기하실까봐 불안했는데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옵니다.'


소완이 조용히 포티아의 등을 토닥여주자 포티아는 그동안 참았던 것이 터졌는지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훌쩍거리기 시작하였다.


'아우로라 자매님도 고생 많으셨사옵니다.'


소완의 위로를 받자 아우로라도 눈물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소매로 눈물을 조용히 닦아낸 후 아우로라는 소완에게 질문하였다.


'저, 셰프, 그러면 저희가 여태까지 사용한 고기가 전부 저... 자매님 것인가요?'


'그럴리가요. 정기 보급 때 보통 가축들의 고기도 충분히 가져오지요.

다만 그 양만으로는 지금의 요리 양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위대한 희생으로 그 은혜를 입는 것이옵니다.'


아우로라는 주변의 다른 자매들을 보았다.

추도사 이후 얼굴을 계속해서 드러내는 사령관을 제외하고는 전부 머리까지 덮어버린데다 주변의 어두운 불빛 때문에 아우로라는 누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다른 자매분들은 왜 여기에 있는건가요?'

'저희 말고도 희생으로 얻는 육체가 필요한 자매분들이겠지오.

너무 그들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시오.

똑같이 위대한 희생의 은혜를 얻는 자들 뿐이라는 것, 그것만 알고 있으면 되옵니다.'


아우로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설대의 베로니카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대천사 아자젤님의 신성한 구원 의식이 있겠습니다."


연설대와 관을 비추는 불빛이 꺼지고 다시 촛불만이 희미하게 예배당을 비추었다.

이후 촛불도 어디선가 분 바람에 일제히 꺼지면서 예배당에는 암흑만이 존재하였다.

아우로라는 손을 잡고 기도를 하려는 순간, 또 하나의 의문점이 들어서 소완에게 조용히 질문하였다.


'저, 쉐프. 근데 결국 저분들은 정신이 없는 존재인데, 이렇게 위령제를 지내봤자 아무 쓸모가 없는 거 아닌가요?'


'후후, 아우로라 양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그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옵니다.'


'네? 그럼 왜...'


'위령제를 지내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위대한 희생의 은혜를 입는 자들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옵니다.

아무리 정신이 없는 도구일 뿐일 지언정, 결국 육체는 우리 자매들과 똑같이 생겼기에 그것을 다루는 자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지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정기적으로 위령제를 열고, 그를 통해 육체가 아닌 저희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참여하는 것이옵니다.

혹시 모릅니다, 어쩌면 주방 내의 다른 포티아 자매분들도 이곳에 참석하셨을 수도 있사옵니다.'


그러고보니 주방에서 일부 포티아 자매들은 소완과 같이 고기를 도축한다는 이야기를 아우로라는 얼핏 들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화려하게 할 필요가 있나 생각하는 아우로라였지만 굳이 더 질문하지 않았고 다시 고개를 숙여 기도를 하였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더니 관을 비추는 불빛이 더 강해진 채 다시 켜졌다.

정확히 말하면 관을 비추는 불빛 말고도 옆에 새로운 불빛이 새로이 켜졌다.

그 위에서는 천사의 형상을 띈 무언가가 천천히 내려오면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커다란 하얀 날개를 과시하면서 신성한 빛을 뿜어내자 기도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천사의 얼굴을 보았다.

대천사 아자젤은 천천히 날개를 펄럭거리며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아우로라와 포티아는 그 모습에 넋을 잃었다.

코헤이교 예배 참석자들이 늘상 말하는 천사의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막상 그 모습을 직접 보자 정말 그것은 너무나도 신성해보였다.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살포시 선 아자젤은 관을 향해 다가갔다.

걸음거리마저 신성해보이는 아자젤이 관 앞에 서자 그의 뒤를 비추는 빛이 기묘한 각도로 관의 배양액을 비추었고, 그에 따라 관이 빛나는 착시를 일으켰다.

아자젤은 전투 모듈의 머리를 살포시 들어올렸다.

뒤통수에 달린 기계들과 함께 배양액 바깥으로 나온 전투 모듈의 얼굴은 여전히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우로라의 눈에는 그 가여운 육체가, 우리들보다 더 비참한 운명을 가진 자매가 마침내 구원을 받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대의 앞에 빛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아자젤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더니 전투 모듈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신성해보였고, 너무나도 경건해보였던 아우로라는 방금 전의 찝찝한 기운이 모두 사라진 기분이었다.

방금 전에 다른 자매들을 위해 육체를 요리에 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용서받는 듯 씻겨져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아우로라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경건한 구원 의식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아우로라는 조용히 속삭였다.

앞으로 자매의 육체를 다른 자매의 입에 넣을 자신을 위해, 그리고 그 육체를 희생하는 영혼 없는 가여운 자매에게.


"빛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


5


LRL-1099 가 오르카 호에 합류한지 한 달 째였다.

마을이 철충에 의해 파괴되고 방황하며 버티다가 저항군과 연이 닿아 저항군과 합류한 LRL 은 평소에는 알렉산드라 선생님의 교육을 받으며 오르카 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LRL 외에도 다양한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이 같이 생활하고 있었으며 그 중 일부는 장비를 분해하고 보다 안전한 요안나 아일랜드로 경우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은 분해되어 오르카 호를 떠나고, 소수의 어린 바이오로이드들만이 오르카 호에 잔존하고 있었다.

LRL 은 그렇게 잔존하고 있는 소수의 바이오로이드들 중 하나였으며, 그와 비슷한 시기에 온 또래 친구들은 다 분해되어 오르카 호를 떠났다.

LRL 은 그것이 그에게 불만이었다.

다같이 오르카 호를 떠날 것이라 믿었지만 결국 그는 끝까지 오르카 호에 남아있었으며,

숙소에 새로운 또래 친구들이 조금씩 들어오긴 했지만 모두 들어온지 얼마 안 되어 LRL 을 낯설어하다보니 고립된 느낌도 느껴졌다.

그렇다고 마땅히 누군가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처지다보니 LRL 은 자기 침대 위에서 테디베어를 껴안고 투덜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권속은 너무하니라... 짐의 옛 전우들을 전부 후방으로 보내놓고 혼자만 여기 남아있으라는 건가."


LRL 은 눈을 감기 전에 천장에 붙여놓은 야광 별자리를 바라보았다.

분명 친구들이랑 다같이 붙인 야광 별들이었지만 이젠 여기에 그것을 붙인 사람은 자기밖에 없었다.

합류한지 얼마 안 된 주변 친구들은 다른 어른 자매들이 붙여줬다고 생각하겠지.


"짐은, 론리 울프 프린세스이니라..."


...


다음 날이 되자, 이상하게 오늘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알렉산드라가 말하여 LRL 은 다시 숙소로 되돌아왔다.

자기 말고도 몇 명의 또래가 있는 것을 본 LRL 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마음을 붙잡았다.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메리가 숙소로 찾아와서 각자의 이름을 부르자, 메리는 확인 후에 그들을 인솔하였다.


'드디어... 드디어 나도 전우들을 따라가는 것인가...!'


일행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바이오로이드 실험 및 강화 시설에 도착하여 구석진 곳으로 가자 LRL 은 확신하였다.

저번에 친구들이 나갈 때 인솔하는 자매가 메모한 위치가 여기 근처였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LRL 은 분해실의 문 앞에 도착하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드디어 자기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메리가 천천히 문을 열자,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LRL 은 눈부심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서 방 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면서 마침내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오르카 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방 안에는 파티장이 있었다.

음료수, 먹거리, 다양한 파티 용품과 D-엔터 소속과 비스마르크 소속 바이오로이드 자매들이 LRL 과 그의 일행을 환영하였다.

처음에 일행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서 멀뚱멀뚱하게 서 있자, 모모는 다시한번 말하였다.


"어린이 여러분들이 오르카 호에 오신 것을 정식으로 환영합니다!

환영한다는 의미로 다같이 파티를 열기로 하였으니까 오늘만큼은 다같이 놀아봐요!"


처음에는 코코가 웃으며 파티장으로 달려갔다.

이후 아쿠아, 다음은 안드바리.

그리고 얼마 안 지나 모두가 오르카 호에서 주최한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누구는 달콤한 과자들을 먹었고, 누구는 어트랙션에서 뛰어놀기도 하였으며, 누구는 마법소녀 백토와 함께 뽀끄루 대마왕을 잡아 정화하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LRL-1099 만 제외하고.


"......"

"어머, 우리 친구는 파티가 마음에 안 드나요?"


여전히 파티장 입구에 서 있는 LRL을 본 마키나는 무릎을 꿇고 LRL 의 눈높이에 맞춘 다음에 질문하였다.

그의 얼굴은 허무함이 가득했으며 억울한 듯이 울기 직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나는 분명히 분해될 줄 알았는데..."


LRL 의 눈이 촉촉해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결국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파티장 내의 모두가 LRL 을 바라보았다.

마키나는 갑자기 울어버린 LRL 에 깜짝 놀라버리며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당황하였다.

마법소녀 일행과 샬럿도 어떻게 된 일인지 LRL 을 쳐다봤으며, 다른 어린 친구들도 LRL 을 보았다.


"분해될 줄 알았는데... 다시 친구들을 만날 줄 알았는데..."


LRL 은 울면서 외쳐댔다.

파티장을 흐르는 음악도 어느새 조용히 꺼지더니 LRL 의 울음소리만이 퍼졌다.

LRL 은 울면서 발걸음을 옮겨 파티장을 나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걸음을 걷다보니 LRL은 방향을 잘못 잡아서 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LRL 이 벽에 부딪치려는 순간, 샬럿은 재빠르게 LRL 을 잡아서 안아올렸다.

갑작스럽게 안겨지자 놀란 LRL 은 우는 것을 멈추고 샬럿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돌아가고 싶어도 벽을 마음대로 뚫고 가버리면 저희 입장에서는 곤란합니다, 마드모아젤."

"......"


샬럿의 농담에 LRL 이 반응을 하지 않자 샬럿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였다.


"먼저 오르카 호를 떠난 친구들이 보고싶었던 건가요?"


LRL 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확실히 같은 숙소에서 지냈던 소중한 친구들이 떠나버리면 많이 힘들죠."


샬럿은 몸을 돌려서 파티장의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마드모아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듯이 이별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 또한 있는 것이에요.

저희가 당신의 소중한 친구들을 대체할 수는 없을 거에요.

그렇지만 저희와 새롭게 시작하는 인연은 분명히 소중한 친구들과의 인연만큼이나 값진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답니다."


마법소녀 모모와 백토는 LRL 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샬럿은 미소를 지으며 LRL 을 바라보았다.


"LRL, 친구라면 잠시 혹은 오랜 뒤에도 꼭 재회하게 될 거란 이야기가 있어요.

지금 당장은 만날 순 없어도, 언젠가 다같이 만나는 날이 올 거에요.

그 때가 오면 서로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매우 많을 거에요.

그 때 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지금의 마드모아젤과 우리들의 일입니다.

그 이야기를 재미없고 외로운 추억으로 시작할지, 아니면 재미있고 인연이 가득한 추억으로 시작할지는 당신의 선택이에요."


샬럿이 무릎을 꿇자 코코-1214 가 다가와서 안겨진 LRL 에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LRL 이 눈물을 닦고 자세히 보자 그것은 파티장에 준비돼있던 참치 크래커였다.


"저... LRL 이 참치를 좋아한대서..."

"재미있는 추억의 시작은 남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어떤가요, 마드모아젤?"


샬럿의 말에 LRL 은 잠시 고민하더니 코코가 준 참치 크래커를 받았다.

그러자 주변에서 박수소리가 들리면서 모두들 LRL 을 환영한다고 얘기하였다.


"고마워요, LRL."


샬럿은 LRL 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살포시 내려놓았다.

LRL 은 과자를 받아줘서 기쁜 코코를 보더니 이내 다시 웃으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짐에게 공물을 바치다니 충성스러운 하인이로구나.

오늘 이 연회는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손에 의해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 뒤로 LRL 은 파티장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그동안 외로워서 또래 친구들이랑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였고, 샬럿과 같이 기사가 되어 계약을 맹새하기도 하였고, 마법소녀의 도움으로 뽀끄루 대마왕의 정화를 하기도 하였다.

모든 것은 언젠가 만날 또래친구들에게 끝내주게 멋있는 이야기를 자랑하기 위해서.


...


파티가 오후까지 흘러가자 대부분의 어린 친구들이 지치기 시작하였다.

즐길대로 즐기고 먹을대로 먹으니까 피곤해서 자고싶다며 말하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어쩌죠, 저희가 저녁에는 멋진 공연을 보여주기로 했는데."


샬럿이 이야기하자 LRL 일행은 아쉬운 듯이 반응했지만 잠이 쏟아지는 것을 막기 힘들었다.


"아! 마침 옆방에서 매지컬 모모가 낮잠방을 마련했다는데 같이 가볼까요?"


샬럿이 말하자 기다렸다는듯이 LRL 일행은 샬럿을 따라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숙소처럼 각자의 침대가 마련돼있었고 천장에는 야광별, 그리고 벽면에도 움직이는 야광 물고기들이 붙어있었다.

모모는 LRL 일행을 인솔하여 한 명씩 침대에 눕히고 좋은 꿈을 꾸라는 매지컬 주문을 하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침대에 누운 어린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매지컬 주문을 받자마자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매지컬 모모, 만약에 우리의 인연도 갑자기 끝나서 헤어지게 되면 짐은 어떡해야하나?"


LRL 이 침대에 누우면서 모모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모모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러면 또다른 인연이 찾아오게 되겠죠.

그 때가 오면, 언젠가 저희와 다시 만날 때 멋진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새로운 만남을 즐기면 되는거에요."


모모는 웃으면서 LRL 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LRL 은 잠에 들기 직전에 모모에게 마지막으로 말하였다.


"오르카 호 사람들이랑 만날 수 있게 돼서 정말 고마워요..."


LRL 은 웃으면서 잠에 들었다.

모모 또한 웃으면서 마지막으로 잠든 LRL 을 조용히 쓰다듬었다.


...


"전원 잠든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좋아, 링크 연결기를 설치하고 코어 링크를 실시하자."


포츈이 지시하자 그렘린 개체들은 알겠다며 문 밖을 나섰다.

동시에 방금 전에 파티장에 있었던 D-엔터, 비스마르크 소속 바이오로이드들이 링크 관리실로 들어왔다.

파티장에서의 밝은 얼굴과 달리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보였다.


"마키나 씨, 특별하게 눈치챈 것 같은 아가들은 없었나요?"

"LRL 양이 처음에 울긴 했지만 샬럿 양의 도움으로 금방 넘어간 것 말고는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링크 관리실에서 보이는 낮잠실-코어링크 창고 안에서는 그렘린 자매들이 잠든 어린 친구들에게 링크 기계를 씌우기 시작했다.

옷을 비롯한 장비들을 바이오로이드한테서 따로 제거하고 머리를 감싸는 링크 기계를 섬세하게 연결한 후, 마지막으로 팔꿈치 안쪽에 생명 유지용 링거를 꽂았다.


"모든 바이오로이드 링크 준비 완료됐습니다."

"그럼 바로 위로 보내면 좋겠거든?

굳이 그런 거 보고 안해도 난 너희들을 믿거든?"


마키나의 환상이 제거된 코어링크 창고의 천장에는, 수십명의 링크된 바이오로이드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이 천장에는 깊고 투명한 영양액이 고여있었고 그 안에 링크 장비가 머리에 결합된 바이오로이드, 그리고 대체 코어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렘린 자매들은 침대 옆의 벽을 조작하자 침대가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침대가 벽에 달린 레일을 타고 천장을 향해 올라가자 그 위에 누워있던 어린 친구들은 천장의 영양액에 몸이 적셔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온 몸이 영양액에 빠지게 되자 여타 다른 바이오로이드처럼 몸이 천장을 향해 빠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똑같이 코어링크된 다른 자매들 사이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영양액의 수면이 아주 조금, 바닥을 향해 내려왔다.


"수고했어. 이제 나머지는 나한테 맡기면 되거든?"


링크 관리실에서 포츈이 무전을 보낸 후에 마무리 작업을 시작하였다.

포츈은 링크 관리실에서 준비된 개체에 대한 확인 절차를 마친 후 코어링크를 실시하였다.

경고음이 몇 번 울린 후, 특정 개체와의 코어링크가 완료됐다는 알림창이 화면에 뜨자 포츈은 마지막으로 영양액 여과 절차를 24시간 실행한 후에 파티장의 사람들에게 몸을 돌렸다.


"다시한번 여러분들에게 정말정말 고마워요.

특히 D-엔터 자매님들은 여러분들 아니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에요."


사령관의 지시 사항에 따라 코어링크되는 바이오로이드들은 마키나와 메리의 환상을 통해 최대한 행복한 경험을 한 후에 잠들어서 코어링크를 하는 것을 바뀌게 되었다.

이번에는 어린 아이들의 코어링크가 진행됐기 때문에 협력의 일환으로 D-엔터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이게..."


샬럿이 어두운 표정으로 포츈에게 질문하였다.


"이게 정녕 옳은 행동이 맞는지 의심스럽네요.

폐하의 명령이 싫다는 게 아니라, 굳이 어린 아이들까지 이렇게 몸을 바치는게..."

"어머 샬럿 씨!

누가 보면 우리들이 사람 죽이는 줄 알겠네요!

코어링크는 단순히 가사상태에 빠지는 거라 링크가 해제되면 바로 잠에 깨서 멀쩡히 활동할 수 있어요!"


포츈은 샬럿에게 화를 내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차분히 얘기하였다.


"뭐,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사실상 죽은 상태가 맞긴 한데...

굳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뽀끄루 대마왕-의 연기가 끝난 마법소녀 뽀끄루는 울먹이더니 조용히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아이들한테 앞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을 들은 D-엔터 소속 바이오로이드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포츈도 특별한 말없이 코어링크 데이터 수치를 확인하면서 정리하였다.

비스마르크 소속 바이오로이드들도 둘을 번갈아 보았지만 특별히 말을 더 꺼내지는 않았다.

타이밍에 맞춰서 링크 작업을 실행했던 그렘린들이 다시 돌아왔다.


"포츈 선배님, 링크는 어떻게 되었나요?"

"어, 전부 양호하고 문제 없거든?

이제 파티룸만 치우고 퇴근하면 될 것 같거든?"


그렘린들은 환호하였다.

파티룸 또한 마키나의 환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어트랙션 역할을 했던 장비만 원래대로 놓고 남아있는 과자들만 대충 치우면 그렘린의 하루 일과는 끝나게 된다.

그렘린 자매들이 다시 전부 나가자 포츈은 계기판을 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D-엔터랑 비스마르크 자매님들도 이제 가셔도 돼요."


그러나 포츈이 말을 했는데도 섣불리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백토가 뽀끄루의 손을 붙잡고 먼저 자리를 뜨는 것을 시작으로 걱정돼서 따라가는 모모, 이후 샬럿.

마지막으로 언제나 함께 일하던 마키나와 메리가 자리를 떠났다.

마키나는 자리를 뜨기 전에 포츈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결국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링크 관리실을 나갔다.

링크 관리실에는 포츈 혼자만이 남아 코어링크 창고의 카메라 영상, 코어링크된 자매들의 데이터 수치가 나타나는 화면들을 바라보았다.


...


6


눈을 뜨자 풀밭 위에 서 있었다.

맨발로 밟은 풀은 간지러우면서도 촉촉하여서 기분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풀의 색이 검정색이어서 풀의 자세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풀밭을 밟으면서 걸어가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고, 하늘또한 검정색이었다.

의미없이 풀밭을 걸어가자, 발에서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손으로 만져보니 물인 것 같았다.

목이 말라서 물을 한 모금 마시자 달콤해서 한 모금을 더 마시고, 갈증이 해소되자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하였다.

그런데 발을 옮기려는 순간 무언가가 발목을 감쌌다.

검은색밖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었기에 손을 더듬어서 발목을 감싼 무언가를 떼어내려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언가가 손목까지 감싸고, 균형을 잃은 나머지 물가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려는데 손과 발을 감은 무언가는 나를 물 속으로 끌어당겼다.

필사적으로 움직이려고 했지만 손과 발이 묶인 상황해서 할 수 있는 저항은 얼마 없었다.

결국 천천히 물 속으로 빠져들자 최대한 버티기 위해서라도 숨을 크게 들이쉬어 참은 후에 물 속으로 빠졌다.


물 속에 완전히 빠지자 주변은 조금이지만 밝아졌다.

검푸른 빛을 내는 물속에서 주변을 살펴보다가 손과 발을 살펴보았다.

단순한 실리콘 덩어리가 손과 발을 묶은 것을 확인하자 나는 이빨로 실리콘을 잘라내서 손을 풀고, 발에 묶인 것마저 풀어버렸다

이후 물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수영을 하다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가 물 속에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자 주변을 황급하게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나의 등 쪽에서 붉은 무언가를 보았다.

보라색의 커다란 원.

보라색의 커다란 원이 내 앞에 있었다.

아니 원이 아니다.

눈알이다.

별의 아이의 커다란 눈알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벌벌 떨면서 압도적인 크기의 눈알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내 머리에 무언가가 살짝 부딪치는 느낌이 들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똑같은 검정 풀밭이었다.

아니, 이제 보니 물가의 바닥이었다.

숨을 쉬어보니 공깃방울들이 위로 떠올랐고 풀밭은 움직임은 공기의 흐름보다 복잡하고 무거웠다.

그럼에도 숨을 쉬기에는 여전히 편안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다시금 걸어야되나 생각하고 있던 때에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뒤를 되돌아보니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었다.

수십, 수백 명의.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들은 B급, A급이었고 S급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들은 모두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말을 걸어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근처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손을 대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일제히 서로의 몸을 잡았다.

뒷사람은 앞사람의 어깨를, 앞사람은 양쪽 사람의 손을.

그렇게 한 명, 두 명, 네 명, 여덟 명.

계속해서 서로의 몸을 붙잡자 모두가 이어졌고, 내 앞에 있는 한 명의 바이오로이드에게 끝났다.


LRL.


어제 코어링크를 마친 바이오로이드.

등대에서 계속 생존하던 작은 바이오로이드.

멸망 전부터 계속, 등대에서 살아오던 작은 꼬마 바이오로이드.

그는 무표정으로 나를 계속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머리를 쓰다듬어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무릎을 꿇고 같은 눈높이에서 말을 걸자 그제서야 반응을 하였다.

내가 원치 않은 반응이었지만.


LRL 은 천천히 양손을 들더니 내 목에 대었다.

그리고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내 목을 죄었다.

깜짝 놀란 나는 그의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나는 아무런 힘을 낼 수 없었다.

엄청난 힘에 순식간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주변을 둘러보자 이어져있던 자매들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바닥에 쓰러져가던 나를 무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없는 목소리를 쥐어짜면서 부탁하여도 그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LRL 의 팔을 때리면서까지 어떻게든 멈춰보려고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점점 의식이 흐려지면서 모든 것이 끝나가기 시작했다.


...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목을 살펴보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둘 다 멀쩡하였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나 잠을 자던 사령관실의 나의 침대 위였다.

한쪽 팔에서 느껴지는 압력이 뭔지 확인하니 더치걸이 내 팔을 베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더치걸도 LRL 과 함께 코어링크를 받았지.

그리고 이상하게 오늘 잠자리가 무서워서 나랑 같이 자기로 약속했지.


더치걸은 내가 갑자기 일어난 탓에 몸을 뒤적대면서 나를 찾았다.

울먹이지 않게 최대한 빨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포시 껴안자 더치걸은 안심이 됐다는 듯이 다시 편안하게 잠을 잤다.

반면에 나는 방금 전의 악몽 때문에 잠이 다 깨버렸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모르겠지만, 억지로 다시 자도 피로만 쌓일 것 같아서 그냥 맨정신으로 버티기로 하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닷속은 깊었다.

달빛마저 희미하게 만들어서 푸르름이 살짝 띈 검은 공간은 무거웠다.

그것은 너무나도 무거워서 팔 위의 더치걸이 없더라면 내 가슴을 눌러 숨을 쉬지 못하게 할 것만 같은 무거움이었다.

철저한 방음으로 더치걸의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방 안을 메웠다.

그것을 제외하면 이곳은 깊은 바닷속의 심해에 있는 것만 같았다.

차갑고 무거웠다.

마치 무언가를 내게 요구하듯이 공간은 날 짓눌렀다.

그리고 나는 그 공간에서 가까스로 숨을 쉬며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었다.


갑자기 옆구리에 통증이 몰려왔다.

비명을 지르는 것을 간신히 참고 아래를 보자 더치걸의 손이었다.

무슨 일인지 더치걸은 식은땀을 잔뜩 흘린 채 필사적으로 나를 꽉 쥐면서 헐떡대고 있었다.

위험한 일인 것만 같아서 나는 서둘러 더치걸을 깨웠고, 더치걸은 깨어나자마자 눈을 부릅 뜬 다음에 나를 보았다.


"아... 사령관이구나..."


내 얼굴을 보자마자 더치걸은 안심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물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악몽 때문인 것 같아보이기에 나는 조용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주었다.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더치걸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주었다.


"자매 한 명이 보였어."


더치걸은 말했다.


"광산에 있던 자매들이 아니었어.

마치 최근까지 오르카 호에 있었던 것 같은 활발한 자매가 눈 앞에 나타났어.

무언가를 즐기듯이 방방 뛰고 있었고 샬럿 언니, 모모 언니를 부르고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반가워서 인사하려고 했는데 그 애는 날 보더니 절박한 듯이 날 붙잡고 말했어.

깨워달라고.

꿈에서 깨어나고 싶다면서 나를 꽉 붙잡고 절박하게 외쳤어.

무슨 일인지도 모르겠는데 자매가 갑자기 그런 반응을 보이니까 너무 무서웠어.

그런데도 그 애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한테 외치고,

점점 얼굴이 다가오면서 깨워달라고 외치면서..."


더치걸은 여기까지만 말하고 내 품 속으로 들어왔다.

잠자리가 사나울 것 같다고 말했더니 진짜로 악몽을 꾸었구나, 가여운 것.

나는 천천히 더치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따뜻한 우유를 권했다.

아무 말을 하지 않길래 나는 더치걸이 진정되자 천천히 침대 위에서 일어나 간이 냉장고에서 엘븐 밀크를 꺼냈다.

그리고 작은 밀크팟을 꺼내서 적당히 따뜻하게 데운 후에 머그컵 두 개에 나눠 담았다.

하나는 더치걸, 하나는 내 것.

머그컵을 들고 침대로 가자 더치걸은 침대에서 일어나서 양반 자세로 앉았다.

받아들은 머그컵의 우유 향을 맡은 후에 우리는 데워진 우유를 마셨다.

머그컵을 다시 찬장 위에 올려놓은 후 다시 침대에 누웠다.

마침 창문 밖의 바다도 달빛이 강해졌는지 방이 잠시동안 밝아졌다.

나는 코어링크 이후로 불편한 점이 있는지 더치걸에게 물어보았다.


"크게 불편한 점은 없으니까 괜찮아 사령관."


더치걸은 웃으면서 다시 내 팔을 베었다.

그리고 눈을 감더니 몇 분이 지나지 않자 다시 숨을 고르게 쉬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지만 우유를 마셔서 마음이 평온해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최근에 들었던 노래들을 다시 상상하면서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서의 고요함을 느꼈다.


...


결국 잠이 들고 말았는지 기상 시간이 되자 경호 당번인 페로가 깨워줬다.

나는 기지개를 피면서 더치걸을 깨우고 페로의 안내 하에 다시 자기 숙소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는동안 나는 간단한 아침 체조를 마친 후에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어젯밤에 사용했던 찬장을 정리해놨다.

옷을 갈아입은 후에 금일 메이드인 콘스탄챠가 가져온 아침 식사로 끼니를 때운 후에 다시 간단한 세면을 했다.

화장실을 나오자 콘스탄챠가 면도 세팅을 완벽하게 마쳐놓은 것을 보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서 뒤로 눕혀졌고 콘스탄챠는 먼저 내 얼굴을 마사지하기 시작하였다.


"금일 0900에 지휘관 회의가 잡혀있습니다."


콘스탄챠의 얼굴은 가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내 얼굴의 세세한 위치를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마사지를 섬세하고 정확하게 진행하였다.


"그리고 구조 요청이 들어왔던 인근 섬은 0500 부로 AGS 스파르탄 분대의 보고로 해당 지역의 철충 소탕 및 아군 보호가 무사히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마사지가 끝나자 콘스탄챠는 스팀타월을 얼굴로 감싼 후에 쉐이빙 브러쉬를 들었다.


"그 외에는 특별사항은 없으며, 이것으로 공식적인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나는 비공식적인 보고를 요청하였다.


"0430 즈음에 레모네이드 오메가 세력 소속의 에이미 레이저 개체가 포로실에서 과다출혈로 쓰러진 것을 발견, 현재 응급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원인은 스스로 혀를 깨물어 절단시킨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추가적인 정보 유출 및 해킹의 여부를 확인 중에 있습니다."


콘스탄챠는 내 얼굴에서 스팀타월을 벗긴 후 프로쉐이브를 발라주었고, 마지막으로 정성스럽게 쉐이빙 폼을 발라주었다.


"닥터가 바이오로이드 연구를 위한 전투 모듈 신체 요구서를 보냈습니다.

특별 요청 사항으로 중장보호기 모듈 SP 를 많이 달라고 적혀져 있었습니다.

주방 쪽에서도 슬슬 육류가 부족하여 전투 모듈의 신체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짧으면서도 간결한 움직임.

콘스탄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피부 위에 난 수염들을 깔끔하게 밀었다.

간혹 상체를 너무 숙여서 눈이 가슴에 파뭍히는 경우도 생겼지만 콘스탄챠는 일절 반응하지 않고 철저하게 면도에 집중하였다.


"최근에 비슷한 내용의 악몽을 호소하는 자매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자신과 똑같은 개체의 자매가 자기를 발견하면 다가와서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며, 악몽을 호소하는 자매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대체 코어를 사용하지 않은 코어링크를  실행한 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최근에 행했던 코어링크 집중 기간과 악몽이 연관 있을지 모른다고 코헤이교 관계자가 보고하였습니다."


면도가 다 끝나자 피부 위에 남아있는 쉐이브 폼을 닦아낸 후에 애프터쉐이브 로션을 발랐다.

이후 간단한 오드 코롱을 얼굴에 살짝 뿌리며 면도가 끝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피부를 만지작거리며 잔털 여부를 확인하였다.

역시 보련에게 면도 수업을 받도록 시킨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이상으로 비공식적인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이외에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콘스탄챠에게 아침 키스를 하였다.

콘스탄챠는 웃으면서 준비된 서류를 나에게 건넸고, 내가 그것을 받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럼 좋은 하루되십시오, 주인님."


방을 나오자 페로와 교대한 하치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하치코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쓰다듬어달라며 나에게 다가왔다.

머리를 쓰다듬자 하치코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웃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하치코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에 비춰지는 바깥 세상은 매우 밝고 파랬다.

햇빛을 충분히 받은 바다의 색깔이 마치 맑고 진한 하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일 정도로 강렬한 파란색을 띄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나는 하치코와 같이 회의실로 걸어갔다.

회의실 문을 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나눴다.

지휘관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지휘관들이 모두 온 것을 확인하자, 나는 회의를 시작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지휘관 간의 작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