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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기지 조사는 레아가 전담해주겠다.

아우로라도 훌륭한 선생님으로 완성 - 리제는 그렇게 말하면서 굳은 악수를 나눈 소완과 알렉산드라에게 도대체 완성이란 게 무슨 의미냐고 차마 캐물을 수 없었음 - 되었겠다.

경비 AGS는 아스널의 복원을 코앞에 두고 흥이 오른 캐노니어들이 탐색 우선권을 받는 대가로 콧노래를 불러가며 깔끔하게 처리했으니, 대원들에게 남은 건 초코와의 싸움 뿐이었지.


해서, 문제의 제과 교실로 이야기를 돌리자면- 단체행동이 잦은 오르카 호 치고는 참으로 드물게도 소속 부대와는 완전히 별개로 이루어졌음.

속성 교육을 위해서는 희망하는 초콜릿 제품의 종류에 따라 나누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정론 때문이었지.

그리고 각자가 제출한 계획서를 모아 관리하는 건 리제의 몫이었고.

그 말인즉슨.


- 내년 발렌타인 데이까지 초콜렛만 먹고 살아도 되겠는데요?

- 좀 봐줘…….


예상 물량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똑똑히 알 수 있는 입장이란 소리기도 했어.

리리스가 5/1 스케일 초콜릿 피규어를 만들려 들지 않았음에도 - 물론 계획서의 1/5 스케일 초콜릿도 객관적으로 보면 충분히 거대한 사이즈긴 했다만 - 이 정도라니.

알비스처럼 사령관한테 주고 싶은 게 아니라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적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경우를 제하더라도 창고 칸을 단위로 써야 할 물량인 건 틀림없었지.

사령관이 쓰는 육체가 평범한 인간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칼로리를 요구한다거나 같은 사실은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을 만큼은.


과연 이 정도면 마냥 놀려먹을 수준은 아니라 리제도 나름 진지하게 위로해줬음.


- 정 힘들 것 같으면 같이 몸이라도 움직여 줄게요.


마이티 R도 사령관이 찾아오면 기뻐할 테고.

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사령관의 반응이 요상하네.

느릿하게 자기를 응시하는 것이, 마치―


- 아니, 그런 뜻 아니거든요?!


오해의 여지가 있는 발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장소가 있지.


- 그런 뜻이 무슨 뜻인데?


기겁하는 리제한테 사령관은 상투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기어코 도끼눈을 뜨게 만들고야 말았음.

물론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리제 본인이 똑똑히 알고 있었고.

입을 삐죽 내밀고 꿍얼거리면서 괜시리 요란하게 서류를 넘기는 리제를 충분히 감상한 후에, 사령관은 달래듯 한 마디를 꺼냈음.


- 아무리 많아도 당연히 리제의 초콜릿부터 먹을 테니까.


설마하니 여기에 불만을 가지는 대원이 있을 리도 없고.

리제라는 기준이 없으면 선착순 같은 걸로 괜히 평지풍파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다짐 겸 해서 해둔 말인데-


- ….


리제는 새총에라도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어.

이거, 설마하니-


- 생각 안 하고 있었어?

- ……아아아닌데요?


안 하고 있었구나.

간만에 일거리가 늘어나서 집중한 탓이려나.

지금이라도 알아차렸으면 괜찮으려니- 하면서도 사령관이 추궁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선을 거두지 않은 건 순전히 반응이 궁금해서였고, 리제는 훌륭하게도 그 기대에 부응해서 목각인형처럼 뻣뻣하게 시선을 피한 채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았지.

어마어마한 구상을 하고 있었을 뿐이라거나, 그냥 기본에 충실하려고 하는 거라거나, 당신의 부담을 늘리지 않으려는 배려였다거나.


- 정말로 미안해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사실을 인정하고 마는 것이야말로 리제다운 결말이었지만.

사령관이 타협안을 제시해준 건 리제가 진심으로 침울해하기 반 박자 정도 앞선 타이밍이었음.


- 정 생각이 안 나면, 크리스마스 때처럼 해 줘도 괜찮아.


참으로 인상적이었지. 그 케이크는.

발렌타인에 왠 크리스마스? 같은 표정을 지었다가, 그 때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점점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여러 의미의 수치심이 섞여서 훅 붉어진 얼굴을 고개를 숙여 감추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리제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했음.


- ……가, 가급적 다른 걸로.

- 응. 기대하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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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하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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