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꽃이 그러하다.



달을 사랑하는 꽃은, 달이 떠오를때 피고,


달이 넘어가면, 꽃은 달을 기다리며 진다.


자기도 어여쁜 달이 되어 그 옆을 지키고 싶었으나,


달이 있는 하늘도 아닌 땅에서,


밤이 되면 그저 달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는 꽃.



그 꽃은 달맞이꽃이라 불리운다.


******


"자, 오늘부터 네가 보살펴줄 아이란다. 이 아이를 지켜주렴."


주인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인님께선 1년 전부터 절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주셨습니다. 바이오로이드 대 인간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절 대해주셨죠.


그분의 부인 되시는 분께서도 저를 친딸처럼 아껴주셨습니다. 제게는 과분한 사랑을 아낌없이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이 두 분을 평생 모시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두 분 모두 저를 데려온 이유는 그게 아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두 분께서 절 데려온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네, 주인님."


그리고 고개를 돌려, 요람에 뉘인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는 절 보더니, 난데없이 웃으며 손을 제게 뻗었습니다. 마치 안아달라는 것 처럼요.


"주인님?"


"응? 왜그러니?"


"이 아이를, 한 번 안아봐도 될까요?"


주인님께선 웃으시며 답하셨습니다.


"그럼, 당연하지! 한 번 안아보렴!"


그러더니 아이를 번쩍 안아올리시곤, 제 품에 안겨주셨습니다.


아이를 받고 한 번 조심스레 안아보자, 아이의 심장박동이 느껴졌습니다.


두근, 두근, 두근.


아이를 들어올려서 제 눈높이에 맞추니, 박동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습니다.


쿵! 쿵! 쿵! 쿵!


이제보니, 제 심장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아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그 아이를 요람에 내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요람에 뉘인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이 아이를, 전 평생 지킬 겁니다.


함께 지내고,

함께 성장하며,

함께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그게, 제 의무니까요.


속으로 각오를 다지고 고개를 돌리자, 주인님께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자, 밥먹자! 이터니티, 당신, 식기 전에 들어요!"


주방에서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식사 준비는 늘 제가 하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부인께서는 식탁에 수저만 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생각해도 제겐 과분한 사랑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될런지요.


"잘 먹겠습니다."


"오야. 먹고 나서 설거지 좀 하렴."


"네, 알겠습니다."


******


벌써 제가 아이를 만난 지 반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주인님께선 이 아이가 어느정도 자라면 저를 이 아이에게 양도할 예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요람에서 주인님을 만나, 무덤까지 주인님을 모시는 것.


제가 만들어진 이유가 바로 그거였으니 이상할 건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참을 수 있습니다...


"저기.. 아가야?"


장차 새 주인님이 되실 분의 기저귀를 갈아입히는 것 쯤은...


"잠깐만... 잠깐이면 돼."


기저귀를 갈아입히는 것 쯤은...








퍼억.


"응국."


...오늘도 기저귀를 갈아입히다 얼굴이 걷어차였습니다.


"빼애애애애애액!!"


"으아, 주인님!"


주인님께선 아이가 울 때마다, 쏜살같이 달려오시곤, 아이를 금세 진정시켜주셨습니다.


"...죄송해요, 주인님. 기저귀 가는 게 이리 어려울줄은.."


한바탕 진정되고, 주인님께서 직접 기저귀까지 갈아주시고 나니,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명색이 삼안 최고의 메이드 바이오로이드인데, 기저귀 하나 못 갈아준다니.


"어쩔 수 없지. 넌 처음이잖니."


"하지만, 전 이런 용도로 만들어진걸요."


이런 용도로 만들어졌는데, 정작 기저귀조차도 못 갈아준다니...


"오호, 무슨 용도?"


주인님께선 눈썹 한 쪽을 꿈틀거리시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인간님들의 육성. 그러니까, 인간님의 일생을 옆에서 보좌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육아, 교육, 요리, 가사.. 모든 것 하나 빠짐없이 해낼 수 있는 그런 바이오로이드입니다."


"그럼, 그것 말고는 달리 하고싶은 건 없니?"


"..네?"


뜻 밖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당황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정작 제가 하고싶었던 건 생각하는 것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어... 그건... 이 아이를 지켜내고 싶다?"


가장 무난한 선택지를 골랐으나, 주인님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흐음.. 다른 건?"


"부인의 요리를 도와주고 싶다?"


"그러니까.. 너가 인간이 된다면 뭘 하고싶니? 아주 개인적인 욕망같은 거."


"어..."


제가 정말 인간이 된다면, 뭘 해야할까요.


"...모르겠습니다."


주인님께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답하셨습니다."


"어차피 나중가면 뭘 하고싶은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딸, 만약 그런 게 생기면 바로 말해줘."


"네? 딸이라뇨?"


"너 말하는 거야."


주방에서 부인이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아직은 법때문에 널 딸로 입양할 순 없지만, 나중에 내가 이 법을 뒤엎는 날이 온다면, 그땐 진짜 딸로서 호적에 넣을거야."


"......"


바이오로이드를 딸이라 부르시다니..

심지어, 저를 정말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주시고 계셨습니다.

놀랍기도 했고, 솔직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우를 받은 것 같아서요.


"애도 진정됐으니 밥이나 먹을까? 오늘은 뭐 먹고싶니?"


"아, 오늘 요리는 제가.."


여태 밥을 해드리지 못 할 망정, 밥을 먹기만 했었습니다.

오늘만큼은, 제 요리 실력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유~ 앉아있어. 나중에 요리 힘들어지면 그때 해주면 돼~"


"하지만.."


"그래서, 뭐가 먹고싶다고, 딸?"


"...오므라이스 부탁드릴게요."


딸이라는 소리에, 전 얌전히 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여기서 더 주장하는 건, 부인의 뜻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나저나, 딸이라 불러주시며 진짜 딸로 생각하시고 계신다면, 저도 주인님과 부인을 아버지, 어머니라 불러도 되는 걸까요.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태 주인님으로 모셨었는데, 이제 와서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는 건 좀.. 건방지게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속으로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는 건 괜찮을 겁니다.


******


"옷 한 벌 장만하러 갈까?"


어느덧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걸어다닐 때가 되자,

아버지께서 제게 옷을 사러 가자 말씀하셨습니다.


"옷은 왜..?"


넌지시 물어보자, 아버지께선 거의 즉답을 하셨습니다.


"애 정서에 안 맞아. 옷이 낡았기도 하고."


...이제보니, 여태 메이드 복 한 벌만 입고 다녔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런 옷은 아이 정서에 안 맞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나가는 첫 쇼핑이기도 합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


"이 옷은 별로고.. 저건..."



아버지께선 제 옷을 고르는 데 온 신경을 쏟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백화점의 젊은 인간 여성분들부터 중년의 인간 여성분들까지, 그런 아버지를 호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귀를 기울여보니..



"봤어? 저 할아버지 진짜 옷 잘 입으신다..."

"몸도 좋아보이고, 얼굴도 진짜 카리스마 있게 생기셨어."

"진짜 부럽다."


"어휴, 우리 남정네도 젊을 땐 저래 멋있었는데, 지금은 배만 나와서는.."

"중간중간 나오는 목소리도 진짜.. 어우."



...저는, 절로 어깨가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긴, 제 주인님께선 정말 멋지신 분이십니다.



갈색과 검은색, 흰색이 자연스레 어우러진 올백 머리와 멋진 턱수염.

옷 위로 드러나는 탄탄한 근육.

제 머리가 두개 더 있어야 주인님과 키가 비슷할 정도로 키가 크셨으며,

명품은 아닐지라도, 검소한 멋이 있는 수트..

외형적인 부분만 본다면, 그 누구보다도 멋지신 분이셨습니다.



제가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주인님께선 옷을 한 벌 들고서 제 위에 덧대보셨습니다.


"...이 옷은 어떠냐?"


회색 후드티였습니다. 근데, 제가 입기엔 좀 작아보였습니다.


"맘에 들지만, 제가 입으면 옷이 망가질 것 같은걸요."


그 말에, 주인님께서 저와 옷을 번갈아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시곤, 커다란 후드집업 한 벌을 골라오셨습니다.


"이런 건 어떠니?"


확실히, 집업이라면 괜찮을 겁니다.


"한 번 입어보고 오겠습니다."


피팅룸에 들어가서, 옷을 한 번 입어보고 지퍼를 올려봤습니다.


다행히도, 그 큰 옷이 제게는 꽤 잘 맞았습니다.

가슴 부분이 좀 크게 튀어나온 게 거슬리지만..


"어때 보이나요? 어울린가요?"


피팅룸에서 나와, 주인님 앞에 서서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확실히, 옷걸이가 좋으니 평상복도 모델이 입은 것 같구만."


"감사합니다.."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 이 옷이 맘에 듭니다."


쑥스러움 때문인지, 대충 옆에 걸린 옷을 들어서 보여주었습니다.

허리라인이 들어간 검은색 주름 원피스였습니다.


...대충 집은 거였는데, 의외로 진짜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호, 한번 입어보렴!"


주인님께선 그대로 가게 내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아 앉으셨습니다.


"기다리고 있으마."


"네, 주인님."


피팅룸에 들어가서, 제 옷을 벗고 원피스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입었던 옷을 봤습니다.


...이제보니, 제가 여태 입고있던 옷이 이렇게 야해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 앞에선 이 옷은 웬만해선 꺼내지 말아야겠습니다. 이 옷은 나중에 아이가 자란다면...


......


그래도 안 됩니다. 


거울을 쳐다보니, 확실히 예쁜 옷인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허리라인이 들어가서 가슴 부분이 강조되었지만, 색기보다는 정숙함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분들이 보시기엔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주인님, 어울린가요?"


피팅룸에서 나와, 주인님을 바라보자, 주인님께서 입을 다물지 못하시고 절 바라보셨습니다.


"...주인님?"


제가 부르자, 주인님께서 정신을 차리시곤 답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달라보일 줄 알았으면, 진즉에 옷 좀 사줄걸. 다른 옷 원하는거 있니?"


"...저, 그럼 이것도."


"오, 어울릴 것 같구나."


옷을 입고, 주인님께 보여드리고..


"어울리네. 사렴."


"이걸 입고싶어요."


"그것도 괜찮아보이고."


"어때보여요?"


"그것도 좋네. 사자."


"어때요?"


"사."


...주변 분들이 저를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셨습니다.


특히, 붉은 장발을 한 바이오로이드가 절 부러워..?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갔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시기에 가까운 눈빛이였던 것 같습니다. 옷을 바라본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이 옷들, 전부 다 계산해주시오."


얼추 옷을 다 고르자, 주인님은 지갑에서 현금으로 전부 계산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저와 주인님이 가게에서 나가자, 점원분들이 깍듯하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역시, 너무 많이 산 게 아닐까요?"


쇼핑이 끝나자, 팔이랑 등엔 수많은 쇼핑백이 있었습니다.

거의 2~30벌 가까이 산 것 같은데..


"뭐, 평생 옷 한 벌 못사줬는데, 이정돈 양반이지."


...만난 지 이제 1년 반정도 지났는데.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됐단다. 그냥 기분이니까 가지렴."


"네."


흐뭇했습니다.

드디어, 제게도 새 옷이 생긴 겁니다.


주인님께선 저를 한 번 바라보시고는, 앞을 보시며 운전하는 척을 하셨습니다. 분명 이 차는 완전 자율주행 차일텐데도 말이죠.


******


"주인님, 간단하게 음료라도 만들어 왔습니다."


저는 직접 바나나와 딸기를 갈아만든 음료를 아버지께 건넸습니다.


"음, 맛있구나. 고맙다."


"별 말씀을요."


아버지께선 의자에 앉아 책을 한 권 보고 계셨습니다. 

자세히 보니, 꽃 도감인 것 같았습니다.

요즘엔 전자책이 있어서, 종이책이 그리 많지 않을텐데..


펼쳐진 페이지를 보니, 그 페이지엔 달맞이 꽃이라는 이름의 꽃에 대한 정보가 실려있었습니다.


"주인님, 이건?"


저는 책을 가리키며 물어보았습니다.


"아, 이 꽃이 뭔지 궁금하니?"


사실 웬 종이책이냐 여쭤볼 생각이였지만, 굳이 정정하진 않았습니다.

전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니까 말이죠.


"...네."


아버지께선 헛기침을 한 번 하시더니, 책을 소리내어 읽어주셨습니다.


"이 꽃의 이름은 달맞이꽃이란다. 겨울에 로제트 상태로 있다가, 7월 밤이 되면 꽃이 피는 그 습성때문에 달맞이꽃이라 불리지."


"왜 밤에만 꽃을 피우는 걸까요?"


아버지께선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달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해가 달을 밀어내는 낮엔 해가 미워 꽃이 피지 않고, 

달이 해를 밀어내는 밤엔 달을 보기 위해 핀다고 생각한다.

낭만적이지 않니?"


"...?"


아버지께선 가끔 이런 문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십니다.


그나저나, 밤에만 피는 이유를 저렇게 해석하시다니...

확실히, 사랑한다고 하면 또 되는 말이긴 하군요.

제게도 달맞이꽃처럼,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사랑을 하게 될 날이 올까요.


"그럼 꽃말은 뭔가요?"


"꽃말은 기다림, 밤의 요정, 소원이란다."


하나같이 좋은 단어들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했었습니다.



기다림이 뭔지, 똑똑히 알기 전까지는요.



******

1. 아이는 이터니티의 주인 부부의 손자.

2. 주인은 바이오로이드 인권 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