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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발렌타인을 보내고, 오르카 호는 예정대로 공업 지대에 정박했어.

사령관이 처음 발견된 장소에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알바트로스 휘하의 AGS가 철충을 상대로 전선을 유지하며 안전을 확보한 극히 드문 육지 지역이기도 했지.

좀 더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본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야.


사령관, 다시 말해 인간의 존재는 그것만으로 철충의 공격 빈도를 늘리는 부작용이 있으니 첫 출항 이후로 장기간 머무른 적은 손에 꼽지만, 이번엔 그 위험까지 감수해야만 할 이유가 있었어.


- 좋아. 지금부터 진짜로 힘낼게!

- 누나도 조금은 긴장되거든….

- 이 설계도… 보기만 해도 하아.


오르카 호의 기술팀 거의 전원이 달려든 최중요 프로젝트.

상세 사항은 전례없이 거대한 중장갑 프레임의 건조와, 그것을 감당하기 위한 복합 구조 제네레이터의 개발 완료, 그리고 특정한 A.I.의 재설계.

단적으로 말해서, 타이런트의 복원이었지.


*   *   *


리제는 타이런트에 관한 수 많은 담론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어.

바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작전.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토의에 임하는 지휘관 - 이번에는 알바트로스나 에이다까지 포함해서 - 들을 보면서 안 나대기를 잘했다고 안도했지.

AGS의 위용이 인게임 성능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정도야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타이런트의 흉폭함에 대한 우려는 그보다도 몇 단계는 더 심각했거든.


그냥 복원을 포기하자. 복합 구조 제네레이터의 연구 자체는 꽤 진척되었으니 차라리 그걸 응용해 새로운 병기를 만들자. 유기 회로 덕분에 감염 우려도 없겠다, 그냥 철충 쪽에 풀어놓아 버리자 등등.

온갖 전략적 / 공학적 의견이 오간 가운데, 최종적으로 "각종 안전장치를 추가한 복원"으로 결론이 난 것에는 물론 사령관의 의향도 강하게 포함되어 있었음.


- 필요해질 거야.


라는 짧은 코멘트 뿐이었지만 말이지.

리제가 아는 한 사령관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은 없고, 무의식에 남아있는 철충 - 특히 상위 연결체 - 의 전투력을 경계한 것이 아닐까.

아무튼 결정이 난 이상 행동은 빨랐고, 마침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것이 지금이라는 이야기였지.


전고 10m짜리 공룡 로봇이 실제로 움직이는 걸 보면 무슨 느낌일까.

이쪽의 타이런트도 결국 낙원에서 해피가 되고야 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도 들긴 했지만, 결국 자기가 관여할 일이 없다는 건 확실했으니 리제는 이내 관심을 끊었음.

아무리 간판뿐인 부관이라고 해도 할 일은 얼마든지 있었지.

예를 들어서-


- 몽구스 팀의 작전관, 홍련입니다. 저희 아이ㄷ… 팀원들이 폐를 끼치진 않았나요?


처음 거론되었을 때에 비해 상당히 늦게 복원되었다는 느낌인 홍련을 맞이하는 일이라거나. 


*   *   *


몽구스 팀의 멤버는 하나같이 초기부터 많은 활약을 해 왔고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는 취지의 답변을 듣고 난 후, 홍련은 그럼 되었습니다. 라는 짧은 한 마디로 상황을 마무리짓고 앞으로의 업무 등에 대한 질의를 시작했어.

그러고 보면 몽구스네 엄마라는 이미지만 강했는데, 사무 일에도 능했던가.


(리제 본인은 깍두기 취급하더라도) 라비아타가 현역인 시점에서 홍련이 본업을 도외시해야 할 만큼 손이 모자라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한동안은 육지에 머무를 예정이기도 하겠다, 당장 대규모로 싸울 일도 없겠다.

시험삼아 광산-영원한 전장-을 습격할 때의 작전안을 다듬어 보자는 정도로 홍련의 첫 일은 간단하게 정리되었음.

그 후 사령관은 다시 타이런트에의 명령권 각인을 위해 기술팀에게 돌아갔으니, 몽구스 팀이 머무르는 장소에 안내하는 것은 리제의 몫이었지.


또각 또각.

칼같이 각을 잡고 걷는 모습만 봐도 유능함이 뿜뿜한다고 내심 감탄하다가, 리제는 문득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기는 홍련의 손짓에서 다소의 초조감이 느껴진다는 걸 깨달았음.


- 몽구스 팀 여러분은 한참 전부터 작전관님의 복원을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걱정하실 것 없어요.

- ……부끄럽군요. 별로 걱정하던 건 아니었습니다.


글쎄요. 맞는 것 같은데요.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일에 바빠서 가정에 소홀했던 부모가 오래간만에 만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모르겠어서 불안해 하는 모습 그 자체인데요.

실제 나이랑은 완전히 별개로 도는 - '설정'에 따른 바이오로이드 사이의 관계엔 아직 실감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저쪽에겐 그게 당연한 것일 테고.


- 괜찮으시면, 몽구스 팀 여러분이 어떤 식으로 지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려드릴까요?


사이좋게 지내서 나쁠 건 없으니, 조금 정도는 서비스해줘도 되겠지.

마침 멋진 카페테리아가 새로 생겼거든요- 라는 덧붙임에, 홍련은 길게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여 답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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