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은퇴한 마법소녀




" 띠리리리. "



자명종 소리와 함께 따스한 햇빛이 내 눈과 귀를 괴롭혔다.



" 으음.. "



오늘도 평화로운 아침이다. 오늘도 더 이상 철충들의 끔찍한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세상이다.

종전. 전쟁이 끝난 일상은 이렇게나 평온하다.


7년전, 나와 오르카호의 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철충들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찌저찌 전쟁은 끝이 났다. 영원히.



이후 곧바로 인류 재건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요안나가 기반을 만들어놓은 섬에서 우리들의 세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역을 점점 넓혀가 많은 곳에 우리 세상을 만들었다.


내가 있는 수도 오르카 시티, 벨루가 시티, 바키타 시티 등등 의 도시가 차례차례 세워졌다.


전쟁이 끝나니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이전에 나는 닥터에게 전쟁이 끝나면 바이오로이드의 제약을 풀어달라고 부탁을 해둔 적이 있다. 닥터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호언장담을 했고,

결과적으로 이제는 모두가 내 명령권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나날에도 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오빠. 약먹을 시간이야.


" 응. 고마워. "



닥터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들려오자 나는 바로 옆에 놓여있던 약봉투를 집어들었다. 나는 약봉지를 뜯어 하얗고 붉은 색의 조화의 약들이 내 오른손에 떨어뜨렸다. 나는 약봉투 옆에있던 텀블러를 왼손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텀블러에 있던 물을 입에 들이부었다. 소정의 물을 입에 머금고, 약을 입에다 털어넣었다.



" 크읍..! "



약을 삼키는 고통에 못이겨 나는 다시 텀블러의 물을 들이켰다.



" 휴우.. "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약을 몸에 달고 살게 되었다. 어떤 병이 있어서 그런건지 나는 잘 모른다.


사실, 난 전쟁이 끝난 이후 의식을 잃은 채 5년을 침대에서 누워 지냈던 적이 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지금 이게 내가 약을 먹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내가 약을 먹는 이유에 대해 닥터에게 몇 번을 물어봤었지만.. 닥터는 제대로 대답해준 적이 한번도 없다.

불치병인가? 라고 생각하며 내 몸을 둘러봐도 내 몸에는 어떤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약을 먹기 시작한지 벌써 2년째.



" 똑. 똑. 똑. "



"주인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 너머로 바닐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응. 지금 갈게. "



주섬주섬 옷을 대충 갈아입고 방을 나오니 복도에 평소와 같은 메이드복을 입은 바닐라가 서있다.

내가 그녀를 지나쳐가자 바닐라 역시 따라 걸었다.



" 하암... 바닐라. "



" 네. 주인님. "



"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지? "



" 오늘 오전 10시엔 흐레스벨그 님과 약속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로열 아스널 님과의 면담이 있고 그 이후에는 일정이 없습니다.



" ...오늘은 오랜만에 한가한 날이네. 고마워. "



" 흥. 별 말씀을요. 그런데, 이제 주인님도 일정표를 좀 외워보시는게 어떻습니까?


이렇게 간단한 일정도 매번 제가 일일이 대답해드리기 좀 귀찮거든요. "



뒤를 돌아보니 바닐라가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 아..하하.. 미안해.. "



그렇게 바닐라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가니 소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나 넓은 식당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긴 식탁. 그리고 벽난로와 창가 너머로 보이는 빌딩의 숲.

언제 들어와도 이 식당은 품격있는 사람들만이 이용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 곳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내게 이런 식당에서 밥을 먹을 자격이 있나?' 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곳은 오르카 대원들이 나를 위해 만든 식당이다.


지나친 부담은 이 곳을 만들어준 대원들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 주인, 오셨나이까? "


" 응. 오늘 메뉴는 뭐야? "


" 오늘의 조식은 특별히 육질이 좋은 소고기로 만든 미역국으로 준비했사옵니다. "



자리에 앉으니 소완이 내 자리 앞에 있던 그릇덮개를 들어올리며 설명했다. 노란색의 기름기가 조금 올라와있는 미역국과 하얗고 윤기가 좔좔 흐르는 쌀밥의 모습이 맛깔나보인다.



" 고마워. 잘 먹을게. "


" 후훗. 소첩은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



소완이 미소를 보이며 식당을 나섰다.



나는 미역국을 숟가락으로 퍼먹어 보았다.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바다내음이 내 입안을 감쌌다.



나는 홀로그램에 뉴스를 띄워놓았다. SBS(Spr1ggan's Broadcasting System) 뉴스가 나오고 있다.



" ...어제 저녁, 바키타 시티의, 스틸라인 휘하 공장인 브라공업 B-섹터에서 폭발사고가 있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건물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버린 그야말로 아찔했던 사고인데요.


사고 원인 조사결과 해당시간의 근무자였던 브라우니들의 기계 조작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



미역국을 먹으며 화면을 보니 아나운서 스프리건이 오늘의 뉴스를 읊고있었다.


어제 일어난 폭발사고에 대한 뉴스.


안그래도 어제 해당 사고 때문에 식겁할 틈도 없이 보고서를 정말 많이 받았었다. 대부분이 레드후드가 내게 찾아와 내밀었던 결재서류들이었다. 비록 내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때 레드후드는 화가 정말 많이 난 모양이었다.


내가 다 무서웠다고.



" 다음 소식입니다. O-엔터테이먼트 측에 따르면 <마법소녀 매지컬 백토>의 제작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년전, 주인공이었던 배우 매지컬 모모 씨가 마법소녀 시리즈에서 하차한 이후 처음으로 시도되는 마법소녀 시리즈인데요.


마법소녀가 된 뽀끄루와 백토가 새로운 악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경황을 알아보기 위해 현장에 나가있는 취재진 연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프리건-02번 기자? "




O-엔터테이먼트. 오르카 엔터테이먼트.


덴세츠 출신 바이오로이드들과 비스마르크 출신 바이오로이드들이 협약하여 벨루가 시티에 세워진 새로운 엔터테이먼트 회사. 아르망이 해당 회사의 대표로 있다. 아르망은 나에게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회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아르망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던건지 TV를 틀기만 하면 어딘가 그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수 있었다. 롤빵머리를 풀은 채로 런웨이를 걷는 샬럿, 단발 학생 역의 아르망, 장발 직장인 제로, 노가다꾼 드라큐리나 등등..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들의 모습을 본지 벌써 1년이 지나갔다. 나는 오늘같이 일정이 빡빡하지 않은 날이 아니면 TV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점차 인류 재건 기획이 가속화되기 시작하자 내게 매일매일 보고서 폭탄이 떨어졌었다. 나는 오르카 호 내에서 치르던 업무를 아직까지도 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의문점에 사로잡혔다.



' 근데.. 모모가 마법소녀 시리즈에서 하차를 했다고..?


도대체 언제? '



내게 모모가 마법소녀를 은퇴했다는 소식은 처음듣는 소식이었다.

모모가 마법소녀 시리즈에서 하차하는 것은 은퇴나 마찬가지일텐데. 내가 몰랐던 일이 벌써 1년전 일이라니.


2년전부터 나는 수많은 인원들을 한명한명 찾아가 면담을 나누었다. 그러다 1년전 부터 내가 온갖 일로 바빠지며 그럴 기회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또한 대원들도 자신들의 일을 하느라 약속을 잡기도 힘들었다.



' ... 그러고보니, 모모를 못본지도 한참됐네. 한 2년 됐나..? '



1년전에 일어난 사건을 이제서야 알게되었으니, 내가 그동안 모모에게 무관심 했다는 뜻이 되겠다.

왜인지 모를 죄책감이 내 머릿속을 감쌌다.



' 오늘 오후에 모모에게 찾아가야겠어. '



나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바닐라에게 오후 일정을 잡아놓으라고 했다. 그런데..



" 주인님. 매지컬 모모 님은 오늘 일정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합니다. "



" 뭐..? 무슨 일정? "



" 저 역시 알아보려고 했지만 그 쪽에서 정보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흥. 무례하기 짝이 없더군요. "



은퇴한 마법소녀가 이리도 바쁘단 말인가?



" 하아.. 알았어. 별 수 없지. "



" 무려 상사인 주인님이 보고싶다는데 그렇게 무례하게 대응하다니,

같은 한솥밥을 먹은 대원들이 맞나 싶을 정도군요. "



" 아니야. 바닐라. 너무 그러지마. "



바닐라가 화를 내자 나는 황급히 말렸다. 내가 아는 모모는 누구에게나 무례하게 대할 녀석이 절대로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정이 있으니까 이렇게 대응한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1. 연예인






오전 10시가 되었다.



흐레스벨그가 내 저택에 도착했다. 그녀가 초인종을 누르자 바닐라가 그녀를 데리러갔다. 잠시후 바닐라는 흐레스벨그를 내 방으로 데려온 뒤, 조용히 방을 나갔다.


방에는 나와 흐레스벨그만이 남겨졌다.



" 안녕하십니까. 사령관님. "



오늘의 흐레스벨그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옷은 모모의 얼굴이 새겨진 옷, 그리고 늘 뭔가에 집중할 때면 쓰는 안경을 쓰고왔다. 세월은 짧지 않게 흘렀지만 여전히 그녀는 매지컬 모모의 '찐팬'이었다.



" 응. 어서와. 흐레스벨그. 그런데.. "



흐레스벨그 뒤에 생소한 가방이 하나 보인다.



" 그 가방은 뭐야? "



흐레스벨그는 그 말에 뒤에 있던 가방을 집어들어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내게 보여주었다.



" 이건.. "



바로 매지컬 모모 시리즈가 들어있는 광학 디스크 모음들이었다...



" 오늘은 사령관님이 뭘 원하실지 몰라서 다 가져왔습니다. "


" 아.. "



잠시후,



우리는 약간의 셋팅을 마치고 매지컬 모모 시리즈를 볼 준비를 끝냈다.

나와 흐레스벨그는 이렇게 가끔 만나서 매지컬 모모 시리즈를 보곤 했다.


지금까지 도대체 몇 번을 정주행 했는지 모른다.

그동안 워낙 많이 봐서 그런지, 이제는 대사도 외울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지겹지는 않았다. 이게 흐레스벨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 오늘은 어떤 편을 보시겠습니까? 사령관님? 제 개인적인 추천으로는, 1기의 24화를 추천합니다.


사령관님도 아시겠지만 24화는 매직 젠틀맨과 매지컬 모모의 풋풋한 썸씽이야기를 볼 수 있는 스토리죠. 액션보다는 감성에 치중한 편이라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



" 어... 오늘은 재방송말고 다른거 보려고. "



" 네? 어떤.. "



" 혹시,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의 최신판은 없어? "



내가 너스레 물었다. 이에 흐레스벨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아니요. 종전 이후 지난 5년동안 마법소녀 시리즈는 단 한번도 제작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O-엔터테이먼트가 세워지며 마법소녀 시리즈 제작을 알리긴 했지만..


모모님이 마법소녀 시리즈 하차를 선언하면서 신작은 물건너간 상황이었죠. "



흐레스벨그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근데 흐레스벨그는 그동안 왜 내게 모모의 하차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을까?

의문점이 잠시 들긴 했지만, 흐레스벨그는 분명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태연한 반응을 보면 대충 추측할 수 있다.



" 그렇구나..

아참, 오늘 뉴스를 보니깐 O-엔터에서 <마법소녀 매지컬 백토>를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



" 맞습니다. 제게는 희소식이긴 하지만.. 명색이 주인공인 모모님이 없는 마법소녀 시리즈라니,


모모가 최애인 저에게 있어선 조금 아쉽습니다. "



흐레스벨그는 디스크 하나를 들고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그때,



" 쿵! 쿵! 쿵! "



저 멀리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쿵! 쿵! 쿵! "



" ? 누가 왔나? "


" 그런 것 같네요. "



나와 흐레스벨그는 잠시 귀를 기울여 보았다.




" ...맨! "



" ...? "



" 젠틀맨!!!!! "





배..백토!?


쿵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백토의 목소리였다.



" 배..백토님!? "



놀라는 흐레스벨그의 표정이 활짝 피어났다.


아깐 모모가 시리즈에 안나와서 시무룩해 하더니만..



" 바닐라? 거기 있어? "



나는 문 너머에 있을 바닐라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문을 열어주러 간 모양이다.



그리고 그 추측은 적중했는지 곧 쿵쿵 소리가 멈추었다.





잠시후.



바닐라가 백토와 뽀끄루를 데리고 내 방으로 왔다.



" 젠틀맨! "


" 안녕하세요. 사장님, 흐레스벨그 씨. "



방으로 백토와 뽀끄루가 들어온다.


바닐라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라는 듯 시선을 보내며 방문을 닫아주었다.



" 얘들아. 무슨 일이야? "


" 젠틀맨. 부탁할게 있다. "




백토의 표정이 영 좋지않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나까지 심각해졌다.




" ...뭔데 그래? "



" 모모가 위험해! "



... 백토가 빨간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질렀다.



" ... 뭐? "



" 모모가 마법소녀를 은퇴한 이후 악의 기운에 잠식된거 같아! "



" 악의 기운? "



도대체 백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마법소녀들의 말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모모나 뽀끄루의 말은 알아듣기 쉬웠지만,

복원될 때 문제가 있었던 백토는 가끔씩 이렇게 알 수 없는 표현을 쓰곤 했다.


그녀에겐 어떤 표현이 아니라 진심이었겠지만.



" 크흑.. 내가.. 방심한 사이에..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



갑자기 백토의 눈에 물방울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 어..어.. 왜 울어!? "



백토의 눈물이 줄기를 이루며 볼을 타고 흘렀다.


이내 내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하얘지며 당혹감이 올라왔다.



" 뽀끄루, 지금 이게 무슨 말이야? "



나는 백토에게 손수건을 건네주고 달래주며 뽀끄루에게 물었다.




" 사실은, 어제 회사에서 우리는 모모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어요.


모모가 마법소녀를 그만둔 뒤로 정말 바빴었거든요. 그런데.. "



" 그런데? "



" 그게.. 모모의 상태가 무척 안 좋아보였어요. "



" 뭐? 모모의 상태가 어떻다는거야? "



" ... 몸이.. 예전보다 전체적으로 엄청 수척해졌다고 해야하나..?


표정은 밝았지만 안색도 무척 좋지 않았어요.


모모는 화장으로 어떻게든 가리려고 한것 같지만.. 화장 너머로도 다크서클이 다 보이고..


아무튼 상태가 무척 안좋아 보였어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은 모습이었죠. "



" 그정도라고..? "



" 네.. 백토는 그런 모모의 모습을 보고 엄청 걱정되서 이러는 거에요.


저도.. 솔직히 모모가 너무 걱정되고요.. "




... 도대체 모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 모모한테는 말해봤어? "



" 네. 그런데.. 모모는 항상 그랬듯이 웃으면서 절대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




...모모다운 반응이네.



" 사장님, 지금 모모는 일에 중독된거 같아요.


제가 아는 스태프들 말로는 매일 매일을 일에 빠져서 살고 있다고 해요.


모모는 우리랑 달리 개인 엔터테인먼터로 활동하고 있어서 소속사에서도 모모의 강행군을 막기가 힘들구요.



모모가 자기 몸도 챙기지 않고 저렇게 무리하게 활동하는 건..


모모의 동료인 우리 입장에선 너무 보기 힘들어요.


조금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사장님. 모모를 구해주실수 있나요? "



뽀끄루가 고개를 떨구며 내게 물었다. 이대로라면 뽀끄루도 백토를 따라 울어버릴 기세였다.



" ... 알았어. "



그녀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제서야 나 역시 모모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모모에게 관심을 주지 못한 사이, 모모가 망가지고 있다는 소식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 백토?


그만 울어. 내가 모모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볼게. "



" ...정말..인가..? "



" 응. 물론. "



" 만약.. 젠틀맨이 모모를 구하게되면... 뽀끄루와 함께 3번째 의식을.. "



" ...네!? "



뽀끄루가 화들짝 놀란다.


아니, 우울한 와중에도 이런 말을..







잠시후.




백토와 뽀끄루는 촬영 일정때문에 급히 돌아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백토가 모모가 걱정된 나머지 억지로 뽀끄루를 데리고 이 곳으로 온 모양이다.


이렇게 백토와 뽀끄루가 불시에 찾아올 정도라면 지금 모모의 상태가 얼마나 안좋다는 걸까?



" 흐레스벨그. "



나는 뒤에서 사색이 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있던 흐레스벨그를 불렀다.



" ...ㅇ....예. 사령관님. "



모모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에 충격이라도 먹은건지 흐레스벨그는 말을 조금 더듬었다.



" 혹시, 요즘 모모의 일정을 알고있어? "



이에 흐레스벨그는 뺑글이 안경을 벗으며 수첩 비슷한 걸 가방에서 꺼냈다.



" 현재 모모님은 다양하게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매일 아침마다 <오르카마당>이라는 코너에 나와 고정게스트로 활약하고 계시고, 이후에는 오전 라디오 방송에서 사연읽어주기를 하십니다.


그리고 <알바생 모모>라는 제목의 일상 아침 드라마에도 주인공으로 등장하시고, 또한 <요리여왕 모모>라는 제목의 요리 로맨스 드라마에도 출연하십니다.


저녁 시간대의 <기억해줘!>라는 제목의 감성드라마에도 참여하시고, 새벽에는 <달빛의 FM라디오>라는 라디오 코너에서


방송을.. "



" 아니, 어떻게 그걸 다 꿰고있어? "



" 비록 모모님이 은퇴하시긴 했지만, 저는 모모님의 영원한 팬이니까요. "



흐레스벨그가 수첩을 내게 넘기며 말했다.


수첩에는 모모님의 일정♡ 이라는 소제목과 함께 흐레스벨그가 방금 말한 것 외에도 모모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이름이 잔뜩 적혀있었다. 문득 이 녀석이 매지컬 모모의 '찐팬'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상기된다.



" 그나저나 모모는 마법소녀 배역만 맡을줄 알았는데. "



모모는 마법소녀 시리즈의 배우로 태어난 바이오로이드이다.


자신을 완벽한 배우로 알고있는 뽀끄루와는 약간 다르게 모모는 자신이 배우인 것은 알고 있지만 마법소녀라는 배역에 몰입이 많이 되어있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설마 다른 배역까지도 소화 할 수 있을줄이야.



" 모모님은 배역에 몰입을 많이 하실 뿐이지


사령관님의 생각보다 다양한 역할의 배역을 다 소화할 줄 아십니다.


배우의 일은 물론이고 토크 게스트, 라디오 DJ로도 활약하시니. "



이렇게 들어보니깐 모모는 정말 연예인 같다.


만능 연예인.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근데.. 모모가 그렇게나 많은 프로그램들에 출연을 하고 있다면.. "



" 모모 님이 엄청난 강행군의 일정을 매일매일 소화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



흐레스벨그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 근심이 가득 담겨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 사령관님. 백토님과 뽀끄루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지금 모모님을 내버려둬선 안될 것 같습니다. "



흐레스벨그가 낮은 목소리 톤으로 말했다.



" 동감이야. "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점점 몸이 망가져가는 모모를 구해달라는 백토의 부탁.


그녀를 막을수 없는 소속사.


그리고 그걸 지켜만 볼수는 없는 나.



그렇다고 모모를 직접 찾아가면 나의 걱정을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 상 시치미를 뚝 뗄 것이 분명하다.


이미 오래전에 모모를 비롯한 오르카 대원들은 내 명령권에서 일부 벗어난지 오래니까.


그리고 그들의 제약을 풀어준 것은 나니까, 바쁘다는 모모의 일을 방해하긴 싫었다.


남들에겐 광적으로 임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이 모모에겐 행복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




그때, 내 머릿 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 흐레스벨그. "



" 네. "



" 혹시, 모모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를 알고싶지 않아? "



만약, 시치미를 떼는 모모앞에 증거를 내밀수만 있다면..


그녀를 막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 네? 당연히 알고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요..? "



흐레스벨그가 나에게 되물었다.



" 방법이 떠올랐어. "



나는 내가 떠올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O-엔터테이먼트에는 믿을만한 정보원 후보가 있으니까.





홀로그램 너머로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 어머, 사령관님! 오랜만이에요! "


" 응. 안녕. 페더. "


" 안녕하십니까? 페더님. "


" 어머~ 흐레스벨그님이네요~ 반가워요~ "



홀로그램 화면 너머로 탈론 페더가 어색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이마에 땀이 송곳이 맺혀있다.



" 페더, 솔직히 말해봐.


방금 전까지 우리 보고 있었지? "



" 네? ㅁ... 무슨 소리세요! "



" 너 여기 어딘가에 설치한 카메라로 우리 지켜보고있는 거 다 알거든? "



" 그... 그게.. "



내 송곳처럼 날카로운 직언에 페더가 당황했다. 사실은, 페더가 실시간으로 뭘 하고 있는지는 뻔했으니까..



" 페더..! "



" 에헤헤... 맞아요.


솔직히 말하면.. 두 분이서 거사라도 치를 줄 알고 기대했었는데..


곧바로 저한테 전화를 주실 줄은 몰랐죠. "



페더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옆에있던 흐레스벨그의 볼이 약간 빨개졌다.



" 그럴줄 알았어.. 넌 정말 변한게 없구나. "



내 말에 페더가 헤벌레 웃기 시작했다.



" 헤헷..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잖아요. "



" 페더님은 사람 아니거든요... "



흐레스벨그가 페더를 째려보며 말했다.



" 페더, 그건 그렇고. 부탁이 있어. "


" 네? 무슨 부탁이요? "


" 너, 지금 O-엔터테이먼트 본사에 있어? "



페더는 O-엔터테이먼트의 사진 작가로 일한다.



" 아니요. 지금 저는 SBS 라디오 현장에 있어요. "



" 거긴 왜? "



" 오늘 여기에서 모모님의 라디오 일정이 잡혀있으니까요. "



" 좋았어. 잘 들어. 페더. "



나는 페더에게 내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페더는 평소에도 나를 도촬하곤 했다. 바로 방금 전까지도.


그만큼 카메라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만약 지금 모모의 일터에서 일하고 있는 페더가 모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내게 보여줄 수만 있다면..



모모가 하루종일 뭘 하는지, 몸 상태는 어떤지,


내게 뭘 숨기는거라도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그거.. 도촬아닌가요? 사령관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던.. "



내 계획을 모두 말해주자 페더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내게 물었다.



" 맞아. 근데 넌 그걸 알면서도 방금전까지도 하고 있었잖아? "



" 아. 헤헷. 죄송해요. "



" 도촬이라.. 이건 선을 조금 넘은거 아닌가 싶은데.. "



흐레스벨그가 혼잣말을 했다. 


하긴, 흐레스벨그는 모모의 팬으로써 이런 짓을 꺼리는게 당연했다.



" 어쩔수 없어. 지금 모모를 막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해. "



내겐 오르카 대원들이 위험에 빠졌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구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그들의 제약을 풀어주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의 사령관이니까.



" 이번만 도와줘. 페더. 모모가 진심으로 걱정되서 그래. "



" 사령관님이라면 언젠가 그러실줄 알았어요. 다른 분들은 몰라도 모모님은 요즘 너무 지나치게 바쁘시거든요.


제가 지켜봤을때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요. "



" .... "



모모.. 주변 사람들에게 유명해질 정도로 정말 일에 빠져 사는 모양이다.


사실 이렇게 주변 동료들의 증언만으로 모모에게 증거를 내밀순 있겠지만..


도촬 작전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나는 내 눈으로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모모의 모습을, 


그리고 평소에 어떻게 그 강행군을 소화하고 있는지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 그럼, 모모님이 오는대로 촬영 시작할게요! "



" 응. 부탁해. "





그렇게, 우리들의 모모 관찰기, 아니, 도촬기가 시작되었다.









<은퇴한 마법소녀 도촬하기>




Start.






8284/20000자




https://arca.live/b/lastorigin/28539897

https://arca.live/b/lastorigin/28793504


위 링크는 공약 링크 (모모가 미스오르카 본선 진출시 20000자 문학쓰기)

아래 링크는 공약 이행을 위해 섹돌 추천받은 글 (모모)



아직 쓰는 중인 20000자 문학이긴 하지만


20000자의 문학을 한번에 올리기엔 좀 그래서 나눠서 올리기로 했슴다


근데 지금 쓰고 있는 꼬라지를 보니 20000자가 아니라 30000자 까지도 될 수 있음



아무튼 첫편부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