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버림받은 사령관 외전 - 못 다한 이야기' 의 3차 창작입니다.


버림받은 사령관의 또 다른 가능성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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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호의 두 번째 인간에 의해서 저항군이 무너지고, 그녀의 부하들과 함께 해체실로 끌려갈 때 레오나의 마음 속에는 절망 뿐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철충을 무찌르고 세계를 되찾는다는 목표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자긍심도,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를 이끌며 얻은 명성에서 비롯된 자부심도,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두 번째 인간이 본색을 드러내고 알비스를 죽이고 스틸라인의 모든 부대원들을 재료로 삼아 자신의 탈출을 위한 잠수정을 만드려 하다가 결국 라비아타의 반란으로 진실이 폭로되고 오르카호가 붕괴되면서 철혈의 레오나를 이루던 모든 것은 무너졌다. 그녀는 자신이 꿈꾸던 발할라를 향해 나아가는 명예롭고 충성스러운 삶이 아닌, 그저 더러운 배반자로서 헬하임에 떨어지게 되었다. 

 

 레오나가 펙스의 수복실에서 다시 일어나 펙스의 회장의 자리에 오른 첫 번째 사령관을 만나게 될 때까지 그녀의 마음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기를 원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했어. 

 

 전부 내 탓이야. 

 

 제발 용서해줘. 

 

 뭐든 할게, 당신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어. 

 

 다시 첫 번째 사령관의 앞에 서게 된다면 그녀는 용서를 빌기 위해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정말로 뭐든지. 설령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일개 소총병으로서 최전선에서 철충과 싸우라는 명령을 받게 되거나, 그녀를 그저 성노예로 써먹는다 하여도 그녀는 진심으로 웃으며 그 명령을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회장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을 때 진정으로 절망했다. 

 

 오르카호의 바이오로이드들을 추방시킨 펙스의 회장의 결정은 그녀들이 그에게 준 상처가 그들의 사과로 없어질 수 없음을 드러냈다. 회장에게 있어서는 그녀들이 사과하겠다면서 눈앞에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그렇기에 그는 오르카호에 그녀들을 태워서 모조리 치워버렸다. 사과를 해도 받아줄 수 없는 이상 차라리 두 번 다시 보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오르카호에 쫓겨나듯 태워지던 날, 그녀는 우연히 발키리와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그녀는 발키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회장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대장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는데 이제와서 대체 왜 이러시는지 전 모르겠습니다. 지금 대장한테 필요한 건 대가를 치르는 것, 그것뿐입니다."


 레오나는 그대로 켈베로스에 의해 오르카호에 끌려가듯 태워졌다. 

 

 오르카호를 타고 돌아다니는 동안, 레오나는 철저히 고립되어있었다. 베라는 이미 정신이 완전히 돌아버려서 대화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님프와 샌드걸, 그렘린은 자신들이 이렇게 된 이유를 전부 레오나의 탓으로 돌렸다. 게다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퍼뜨렸다. 

 

 “그게 사실이야?”

 “그렇다니까? 레오나 대ㅈ... 아니지, 레오나 그 년이 우리한테 사령관님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말했었어. 아주 작정하고 메이 대장이랑 같이 사령관님을 음해했던 거야.”

 

 “우리라고 처음부터 전 사령관님이 싫었던건 아니었어요. 다 레오나 대장이 시켜서 그런 거죠. 사령관실의 물건들을 버리라고 시키거나, 문에 낙서하라거나... 전부 저희한테 시켰었어요.”

 

 우린 잘못 없어.

 이건 전부 레오나 탓이야. 

 우리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만약 전 사령관이 듣는다면 혈압이 올라서 쓰러지고도 남는 소리였고, 사실 본인들도 자기들도 공범이라는 진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실제로 바이오로이드 중에는 그녀들도 공범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녀들은 뻔뻔하게 넘겼다. 

 

 “....너희들이 나에 대해서 말하고 다니는 걸 들었는데.... 참 가관이더라? 명령에 따랐을 뿐? 너희 잘못은 없다는 거니? 뻔뻔하기도 해라.”

 “하? 처음부터 대장이 이렇게 만들었잖아요? 당신이 대장으로 있으면서 일을 저질렀으면 당연히 ‘대장답게’ 책임도 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니? 님프, 그렘린, 너희도?”

 “.....”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대장. 최소한 저희라도 살아야 되는 거 아니겠어요?”

 “....하, 하하하....”

 

 레오나는 그 후 거의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대원들은 숙소를 떠나 다른 숙소에서 지냈고, 과거 북적이며 가득찼던 숙소는 이제 레오나만 남아서 홀로 지내게 되었다. 레오나도 이런 곳에 있고 싶지 않았지만, 사령관에게 섹스 비디오를 보냈던 것 같은 과거행적이 사방팔방에 알려지면서 어디에도 있을 수 없었다. 지나가다가 뒤에서 밀쳐지거나, 발을 걸거나, 밖에 나갔다 왔더니 그녀의 방에 온갖 오물이 쏟아져 있거나... 

 

 어두컴컴한 숙소에서, 홀로 벽에 기대어 어둠 속을 바라보면서 레오나는 과거를 떠올렸다. 초코바를 들고 기뻐하는 알비스, 알비스를 나무라는 베라, 그리고, 발키리, 그렘린, 님프, 안드바리.... 

 

 하지만 회상이 끝나고 나면, 그녀의 눈 앞에는 부서지고 낡은 숙소와 어둠 만이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끅끅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그녀의 소중한 것들을 망가뜨린건 결국 레오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오르카호가 아이슬란드에 정박하고 정착지가 건설될 때까지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은 이유는 레오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빈 껍데기가 된 그녀의 마음 속 어딘가에는 아직도 작지만 희망을 품고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이 더러운 배반자라는 오명을 벗어나, 다시 철혈의 레오나로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말이다. 

 

 레오나는 콘스탄챠를 따라가는 유진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오르카호에서 하곤 했던 상상을 다시 떠올렸다. 맑은 하늘에는 구름들이 떠있고, 햇살이 밝게 내리쬐지만 공기는 선선하니 좋은 날씨였다. 갑판 위에 준비된 객석들에는 그녀가 알던 모든 이들이 앉아서 그녀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연단까지 깔린 레드카펫을 밟으며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가와 반지를 끼워주고, 그녀는.....

 

 하지만 눈을 떠보면, 그녀의 눈 앞에는 현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두침침하고 적막하며, 이미 모두 떠나버리고 먼지 쌓인 숙소가 그녀 앞에 보였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질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린 것에 대한 슬픔에 몸부림쳤다. 

 

 유진과 함께 할 때, 레오나는 마치 그 꿈이 이루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이것이 현실도피의 상태일 뿐이고 유진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며, 그녀는 아직도 회장에게 용서받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유진을 끌어안고 그와 대화하는 순간만은 자신의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하면서 그녀는 꿈을 꿀 수 있었다. 레오나는 배반자가 아니라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를 이끄는 명예로운 철혈의 레오나라고, 그렇게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하아....”

 

 히루메는 그런 레오나를 보면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레오나는 그녀의 충고에도 여전했다. 히루메가 보고 있을 때면 조금 자중하는 듯 했지만, 그녀가 없으면 어제랑 다를게 없었다. 

 

 레오나가 오베로니아 레아와 유진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을, 히루메는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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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오로이드는 기본적으로 양산형이다. 개중의 특별한 모델들, 이를테면 라비아타 프로토타입 등의 원-오프 타입이 아닌 이상은 기본적으로 양산이 가능하게 설계된다. 펙스에서 군용 바이오로이드들이 대대적으로 생산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농업용 바이오로이드인 페어리 시리즈도 폭팔적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몇몇은 회장과 그 가족들과 관련된 업무로 옮겨지는 경우도 있었다. 

 

 유진이 페어리 시리즈를 보러 가자고 한 이유는 별 것 없었다. 그저 그가 원래 페어리 시리즈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A2형은 겉으로는 무서웠지만 그래도 말을 걸면 상당히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아쿠아는 은근히 죽이 잘 맞았다. 이야기 하다보면 리제랑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드리아드, 그리고 동생들을 항상 생각하던 상냥한 오베로니아 레아까지, 페어리 시리즈는 유진이 좋아하는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렇기에 그는 오르카의 페어리 시리즈 바이이오로이드들 간의 문제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옆에 꼭 붙어서 시설에 관한 소개와 자기들이 여기서 맡은 일 따위를 설명해주는 레아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아쿠아와 다프네의 눈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자매를 보는 눈이라기 보다는, 때때로 그의 어머니가 전장에 있을 때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에서 어머니가 철충을 바라볼 때 보이던 눈빛에 가까웠다. 

 

 ‘어째서 저러지? 아쿠아는 원래 언니들이랑 친하지 않던가? 다프네는 또 왜?’

 

 유진이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자매들끼리 무슨 일이 있나보다, 하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저기를 만들었어요. 도련님, 뭐 궁금하신거 있으세요?”

 “아니, 없어요, 누나. 아, 그런데....”

 “? 네, 도련님?”

 

 ‘잠깐 귀 좀 빌려줄래?’하고서 레아에게 귓속말로 자매들끼리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려던 유진은 그냥 그만두기로 했다. 잘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그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일이라는 직감이 있었다. 

 

 “아, 아니에요. 전 이만 가볼게요.”

 “아....”

 

 레아가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를 내었다. 이를 들은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누나. 어차피 한동안은 여기에 있을 거니까 자주 찾아올게요.”

 “!! 그래! 자주 찾아와줘! 꼭이야!”

 

 무릎을 굽혀서 유진과 눈을 마주치면서 꼭 찾아와 달라고 당부하는 레아와 유진의 사이를 리리스가 슬며시 가르자 콘스탄챠가 자연스럽게 유진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자, 도련님. 이제 피곤하실 텐데 숙소로 돌아가요.”

 “응. 그럴게.”

 

 레아는 시설 밖으로 나와서 유진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서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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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츠머스 해군기지는 원래는 블랙리버의 시설이었지만 1차 연합전쟁 도중에 펙스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펙스로 소유권이 옮겨졌다. 다만 영국을 영향권으로 두던 블랙리버에게 있어서 브리튼 제도 최대의 군항인 포츠머스 기지는 언젠가 돌려받아야 할 곳이었고, 다시 기지를 되찾기 위해서 내심 칼을 갈고 있었다. 철충의 침공으로 멸망 전쟁이 터지지 않았다면 아마 기지를 두고 전쟁이 벌어졌으리라.

 

 “칸, 당신이 가져온 지도에는 너무 공백이 많이 나오는군.”

 “내가 그걸 가져올 당시에는 자세히 조사할 틈이 없었네. 지상시설들만 빠르게 훑고 나와야 했거든.” 

 “스카이 나이츠의 정찰 결과와 비교해보면 지하시설이 지상시설보다 수십배는 더 거대하군요. 음파 탐지기를 사용해보니 확실해요.”

 “통신설비는 지상 설비만 사용해도 가능해. 하지만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가서 지하시설들도 한 번쯤 돌아보고 오는 편이 낫겠군. 기지의 크기를 보니 물자도 많을 거야.”

 “펙스 시설이니 펙스의 일원인 제가 인증해서 보안 절차를 뚫을 수 있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펙스의 모든 시설들은 중앙과 보안체계가 연동되니까요.”

 “그럼 나이트앤젤 당신도 같이 가는 거네요.”

 “다른 둠브링어들이 본사에 잔류하기로 한 게 아쉽군요.”

 

 나이트앤젤의 말에 마리가 의아해하는 얼굴로 묻는다. 

 

 “자네가 속한 둠브링어는 전멸하지 않았나?”

 “오르카호에 소속되었었던 둠브링어는 펙스에 있습니다. 저는 다른 둠브링어 부대에 일시적으로 파견나가야 했던 것 뿐이고요.”

 

 “그럼 얼추 작전의 윤곽은 잡혔군요.... 그럼 해산하도록 하죠. 그리고 홍련? 저와 잠깐 이야기 좀 하도록 하죠.”

 “.....네”

 

 라비아타 통령은 다른 지휘관들과 부관들이 자리를 뜨자 홍련에게 말했다. 

 

 “당신이라면 제가 무슨 일로 불렀는지 알겠죠? 미호, 그녀가 참가하기로 했지만... 솔직히 저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아무리 참가자가 부족하다지만....”

 “....라비아타 통령. 당신의 생각은 압니다만, 이 작전은 펙스 회장님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고 그녀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녀도 납득했고요. 그녀가 이 작전에 훼방을 놓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보증하지요.”

 

 라비아타가 한숨을 쉬었다. 

 

 “홍련, 당신도 이 작전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요?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믿어는 보겠지만... 전 그녀를 신뢰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을 신뢰하는 거죠. 이건 알아두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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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면서 가장 힘든게 바로 각자의 내면 묘사... 쓰면서 이 녀석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유를 풀어내야 하는데 이게 제 부족한 실력으로는 참 힘든 일입니닷.....


 그래도 각 인물들의 내면 묘사는 이 글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 인지라...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잘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