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화(첫 만남)   2화(등대로)   3화(시동 걸기)   4화(초읽기)  5화(고비)  6화(미친놈과 더 미친놈)  7화(한결같은 엔딩)  

8화(재정비)  9화(송충이에게는 솔잎을)  10화(장비를 연결합니다)  11화(200톤짜리 로데오)  12화(개X끼여도 우리 개X끼)  13화(포식자와 피식자와 관전자)



“일단 이 정도 검사 결과로 알 수 있는 건 이게 다네요. 아직 미스터리한 부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프란츠 님이 건강하다는 걸 증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나와 그레고르 씨, 콘스탄챠 씨와 마리 씨가 모여 있는 의무실에서 새로 복원되신 리제 씨가 자료 해석을 마무리하며 말씀하셨다. 손에 들린 보고서는 ‘중추신경계를 감싸고 있는 금속에 철충 감염이 일어난 것으로 의심됨’이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애초에 우리 중에서 그나마 의료 지식이 있는 건 너밖에 없잖아? 애초에 난 엑스레이가 작동하는 원리도 몰라.”

 

“리제 기종이라도 엑스레이 해석법 같은 기초적인 의료 지식이 있다는 건 듣던 중 다행이던 정보군요. 솔직히, 그레고르 각하가 다프네 기종이 아니라 리제 기종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꽤 불안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보니, 그레고르 씨. 제가 그저께 여쭤봤을 때는 다프네 기종의 복원이 진행 중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근데 왜 시저스 리제 기종이 복원된 거예요?”

 

“...헷갈렸어.”

 

“네?”

 

“다프네 기종이랑 리제 기종이랑 머리카락 색을 반대로 기억하고 있었어. 흑갈색이 다프네 기종인 줄 알았는데 정작 깨어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리제더라고? 나도 처음에 만났을 때는 철렁했다니까?”

 

“뭐,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어차피 두 기종 모두 현재 프란츠 각하의 신체상태에 대해서는 분석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이 있었고, 어찌 되었든 프란츠 각하가 완전한 인간이라는 확신을 얻은 건 큰 수확입니다. 그리고 전투원이 모자란 현 상황에서는 시저스 리제 기종이 전투에 더 적합한 인재이기도 하니, 결과적으로는 잘 된 겁니다.”

 

“예, 예. 격려 고맙슴다, 장군 나으리. 벌써부터 기억력이 이래서야...치매 검사라도 받아봐야 하려나?

 

그레고르 씨는 그렇게 넋두리를 늘어놓으시고는 바닥에 축 늘어지셨다. 아무래도 지치신 모양이다. 오늘 새벽에 복원이 끝난 리제 씨의 안내를 하셨다고 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신 게 그렇게 힘든 체질이신 건가?

 

“...그럼 제가 할 일은 전부 끝난 건가요, 주인님?”

 

“어, 수고했어, 리제. 콘스탄챠, 리제한테 숙소로 안내해줄 수 있겠어? 오늘 새벽에 막 깨어난 참이니까 좀 쉬게 해줘. 겸사겸사 나도 여기서 좀 쉬고...”

 

“어머, 상냥하셔라. 그래도 전 주인님 곁에 있는 게 가장 편하답니다? 주인님 곁에 있으면 언제든 주인님께 기어 오는 해충들을 썰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요.”

 

리제 씨는 상냥하게 미소지으시며 그레고르 씨를 바라보셨다. 지금까지 내가 본 인상에 따르면, 리제 씨는 그레고르 씨의 외모에는 개의치 않고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항상 곁에 붙어 다니시는 편을 선호한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시는 게 특징이시다. 개인적으로는 그레고르 씨에게 호감을 보이는 바이오로이드 분이 생긴 것에 기쁘긴 하지만, 그레고르 씨는 그리 반가워하지 않으시는 눈치다. 개인적인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그리고 해충이라니?

 

“...해충? 그레고르 씨, 창고 쪽에 바퀴벌레라도 나온 건가요?”

 

“어어...그런 게 좀 있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줄게. 그리고 리제, 마음은 고맙지만, 나도 지친 사람을 붙잡고 끌고 다니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일단 한숨 자고 나서 날 찾아오는 게 어때? 겸사겸사 나도 좀 쉬고.”

 

“그렇지만, 제가 눈을 뗀 사이 다른 해충들이 주인님에게 다가오면 안 되잖아요? 전 알아요, 주인님에게 함부로 대하는 고약한 해충이 있다는 걸요. 주인님에게 헛소리나 주절거리는 그 망할 목소리도...”

 

리제 씨는 초점 없는 눈으로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시며 말을 이어가셨다. 점차 숨소리도 거칠어지고, 목소리도 격앙된 모습을 보고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맞아요. 그 목소리. 그 도도한 척하는 저급한 목소리...주인님에게 예의 따윈 안중에도 없고 자기 할 말만 하는 그 빌어먹을 년은 보이는 대로 그 망할 모가지를...!”

 

의무실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마리 씨와 콘스탄챠 씨의 눈에는 경계하는 듯한 눈빛이 감돌았고, 그레고르 씨는 아예 슬금슬금 뒷걸음질까지 치시기 시작하셨다. 나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마리 씨에게 슬쩍 눈빛을 보냈다.

 

“거기까지, 시저스 리제 대원. 아무리 자네의 선천적인 성격이 그렇게 설계되었다고 해도, 오르카 내부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건 용납할 수 없네. 그리고 각하들의 기분도 생각하도록. 두 분 다 겁에 질리시지 않았나.”

 

마리 씨에게 제지를 받은 리제 씨는 한순간 살의에 찬 눈빛으로 마리 씨를 노려보았지만, 곧이어 나와 그레고르 씨의 모습을 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한 자상한 미소를 지으셨다. 

 

“...진정된 건가요?”

 

“일단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별도로 사회성 교육을 받던지, 그레고르 각하가 명령권을 사용해 성격을 죽이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리제 대원의 전투력은 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이대로라면 철충보다 우리가 그 위력을 체감하게 될 판이니.”

 

마리 씨는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콘스탄챠 씨에게 리제 씨의 안내를 부탁하셨다. 콘스탄챠 씨는 리제 씨를 데리고 의무실은 나서려고 하셨고, 리제 씨고 군말 없이 콘스탄챠 씨의 안내에 따르시는 듯했다. 누군가가 성난 목소리로 의무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오시기 전까지는.

 

“어디 계셨나 했더니 여기 계셨군요, 그레고르 주인님. 웬일로 일찍 일어나시길래 그 딱딱한 몸뚱이에 근성이라는 것이 좀 배어들었나 싶었는데, 그 태만함은 어딜 가지를 않는군요? 말도 안 하시고 침실에서 빠져나오시지를 않나, 부하는 주인님을 찾기 위해 오르카 전체를 샅샅히 뒤지는 동안 여기서 침대 위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청하시지를 않나...간이 배 밖으로 나오신 건가요? 아, 애초에 간도 쓸개도 없으신 분이셨죠?”

 

바닐라 씨가 노여움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그레고르 씨에게 거침없는 폭언을 날렸다. 대놓고 육두문자나 폭력이 섞이지는 않았지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비꼬는 듯한 쓴소리는 제삼자인 나마저도 속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자, 잠깐만 바닐라! 지금은 아니-”

 

“근무시간은 한참 전에 지났는데 창고에도 없고, 전술훈련소에도 없고, 공방에도 없고. 땡땡이까지 치시면서 오신 곳이 의무실이네요? 오르카에서 유일하게 에어컨이 작동하는 곳? 그렇게까지 시원한 곳을 찾으신다면 제가 친절히 주방 냉동고에 쑤셔 넣어드릴 수는 있겠습니다만?”

 

매도의 당사자인 그레고르 씨는 리제 씨의 눈치를 보시고는 허겁지겁 사태를 정리하려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주인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지, 해충?”

 

섬뜩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리제 씨가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바닐라 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붉은 두 눈이 바닐라 씨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고, 두 손에는 한 쌍의 가위가 시퍼런 날을 빛내고 있었다.

 

“해충? 혹시 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 중에서 해‘충’이라는 말이 그나마 잘 어울리는 사람은 그레고르 주인님밖에 없습니다만? 아, 그래도 맡은 일은 하시니 해충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으려나요?”

 

리제 씨의 기세에도 바닐라 씨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되받아치셨다. 겨우 만든 평온한 분위기기 한순간에 다시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정적. 완벽한 정적이 의무실을 맴돌았다. 마치 폭풍의 눈과도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마리 씨가 가볍게 헛기침을 한 후 리제 씨를 진정시키려 했다.

 

“리제 대원? 우선 진정하게. 다른 사람들도-” 

 

“죽여버리겠어어어!!!”

 

물론, 완전히 눈이 돌아간 리제 씨가 완전히 진정되는 것은 그보다 3시간 후였지만.


다음화

                                                                      


3지역 스토리는 어떻게 짜야 하나 고민중

근데 스토리 다시보니까 진짜 3~5지역은 쓸 게 없다

탐색-전투-탐색-전투 무한반복인데 이걸 스토리로 어떻게 써먹지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