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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스카이나이츠의 전대장 P-49 슬레이프니르… 야, 아니. 입니다.

 독단 행동으로 정말 큰 걱정을 끼쳐서…….


함대 소속의 고속정을 타고 귀환한 슬레이프니르의 인사에서는 경쾌함의 ㄱ자도 느껴지지 않았지.

오는 길에 그리폰이 통신으로 투덜거린 바에 의하면, 처음에는 그리폰의 기세에 눌려서 찍 소리도 못 하고 있다가 오는 길에 미련을 못 버리고 아이돌 활동에 대한 신념을 어필한 것이 결정타였다나봐.

덕분에 그 전까지는 중립을 고수하던 블랙 하운드가 1시간 30분에 걸친 설교를 하게 된 끝에 완전히 넉다운 당해 버렸다나 뭐라나.


프로젝트 오르카가 갓 이벤트였다는 건 어렴풋이나마 기억하는 리제로서는 좀 더 힘내줬으면 하는 바람도 없진 않지만, 불패함대가 더해진 만큼 단번에 먹는 입도 늘어나버린 저항군의 상황을 생각하면 차마 편을 들어줄 수는 없어서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지.

했는데.


- 슬레이프니르. 공연 활동에 대해서 말인데…….

- 어? 응? 아니! 그건 진짜 한 순간의 충동이었거든! 지금부터는 착실히…….

- 좋아하게 된 계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 ……이?


아무래도 사령관은 꽤 흥미가 있었던 모양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슬레이프니르가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사령관을 보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기력을 되찾는 광경을 세 발짝 정도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자니, 그리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다가왔음.


- 아-아. 어쩐지 이럴 것 같더라니. 이래서야 기껏 정신 차리게 만든 게 도루묵이네.

 하여튼 물러터져가지고서는….

- 그래서 좋지 않나요?

- 부정은 안 하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처럼 콩깍지가 씌진 않았어.

- ?


자기가 한 말은 객관적인 근거에 기초한 사실 확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리폰도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이 뻔히 보이는 리제의 얼굴에, 그리폰은 과장되게 싫은 소리를 내면서 혀를 내둘렀지.


*   *   *


그날 밤.

마지막 남은 함선 - 무적의 용이 직접 승선할 기함 - 의 출항 준비도 끝나가고 있었고, 그런 만큼 막바지로 처리해야 할 일도 늘어난지라 사령관은 오래간만에 남은 일거리를 함장실까지 가져와야 했어.

그리고 같은 이유에서 오래간만에 리제는 사령관의 무릎 위에 걸터앉아 몸을 기대고 있었고.


패널을 누르는 전자음만 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급한 일을 대체로 마무리짓고, 사령관은 스카이 나이츠의 재편에 대한 시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음.


- 신경쓰여요?

- 조금은.


리제는 재촉하는 대신 몸을 돌려서 사령관에게 옆으로 안기는 자세를 잡았고, 사령관은 살짝 고개를 내려서 그런 리제와 시선을 마주해 주었어.


- 사실, 처음엔 조금 놀랐어.

 목적 외의 일에 그 정도로 열정적인 바이오로이드는 드무니까.

- 이뤄주고 싶나요?

- 내가 일방적으로 해 주는 건 의미가 없고, 응원하고 싶다… 고 해야 할까?


음. 프로젝트 오르카는 중대 문제지.

- 라는 감상은 어찌되었든.


- 정작 목적 외의 사랑에 대한 대답은 차일피일 미뤄만 두는 나쁜 인간 님을 하나 알고 있는데.

- 거기서 그 이야기야?

- 새삼스럽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당신은 '인간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모두의 사랑을 '당연한 것' 취급하지 않으니까.

-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

- 그런 태도니까 더 사랑받는 거라고요.


훌륭한 순환이네요. 키득거리면서 리제는 사령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문질렀지.


- 리제 너는?

- 물론 그런 누구보다도 사랑하죠.


사령관은 리제의 대답에 씩 웃으면서 그대로 리제를 안아 올렸고.

요즘 바쁘다고 뜸하기도 했겠다. 간만에―


- 각하! 네스트 한 기가 갑작스럽게 출현했습니다!

 현재 저희 측에서 페어리 드론과 교전에 돌입했지만, 추가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

- 각하?

- 아, 응. 아직 스틸라인이 본체와 접근하지는 않았지?

- 예!

- 그러면 용의 기함에 화력 지원을 요청해줘. 그리고 경계용으로 배치한 드론을 통해 발할라에…….


음성 통신일 뿐이라 다행이다.

-라고 생각해도 어쩐지 억울함과 민망함은 가시질 않아서, 리제는 HMD를 장착한 사령관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해변 저 어딘가를 향해 주먹을 방방 휘둘렀음.


죽어버려! 이 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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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지는 다음 편으로 마무리일 것 같스빈다.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363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