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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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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들 잘 들리나?"


"드론 1846호, 명령 대기 중."


"상병 노움 55호, 잘 들립니다."


"아~함, 잘 들려."


나는 내 옆에서 늘어져라 하품하는 이프리트 141에게 꿀밤을 먹였다.


"아얏! 이거 병영부조리야!"


"그럼 이건 훈련이다 임마. 마리 대장도 보고 있을텐데,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라. 알겠냐?"


"네! 알겠습니다!"


내 말에 벼락맞은 것처럼 태도를 바꿔 박격포 진지로 뛰어가는 이프리트 모델을 뒤로 하고, 나는 드론이 전송해주는 화면의 야지를 보았다. 오래 전 논밭으로 활용되었을 땅은 조금 있다 있을 전투를 예감하듯 고요했다.


"드론, 정찰 보고."


"현재 감지기 상 포착되는 철충 반응 없음, 경계를 지속합니다."


"노움, 진지는 구축되었나?"


"네, 모든 인원 진지에 자리잡았습니다."


"확인."


나는 손에 든 무전기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짤막한 고요.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무전을 켰다.


"모두,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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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제임스 씨의 부대는 평야를 진군하는 철충 부대에 맞서 능선에서 계곡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바라보도록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철충 부대와 직접 맞서기보단 계곡길 안쪽으로 들어오려는 철충 부대를 기습하려는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화력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적에 대한 대비도 거의 없는 것 같고?


"정말 클레식한 전술이네. 이런 전술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걸 모르나봐."


레오나의 짧은 평에 메이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 대장의 전술 같긴 하네. 그래서 스틸라인 땅개들을 그리 많이 차출했나?"


"메이 대장, 말을 조심하시오."


"왜? 내가 틀린말 한건 아니잖아?"


용과 메이가 기싸움하는 사이, 마리는 팔짱을 낀 채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너무나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깨고 말을 걸 수 없었다.

그 사이 대항군은 야지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온다. 다들 준비해."


제임스 씨는 드론을 사정거리 밖으로 후퇴시키면서 지시했다. 남은 병사들은 진지를 지키고 있었고, 드론만이 적 부대의 사거리 밖에서 빙빙 돌며 적들의 움직임을 알려줄 뿐이었다.


"이대로 통과시키기라도 할 생각인가?"


"그럴리가, 분명 뭔가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너무 정적인 제임스씨의 지휘에 아스날과 칸이 의견을 나누는 그 때,


"이프리트, 고폭탄 장전."


제임스 씨가 행동하기 시작했다. HUD에 표시되는 각도로 봐서는 철충의 후방을 노리는 포격을 준비하고 있는 듯 했다. 부대 후방에 화력지원병력이 많으니 그것을 노리는 건가... 싶다가도, 그러기에는 차라리 중앙을 타격하는게 좋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짜피 정찰로 위치도 파악했고, 포를 쏘면 주변에 있는 적들도 피해를 입는데.


"사격개시!"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제임스씨는 사격 명령을 내렸다.


콰앙!!


포탄은 철충 부대의 후미를 타격했고, 철충들은 황급히 경계 태세를 취했다. 이어질 포격에 대비해 병력을 넓게 배치하고, 매복한 병력을 찾아 일렬횡대로 수색에 나섰다. 저러면 진지 안에 있는 부대원들이 전부 위험에 빠질것이라는 건 당연했고, 제임스 씨는 드론을 전진시켜 사격을 명령했다. 적을 발견한 철충들의 탄을 피하고, 보란듯이 계곡으로 후퇴하는 드론.

 

"철충들을 계곡 안으로 유인하려는건가?"


레오나의 시큰둥한 판단대로, 철충들은 드론을 쫓아 계곡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부 병력들은 아직도 수색 대형을 유지하고 있어 진지 내 병력들의 측면이 위험하다는 건 변하지 않았고, 설령 계곡 안으로 주부대들이 유인이 된다 하더라도 저 화력으로 적 병력들을 모두 격파해낼 수 있을까? 다른 지휘관들도 똑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아무리 지휘 모델이 없어 철충의 행동이 단순하다지만... 저건 너무 무모한 것 같군."


"그러게, 십중팔구 포위될 게 뻔해."


"그리고 전멸하겠지."


레오나와 아스날의 지지를 등에 업은 채, 메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사령관, 더 이상 테스트 할 필요가 없어보이는데? 중단하는게 어때?"


팔짱 위로 툭 튀어나온 가슴처럼 대놓고 제임스 씨를 무시하는 언행. 나는 메이의 태도에 화가 났다. 아무리 두 번째 인간이라 나를 위협할 수 있어서 그렇다고는 해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니야? 최소한 기회는 줄 수 있어야지. 무어라 하려다가 꾹 참고선,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그대로 진행해. 결과는 봐야지."


"동감이다. 최소한 어떤 의도로 이런 전술을 구사했는지는 확인해야 되지 않겠나?"


"흥! 물러터졌긴."


칸이 내 말에 힘을 실어주자, 메이는 한심하다는 듯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 덕분에 냉랭해진 분위기를 무시한 채, 나는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중에 메이의 저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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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기 잔탄 9%, 재보급이 필요합니다."


"그래, 기지로 복귀하고. 이프리트, 최대한 철충 부대가 계곡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 포격. 좌표는 드론이 보내줬다."


"알겠습니다!"


콰앙, 포격음이 진지 바로 앞 벌판 쪽에서 들렸다. 평소에는 게으른 척 하더니 막상 시키면 잘 하네.

하지만 이프리트 개체의 박격포가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포격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충들은 좀처럼 진영을 좁혀들어오지 않았다. 지뢰나 클레이모아만 있었어도 좀 더 편했을텐데. 그나마 다행인것은 주력 부대들은 드론을 쫒아 계곡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계곡으로 어느 정도 철충들이 들어오면 노움의 콘크리트 수류탄으로 퇴로를 막고, 화력을 집중시킨다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양 옆으로 분산된 병력들은 드론 혹은 이프리트의 포격으로 정리하고, 혹 철충들이 너무 가까이 접근해 백병전이 일어난다면 마이티 R 개체가 처리한다. 엉성했지만, 원래 그러라고 제한한 부대 구성 아닌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습니다. 사격합니까?"


"대기. 부비트랩이 작동하면 사격한다."


나는 후퇴하는 드론이 제공해주는 화면으로 전황을 살폈다. 주 부대는 부비트랩 바로 위를 지나고 있고, 일부 철충들은 포격 사이에서도 일렬횡대를 유지하며 우리 진지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수색하고 있었다. 저 수색대가 변수인데.


"드론, 복귀 후 좌표 하나여섯 여섯오로 이동."


"확인, 예상 소요 시간 8분. 최대 출격 기동시 5분."


나는 드론을 수색대 방향으로 재배치한 뒤, 부비트랩을 지나는 철충들을 지켜보았다. 저 빅칙만 지나면...


"사령관님. 빅칙 넘어왔습니다."

 

"사격 개시."


펑!

빅칙의 뒤로 커다란 연기가 터졌다. 놀란 듯 뒤돌아보는 철충들 앞에 나타난 것은 우그러지듯 솟아오르는 콘크리트 벽. 그들이 어떻게 대응하기도 전에 진지에서는 총알이 쏱아지기 시작했고, 철충들은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레프리콘이 없어 화력이 나올지 의문이었는데, 그래도 관통탄을 들려줘서 그런지 어느정도 화력이 되는 모양이다.

본대는 이 정도면 한 숨 덜었고, 문제는 정찰대인데...


"이프리트, 알파 지점에 고폭탄으로 포격 지원이다. 드론! 지정된 좌표로 가고 있나?"


"좌표 근접, 해당 지점 철충 감지..."


드론이 스캔을 위해 정찰대가 있던 지역으로 이동하던 그 때, 


탕!

내가 있는 기지에서도 들릴 정도로 큰 총성과 함께 드론의 무전에 큰 노이즈가 들렸다.  


"뭐야?! 드론, 응답해!"


"기능 위험. 스나이퍼 칙... 피격..."


스나 칙에게 피격당했다고? 정찰했을 땐 없었는데? 어디 있다 튀어나온거야? 나는 다시 한 번 드론을 호출했지만, 무전기 너머로 들리는 것은 노이즈 뿐이었다.


"씨발 스나칙은 대체 어디서 기어나온 녀석이야!"


"사령관님! 진지 우측에 뭔가 있슴다!"


브라우니의 다급한 무전이 나를 다그쳤다. 진지 우측? 주 병력이 있는 진지는 계곡 쪽을 정면으로 보고 구축되어 있고, 거기서 우측이면... 드론이 피격되었던 위치, 수색대가 보였던 곳이다. 벌써 수색대가 다가오고 있다는건가?

나는 마이티 R 개체와 통신을 연결했다.


"마이티 R, 들려?"


"어, 나 들려."


마이티 R 개체의 목소리에 긴장이 만연했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든 안 그럴까.


"마이티 R, 쉬워. 철충이 다가오면 달려들어서 날려버리면 되는 거야. 알겠지?"


"응, 알았어. 잘 해볼께."


과연 마이티 R 모델이 잘 해낼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전투용 바이오로이드도 아닌데다가 그 동안 함내에만 있어서 철충과 직접적으로 싸우는 건 굉장히 오래되었을텐데. 그 동안 운동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실전에서 자신의 전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는 보장은 되지 않으니까.

나는 통신을 끉지 않고 그녀의 긴장된 숨소리를 들었다.


"사령관, 철충이 다가오고 있어."


"긴장 풀고, 셋 세고 달려드는거야. 알겠지?"


"응, 알았어."


"좋아. 하나..."


마이티 R 모델이 꿀꺽 삼키는 침소리가 들렸다.


"둘..."


무전기 너머로도 들리는 철충들의 관절이 삐그덕대는 소리. 나도 모르게 무전기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발, 실수하지 말아라.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