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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 타이런트의 존재는 작전 수립 단계에서부터 엄청난 부담이긴 했어.

역으로 해킹당할 가능성을 대비해 바이오로이드만으로 작전 병력을 꾸리는 상황에서 상대측에 타이런트가 있다는 건 허들이 좀 높은 정도가 아니니까.

소프트웨어가 구형이라 짐승 정도의 본능 밖에 없다는 것도, 전면전을 벌이다 보면 언젠가는 마주칠 것임에 틀림 없는 시점에서 큰 위안은 안 되었지.

아머드 메이든이 대대적으로 동원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

로버트 휘하에 있는 대부분의 AGS는 사령관의 지휘만 받쳐준다면 스틸라인만으로도 상대할 수 있을지언정 타이런트만큼은 대항 자체가 성립하지를 않거든.


그나마 타이런트라는 기체의 특성상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정도로 로버트가 조종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이 위안이었는데-


그런 괴물이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이 쪽으로 돌격해온다니.

단순히 재수가 없었다, 였으면 좋겠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

오히려 야생 동물에 가까운 소프트웨어를 역이용해 유도했다고 보는 쪽이 맞겠지.


하지만, 왜?


예상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 굳어버린 리제의 정신을 되돌린 건 엘븐의 외침이었음.


- 일단 더 깊은 숲으로 가자! 여기까지는 직진해 오더라도 마냥 쫓지는 않을 거야!

- 제가 홀로그램으로 유도해 볼게요! 다른 분들이 배치되지 않은 구역이 어느 쪽이죠?


그래. 생각해 보면 원작에서 묘사되지 않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벌어진 전투도 하루가 멀다 하고 봐 왔는데, 알고 있던 게 틀어진 정도로 필요 이상으로 당황할 필요는 없지.

맞서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그래도 까마득했겠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거라면 그래도 해볼 만 하고.


- 엘븐 씨, 다크엘븐 씨, 부탁해요!

- 응! 추적당할 경우를 대비해서 일단은 정박지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이동할게.


그동안 조짐조차 보이지 않던 통신 방해가 기다렸다는 듯 강하게 걸려온 상황에 불안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행동할 때였어.


*   *   *


얼마나 지났을까.

높이 날았다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건 정말 끝장이고, 써니의 홀로그램으로 흔적을 전부 가릴 수도 없는 만큼 은폐에 신경쓰다보니 이동 속도는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었어.

그래도 다들 바이오로이드이니만큼 절대적으로 보면 짧은 거리를 이동한 건 아니겠지만.

오히려 힘든 것이라면 타이런트의 존재 자체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 쪽이었을까.


- ……걸음이 멈췄군요. 추적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동 중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던 금란이 나지막하게 결론내린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 이제 상황을 봐서 오르카 호로 귀환하면 될 것 같은데-

- ▄▄▄▀▀███▄▄▄█▀▀▀▀██▄▄-------!!!!!"

- …당장은 무리겠네.


엘븐의 말에 대답이라도 한 듯 저편에서 굉음과 함께 불꽃이 치솟는 순간 다소나마 이완되었던 분위기는 단번에 다시 팽팽해졌음.

이 거리에 이 날씨인데도 공기가 뜨거워진 게 느껴질 정도라니, 블랙리버는 대체 뭘 만든 거야.

그 와중에도 다들 조금씩 스노우 페더의 날개에 접근하는 게 웃기다면 웃기지만 정말로 웃을 기력이 나냐면 그건 아니고.


열기가 다소 잦아들기를 기다려서, 리제는 상황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음.


- 엘븐, 통신은 아직 불가능한가요?

- 응. 타이런트가 접근해온다고 무전을 받은 시점 이후로 완전히 먹통이야.

- 기술팀 대부분이 마을 해방에 투입되어 오르카 호를 떠났으니, 빠른 해결을 기대하기도 어렵겠죠.

 한동안은 저희끼리 어떻게든 해야겠군요.


- 금란, 주변에 다른 기척은 없나요?

- 타이런트 외에도 소형 AGS들이 다소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리는 아직 상당하고, 이쪽을 특정하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만.


이럴 때 금란은 정말 편리하구나.

적어도 기습에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 타이런트가 달려든 것이 우연일 가능성은 낮겠죠.

- 응. 기록된 '타이런트'의 행동 패턴이든,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은 단순한 짐승 수준의 패턴이든 명백하게 이상 행동이야.

 상대 측이 의도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 그러면.


리제는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을 꺼내보기로 했음.


- …타이런트의 행동을 유도한 목적에 '제'가 포함되어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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