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워울프를 이어 페로, 나이트엔젤, 발키리 금고를 가장 먼저 금고를 찾았던 자칭 비키니 해적단의 멤버들의 소원들을 들어주었고 사령관도 업무 걱정 없이 오로지 휴식에만 집중하며 정신을 재충전 할 수 있었다. 

예상외로 수수한 대원들의 소원들도 사령관이 심적인 부담을 덜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호드 대원들과 추후 술을 한 잔 같이 하자고 했던 워울프, 수줍은 듯이 몸에 오일을 바르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했던 페로, 레오나와 함께 시간을 같이 보내달라고 했었던 발키리.

 

 그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 걸려있던 만큼 사령관은 대원들이 나름 충격적인 소원을 빌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사령관이 생각한 만큼 대원들의 바람은 크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제 마지막 한 명이 남았다. 그러나 그 마지막이 나머지를 전부 합친 것보다 더 사령관을 두렵게 했다. 

사령관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마음으로 각오를 단단히 했다. 

총사대장 샬럿, 워울프와 함께 사령관에게 요주인물로 찍혀있던 금발의 바이오로이드. 

 

 그녀의 수영복 차림을 처음 봤을 때 사령관은 당황스럽다 못해 황당했다. 

큼지막한 푸른 사파이어 3개로 몸의 은밀한 곳을 가리고 실보다 약간 굵은 끈으로 보석들을 이어놓은 것이 전부인 수영복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큰 쪼가리를 당당하게 입고 나타난 그녀를 보며 사령관은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소완의 아찔한 수영복을 봤을 때보다 더 자극되었다. 

거대한 가슴에 얹혀있는 형태의 보석 수영복은 샬럿이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출렁거리는 가슴에서 튕겨져 나갈 것만 같았고 가리고 있던 은밀한 부분이 여실 없이 드러날 듯 싶었다.

 

 평범한 배짱과 용기가 없으면 도전도 하기 힘들 보석 수영복이라는 기괴한 수영복을 아무렇지 않게 입고 돌아다닐 수 있는 용기와 평소에도 여러 번 추파를 던졌던 태도.

뜨거운 여름휴가의 마지막에 이번에야말로 보스와 대면하게 되었다고 사령관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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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으로 호화로운 이탈리안 코스요리를 먹고 한창 배가 불러 잠이 솔솔 오는 오후 1시.

이제는 사령관의 지정석이 된 썬배드에 누워 사령관은 눈을 감고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썬배드 옆에 있는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사령관은 곧 샬럿이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초침이 다섯 바퀴를 돌았을 때 썬배드 뒤편에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사령관의 귓가를 핥았다. 

 

 “폐하. 총사대장 샬럿, 폐하와의 데이트를 위해 몸단장을 마치고 왔습니다.”

 

 사령관이 지금 문장을 시각화할 수 있는 특수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면 샬럿의 말에서 핑크색 하트 모양을 여러 개 볼 수 있었을 거다. 

교태를 부리듯 아양을 떠는 목소리였지만 사령관은 샬럿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살렷이 사령관에게 빈 소원은 일일 데이트였다. 하루 동안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샬럿의 부탁을 사령관은 수락했다. 

 

 “샬럿, 다 좋은데 그 이상한 복장은 제발 갈아입어주면 안 되겠나? 옷이라고 할 수도 없는 끈 쪼가리를 입고 다니는 건 좀 그렇다.”

 

 휴가 첫 날 대원들의 수영복 차림을 봤을 때는 지나치게 노골적인 시각적 자극에 사령관은 곤란해 했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인 그녀들은 사령관의 기억 속에 있는 인간 여자와 비교했을 때 월등히 아름다웠다. 

그런 그녀들이 육체의 미를 극대화시키는 수영복을 입으니 시각적인 자극이 상당했다. 그러나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 3일이 지난 지금은 대원들의 수영복에 익숙해져 전만큼 자극이 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적응이 되지 않은 대원이 바로 샬럿이었다. 

 

 “폐하, 끈이라니요. 이 수영복은 오드리님이 저를 위해 직접 맞춤 제작을 해주신 특제 수영복이라고요. 어떠세요? 폐하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한 옷인 만큼 폐하가 즐겨주시면 좋겠어요.”

 

 저 끈 쪼가리를 만든 장본인이 오드리라는 샬럿의 말에 사령관은 기겁을 했다. 천재적인 디자이너인 오드리가 저런 말도 안 되는 옷을 만든다? 사령관으로서는 믿기 힘든 주장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령관은 썬배드에서 일어났다. 

어찌되었든 오늘은 샬럿과 함께 데이트를 해야 하는 날, 하루 정도는 샬럿의 어리광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썬배드에서 일어나 사령관은 샬럿에게 손을 뻗었다. 

 

 “어차피 섬이여서 있는 거라고는 바다, 숲, 모래뿐이지만 가지. 오늘은 네가 원하는 바라는 대로 어지간해서는 맞춰주겠다.”

 

 “감사해요 폐하. 오늘이 폐하의 기억에 영원이 남을 아름다운 날이 되도록 이 샬럿도 최선을 다할게요.”

 

 샬럿이 사령관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사령관의 옆에 서서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으며 올려다보았다. 

오늘 하루 동안은 온전히 사령관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우월감에 젖어 당장 사령관의 탄탄한 가슴팍에 안기고 싶었지만 아직 방해꾼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령관이 데이트를 시작하기 위해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샬럿은 사령관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사령관에게 샬럿이 말했다. 

 

 “폐하, 숨어서 저희들의 시간을 방해하려는 불순한 자에게 엄하게 한 말씀을 해주세요. 오늘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없이 폐하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샬럿이 말한 방해꾼이 누구인지 사령관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방금 전부터 꼭꼭 치르는 듯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불만 가득한 시선을 보낼 줄을 몰랐다. 

 

 “리리스, 그만하고 가라. 오늘 몰래 따라다니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그때는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사령관이 허공에 대고 엄하게 말하자 그제서야 따가웠던 시선이 사라졌다. 리리스가 어딘가로 가버린 것을 느낀 샬럿은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샬럿과 사령관은 손을 잡고 걸었다. 현재 시간 오후 1시부터 내일 오후 1시까지 사령관과 샬럿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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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트라고 해도 섬이란 폐쇄적인 환경 때문에 사령관과 샬럿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앙헬 리오보로스의 무덤이 숨겨져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무인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거나 섬에 뭐가 있는지 탐사하는 게 전부였다. 

다행히 섬에 남아 있던 철충들은 사령관의 명령 하에 모두 깔끔하게 쓸어버려 이동하는 도중 철충과 조우하는 위험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령관과 샬럿은 섬을 돌아다니며 대화를 하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였지만 샬럿은 이것만으로도 행복한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령관의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꾸를 해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면 폐하께서는 그 연합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으신 거군요. 정말 대단하세요.”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다. 죽기 싫어 아득바득 살아남으려고 애쓰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뿐이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폐하는 분명 가장 강하시니까 지금까지 살아남으신 게 분명해요!”

 

 “그 반대 아니냐?”

 

 유명한 격언을 너무 자연스럽게 반대로 말해버리는 샬럿의 당당함에 속을 뻔했지만 사령관은 곧바로 지적했다. 샬럿은 그런 지적에 작게 웃으며 대꾸했다. 

 

 샬럿은 사령관의 과거에 관한 질문을 여러 개 더 물었다. 평소에도 사령관의 과거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많았다. 오래 전 세계가 연합전쟁으로 뒤흔들렸던 때부터 세계가 멸망한 지금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인간이란 부분은 호기심을 유발시키기 충분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마리 양을 비롯한 지휘관 분들과 모두 싸우신 건가요?”

 

 “아니, 내가 참전했던 1차 연합전쟁 때는 신속의 칸, 철혈의 레오나 개체가 개발되기 전이었다. 그 둘과 블랙리버의 총사령관이었던 무적의 용을 제외하면 모두 한 번 정도 이상은 전장에서 맞닥뜨린 적이 있다. 마리가 이끄는 스틸라인과는 거의 매번 싸웠다고 볼 수 있겠군. 뭐, 한 번도 패배한 적은 없었지만 전쟁에서 패배했으니 상처뿐인 승리인 셈이지.”

 

 “정말로 단 한 번도 패배하시지 않으셨다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무능한 지도자의 결정 때문에 무너져 내린 무적의 장군. 정말 비장하네요.”

 

 샬럿은 사령관의 과거에 대해 더 알고 싶었지만 연합전쟁에서 패배해 떠돌아다니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말을 끝으로 말해주지 않았다. 

아쉬워했지만 사령관의 뜻에 따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무언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대신 다른 여러 가지 다양한 질문을 했다. 

취미는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혹시 이상형이 어떻게 되는지 평범한 것들을 물어보는 것뿐이었지만 이런 평범한 것들마저도 대부분의 승조원들은 모르는 고급 정보였다. 

사령관은 샬럿이 묻는 질문들을 모두 대답해주었고 샬럿은 사령관이 말하는 모든 것들을 머릿속에 기억했다. 

 

 “샬럿, 너는 오르카호가 옛날과 비교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나?”

 

 사령관이 돌연 샬럿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진지한 질문이었지만 샬럿은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당연해요. 폐하의 온총 덕분에 저를 포함한 모든 분들이 풍족하게 지내고 있어요.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를 만큼 저희들은 폐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어요. 설마 누군가 폐하의 능력에 대해 헛소리를 한 것인가요? 그렇다면 당장 저에게 말해주세요. 이 샬럿, 총사대장의 명예를 걸고 그자를 잡아오겠어요!”

 

 그 누구도 사령관을 헐뜯거나 무시하는 아둔한 이는 없으리라고 믿었지만 만약 그런 자가 존재한다면 당장 잡아와 사령관 앞에 무릎을 꿇리고 자비를 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처럼 높고 태양처럼 따스한 사령관의 은혜에 보답하지는 못할망정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험담을 하는 자라니 상상만으로도 용서를 할 수 없다. 

 

 샬럿이 눈에 살기를 띄우자 사령관은 그런 일이 아니니 진정하라고 말했다. 사령관의 말에 살렷은 흥분한 나머지 추태를 보였다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방금 한 말처럼 만약 그 누구라도 친애하는 사령관에 대해 험담을 하는 이가 있다면 누구라도 지체하지 않고 칼로 심판을 내리리라 다짐했다. 

 

 “폐하, 혹여나 폐하를 음해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 누구보다 이 샬럿이 나서서 단죄할 거에요. 저는 폐하의 검이자 총사대장 샬럿, 언제든 폐하를 위해 몸과 마음 그리고 목숨까지 바칠 준비가 되어 있어요.”

 

 과거 중세시대의 기사가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듯 샬럿은 가슴에 손을 얻고 사령관에게 말했다. 항상 환하게 웃으며 조금은 천연스러운 매력이 있는 샬럿도 지금만큼은 진중하게 사령관에게 굳건한 충성심을 보이고 있었다. 

사령관은 그런 샬럿이 고마웠다. 자신을 위해 저렇게 분노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충족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사령관으로서 책무를 다하겠다는 맹세의 의무감으로 힘들어도 업무를 열심히 본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에게 그런 것을 물으셨나요? 폐하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에게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샬럿은 조심스럽게 사령관에게 물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저런 질문을 할 리는 없다. 샬럿은 사령관이 저런 질문을 하게 된 경위가 궁금했다. 

 

 “그냥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예? 무엇을요?”

 

 샬럿은 사령관이 한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령관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오르카호 내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었다. 식량확충, 자원과 물자 확보, 저항군 세력의 규모 증가 등과 같은 문제들도 다른 문제들을 포함해 정말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콘스탄챠도 항상 내게 많은 부분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보이고 있다고 말했었지. 그런데 돌이켜보니 너희들에게 물어본 적이 없더군. 사실 오르카호 내부에 일어나는 변화들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너희들이지 않나. 그래서 묻고 싶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사령관은 항상 콘스탄챠가 말했던 오르카호의 변화된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콘스탄챠로부터 아무리 많이 오르카호의 내부에 어떤 변화가 있고 앞으로 어떤 부분을 보안해나가야 하는지 들어도 사령관은 결국 수치상으로 기록된 데이터에 의존해 오르카호의 어젠다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령관은 데이터가 얼마나 사실과 다른지를 몸으로 직접 느껴보았다. 기업과 정부가 패권을 두고 다퉜던 연합전쟁, 유령 부대의 부대장이라는 나름 높은 위치에 있었던 사령관은 수뇌부의 사정과 병사들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 깨달았다. 

 

 높은 영감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라고 병사들은 살아남아 집에 돌아가고 싶어한다. 수뇌부에게 병사들의 죽음 단순한 병력손실을 의미하지만 병사들은 싸늘히 식어있는 아군들의 시신에 자신들의 미래를 투영한다. 

저항군의 지도자라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사령관에게 병사였던 그 시절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얼룩이다. 

 

 “폐하, 폐하께서 무슨 저희들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도 쉴 날이 없다고 콘스탄챠 양으로부터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생각하시고 있는지 몰랐어요. 폐하의 이런 바다처럼 넓은 자비로움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샬럿과 오르카 호의 대원들에게 이미 사령관은 정녕 그가 과거의 인간들과 같은 종족이 맞을까 의심이 들 만큼 상냥하고 좋은 남자였다. 

사령관이란 존재는 이미 승조원들에게는 하늘에서 강림한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가 전쟁을 이끌고 지금까지 부상자들이 속출하기는 했지만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전투는커녕 제대로 된 식량도 물자도 없던 거대한 고철덩어리였던 오르카호를 저항군의 어엿한 기지로 탈바꿈하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바로 사령관임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폐하, 제가 비록 마리 양처럼 군을 지휘하는 능력이 출중하지 못하고 콘스탄챠 양처럼 폐하를 보좌할 능력이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아니 탓에 기회가 없어 이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지만 지금 여기서 한 가지는 확실하게 답해드릴 수 있어요.”

 

 샬럿이 부드러운 두 손으로 사령관의 손을 맞잡았다. 사랑하는 연인을 보는 청초한 처녀처럼 아름다운 눈으로 사령관에게 말했다. 

 

 “폐하가 무엇을 행하시든 그것은 옳은 것일 거에요. 그리고 지금까지 폐하가 해오신 일은 전부 옳은 일이었어요. 그러니 아무런 걱정하시지 마시고 폐하는 원하시는 대로 저희들을 사용하시면 되요. 폐하야말로 저희들의 주인님이시니까요.”

 

 분위기에 쏠려 솔직한 마음을 직접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오르카호의 그 누구도 사령관을 독점할 수도 그래서도 안 된다. 

강한 바이오로이드도, 아름다운 바이오로이드도, 희귀한 바이오로이드라도 결국 사령관의 곁에 설 수 있는 바이오로이드는 사령관이 결정한다. 

사령관의 총애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러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샬럿 본인도 생각하고 있었다. 

 

 총사대장으로 태어나 명예롭게 검을 휘두르고 단 한 번도 타인에게 부러움이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던 샬럿이었지만 근래에는 힘보다는 지식과 지혜가 있었다면 사령관에게 더 큰 총애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마음도 들었다. 

지혜와 지식을 생각하니 샬럿의 머릿속에 한 소녀가 떠올랐다, 작은 체구에 긴 금발머리를 하고 있는 붉은 추기경. 그녀라면 다시 모습을 보이자마자 사령관에게 거대한 총애를 받을 게 분명하다. 

 

 단막극의 한 장면 같은 이 하루도 해가 지고 막이 지면 사령관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건 앞으로 힘들 수도 있다. 그는 다시 사령관으로서 모든 이를 통솔해야 하고 자신은 그의 수많은 소유물 중 하나로 돌아간다. 

고로 샬럿은 이 하루 안에 사령관과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군. 고맙다.”

 

 “감사는 저희들이 폐하께 해야 하는 거죠.”

 

 손을 맞잡고 사령관과 살렷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입고 있는 수영복에 달려 있는 푸른 사파이어에 꿀리지 않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는 보석처럼 아름다웠고 사령관은 그런 살렷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사령관과 마찬가지로 마치 밤하늘처럼 깊고 진한 사령관이 검은 눈동자를 본 샬럿은 그 눈동자에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럼 다시 걷겠나?”

 

 “예, 폐하.”

 

 사령관과 샬럿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손만 잡고 걸었던 둘은 이제 서로의 팔을 둘러 팔짱을 꼈다. 몸에서 땀이 나 접촉은 땀이 몸에 묻어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지금 둘에게는 상관없었다. 

 

 ---

 

 “샬럿 어때 만족하나?”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정말 낭만적이지 않나요? 해가 지는 조용한 해변에서 남녀가 단둘이 있다니 이렇게 둘 사이에 사랑이 싹 트고 석양이 지는 태양을 배경으로 영원의 사랑을 맹세하는 거죠.”

 

 “아무리 배우로 제작된 바이오로이드라지만 너는 너무 드라마를 많이 본 것 같다.”

 

 “환상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저는 폐하와 이렇게 술잔을 기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환상적이니까요.”

 

 시간이 흘러 해가 질 시간이 될 무렵 사령관과 샬럿은 출발했던 해변으로 돌아왔다. 해가 수평선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하늘이 어두워지는 건 순식간이다. 

아무리 날씨가 덥다지만 수영복 차림으로 밤을 보내는 행동은 이롭지 않기에 해변으로 돌아와 대신 테이블을 설치하고 앉아 데이트를 이어갔다.

테이블에는 와인 한 병과 두 개의 크리스탈 잔이 있었다. 크리스탈 잔에는 레드 와인이 담겨져 있었고 둘은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잔을 비웠다. 

 

 오후 6시 30분, 이미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가볍게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어떤 술이든 병나발 채 물고 격식 없이 들이켜 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령관은 그냥 적당히 마지막을 장식하기 좋은 술을 가져와 달라고 소완에게 부탁했었다.

 디저트와 함께 소완이 가져온 와인을 본 샬럿은 감탄하며 와인의 이름과 제조년도를 줄줄 읊었다. 사령관은 입을 꾹 닫고 샬럿이 해주는 와인에 대한 설명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귀한 와인이 같았다. 

 

 잔끼리 약하게 맞대며 청아한 소리를 낸 후 동시에 잔을 비웠다. 와인을 담고 있던 부분만 붉게 변했었던 크리스탈 잔이 와인을 비우면 다시 투명해졌다. 

그때마다 샬럿이 사령관의 잔에 와인을 채워주었고 둘은 벌써 와인 반 병을 비웠다. 

 

 “폐하, 노을이 지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한낮에는 실눈으로도 바라보기 힘들었던 강렬한 태양이 이제는 수평선에 걸려 불꽃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다. 샬럿은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잠수함이라는 특성 상 샬럿을 포함한 승조원들을 아주 긴 시간을 수면 밑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작전 수행과 대대적인 환기를 위해 오랜 시간 수면으로 올라오는 기간이 있다. 

적어도 1달에 한 번 정도는 시행되는 이때 샬럿은 항상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갑판으로 가 노을이 지는 광경을 구경했다. 

 

 샬럿은 노을이 지는 광경을 볼 때마다 태양이 녹아 그 붉은 화염으로 하늘을 잠시나마 불태워버리는 것 같았다. 최후가 도래했음을 감지한 생명체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세상에 스스로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사라지는 듯한 강렬한 인물의 최후 같았다.

결국에는 시간과 밤의 어둠에 밀려 사라지지만 강렬한 마지막 빛으로 빛이 닿는 곳까지 묽게 물들이는 태양의 모습은 샬럿에게 매번 웅장함을 느끼게 해준다.

 

 노을에 대한 낭만에 감정이 젖은 샬럿은 노을 지는 바다를 옆에 두고 사령관을 바라보니 그가 더 잘생겨보였다. 

노을이 져 붉게 변한 섬을 배경 삼고 진중한 모습으로 크리스탈 잔을 돌리며 천천히 음미하는 자태와 사령관의 남성미가 넘치는 외견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 오히려 사령관의 위엄을 살려주고 있었다.

사실 사령관은 평소처럼 와인을 병나발 채 물고 시원하게 들이키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샬럿은 사령관으로부터 최후의 인간이자 오르카호의 사령관에게 어울리는 위엄을 보았다.

 

 “뭐 그냥 저냥 볼 만하군.”

 

 “아이 폐하, 그때는 ‘노을보다 네가 더 아름다워’ 라고 말씀해주셔야죠.”

 

 사령관의 심심한 반응이 실망스러웠는지 사령관의 목소리를 따라하며 귀엽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사령관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샬럿이 뭘 원하는지 눈치챈 사령관은 낯간지러웠지만 사령관의 기분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헛기침으로 목을 풀고 나름대로 멋있는 표정을 하고 평소보다 조금 목에 힘을 줘 말했다. 

 

 “노을보다 네가 더 아름다워 샬럿.”

 

 푹 깔린 목소리로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을 샬럿은 두 손으로 가득 붉어졌을 얼굴을 가렸다. 테이블 밑으로 다리를 동동 구르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시했다. 

약간 억지를 부려 받아낸 칭찬이었지만 단순히 칭찬을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샬럿은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좋지 못한 행동이지만 방금 들은 칭찬을 승조원들에게 자랑하고 돌아올 부러움 섞인 반응들이 참 기대가 되었다. 

특히 그 가슴만 큰 오만한 바보에게 자랑할 생각에 샬럿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낯부끄러운 칭찬을 듣더니 갑자기 얼굴을 가리고 도리도리 젓고 있는 샬럿을 보며 사령관은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생각했다. 

정작 부끄러운 말을 한 장본인인 자신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부끄러움을 꾹 참고 있는데 뭔가 억울했다. 

 

 “폐하 방금 정말 로맨틱 했어요! 정말 저는 총사대장으로서 변치 않는 충성과 용기로 폐하를 지켜드려야 하는데 방금 그 맹세들을 전부 내려놓고 한 명의 여자가 될 뻔했어요.”

 

 단순한 외모 칭찬을 들은 것에 지나지 않는데 저렇게 좋아하는 샬럿의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녀가 기분이 좋으면 됐다고 생각한 사령관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샬럿은 속으로 사령관이 한 말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빈 잔에 와인을 다시 따랐다. 

 

 “폐하, 건배해요. 폐하의 영원한 영광과 오르카호의 승리를 위해 건배할까요?”

 

 “뭐든 좋다.”

 

 “그러시지 마시고 함께 웃으며 건배하죠. 폐하의 영광과 오르카호의 승리를 위하여 건배.”

 

 잔이 약하게 부딪혀 맑고 청하한 소리가 울렸다. 건배를 신호로 둘은 각자의 잔을 비웠다. 샬럿은 천천히 능숙하게 와인을 넘겼고 사령관은 물 마시듯 쭉 넘겼다. 

 

 와인 한 병을 다 마실 때가지만 대화를 나누고 오르카 호 안으로 들어가자고 샬럿이 말했고 사령관은 알겠다고 답했다. 

대화의 흐름은 샬럿이 물으면 사령관이 답하는 형식으로 이어졌다. 사령관이 샬럿에게 물을 때도 있었지만 쉬지 않고 질문을 하고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샬럿에게서 말할 타이밍을 잡아내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폐하, 앞으로도 이렇게 한가롭게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겠죠?”

 

 “마음 같아서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장담은 할 수 없겠군. 오르카호의 상황이 점점 더 좋아지면 쉬는 날이 많아질 수도 있겠지. 그렇지 못하다면 나나 승조원들이나 죽어나가는 거고. 그런 질문을 하는 걸로 보아하니 너도 이번 휴가를 상당히 즐겼나보군.”

 

 “당연하죠. 저를 포함해 다른 대원분들도 정말 즐거워 보이셨어요.”

 

 “마음 같아서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하고 싶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갑자기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대로 끝나는 거니까.”

 오르카호의 어떤 대원보다 가장 휴가를 즐겼던 사령관도 샬럿에게 바로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지 못해 아쉬웠다. 

휴가가 많아질 만큼 오르카호의 사정이 좋아진다면 자신이 맡아야 하는 업무의 양도 현저하게 줄어들 텐데 아직은 그런 이상적인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폐하께서는 이번 휴가가 어떠셨나요? 저처럼 즐거운 휴가를 보내셨나요?”

 

 “눈 밑에 있던 다크서클이 완전히 사라졌다. 고작 며칠 쉬었을 뿐인데 살도 그새 4kg가 쪘더군.”

 

 일반적으로 살이 쪘다고 하면 기운이 우울해지지만 살이 쪘다고 말하는 사령관의 얼굴을 어느 때보다 환했다. 과한 업무로 인해 몸이 피로해 빠졌던 살이 다시 쪄 컨디션이 예전만큼 좋아졌다는 걸 사령관은 매일 몸으로 느꼈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몸을 짓눌렀던 피로가 사라져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에 힘이 솟았다. 

그렇지만 휴가가 끝나면 다시 함장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슬픈 현실에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사령관과 샬럿은 후로도 잔을 부딪히며 여러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대화는 한 번도 막히지 않았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한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나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둘의 대화를 시간이 끊었다. 

밤이 되자 날씨가 쌀쌀해졌고 낮에 작열하난 태양의 열을 식히기에 안성맞춤이었던 바닷바람은 이제 차가워졌다. 

 

 바이오로이드인 샬럿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인간인 사령관은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금방 영향을 끼쳤다. 

차가운 공기를 가득 실은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사령관은 작게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하고 몸을 살짝 떨자 샬럿은 곧바로 사령관에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권했다. 

그러게 춥지 않았던 사령관은 지금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샬럿은 수영복 차림으로 찬바람을 맞으면 금방 감기에 걸릴 수도 있다며 곧바로 사령관과 팔짱을 끼고 오르카호로 들어갔다.

 

 ---

 

 “샬럿, 제발 봐줘라. 그 말만은 철회해줘.”

 

 “절대로 안 돼요. 낭만적인 오늘의 데이트는 이것으로 마무리를 해야 해요.”

 

 오르카호 사령관의 침실. 사령관과 승조원들 사이의 동침계획이 시작되기 전에는 사령관을 제외한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었던 오르카호의 성역과도 같은 곳. 

모든 대원들이 앞다투어 들어오고 싶어하던 장소에서 샬럿과 사령관이 실랑이를 버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환하게 웃고 있지만 그 미소 속에는 강한 결의로 가득했고 사령관은 의욕으로 넘치는 샬럿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사령관이 샬럿을 침실로 데려온 것이었다. 오르카호에 돌아온 사령관은 샬럿을 그의 침실로 데려왔다. 

샬럿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샬럿 본인이 침실로 가기 원했다. 

이때 사령관도 낌새가 좋지 않음을 느꼈지만 데이트 시간 동안에는 기분에 맞춰주겠다는 말을 직접 한지라 샬럿에게 안 된다고 말하기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샬럿을 침실에 데려오고 사령관은 책상에 있는 의자를 빼 앉으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샬럿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사령관의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하아..하아..스으읍! 이게 폐하가 주무시는 침대. 폐하의 향기로 가득해요.”

 

 샬럿은 이불과 베개에 코를 밖아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이불과 베개에 진하게 남아있는 사령관의 진한 체취가 코를 찌르자 샬럿은 몸이 저릿저릿했다.

이 침대에서 사령관이 승조원들과 밤에 격렬하게 사랑을 나눴고 그리고 오늘 밤 자신과 그 어떤 때보다 격렬하게 사랑을 나눌 것을 상상하니 행복에 겨워 절정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 샬럿은 사령관에게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안아줄 것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끈 쪼가리나 다름없는 수영복을 입고 이불과 베개에 코를 박고 있는 샬럿의 모습은 치명적이게 아름다운 변태였다. 

총사대장으로서의 기품은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는지 샬럿은 사령관이 경멸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숨을 들이마셔 자신을 위로했다. 

 

 “크흠!”

 

 사령관은 말없이 헛기침을 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샬럿은 베개에서 얼굴을 때고 침대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샬럿.”

 

 “예, 폐하.”

 

 “여기에 앉아라.”

 

 사령관은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방금 전 망측한 행동을 보았음에도 사령관은 최대한 정중하게 침대에서 비켜달라는 뜻을 담아 부탁했다. 

샬럿은 침대에서 벗어나는 것이 싫었지만 하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사령관이 책상에서 뺀 의자에 앉았다. 

샬럿은 침실 안을 고개를 빙 돌려 구경했다. 기대보다는 많이 수수한 침실 내부에 샬럿은 살짝 김이 샜다. 뭔가 화려한 장식품들이 벽에 걸려 있을 줄 알았지만 방 안에 장식품이라고는 벽에 걸려 있는 화려한 보석들이 잔뜩 박혀 있는 해적검과 보기만 해도 무거워 보이는 거대한 황금 사슬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두 물건 모두 낯이 익었다. 

 

 “어? 저건 네레이드 양과 세이렌 양이 선물해드렸던 것들이군요. 정말로 걸어놓으셨네요.”

 

 네레이드와 세이렌의 선물이 침실에 잘 걸려 있는 모습에 샬럿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나중에 두 명을 만나게 된다면 사령관이 잘 보관하고 있다고 말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둘 다 닥터한테 부탁해서 깔끔하게 청소해고 걸어놨다. 사슬은 사용할지 안할지 모르겠지만 검은 당장이라도 빼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사령관은 벽에 걸려 있는 검을 들어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에 미세하게 박혀있는 보석들은 오돌토돌한 그립감을 느끼게 해 잡는 맛이 있었다.

검집에서 칼날을 꺼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깨끗한 검신이 검집 안에서 빠져나왔고 사령관은 손잡이를 잡고 원형으로 돌렸다. 

검신이 공기를 가르는 예리한 소리가 났고 사령관은 검 끝을 샬럿에게 한 번 겨누고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참에 검술이나 제대로 배워볼까? 전투용보다는 장식용에 더 가까운 검이지만 검이란 응당 사용해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법인데 벽에다 걸어놓기만 하면 조금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나?”

 

 “폐하의 말씀이 옳아요. 검은 좋은 주인이 휘둘러줘야 비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죠.”

 

 사령관이 넌지시 던진 말을 샬럿은 놓치지 않았다. 검을 배우고자 한다면 반드시 가르쳐줄 자가 필요하다. 그 누구도 아닌 오르카호 최고의 검사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앞에서 검술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는 뜻은 검술을 가르쳐달라고 돌려 부탁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샬럿은 받아드렸다. 

 

 “폐하, 만약 괜찮으시다면 제가 폐하께 검을 가르쳐드리는 걸 허락해주시겠어요? 이 오르카호 최고의 검사라고 자부할 수 있는 샬럿이 폐하를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검사로 만들어드릴게요.”

 

 샬럿은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사령관에게 검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사령관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늘려 자신에게 푹 빠지게 만들겠다는 행복한 상상을 했지만 불과 5초 만에 깨졌다. 

 

 “너가? 나는 금란한테 부탁할 생각이었다.”

 “예...?”

 

 “너는 사용하는 검이 이것과 다르지 않나. 이 검으로 찌르기만 할 수는 없으니 금란에게 배우는 게 제격이지.”

 

 샬럿의 가슴에 금이 갔다. 기분이 나쁘거나 사령관의 결정에 실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르카호 최고의 검사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자신이 아닌 베틀메이드 소속의 금란에게 가겠다는 사령관의 말은 샬럿의 자존심을 강하게 긁었다. 

 

 “폐하, 분명 금란 양도 훌륭한 검사이지만 저도 꿇리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러니 저에게도 배워보시는 게 어떠시겠어요?”

 

 “생각은 해보겠다.”

 

 사령관은 검을 다시 벽에 걸어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던 샬럿은 의자에서 일어나 사령관 옆에 슬며시 앉았다. 

 

 “폐하, 오늘 밤이 지나면 저의 데이트 요청도 끝이 나네요. 정말 아쉬워요...”

 “그래. 내 휴가도 내일이면 끝나지.”

 

 “그러니 마지막으로 폐하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들어주실 건가요?”

 

 “한 번 들어나 보지.”

 

 샬럿은 사령관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 속삭이듯 말했다. 샬럿의 마지막 부탁을 들은 사령관은 곤란한 얼굴로 샬럿을 바라보았다. 

 

 “샬럿 그건 조금 곤란하다. 다른 부탁으로는 안 되겠나?”

 

 “안 돼요. 이게 저의 마지막 소원이에요.”

 

 샬럿은 사령관에게 안아줄 것을 부탁했다. 지금까지 함께 동침을 했었던 바이오로이드들 보다 더 격하고 뜨겁게 안아달라고 말했다. 

사령관의 총애를 얻고 싶은 수많은 승조원들처럼 샬럿도 사령관에게 뜨거운 총애를 받고 싶었다. 무기한으로 기다려야 할 수도 있을 그 순간을 말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공주님처럼 청순하게 웃으며 그와 대비되는 청순하지 못한 몸을 사령관에게 밀착시켰다. 

신체의 극히 일부만 가려지는 수영복이기 때문에 피부의 대부분이 사령관의 몸에 닿았다. 

단추를 채우지 않아 훤히 드러나 있는 복부와 가슴 쪽은 완전히 샬럿의 피부와 접촉했다. 

솜처럼 부드럽고 떡처럼 탄력 있는 따뜻한 피부와 차가운 사파이어가 몸에 닿자 사령관은 흠칫 떨었다. 

 

 “허락해주시지 않으시는 건가요...? 말을 하지 않으시면 저는 알 수 없어요.”

 

 사령관에게 안기고 싶었지만 샬럿은 신하되는 자로서 무례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사령관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슬프지만 미련 없이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령관은 말없이 샬럿의 어깨를 손을 올리고 천천히 끌어당겼다.

샬럿은 사령관의 반응을 허락으로 받아드렸다. 

 

 사령관의 가슴에 손을 올려 밀어 그를 침대에 눕히고 그 위에 기대었다. 이제는 사령관의 어깨 대신 단단하고 넓은 품에 얼굴을 묻고 서로의 몸을 끌어안았다.

피부를 맞대고 완전히 밀착하고 있는 형태. 헬렐레한 얼굴로 샬럿은 풍만한 가슴을 가슴팍에 밀어붙였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사령관의 남자답고 탄탄한 몸을 샬럿은 은혜롭게 감상했다.

 

 샬럿이 육감적인 몸을 밀착하며 손바닥으로 가슴을 쓰다듬자 심장이 요동치는 것은 사령관도 마찬가지였다. 

따뜻하면서 부드러운 샬럿의 피부는 무심코 손을 가져가 만져보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했다. 

지난 번 콘스탄챠와의 동침을 통해 오랜 시간 쌓여있는 욕망이 풀리면서 사령관은 서서히 욕구를 절제하기 힘들어졌다. 

마음만 먹으면 오르카호의 승조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사령관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거부할 승조원은 없었다.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라는 절대적인 위치의 차이에서 오는 우월감, 남자로서 느끼는 욕구, 사령관은 결국 무방비하게 노출된 샬럿의 동그란 엉덩이를 손으로 우악스럽게 잡았다. 

 

 “하앙...”

 

 사령관의 손길이 닿자마자 샬럿은 야릇한 신음을 흘렸다. 사령관을 평범한 남자로 만들어버리는 샬럿의 끈적하고 야릇한 신음. 

샬럿은 고개를 살짝 들어 방금 흘린 신음만큼 야릇한 눈으로 사령관을 올려다보았다. 

한 명의 여성으로서 강한 남자에게 안기기를 기대하고 있는 샬럿은 고풍스러움과 우아함보다는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넘실거렸다. 

 

 “폐하 옷을 벗겨드릴게요.”

 

 샬럿이 사령관의 수영복 윗옷을 벗기려고 할 때 사령관이 말했다. 

 

 “네가 먼저 벗어라.”

 

 조금은 강압적이고 명령적인 어조. 하지만 샬럿은 사령관의 그런 명령에 가볍게 순종적으로 따라 상체를 일으켜 끈을 풀었다. 위아래를 가리고 있던 보석들을 전부 걷어내고 샬럿은 새하얀 나체를 사령관에게 보였다. 

새하얀 흙으로 빚은 도자기와 같은 새하얀 살렷의 몸은 이성을 유혹하는 향기를 내뿜었다. 군살 하나 없는 날씬하면서 잘록한 몸과 가느다란 팔과 다리 그러나 거대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큰 가슴.

사령관은 샬럿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하아앙...♡”

 

 샬럿이 야릇한 숨결을 뱉었다. 부드럽고 탄력이 살아있는 가슴은 사령관이 만질 때마다 출렁거렸고 사령관은 참지 못하고 이내 가슴을 움켜잡았다. 

 

 “폐...폐하...너무 자극적이세요...♡ 조금만 상냥하게...흐으읏!”

 

 사령관은 샬럿의 말을 들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이미 사령관의 이성은 사라진 상태였고 본능만이 남은 여자에 굶주린 수컷으로 변했다.

방금보다 더 강압적인 얼굴로 샬럿을 보았다. 차갑고 강압적이며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날카로운 시선, 이성을 걷어낸 사령관의 본능을 본 샬럿은 오싹하면서도 기대감에 사타구니 사이가 저릿저릿했다. 

 

 “바지 벗기고 네가 해야 하는 일을 해봐.”

 

 사령관은 샬럿에게 명령했다. 샬럿은 곧바로 양손을 뻗어 바지를 잡았다. 바지에 손을 가져가자 천 너머로 뜨거운 열이 손가락을 끝으로 느껴졌다. 

바지 사타구니 사이에 불룩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손가락을 매만지며 샬럿은 행복에 겨워 얼른 바지를 잡고 내리려고 했지만 사령관은 샬럿의 두 손목을 잡아챘다. 

 

 어째서? 손을 잡힌 샬럿은 사령관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했다.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되는데! 애달픈 마음에 샬럿은 손을 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폐하...제발...제발 허락해주세요. 제발요...”

 

 기품과 우아함은 이미 수영복을 벗을 때 함께 버려버렸다. 이제는 그저 한 명의 여자로서 안기고 싶었다. 애절하게 애원하며 샬럿은 사령관에게 자비를 구걸했다. 

떨리는 눈동자와 애원하는 목소리, 이제야 샬럿이 마음에 드는 태도를 보이자 사령관은 두 손을 놔주었다. 

양손이 자유로워진 샬럿은 사령관의 바지를 잡았다. 그리고 사타구니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

 

 오전 6시, 일찍 일어날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몸은 습관적으로 이 시간대에 사령관을 깨웠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생선 비린내 같은 냄새가 코를 찌르자 사령관은 이마를 찌푸렸지만 이 냄새의 원인은 다름 아닌 사령관이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평온한 얼굴로 곤히 자고 있는 샬럿이 있었다. 이불까지 던지고 나체를 대로 들어낸 채 잠을 자고 있는 샬럿은 온몸이 하얀 점액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어젯밤 뜨거웠던 정사가 떠오른 사령관은 충족감과 걱정 한숨을 쉬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불로 샬럿을 덮어주고 사령관은 가볍게 옷을 입고 침실을 나갔다. 한 번 잠이 깨면 다시 잠에 들지 못하는 체질 때문에 사령관의 아침은 거의 항상 오전 6시에 시작된다. 

 

 침실을 나간 사령관이 향한 곳은 오르카호 갑판이었다. 문을 열고 갑판으로 나가자 차가운 아침 공기가 사령관의 정신을 깨웠다. 

밤의 차가움을 품고 있는 써늘한 아침 공기만큼 정신을 차리게 하는데 좋은 것은 없었다. 사령관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몸에 남아있던 피로도 함께 빼내주었다. 

 

 사령관은 갑판 난간에 손을 걸치고 대원들과 휴가를 보냈던 해변을 보았다. 해수욕을 즐기는 대원들로 북적거렸던 해변에는 바닷바람이 부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러나 사령관은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던 대원들의 모습이 해변에 보였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시원한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과 각종 놀이를 즐기는 대원들의 모습. 

휴가가 남겨준 즐거운 추억에 사령관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렸다. 

사령관이 홀로 갑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또 다른 이가 갑판을 찾았다. 갑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사령관은 고개를 돌렸다. 

산뜻한 세일러복에 자그마한 체구, 긴 금색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는 귀여운 소녀. 

 

 “세이렌, 상당히 빨리 일어났구나.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아, 사령관님. 안녕하세요. 그냥 일찍 일어나서 바람을 조금 쐬러 왔어요.”

 

 사령관이 세이렌에게 오라며 손을 까딱했고 세이렌은 사령관 옆으로 걸어갔다. 

 

 “이번 휴가는 어땠나? 즐거웠나?”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대원들과도 시간을 보냈고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아, 사령관님 어제 네리 씨와 운디네 씨랑 뭘 했는지 아세요. 해변에서 물놀이를 했어요. 바닷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중파되어 빠지는 광경들을 많이 봐서 조금 무서웠는데 대원 분들과 노는 게 즐거워서 금방 잊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모래사장에서...”

 

 세이렌은 사령관에게 대원들과 보낸 시간에 뭘 했는지 어떤 게 재미있었는지 자랑하고 싶어하는 아이처럼 숨이 넘어갈 듯 말했다. 

빨리 다 말해주고 싶은지 말하는 도중 혀를 씹기도 했고 혀가 꼬이기도 했지만 사령관은 그런 세이렌을 귀엽게 보았다. 항상 어른스러워 보이기 위해 감춰왔던 순박하고 여린 본성이 마침내 풀린 듯 세이렌의 얼굴에는 생기가 흘렀다. 

호라이즌의 대장인 무적의 용을 대신하여 호라이즌을 이끌어야 한다는 중압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냈는지 세이렌은 어린아이처럼 사령관에게 계속 말을 이었다. 

 

 “아, 사령관님은 어떠셨나요?”

 

 세이렌이 사령관에게 묻자 사령관은 혀를 한 번 치고 말했다. 

 

 “뭐, 찾으려고 했던 금고가 완전히 붕괴돼서 그다지 기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얻은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니 만족한다. 그걸 제외하면 나도 즐거웠다. 간만에 제대로 휴식을 취했고 이제는 다시 함장실로 돌아가야지.”

 

 사령관은 세이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예전과 달리 세이렌은 밝게 웃었다. 그런 세이렌이 귀엽고 대견스러운 사령관도 작게 웃었다. 

문뜩 트리아이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일등으로 금고 찾는다면 자신에게 빌고 싶은 소원이 있다고 했다. 비록 첫 번째로 금고를 찾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사령관은 세이렌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고 슬쩍 떠보듯 물었다. 

 

 “세이렌, 트리아이나한테 들었는데 너도 내게 빌고 싶었던 소원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뭔지 말해줄 수 있나?”

 

 “트..트리아이나 씨가 말했다고요? 호..혹시 무슨 소원인지는 말하지 않은 거죠?”

 

 사령관의 말에 세이렌은 당황해 얼굴이 붉어졌고 어버버 하며 되물었다. 결국 금고를 찾지 못해 평생 비밀로 묻어두려고 했는데 그걸 트리아이나가 사령관에게 말해버렸다니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숨고 싶었다.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 몰라하는 세이렌의 모습이 귀엽고 웃기기까지 했기에 사령관은 콧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소원을 빌고 싶었으면 저렇게까지 부끄러워하는 걸까 궁금해진 사령관은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뭐냐? 한 번 말이나 해봐라.”

 

 말하기 부끄러웠지만 사령관의 계속되는 요구에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사령관이 기특하게 여겨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세이렌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한테 칭찬....칭찬 받고 싶었어요...잘 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고 같이 산책 하고 싶었어요...”

 

 수수하게 그지없는 세이렌의 소원에 사령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멸망 전 아버지들이 왜 그렇게 유독 딸들을 사랑했는지 이해가 조금 되었다.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느껴진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사령관은 세이렌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 주었다. 

 

 “그게 소원이라면 지금 당장 들어주마.”

 

 “정, 정말요?”

 

 “그래. 먼저 오르카호에서 나가있어라 옷을 갈아입고 금방 가겠다. 항상 입던 사령관 제복을 입을 건데 상관없겠지?”

 

 세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관은 나중에 보자고 말한 다음 발걸음을 옮겨 갑판을 나갔다. 세이렌도 사령관의 뒤를 따라 갑판에서 나갔다. 

 

 ---

 

 제복으로 갈아입고 모래사장에 서서 사령관은 세이렌을 기다렸다. 분명 세이렌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령관은 오히려 세이렌보다 먼저 해변에 도착해 어리둥절해 했었다.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지 사령관은 세이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서서히 하늘이 밝아졌다. 밤 동안 숨어있던 해가 다시 떠올라 하늘로 떠올랐고 밤하늘을 밝히던 달은 서서히 태양의 빛에 가려지고 있었다. 

여명이 밝아오며 빛이 섬에 내려앉으면서 밤의 잔재를 걷어냈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사령관님.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어요.”

 

 뒤에서 세이렌이 등을 꼭꼭 찌르며 사령관을 불렀다. 등을 돌린 사령관은 ‘오’ 하며 놀랐다. 

세이렌이 있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세일러복이 아닌 순백의 드레스, 꽃이 꽂혀있는 큼지막한 밀짚모자로 얼굴을 슬쩍 가리고 있던 세이렌은 이내 모자를 들어올려 사령관을 올려다 보았다. 

 

 “오드리가 만들어준 드레스인가? 잘 어울리는 구나.”

 

 순백의 드레스는 세이렌의 귀여움을 돋보이게 해주었고 청순함마저 나게 해주었다. 머리에 큼지막한 밀짚모자까지 쓰니 이제는 호라이즌의 부함장이라는 거창한 직책을 짊어진 군인이 아닌 평범한 어린 소녀와 다를 게 없었다. 

사령관이 칭찬을 해주자 세이렌은 베시시 웃었다. 

 

 “마침 해도 뜨고 있구나. 산책하기 좋은 시간이다.”

 

 사령관이 세이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세이렌은 작은 손으로 사령관의 손을 잡았다. 사령관과 세이렌은 함께 해변을 거닐었다. 둘의 발자국이 해변에 사박사박 자국을 남겼고 긴 그림자가 해변에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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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오보로스 파트 끝! 다음에는 할로윈으로 건너 뜁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인데 그냥 게임 스토리를 글로 쓰는 것 같아 앞으로는 제가 생각해낸 오리지널 스토리도 넣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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