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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가 생각해 낸 '작전'은 간단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음.


- ……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가죠.


바로 가능한 한 타이런트랑 붙어다니기.

저 야생(?) 타이런트는 말하자면 모두에게 적대적인 중립몹 상태.

자연스럽게 로버트가 부리는 AGS도 일정 거리 이상으로는 접근하지 않고 있었지.

써니의 홀로그램만으로도 충분히 속여넘길 수 있을 만큼 탐색 능력이 낮은 것도 (아마) 타이런트 뿐.

그러니까 차라리 타이런트 주변을 맴돌면 다른 AGS로부터는 안전하다는 생각이었음.


저 괴물의 공격 범위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은 상당했어도, 사람도 바이오로이드도 적응의 동물인 검 마찬가지.


- 저 고철덩이는 뭘 그리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네, 정말.

- 아하하. 아무래도 보폭 차이가 있으니까.


어느새 적당히 잡담 정도는 나눌 여유는 돌아와 있었어.

상황이 상황인데다 이동도 빈번한 만큼 정말로 풀어졌다거나 한 건 아니라지만 이 정도만 해도 어디야.

여전히 먹통인 통신 장치를 몇 번 눌러보다가 깔끔히 포기할 즈음 해서, 써니와의 대화를 마친 스노우 페더가 리제에게 다가왔음.


- 리제 님. 아까 하셨던 말씀 말인데요

- 네? 아우로라가 만든 민트초코 믹스 이야기요?

- 아, 아뇨. 그게 아니라.


뭐, 분위기로 봐서 그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눈치채고 있었지만.

리제는 페더 본인이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그냥 모르쇠로 일관하기로 했어.


- …그 분은 정말로 제가 죽으면 슬퍼하실까요?


장고 끝에 페더가 꺼낸 의문은 새하얗게도 절실했지.

그래서 리제는 짐짓 과장되어 보일 만큼 확신을 담아 말했고.


- 그럼요. 제가 지금까지 본 어느 때보다.

- 네, 에? 하지만 전, 아직 합류한 지도 며칠 지나지 않은 데다가…….


음. 조금 거창함이 과했나.

당황한 기색이 보이는 페더를 올려다보며 - 마음 같아선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데 거의 머리 반개가 차이나서 영 각이 안 나오네 - 리제는 짐짓 가볍게 덧붙였어.


- 처음이라는 건 언제나 깊이 남게 마련이니까요.


정확히는, 덧붙이려고 했어.

별 생각 없이 꺼낸 말에 담긴 무게감을 깨닫기 전까지는.


- 그 말씀은….

- 네.


사령관은.

리제가 사랑하고, 모두를 사랑하는 마지막 인간은.


- 그이는 아직 '잃는 것'의 괴로움을 몰라요.


합류한 후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았다는 전과는 기적적이고,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지켜보는 쪽에서는 우려를 품게 되는 것이기도 했어.

'주인공이니까 해냈다'고 마음 편히 생각하기엔 현실의 모두가 얼마나 필사적인지 알고 있으니까.

점점 늘어나는 저항군 - 그의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가족 - 중 누군가가 영영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가 받을 상처는 얼마나 깊을 것인지.


어림할 수도 없고, 어림하고 싶지도 않지만.


- 그러니까 반드시 함께 돌아가요.


적어도 지금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어.


- 네. 그렇게 할게요.


호박색 눈에 감도는 빛을 보면 스노우페더에게도 나름대로 와닿는 부분이 있었던 것일까.

의외로 고집이 센 부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 위기 상황이 닥치면 돌발 행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그 걱정은 내려놔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거였을까.


- 이건…… 전력 질주입니다.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종전에 비해 훨씬 좁은 간격으로 들려온 땅울림과 금란의 급박한 목소리가, '위기 상황'이 다가왔음을 쉽게도 알려주었어.

이쪽의 수를 간파했으면, 타이런트를 꼬드겨서 치워버리면 그만이긴 하지.


- 그래…… 여기 있었구나.


―다시 따라잡을 시간을 허락하지 않을 것도 분명했고.

생물과 기계를 뒤틀어 섞은 듯한 형체로부터 붉은 안광을 보면서, 리제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음.

금란과 스노우 페더가 앞으로 나서고 나머지가 무기를 겨누긴 했지만 그야말로 한 몸처럼 모여있는 AGS의 무리를 보면 전력적 열세는 명백했지.


가위는 거추장스러워서 놓고 다닌지 꽤 지났다 쳐도, 권총이라도 챙기고 다닐걸.


그렇긴 한데.

정말로 왜 날 쫓은 걸까.

하다못해 그 에바조차 자기를 좀 맛이 간 바이오로이드 취급하는 시점에서, 로버트 혼자 인간으로 판단했을 리는 없는데.

라는 의문의 답은 정말로 간단하게 해결되었음.


- 얌전히… 내 실험의 마지막 조각을 내놓아라……!


라고 말하면서, 로버트가 손을 뻗어 리제를 가리켰거든.

정확히는, 리제의 복부를.


- …….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는 살점 정도만 남아도 충분하다고 했던가.


- …….….


어젯밤엔 마을 탈환 준비도 완료되었겠다, 간만에 찐하게 하기도 했고.



이 미친 변태 로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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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의 생각 : 유전 정보만 있으면 양은 관계 없으니 습득 난이도가 쉬운 쪽을 노리는 것이 당연히 효율적이지?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891361